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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택 칼럼]민생을 챙기자
[나경택 칼럼]민생을 챙기자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집행과 관련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국민이 대통령에게 부여해 준 신임을 근본적으로 저버렸다.” 1년 전 박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작성한 국회 소추위원단은 본회의 제안 설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이라는 사인이 국정 농단을 하도록 권력을 사유화해 대통령에게 권력을 위임한 국민주권주의와 대의민주주의 헌법 정신을 위배했다는 요지였다. 탄핵소추안은 찬성 234, 반대 16, 기권 2, 무효 7표로 가결 정족수 200표를 훌쩍 넘었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었다. 아니, 더 새롭고 놀라운 역사는 그 한 달여 전부터 시작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분노한 시민들은 광장으로 몰려나와 촛불을 들었고, 결국 헌법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을 파면하는 탄핵 절차를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그것이 탄핵소추 가결 반년 뒤 문재인 대통령 탄생의 출발점이자 원동력이었다. 질서 있는 집회로 법치주의에 따라 최고권력자를 파면한 사례는 세계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은 일종의 명예혁명이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 행사는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는 삼권분립의 원칙,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도 국회가 헌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는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의 정신을 국민은 재확인했다. 권력이 기업을, 정치가 경제를 마음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는 시장경제 원칙을 확인하며 앞으로 다신 이런 일이 벌어져선 안 된다는데 국민은 공감했다. 이는 촛불과 탄핵 절차를 거쳐 탄생한 문재인 정부의 소명이기도 하다. 새 정부 탄생 7개월. 과연 이 정부가 국민의 시대적 요구에 충실했는가를 돌아본다. 민주적이고 소탈한 문 대통령이 전임처럼 청와대 구중심처에서 아무도 모르게 권력을 농단할 것이라고 보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제1국정과제인 적폐 청산처럼 대통령이 깃발을 들면 여당이 일제히 지원사격을 하고 정부 각 부처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과거 정권의 일을 헤집는 그 일사불란함이 제왕적 대통령의 또 다른 얼굴이 아닌가. 무엇보다 7개월 동안 나라가 과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질서와 절제로 과거를 청산하고 미래를 가자는 탄핵의 정신에 맞는지 의문이다. 정치가 경제를 쥐고 흔드는 것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권위주의 정권처럼 기업의 오너를 겁박해 움직이는 방식은 아니더라도 최저임금,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이사제 도입 등으로 시장경제의 저변을 흔들면서 훨씬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가! ‘캠코더’ 인사로 사정·사법기관을 필두로 밭을 갈아엎는 것도 ‘고소영’ ‘수첩’ 인사의 다른 버전은 아닌가. 그 청산과 갈아엎기 과거와의 싸움에 피로감을 느끼는 국민이 점점 늘고 있다. 이제 눈을 과거에서 미래로, 안에서 밖으로 돌려야 할 때다. 미국 조야에서 주한 미국인 소개론이 나오는 안보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갈등 증폭에 앞장서선 안 될 일이다. 적폐 청산도 이제는 그간의 작업에서 드러난 결과를 놓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계속 인적 청산에 집착한다면 결국 이 정부도 정치 보복의 사슬에 얽매일 것이다. 대선 기간 누구보다 대통합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 아닌가. 국회가 마지막 본회를 열어 세무사법 등 46건을 처리했다. 문재인 정부 첫 정기국회가 국정감사에 이어 예산안 심의까지 마치고 100일간의 일정을 마무리한 것이다. 여당은 대화를 통해 타협의 정치문화로 가는 징검다리를 놨다고 했고, 야당들도 각자 선방한 것으로 자평했다. 여야는 정기국회 때 여야가 핵심 쟁점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바람에 이번 임시국회가 소집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치권은 민생·개혁 입법에 속도를 내야한다.
[나경택 칼럼]위기 슬기롭게 대처하자
[나경택 칼럼]위기 슬기롭게 대처하자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엔 북한 김정은을 ‘병든 강아지’라고 불렀다. 지난 달 29일 북한이 미국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한 후다. ‘병든 강아지’는 병들어 자기 토사물을 먹는 강아지를 이른다. ‘미친 개’는 힘이라도 좋지, 병든 강아지는 비실비실하기까지 하니 받아들이기에 따라서는 더 경멸적일 수도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향해 ‘미치광이’ 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 그러다가 성에 안 찼는지 깔보는 식의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온 게 올해 9월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의 ‘미사일 쏘아대는 꼬마’다. 이번에 나온 ‘병든 강아지’의 같은 계열이다. 트럼프는 그러다가도 김정은이 다소 고분고분해지는 것 같으면 ‘꽤 영리한 녀석’이라는 식으로 치켜세워 주기도 했다. 김정은은 트럼프의 ‘미사일 쏘아대는 꼬마’에 ‘망령든 노인’이란 말로 반격했다. 김정은이 정확히 어떤 한국말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고 북한의 대외선전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그 말을 ‘dotard’로 번역해 전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조선중앙통신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어버이연합 시위대를 지칭하기 위해서도 그 말을 썼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오지’국가라고 부른 북한 덕분에 많은 미국인이 뜻밖에 ‘dotard’란 고색창연한 단어를 알게 됐다. 김일성대 영문학과 출신 탈북자로부터 북한의 영문학과는 몽골 해군과 비슷하다는 재밌는 비유를 들은 적이 있다. 몽골은 바다가 없어 해군은 실전 훈련을 할 수 없다. 북한 대학의 영문학과 학생들도 주로 책을 통해 영어를 배울 뿐 실제 쓰이는 영어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세익스피어나 초서의 글에나 나오는 단어를 실생활에 쓰는 영어처럼 썼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통화에서 대북원유공급 중단을 요구했다. 문제는 이런 고강도 압박이 북핵 개발 저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계적으로 제재 가짓수를 늘리고 강도를 높인들 효과를 거둘 수 없다. 대북 원유 공급 중단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북한 정권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원유공급 중단이 가장 현실적인 압박 수단인 것은 맞다. 하지만 북한 체제를 바탕으로 모는 것을 원하지 않는 중국이 이에 호응할지는 미지수다. 설령 중국이 원유공급을 전면 중단한다 하더라도 북한이 원유수입선을 러시아로 돌리는 길도 있다. 북한 주민에게 인도주의적 재앙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지금은 효과가 불분명한 대북 접근을 놓고 시시비비할 시간이 없다. 미국은 북한의 해상 운송 통로를 끊기 위한 새로운 자원의 해상 차단도 예고했다. 무역 해상봉쇄까지 염두에 둔 것이다. 해상봉쇄는 자발적 이행에 의존하는 소극적 제재와 달리 적극적 행동으로 대상국을 질식시켜 백기를 들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아무리 북한 해상을 철저히 봉쇄해도 대북 물동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이 육상 운송로를 활짝 열어놓은 상태에선 효과는 거의 없을 것이다. 김정은이 ICBM 도발로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이상 앞으로 핵·미사일 실험은 자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설정한 목표를 달성한 만큼 대대적인 평화공세를 펼 공산도 크다. 그런 만큼 지금은 북한을 달랠 때라고 중국은 판단할지 모른다. 하지만 기세등등한 김정은은 ‘핵보유국 지위’라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 게 뻔하다. 그러면서 또 다른 도발, 특히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둔 한국에 대한 국지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은 더욱 무모해질 뿐이다. 누가 북한을 이렇게 오만방자하게 만들었는가!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단 며칠만이라도 잠갔다면 북한이 도발을 계속하진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방조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이제라도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초치소한의 책무를 해야 한다.
[칼럼]적폐청산 법치 위협한다
[칼럼]적폐청산 법치 위협한다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서울중앙지법 형사 51부는 군 사이버사령부의 인터넷 댓글 사건으로 구속된 임관빈 전 국방부 정책실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석방 결정을 내렸다. 김관진 전 국방장관 석방 이틀 만이다. 법원은 또 전병현 전 청와대 정무수석에 대한 뇌물수수 혐의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법원이 제시한 사유는 모두 검찰 적용 혐의가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가 명확치 않고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도 낮다는 것이다.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은 검찰의 영장 청구 자체가 무리였다. 김 전 장관이 국방장관이던 기간은 북의 사이버 공격에 우리 군이 대비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정은은 “사이버전은 핵·미사일과 함께 인민 군대의 만능 보검”이라고도 했다. 검찰은 사이버사 대원들이 작성한 댓글 78만건 중 정치 댓글은 1%에 불과한 8800여 건이라면서도 정치 개입 혐의를 적용했다. 하루 10건도 안 되는 그 댓글을 본 사람은 전국에서 몇 명 안 될 것이다. 그걸로 어떻게 정치에 개입하나. 유죄 확결판결 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는 헌법 조항(27조 4상)은 피의자에게 충분히 항변 기회를 주라는 뜻이다. 특히 보기에 따라 위법 여부에 차이가 나는 이번 사건은 피의자의 항변권을 반드시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신변이 구속되거나 그럴 위기에 처하면 자기 방어가 어렵고 심리적으로도 크게 위축된다. 일느 아침 자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압수 수색을 당한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었다. 재판을 채 받기도 전에 죄인처럼 되는 것이다. 민주 법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의 권력 하청 수사 가운데 구속 기소된 피의자가 재판에서 무죄로 판결 나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이때 피의자는 구속 후 포승에 묶인 모습이 노출되는 걸로 어마어마한 인격적 형벌을 받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죄 판결 다음 검찰이 그 인격 형벌을 배상해 줄 방법이 없다. 국방장관과 안보실장처럼 안보의 상징과 같은 사람을 죄가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를 혐의로 포승에 묶어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망신을 주면 군의 사기 저하는 불가피할 것이다. 유죄 증거가 명확치 않을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사법 대원칙이다. 검찰 적폐 수사 과정에선 이 원칙이 완전히 무시돼왔다. 싹쓸이씩 몰아치기 수사로 구속영장이 남발되고 있다. 얼마 전 2013년 국가정보원에 파견됐던 변창훈 서울고검 검사와 정치호 변호사가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1주일 간격으로 목숨을 끊은 사건도 있었다. 검찰은 구속적부심의 석방 결정이 무리한 수사에 대한 피로감이 법원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난해 말 국정농단 사건은 전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그 분노를 에너지로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특임의 수사는 거침이 없었고, 그 과정에서 무리수도 적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은 진행 중인 ‘적폐청산’ 수사만 16건일 정도로 적폐 수사를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구속영장 청구를 남발하고 영장전담판사들도 여론의 비난을 의식해 구속영장을 쉽게 발부해준 측면이 없지 않다. 이번 구속적부심 결정은 ‘불구속 수사’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입각해 이런 흐름에 제동을 건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의 특별활동비 유용은 꼭 대통령 상납의 형식은 아니더라도 모든 과거 정권에서 관행으로 있었던 것이다. 전 정권의 국정원장 3명만 꼭 집어 이를 문제 삼으니 형평상 논란과 정치보복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특활비 유용이 잘못된 관행이었다면 그 제도를 고치는 데 역점을 두어야지, 관련자 처벌에 힘을 쏟아서는 안 된다. 한풀이식 수사를 벌이다 무죄로 마무리된 과거의 전 정권 비리수사와 궤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검찰은 구속적부심 결과에 흔들리지 말고 차분히 증거를 보강하고 법리를 구성할 기회로 삼기 바란다.
[칼럼]트럼프 대통령 국회연설
[칼럼]트럼프 대통령 국회연설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으로는 24년 만에 한국 국회에서 연설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면서 6·25 이후 남북한이 걸어온 길을 극적으로 대비했다. 남한의 정치·경제적 성장을 극찬한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지옥”, “감옥국가”라며 맹비난했다. 북핵에 대해서는 “김정은 당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릴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과 동맹국이 위협받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면서 “미국을 시험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중국을 지목하며 더 크고 강한 대북 압박과 제재를 주문하고 힘을 통한 평화 유지를 강조하기도 했다. 트럼프 국회 연설의 대북 발언 수위는 문재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발언에 비해 높다. 한국에서 하고 싶었던 말을 연설에서 다 쏟아낸 듯싶다. 연설만 놓고 보면 트럼프가 대북 강경 기조로 들어선 것 아니냐고 의심할 법하다. 보수야당들은 북한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 연설이라며 환영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상대 없이 혼자서 진행하기 때문에 대북 강성발언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예상대로 트럼프는 억압과 경제적 궁핍으로 고통 받는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일일이 열거하며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연설의 대부분을 할애 했다. 남한에 대해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꾸려 나가고 자유와 정의, 문명과 성취라는 미래를 선택했다”고 평가한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부패한 지도자가 압제와 파시즘, 탄압이라는 기치 아래 자국민을 감옥에 넣었다”고 지적했다. 번영하는 한국의 존재 자체가 북한 독재체제의 생존을 위협한다고도 했다. 트럼프는 또한 “북한 김정은에게 직접 전할 메시지가 있어 왔다”면서 “당신이 획득하고 있는 무기는 당신을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체제를 심각한 위협에 빠뜨리고 당신이 직면할 위협을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정적인 대북 인식은 새로운 게 아니다. 과거 그는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해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용어를 구사하며 비판해왔다. 북한 김정은 정권의 열악한 인권과 독재 핵·미사일 위협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관건은 이런 북한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가 “우리는 북한이 올바른 선택을 할 경우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것은 주목된다. 비록 탄도미사일 개발중단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 비핵화를 전제로 했지만 북·미관계 개선이나 대북지원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최대한의 외교·경제 압박을 통한 고립’을 주축으로 하되, 군사 조치도 언제라도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는다. 이날 연설은 북의 코앞에서 이뤄졌다. 김정은에 대한 엄중한 경고인 동시에 한국 국민과의 약속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은 의외로 절제돼 있었다. 트위터에 쏟아놓던 ‘화염과 분노’, ‘군사옵션 장전’ 같은 말폭탄은 없었다. ‘북한 완전 파괴’를 거론한 유엔 연설과도 사못 달랐다. 정제된 대북 메시지는 오히려 더 큰 무게감으로 단단한 결의를 느끼게 했다. 그는 그런 결의를 비무장지대(DMZ) 방문을 통해 보여주려 했지만 기상악화로 회향했다. 비록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사상 첫 한·미 정상의 동반 DMZ 방문 시도만으로도 강력한 대북 대응 의지는 충분히 전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휴전선을 “평화와 전쟁, 품위와 타락, 법치와 폭정, 희망과 절망 사이에 그어진 선”이라며 한·미동맹의 자유 수호 의지를 거듭 과시했다. 이제 한국 정부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길로 가도록 이끌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칼럼]지구촌의 백인 우월주의
[칼럼]지구촌의 백인 우월주의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미셀 오바마 여사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로서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백악관을 떠난 뒤 지난달 처음 공개석상에 섰을 때 그는 ‘가장 아팠던 상처’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러자 작년 11월 한 백인 여성이 자신을 ‘원숭이’로 조롱한 발언을 “가장 지우고 싶은 기억”이라 답했다. 당시 웨스트버지니아주 공공기관에서 일했던 패멀라 테일러는 백악관 안주인의 교체에 대해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품위 있고 아름답고 위엄 있는 퍼스트레이디를 갖게 돼 기운이 난다. 하이힐을 신은 원숭이를 보는 것에 신물이 난다.” 여기에 “정말 빵 터졌다.”는 댓글로 맞장구친 한 소도시 시장은 결국 사임했다. 오바마 여사는 “8년 동안 이 나라를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는데 피부색 때문에 아직도 나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고 개탄했다. 미국 사회의 백인우월주의는 여전히 힘이 세다. 퍼스트레이디조차 피부색으로 인한 인종 차별은 피해갈 수 없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버지니아주 샬러츠빌에서 나치 깃발을 흔드는 백인우월주의 시위대로 인해 촉발된 폭력사태를 봐도 알 수 있다. 3명이 죽고 수십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면서 버지니아주에는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러 면에서 드러난 이 지독한 증오와 편견 폭력을 최대한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고 말했지만 역풍을 맞았다.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백인우월주의를 콕 집어 비판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발언이란 지적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의 사촌인 프랜시스 골턴은 1883년 ‘인간의 능력과 그 발달 탐구’라는 책을 펴냈다. 사이비 과학으로 분류되는 ‘우생학’의 출발점이다. 독 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아리안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이를 인종청소의 빌미로 써먹었다. 백인을 신이 선택한 인종으로 믿는 시대착오적 주장이 21세기에 되살아났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해진다. 불만과 분열을 부추기는 정치 때문일까! 증오와 적개심의 불온한 바이러스가 지구촌을 잠식하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폭력사태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모호한 태도가 비난을 사고 있다. 트럼프는 당일 “‘여러 편’에서 나타난 증오와 편견, 폭력의 지독한 장면을 최대한 강력한 표현으로 규탄한다”고 말했다. 사태의 책임이 인종차별주의자만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도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더욱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명백한데도 이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의 인종 갈등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 크로법이 1965년까지 존재했다. 하지만 현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정파를 막론하고 인종차별과 그에 따른 폭력을 비난하지 않는 이는 없었다. 트럼프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그의 인종주의적 편견과 관련이 있다. 주지하듯 트럼프는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가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주장을 오랫동안 해왔다.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는 트럼프는 더 이상 숨어서는 안 된다. 타국을 방문 중인 부통령이 “위험한 비주류 단체는 미국에서 설 자리가 없다”고 하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국내 테러”라고 대리 해명을 하게 하는 것은 민주사회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다. 인종주의 폭력을 무시한다면 누가 인권침해국을 비난하는 트럼프의 말을 신뢰할까. 모호한 태도는 그의 도덕적 리더십을 의심하게 할 뿐이다. 만에 하나 자신의 지지 기반인 백인들, 특히 대안 우파 백인들을 의식한 것이라면 소탐대실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지도자로서의 위신이 땅에 떨어진 지 오래지만 지금이라도 단호하고 명백한 입장 표명과 그에 따른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만이 더 이상 미국의 분열을 막고 실추된 자신의 명예도 회복할 수 있는 길이다.
[칼럼]동아시아 평화위해 매진하라
[칼럼]동아시아 평화위해 매진하라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중국은 정부보다 공산당이 우선하는 나라다. 설사 정부가 망하더라도 공산당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본다. 그래서 공산당 당헌인 당장을 헌법보다 위로 본다. 올해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최대 화제는 ‘시진핑 사상’이 당장에 삽입된 일이다. 이를 두고 세계 언론은 “시진핑 주석이 마오쩌둥 반열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 이념 체계에선 ‘주의’를 최상급으로 친다. 그 뒤로 사상-이론-관 순으로 서열이 있다. 현재 당장에 나열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 중요 사상’, ‘과학 발전관’의 명칭과 순서는 이런 기준으로 정해진 것이다. 이 도식에 따라 시진핑 이름에 ‘사상’이 들어갔으니 그의 권력과 위상이 마오쩌둥과 동급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100% 옳은 것도 아니다. ‘시진핑 사상’의 정식 명칭은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이다. 이름이 길다는 것은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는 뜻이다. 서방에선 이를 ‘시진핑 사상’이라 줄여 부르지만, 중국에선 어떤 공식 문건도 이렇게만 쓰지는 않는다. ‘시진핑 외교사상’처럼 ‘시진핑’과 ‘사상’ 사이에 특정 분야를 넣어 사용한다. ‘마오쩌둥 사상’과는 달리 ‘시진핑 사상’이라고 공식 명명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장쩌민의 ‘3개 대표 사상’도 ‘사상’이란 이름이 들어갔으면 마오쩌둥과 동급이 돼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상’이란 단어 하나로만 권력의 힘을 단순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은 시진핑의 위치가 신중국을 세운 마오나 개혁·개방을 총설계한 덩과 비교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본다. 그럼에도 ‘시진핑’ 이름 석 자가 ‘사상’이란 왕관을 쓸 정도가 된 데는 그가 지난 5년간 반부패 숙청으로 쌓은 권력의 힘이 크다. 견제 세력이 시진핑의 눈치를 보느라 그의 독주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다. 거기에 2050년 미국을 능가하는 ‘세계 최강국 완성’을 이루자는 목표설정도 국민적 공감도 얻었다. ‘선부(누군가 먼저 부자가 되자)’에서 ‘공부(함께 잘 살자)’로 가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한국이 ‘시진핑 사상’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떨쳐 일어나 해야 할 일을 하겠다.(분발유위)”는 공세적 중국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다. 시진핑 새 시대는 국제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이번 당대회에서 대국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시 주석은 당대회 업무보고에서 “어떤 나라도 중국이 쓴 열매를 삼킬 것이라는 헛된 꿈을 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와 일본과의 영토분쟁 등 국제현안에서 미국과의 패권 다툼이 더욱 첨예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중국은 주변국과의 경쟁과 갈등이 협력의 당위성을 경시하는 결과가 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할 필요가 있다. 동북아 정세에 대한 안정적 상황 관리 노력도 중국의 책무다. 지금 동북아는 북핵·미사일 위협과 미국의 강경 대응이 거듭되면서 위기에 빠져 있다. 만일 중국이 책무를 외면한 채 전략적 이익만 추구한다면 한반도 위기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동북아 안정을 원하는 중국에도 불이익으로 작용할 것이다. 시진핑 2기 체제의 중국은 세계 최강국 추구에 앞서 그에 걸맞은 역할과 책임을 다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국의 이익 외에 주변국의 이익을 고려하는 공정한 자세가 필요하다. “타국의 이익을 희생해 발전하지는 않겠지만, 동시에 우리의 정당한 권리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시 주석의 말대로 행동하면 된다. 힘을 내세워 주변국을 위협한다면 강대국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존경받는 지도국가는 될 수 없다. 한·중관계도 마찬가지다. 미국과의 갈등 사인인 사드를 빌미로 한국을 압박하는 행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 접근 자세를 바꾸기 바란다.
[칼럼]노동자 옥죄는 근로기준법
[칼럼]노동자 옥죄는 근로기준법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근로기준법 59조.’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대포적인 악법’으로 규정하고 폐기를 요구해온 법 조항이다. 민주노총·노동안전보건연구소 등으로 구성된 ‘과로사 OUT 공동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장시간 노동을 합법적으로 용인하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합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사람 잡는 근로기준법 59조 폐기를 위한 현장 노동자 증언대회’에서 “연장근로에 대한 제한 규정이 없어 ‘묻지마 장시간 노동’을 합법화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은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를 포함한 주당 최대 노동시간을 52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내려 주당 최대 68시간까지 법정 노동시간으로 인정되고 있다. 1961년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 만들어진 특례조항은 모법을 거스르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운수업, 통신업우편, 영화제작, 청소업 등 특례조항 적용 업종은 주당 12시간이 넘는 연장노동과 휴게시간 변경을 허용한 것이다. 특례조항 적용 업종은 산업분류표 변경에 따라 현재 26개로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전국 사업장의 60.6%, 노동자 400만명이 특례조항 적용 대상이다. 한국 노동자들의 연평균 노동시간(2285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긴 것은 특례조항 탓이 크다. 최근 특례조항 적용 업종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가 잇따르면서 근로기준법 59조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경부고속도로 버스 추돌 사고를 계기로 시외버스 운전기사들의 하루 최대 운행시간이 17시간을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만 12명이 숨진 집배원들은 월평균 60시간가량의 초과근무에 시달리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노동자를 해고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동자가 질병·부상·구속 등으로 일할 수 없거나 회사가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로 인력을 감축해야 하는 경우 등이 ‘정당한 이유’에 해당한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난해 1월 22일 발표한 ‘공정인사 지침’에 업무·근무성적 부진 등도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법이나 판례로 저성과자 해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는데 노동부가 ‘쉬운 해고’의 길을 열어준 꼴이다. 취업규칙은 채용·인사·임금 등에 관한 사내규칙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지침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이 돌아갈 취업규칙을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박근혜 정부는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성과연봉제도입 등을 밀어붙이면서 취업규칙 지침을 적극 활용했다. 기업들의 저성과자 낙인찍기와 부당해고도 줄을 이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7월 저성장과자로 분류된 직원 3명을 부당해고하기도 했다. 민주노총·한국노총 등 노동계는 양대 노동지침 폐기를 요구해왔다. 특히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하면서 노사정 대화가 중단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양대 노동지침 폐기를 대선공약으로 제시했고, 김영주 장관도 인사청문회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약속했다. 양대 노동지침의 폐기는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보장을 위한 당연한 조치다. 이를 계기로 노사정위원회가 즉각 복원돼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한 대화의 물꼬가 트이길 기대한다. 아울러 정부는 행정권력의 노동법 파괴와 노조 무력화에 제동을 걸고, 노동시간 단축과 통상임금에 대한 잘못된 행정해석도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 8건이 제출돼 있다. 환노위는 근로기준법 59조 특례조항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 장시간 노동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끊을 수 있다.
[칼럼]사법위기 핵심은 재판 불신
[칼럼]사법위기 핵심은 재판 불신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회가 사법개혁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뜻을 받든 것이다. 환영의 뜻을 표한다. 국회는 이날 무기명투표를 실시해 출석 의원 298명 가운데 찬성 160명, 반대 134명, 기권 1명, 무효 3명으로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가결했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표차로 가결된 것은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의당은 물론이고 보수여당 의원을 조차 김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을 높이 평가한 결과로 보인다. 대법원장은 삼권분립의 한 축인 사법부의 수장이다.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는 3000여 법관들의 리더로, 대법관 13명과 함께 최고·최종심 법원인 대법원의 재판도 담당한다. 대법관 제청 및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 동의 권한도 갖고 있다. 김 후보자는 이 같은 막중한 임무를 앞으로 6년간 수행하게 됐다. 지금의 사법부는 벼랑 끝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사법부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김 후보자 앞에는 산적한 과제가 놓여 있다. 김 후보자는 무엇보다 ‘판사 블랙리스트’로 대표되는 세계 최하위 수준인 사법부 신뢰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인사청문회에서 밝힌 대로 전관예우를 근절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료화된 사법행정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도 중요하다. 사법부는 법원 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재판하지 않는’ 판사들이 장악했다. 김 후보자는 ‘50대 서울대 출신 남성 법관’ 일색인 사법부 구성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들이고, 제청 절차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에서 “세대·성별·직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대법원의 구성이 새로이 바뀔 때마다 해당 시기에 대법원 인적 구성의 다양화라는 가치를 최대한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내년 1월 1일 임기가 끝나는 김용덕, 박보영 대법관 후임자 제청부터 그 약속을 실천했으면 한다. 헌법은 다수결이나 합의 논리에 구애받지 말고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라는 임무를 사법부에 맡겼다. 당연히 김 후보자도 약자 및 소수자 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김 후보자의 지명을 놓고 그간 논란이 벌어진 것은 그의 경력·경험 부족과 함께 법원 내 특정 성향 판사 모임 회장을 지내는 등 정치·이념 편향을 띤 인물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법원 내 서클 수장처럼 지냈던 사람이 사법부 대표자로 임명되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다. 그 서클 소속인 한 판사는 법원 게시판에 ‘재판이 곧 정치’라는 글을 올렸다. 같은 서클 소속인 또 다른 판사는 대선 다음 날 ‘지난 6~7개월은 역사에 기록될 자랑스러운 시간들’이라는 글을 썼다. 판사가 아니라 정치인들이다. 김명수 대법원에서 이런 판사들이 득세하면 사법부는 그나마 남아 있는 국민 신뢰마저 잃게 될 것이다. 대통령 임기(5년)와 대법관 임기(6년)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보통은 한 정권이 대법관 임명권을 거의 독점하는 일은 생겨나지 않는다. 이번에도 통상적인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면 5명은 전임 정부가 임명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정권 경우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4명 가운데 김재형 대법관을 뺀 13명 모두를 임기 내에 임명하게 된다. 대법원은 중요 판결을 통해 사회 가치관의 방향을 정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자면 국민 골고루 가치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법부는 한 번 신뢰를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고 심판 기능의 마비는 사회 혼돈으로 귀결된다. 사법부는 헌법정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 김명수 사법부가 이념 대결을 넘어 법과 양식이 승리하는 정의로운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사법부 독립을 지키는 길이고 사법부 수장이 직을 걸고 지켜야 할 가치다.
[칼럼]안보 위기 초당적 대처 환영
[칼럼]안보 위기 초당적 대처 환영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2013년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백악관 최후의 날’은 북한계 테러리스트들이 한국 국무총리 일행으로 위장해 백악관을 장악하는 상황을 가정했다. 워싱턴이 공습받자 미 대통령과 각료들이 한국에서 온 국무총리 방문단과 함께 지하 벙커로 급히 피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 등장한 지하 벙커는 백악관 이스트윙(동쪽 건물) 지하에 만들어져 비상사태 때 미 핵심 지휘부가 집결하는 곳이다. 대통령 비상작전센터(PEOC)가 정식 명칭인 이 벙커는 워 룸(War Room)이라는 별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처음 만들어졌는데 핵 공격도 견딜 수 있다. 백악관 웨스트윙(서쪽 건물) 지하엔 최첨단 정보통신 시스템을 갖추고 전 세계 안보 상황을 24시간 점검하는 상황실이 따로 있다.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을 미 최정예 특수부대 ‘네이비 씰’이 사살하는 작전을 폈을 때 오바마 대통령 등 미 정부, 군 수뇌부가 이곳에서 긴장한 채 숨직이고 작전을 지켜보는 사진이 화재가 됐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통수권자가 지하벙커를 운용한다. 독일 베를린의 옛 황제 공관 부근 땅속 8.2m에 4m 두께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히틀러의 전시 지휘소가 있었다. 히틀러는 1945년 1월부터 이곳에 은신했다가 패색이 짙어진 4월 29일 애인 에바 브라운과 ‘벙커 결혼식’을 올린 뒤 이튿날 함께 자살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4당 대표가 영수회담을 마친 뒤 청와대 지하 벙커로 알려진 NSC(국가안보회의) 위기관리센터를 방문해 브리핑을 받았다. 청와대 지하 벙커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전시 대피 시설로 만들어졌다가 노무현 정부 때 국가 위기 관리 상황실로 개조됐다. 합참과 한미연합사, 육·해·공군 등 군 지휘부와 경찰의 각종 상황 정보가 실시간 집결된다. 오산 중앙방공통제소(MCRC)와도 연결돼 한반도 수백km 반경의 모든 항공기 이착륙 움직임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알 수 있다. 청와대 지하 벙커는 천안함 폭침 사건, 연평도 포격 도발 등이 이어졌던 MB 정부 시절 특히 자주 TV에 등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기서 글로벌 금융위기 대책회의도 했다. 일각에선 지하 벙커 용도가 안보 이슈 관리에만 집중돼 있는데 대규모 재난관리 등 안보의 영역이 넓어진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 바른정당 주호영 대표권한대행, 정의당 이정미 대표와 청와대에서 만찬 회동을 갖고 5개항의 공동발표문을 채택했다. 공동발표문은 한미동맹을 강화해 대북 억재력을 강화하고, 한반도에서 전쟁은 용납될 수 없는 만큼 안보 현안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재확인하며, 여야정국정상설협의제를 조속히 구성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날 회동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불참해 아쉬움을 남겼다. 문 대통령은 인사말에서 “안보 상황이 엄중한데 우리가 주도할 수도 없다”며 국정 협의체를 구성해 안보 문제를 상시협의하자고 제안했다. 만찬 후엔 청와대 ‘지하 벙커’로 안내하고 안보 현황을 직접 브리핑하기도 했다. 잠깐의 만남으로 꼬인 문제가 다 풀릴 수는 없겠지만, 여야 대표가 자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것 이상의 좋은 정치는 없다는 점을 이번 회동은 여실히 보여준다. 모름지기 정치는 상대와의 타협이며, 만남을 통해 이뤄지는 법이다. 지금은 나라 안팎 상황이 매우 어렵다. 소모적 경쟁으로 시간을 보낼 만큼 그렇게 한가한 때가 아니다. 안보 위기는 언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일촉즉발’이다. 국내의 상회이 어려울수록 여야 정치 지도자들은 각자 입장과 공통분모를 확인하면서 거리를 좁혀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번 회동이 그동안 막힌 부분을 뚫고 여야 간 소통과 협치의 틀을 만들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칼럼]청년실업 대책 시급하다
[칼럼]청년실업 대책 시급하다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일자리 창출을 국정 1순위로 추진하겠다던 새 정부의 고용성적표가 시작부터 좋지 않다. 지는 8월 청년 실업률이 9.4%로 뛰면서 8월 기준으로 외환 이후 최악이다. 8월 취업자 증가 폭(전년 같은 달 기준)도 4년 6개월 만의 최저치다. 고용 악화를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반도체를 제외한 대부분 산업이 부진을 겪는 속에서 중국의 사드 보복이 겹쳤다. 그러나 새 정부의 정책이 일자리를 줄이는 효과를 낸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을 앞두고 영세·한계기업이나 소상공인들이 미리 종업원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8·2 부동산 대책으로 건설 현장 고용도 감소했다. 앞으로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정부가 SOC(사회간접자본) 건설을 대폭 줄인다니 고용 효과가 가장 큰 건설 분야 고용 축소는 더 심해질 것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드라이브도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부정적 영향을 준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처럼 규제를 풀고 노동시장을 개혁해 기업의 고용 능력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대기업 법인세와 산업용 전기료 인상, 동시다발적 사정 등 반기업 기류가 넘쳐나 기업이 더 뽑을 의욕을 가질 수 없다. 최초의 ‘일자리 정부’임을 내세웠지만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일자리 창출 정책은 세금으로 공무원 17만명을 늘리겠다고 해 청년들을 고시촌에 몰리게 한 것이 거의 전부다. 새로운 비즈니스가 생기지 않으면 좋은 일자리는 절대 생기지 않는다. 기업이 새 사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법인세를 낮추고 바크롱 대통령이 노동 개혁에 승부를 거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이 방향으로 가는데 한국 정부는 세금으로 공무원 늘린다고 한다. 정책 부작용이 가시화되자 장관들도 조금씩 문제점을 지적하기 시작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김영춘 해수부 장관이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 조절’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거의 모깃소리만 하다. 정상을 벗어난 편향된 정책을 현실에 맞게 수정하려는 움직임은 어디에도 없다. 통계청은 계속된 비로 인해 6개월 연속 10만명을 넘었던 건설업 신규 취업자 수가 8월엔 3만 4000명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제조업 취업자 수가 3개월 연속 증가세를 나타내는 등 희망적 현상도 없지 않다. 11조원 규모의 ‘일자리 추경’이 본격 집행에 들어간 만큼 효과가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사회간접자본 관련 예산이 내년에 역대 최대 규모로 삭감될 예정이어서 위축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 취업준비생을 포함한 청년층 체감실업률(고용보조지표 3)이 22.5%(114만명)로 1년 전보다 1%포인트 높아진 점이 우려스럽다. 청년 4~5명 가운데 1명은 사실상 실업자라는 얘기다. 정부가 공무원 2575명을 충원하는 원서접수를 시작하면서 수십만명의 취업준비생이 양산된 측면이 있다. 공공부문 채용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이나 공기업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 늘면서 되레 실업자를 만들어낸 정책 딜레마다. 정부의 ‘기업 옥죄기’ 정책으로 인해 청년들이 선호하는 대기업 신규 채용이 정체된 현실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기본 취업자에 대한 보호는 강화되는 반면 미취업 청년들의 기회는 줄어드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국내 경기가 L자형 불황을 이어가는 가운데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구조개혁이 지연돼 잠재성장률은 점점 더 하락하는 추세다. 결국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을 키우는 정책 말고는 대안이 없다. 기업 투자를 확대하지 않고는 어떤 청년실업 대책도 근본 처방이 되기 어렵다. 소비를 위축시키는 가계부채를 정교하게 관리하는 한편 규제 개혁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도록 유도하는 정책 전환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