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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칼럼]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기자들과 만나 “이 나라 경제와 안보 위기를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이 믿고 의지할 새로운 보수정당의 탄생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새누리당을 탈당해서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는 친박(친박근혜)계를 ‘가짜 보수’로 자칭하며 “신보수와 중도가 손을 잡고 국가 재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박(비박근혜)계 리더 격인 김 전 대표의 신당 창당 구상에 아직 비박 대다수가 동의한 것은 아니다. 다른 비박 리더인 유승민 의원은 “나는 당 안에서 개혁을 위해 끝까지 투쟁하고 탈당은 마지막 카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은 탈당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은 사퇴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후임을 결정할 원내대표 경선에 이어 비상대책위원장 선출 등 주요 정치일정을 앞두고 있다. 친박이 다수인 당내 경선에서 비박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비박은 ‘경선에 실패해 탈당한다’는 웅색한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결단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김 전 대표가 표현한 대로 친박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노예’였다. 이 노예근성이 불러온 친박 패권주의가 4·13 총선을 참패로 이끌었다. 그럼에도 친박은 박 대통령 앞에서 찍소리도 못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일체의 건전한 비판도 배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금기시하는 노예근성이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도 죽이고 새누리당도 죽였다”는 김 전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죽은 새누리당’ 간판으론 설령 비박이 당권을 잡는다고 해도 내년 대선에 희망이 없다. 비박은 몸을 던져 박 대통령과 친박의 전근대적인 전횡을 막지 못했다. 탄핵정국에서 ‘회군’하려던 비박을 돌려 세운 것도 촛불집회였다. 탈당을 꺼리는 것도 나가면 얼어 죽지 않을까 하는 ‘웰빙 본능’ 때문이다. 비박이 친박 못지않게 보수정치를 망친 책임을 지려면 광야에서 풍찬노숙할 각오를 해야 한다. 비박이 새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먼저 당을 떠난 탈당파와 합류해 보수신당을 세운다면 친박 내 탄핵찬성파까지 흡수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을 제대로 견제하지 못한 것은 친박이나 비박 모두의 책임이다. 새누리당 의총에서 친박계 정주택 의원이 신임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정책위의장으로 뽑인 이헌재 의원도 친박계다. 친박계가 똘똘 뭉쳐 이들을 당선시켰다. 국민의 최순실 국정 농락과 박근혜 대통령의 무능을 개탄하고 분노하는데 새누리당은 친박 색채가 더 진해졌다. 민심 역행도 이 정도면 시쳇말로 ‘역대급’이다. 민주당이 “정 원내대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을 지나치다고만 할 수가 없다. 이날 이정현 대표 등 친박 최고위원들이 일괄 사표했다. 그렇게 버티던 친박 지도부가 갑자기 물러난 것은 친박 원내대표가 선출되니 걱정이고 당권력을 놓치고 밀려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대표 권한대행까지 맡게 된 정 원내대표는 비상대책위 구성을 책임지게 된다. 신임 정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친박 핵심들에게 2선 후퇴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지지율 15%짜리 당 대선 주자 한 명 없는 당의 권력이라도 놓지 않겠다는 집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이런 당의 얼굴이 이 친박에서 저 친박으로 바뀐다고 감동할 국민은 거의 없다. 정 원내대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며 화합을 호소했다. 당내 친박 모임은 창립 선언문에서 ‘배신의 정치 타파’를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결국은 분당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비박은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친박과 방향이 다를 뿐 대의가 아니라 소리를 탐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치적 모험을 해 본 적도 없고 할 생각도 없다. 한마디로 ‘웰빙 정치인’들이다. 지금 새누리당은 민심에 역행하는 친박과 웰빙 비박이 기이하게 공생하고 있는 정당이다.
[칼럼]대한민국 이기주의 공화국
[칼럼]대한민국 이기주의 공화국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한때 “미국산 쇠고기는 굳이 먹을 일이 없을 것 같다”고 했던 정세훈 국회의장이 미국에서 한미동맹 강화를 역설했다. 정 의장은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한국에는 사활적 요소”라며 한국의 번영에 기여한 것에 헌사를 아끼지 않았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 면담 때는 “한국 야당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에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드 반대가 아니라니 반갑기는 하지만 그의 과거 발언과는 달라 고개를 기웃하게 된다. 정 의장은 미국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땄고 1980년대엔 무역상사주재원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30대를 보냈다. 하지만 2008년 광우병 파동 때 그는 미국산 쇠고기의 체험적 진실엔 시치미를 뗀 채 72시간 연속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국민이 싸우고 있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뒷걸음쳐서는 안 된다”는 개인 성명을 냈다. 민주당이 장외투쟁을 접고 국회에 동원할 땐 당 대표로서 수배 중인 광우병 대책회의 간부들을 찾아가 양해도 구했다. 2011년 민주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재협상을 요구할 때 그는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으로 이익균형이 깨졌다며 이를 만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이번 방미에선 “한미 FTA는 완전히 이행돼야 한다. 지금까지도 양국에 이익이 됐고 앞으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을 바꿨다.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사드에 관한 정부 태도를 비판해 국회의장이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논란을 일으킨 뒤 미국에서 톤을 낮춘 경위가 궁금하다. 여야 원내대표와 함께 방미한 정 의장이 북한의 5차 핵실험에 경각심을 느껴 초당적 외교를 펼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좋게 때와 장소에 맞춰 말을 바꾼 것이라면 미국이 과연 진정성을 느낄지 모르겠다. 하긴 요즘 야당의원 중엔 운동권 시절 ‘반전 반핵 양키 고 홈’을 부르짖으며 미국의 전술핵 철수를 요구해놓고 정작 북핵엔 침묵하는 이들도 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정치인의 언행. 검증이 필요한 세상이다. 정부의 사드 배치 발표 직후 ‘사드 배치에 대한 입장’이라는 발표문까지 내며 반대했던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사실상 철수를 공식화한 것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사드 반대에서 철수한 것은 흠이 아니다. 오락가락하는 안보관이 문제다. 그는 당초 “사드 배치를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드를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선 ‘정부가 중국과의 외교적 협상을 생략하고 갑자기 발표했기 때문’이라며 정부 탓을 했다. 안보주권인 방어무기 도입을 놓고 적의 동맹국과 협상하는 나라는 없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여론조사에서 사드배치가 ‘공감한다’ 62.9%는 ‘공감하지 않는다’ 31.9%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안 의원의 국민의당이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정세균 국회의장 등이 사드 반대 주장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도 이런 여론에 압박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야당은 안보 현실에 대한 깊은 고려와 책임의식 없이 사드 반대부터 주장함으로써 한국을 겁박하는 중국의 입장을 강화시켜준 점부터 반성해야 한다. 안 의원이 꼭 4년 전 2012년 대선 도전을 선언한 날 이다. 그는 국민의당 창당 전후 “종북 소리 듣지 않는 정당을 창당할 것” “국민의당은 안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으나 안보관이나 남북관계에서 일관된 소신이나 비전을 보여주지 못했다. 대선 전에 펴낸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에서 북한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평화체제’를 주장했고 대선 공약에선 ‘남북관계 개선과 평화체제 구축, 북핵 해결을 상호 연계하지 않고 병행 추천하겠다’고 밝혔다. 안 의원이 보수우파의 ‘대북 압박’과 진보좌파의 ‘대화 중시’에서 중간 지점을 찾다가 길을 헤매는 모습이 딱하다. 정계입문 4년이 되도록 안보관이 흔들리는 대선주자에게 정권을 맡기기에는 국민이 불안하다.
[칼럼]한·미 정상회담 절실하다.
[칼럼]한·미 정상회담 절실하다.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최악의 패자는 여론조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대부분이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보다는 ‘모범생’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승리를 예상했다. 뉴옥타임스는 클린턴 후보 당선 가능성을 84%로, 프린스턴 선거 권소시엄과 허핑턴포스트 등은 99%로 봤다.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은 47% 대 43%로 클린턴 우위를 점치는 등 주요 기관 11곳 중 9곳이 틀렸다. 망신을 당한 기관들은 반성문을 냈다. 미국 여론조사 연합회는 “이번에는 완전히 틀렸다”면서 “여론조사의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반면 대선 직전 트럼프 후보 우위를 점친 유력 기관은 2곳에 불과했다. LA타임스와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은 공동조사에서 48%인 트럼프가 43%의 클린턴을 앞섰다고 밝혔다. 이어 경제전문매체 인베스터즈 비즈니스 데일러(IBD)와 여론조사기관 테크노메트리카마켓 인텔리전스(TIPP)는 45% 대 43%로 트럼프 우위를 예상했다. 이 두 곳의 여론조사 기법은 좀 달랐다. LA타임스는 투표 의향에 중점을 뒀다. 조사 때마다 응답자를 무작위 추출하는 대신 3000여명을 골라 추적 조사했다. 그러면서 2012년 대선 때 누구를 찍었는지를 기반으로 가중치를 주고, 실제 투표 할지도 거듭 물었다. 인터넷을 통한 조사도 병행했다. 그 이유에 대해 USC 경제·사회조사 사이프센터 아리 캠페인 책임자는 “일부 유권자들은 조사원과의 직접면담에서 트럼프 지지 사실을 인정하길 부끄러워했다”고 말했다. IBD·TIPP도 자신들만의 방식을 썼다. 보통 여론조사기관은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인구통계학적으로 응답자를 고르지만 이곳은 연령, 성별, 인종, 지역 등 인구총조사 결과에 맞춰 응답자를 골랐다. 또 응답자들의 ‘정당지지’ 여부에도 가중치를 줬다. 이번에는 여론조사기관도 ‘이단아’들이 이긴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인과 박근혜 대통령이 통화하고 “미국은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 굳건하고 강력한 방위 태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흔들리지 않고 한국과 미국의 안보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도 했다. 대한 안보 정책과 관련해서 그의 부정적 언급만 알려진 가운데 나온 의미 있는 언급이다. 하지만 형식적 수사라는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은 박 대통령과 관련한 한국의 정치 상황을 낱낱이 파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 간 협의의 수준과 밀도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다. 당장 새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어떻게 될 것인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우리 정보 상황은 단시간에 정리되기 어려운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외교와 안보까지 지리멸렬할 수는 없다. 트럼프도 한국과 한반도 정세의 맥락을 모르고 우리도 트럼프를 모르고 있다. 그의 독특한 세계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니 미국의 새 외교 정책을 가늠할 수 없다. ‘미국 우선의 신고립주의’로 대표되는 그의 생각과 그런 입장을 갖게된 배경을 충분히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다. 미국과 같이 거대한 나라, 의회가 강력한 나라는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대외 정책이 급변하지는 않는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팀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 중엔 존 볼턴 등 강력한 매파가 적지 않다. 볼턴은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지 않는 사람이다. ‘미국 우선’과 ‘강경 개입 정책’이 결합할 경우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미국의 한 안보 전문가는 트럼프 당선 후 인터뷰에서 “내가 한국의 외교·안보 책임자라면 미국에만 안보를 의존하는 한국의 국방 구조를 당장 뜯어고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이 미국 전문가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미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에 국가 전체가 놀라고 있다. 국방부 수뇌부와 군 지휘관들부터 깊이 고민해야 한다.
[칼럼]‘성완종 리스트’ 무죄 판결
[칼럼]‘성완종 리스트’ 무죄 판결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흔히 죽음 앞에서 사람은 정직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든 세상을 등지며 남긴 말이나 글에는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무게가 실린다. 모든 걸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쓴 유서나 유언엔 차가운 진실이 담겨 있다고 여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렇다. 목숨까지 던질 땐 적어도 일말의 진실은 남겼을 거라고 사람들은 믿는다. 그런데 그게 법정에서 사실로 인정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재판부가 증거로 인정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2011년 미국의 흑인 사형수 트로이 데이비스는 사형 집행용 약물이 몸속에 주입되지 직전까지 “나는 결백하다”고 외쳤다. 그는 경찰관을 총으로 쏴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경찰은 총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증인을 내세웠다. 그런데 일부 증인이 “강압적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았다”며 증언을 뒤집었다. 주정부는 사형 집행을 연기했고 연방대법원은 무죄를 증명할 재판 기회를 따로 줬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판결을 뒤집을 증거가 충분치 않다는 이유였다. 사형은 결국 집행됐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으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에게 2심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했다. 핵심 쟁점은 이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 자금 3000만원을 줬다는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생전 인터뷰와 메모를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해외 자원 개발 비리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이 작년 4월 자살 직전 남긴 것들이다. 그의 유언이자 유서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증거를 놓고도 두 재판부 판단은 완전히 달랐다. 1심은 인터뷰와 메모가 진실하다고 믿었다.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2심은 “성 전 회장이 수사의 배후에 이 전 총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강한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가졌을 수 있다”며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허위로 얘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성 전 회장은 인터뷰에서 이 전 총리를 “사장 대상 1호”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어느 재판부 판단이 맞는 것일까.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형사재판의 한계를 떠올린다. 실체적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유서만 남은 경우라면 말할 것도 없다. 몇 년 전 어느 고위 법관은 유죄를 선고하면서 피고인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지만 혹시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항소해보기 바랍니다.” 재판의 한계를 절감한 말이었다. 성 전 회장이 지난해 4월 자살하기 직전 기자와 나눈 통화 녹취록에서 3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했지만 재판부는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자살 당시 자원외교 비리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자신을 이런 처지로 몰아간 배후가 이 전 총리라고 판단해 이 전 총리에 대해 배신과 분노의 감정을 갖고 허위진술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상의 뇌물죄나 불법 정치자금 수수죄의 경우 돈을 주고 받은 사람의 감정이 틀어진 상태에서 비리 제보나 증언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판부는 금품 증여시점을 ‘지난번 재·보궐선거 때’로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한 점도 지적했으나 2년 정도 지난 시점에 정확하게 날짜를 특정하지 못한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 엄격한 증거채택 기준이 필요하다 해도 당사자 간에 은밀히 금품이 오고가는 범죄의 특성을 재판부가 무시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성완종 리스트’가 처음 공개됐을 때 이 전 총리가 다그치듯 ‘성 회장이 죽기 전에 어떤 말을 했느냐’는 전화를 수차례 걸어왔다는 복수의 증언 역시 유죄의 증거가 되지는 못했다. 이런 식이면 앞으로 금품전달 장면이 담긴 동영상 등 직접 증거가 없는 경우 유죄를 입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죄 선고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지 결백을 의미하지 않는다. 대법원에서는 2심이 남긴 의문점들이 해소되길 기대한다.
[칼럼]대한민국 어쩌다 이리됐노
[칼럼]대한민국 어쩌다 이리됐노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언론사들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실상 관련 기사를 보도하며 ‘대통령 비선실세’, ‘고 최태민 목사의 딸’ 이란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범상치 않은 관계의 시발점은 최씨의 부친 최태민(1912-1994) ‘목사’다. 그런데 기독교계가 최씨는 목사가 아니었다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가 1975년 4월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종합총회란 교단이 존재했는지 확실치 않고, 있었다 해도 사이비 교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독교계는 신학교도 나오지 않은 최씨에게 목사 칭호를 붙이는 건 부적절하며 선량한 목회자들의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태민씨는 1974년 육영수 여사 사망 후 사실상 퍼스트레이디가 된 박 대통령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내며 인연을 맺었다. 각종 이권 개입으로 권력형 비리 의혹이 그의 주변에 들끓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후 중앙정보부가 국정을 농단한 혐의로 최씨를 조사한 문건 등을 볼 때 그가 신학대학이나 교계에서 인정받은 신학교에서 교육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때 승려였던 최씨는 천주교 세례를 받기도 했으며 난치병을 치료한다며 사이비 종교 행각을 벌였다는 설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재판에서 ‘최태민은 사이비 목사’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변이 뛰어나고 박학다식했다는 증언을 감안하면 종교적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최씨는 다섯째 달 최순실씨를 무척 아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말동무였다는 최순실씨를 두고 부친의 종교적 능력을 이어받은 후계자란 평가도 나오고 있어 부친을 많이 닮기는 닮은 것 같다. 최씨가 사이비 목사였다는 점이 그리 새삼스럽진 않다. 기도교계가 억울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최순실씨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초부터 최근까진 아무런 통제 없이 청와대를 드나들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와대 부속실 행정관이 운전하는 차량에 앉아 ‘11문(정문)’을 통해 검문 없이 오갔다는 것이다. 장관들도 출입증 제시와 얼굴 대조를 거친 뒤에야 진입이 가능한 곳이라고 하니 최씨의 위세는 장관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박 대통령이 법과 시스템에 의한 통치가 아니라 사적 인연에 의한 통치를 행한 것이며 이 나라 ‘박근혜-최순실 공동정부’였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최씨가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을 만났을 것이란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박 대통령과 얼굴을 맞대고 온갖 국정에 개입했을 것이다. 최씨가 청와대로 올라오는 각종 기밀분서들을 훑어보고 직접 들고 나왔을 수도 있다. 그동안 현 정부에서 장관들의 대통령 대면보고가 차단돼 있으며 이는 매우 비정상적이란 우려가 높았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 기자회견에서 장관들과의 대면보고가 적은 게 아니냐는 지적에 “그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전화 한 통으로 빨리빨리 하는 게 편리하지 않느냐는 이유를 댔다. 그런 박 대통령이 최씨에게는 수시로 청와대를 드나들도록 허용했다는 소식은 정말로 경악스럽다. 청와대는 최씨의 과거 출입기록을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이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각종 의혹에 대해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나라를 위해서 좀 냉정을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한 것은 정말 무책임하다. 사실이 아니라면 떳떳하게 공개 못할 이유가 없다. 검찰은 최씨가 언제 청와대를 출입했는지, 누구와 만났는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최씨가 자주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얘기는 진작부터 돌았다. 친박 실세들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사생활일지라도 그것 때문에 온 국민이 충격과 자괴감에 빠지고 국정이 마비될 지경에 이른 만큼 검찰은 철저히 수사해 의혹을 밝혀야 할 것이다.
[칼럼]북한 1차 핵실험 규탄한다.
[칼럼]북한 1차 핵실험 규탄한다.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신문에 실린 지도를 보니 핵 위협이 피부에 확 와 닿았다. 미연합사령부가 있는 용산에서 핵이 터졌을 때 피해 정도를 그린 지도다. 우리 집은 지도에서 ‘생물체 모두 사망’과 ‘사람 전선 3도 화상’ 지역의 경계쯤에 있었다. 폭탄이 터지는 곳을 폭심지라고 한다. 하늘에서 터지면 바로 아래 지표면을 그렇게 부른다. 미 9·11 테러 이후 ‘그라운드 제로’가 귀에 더 익숙하다. 역사상 실전에서 핵무기가 사용된 경우는 2차 대전 막바지인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이다. 나가사키는 기념 공원으로 조성돼 분위기가 숙연했다. 히로시마는 뜻밖에 길거리 병원이었다. 그 앞에 작은 비석만 서 있을 뿐이다. 폭발 당시 나가사키 폭심지는 테니스 코트였다. 히로시마 폭심지엔 ‘시마’라는 이름의 병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이곳 환자의 의료진 80여명이 모두 사망했다. 원장은 다른 병언 부탁을 받고 수술하러 출장을 떠나 살아남았다. 원장은 훗날 폐허 위에 다시 병원을 세웠다. 그 역사를 생각하면 병원 건물 자체가 인간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기념비인 듯하다. 근사한 추모비보다 실존적이고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폭발직후 원장이 달려왔을 때 수습한 것은 백골뿐이다. 백골이라도 그나마 행운이었다. 폭심지 인근 수많은 생명체는 그냥 녹아서 사라졌다. 연기로 증발했다. 먼 곳의 수많은 방사선 비극을 피하지 못했다. 당시 히로시마엔 35만명이 살고 있었다. 여기서 13만명이 죽었다. 지금 용산구에만 23만명이 산다. 인근 동네에도 수십만 주민이 다닥다닥 부대끼며 지낸다. 이런 곳에 핵폭탄이 터지면 피해가 얼마나 될지 주민들은 피부로 안다. 미 국방부가 모의실험을 통해 추정했다는 ‘62만명’은 과장이 아니다. 북한은 올 1월 4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 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2270호를 비웃으며 핵과 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핵실험 주기가 과거 3년에서 8개월로 바짝 줄어든 것도 가공할 속도의 기술 진보 때문이다. 이런 점까지 정확히 꿰뚫고 대비해야 할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의 핵탄두 소형화가 당초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빨리 진행돼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북이 핵탄두 소형화 수준엔 이르지 못한다거나 실전 배치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펌하했던 정부는 과연 북의 핵능력을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 것인가. 김정은은 머잖아 핵 능력 완성을 선폭하고 핵보유국의 지위를 자처하며 미국에 핵 군축협상과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할 것이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대한민국의 영문을 거는 각오로 특단의 조치를 결단해야 한다. 허장성세의 대북 경고나 구멍이 숭숭 뚫린 유엔 안보리 제재로는 김정은의 핵개발에 제동을 걸 수 없음이 명백해졌다. 긴급 소집된 안보리에서 중국이 더는 북을 봐 주는 꼼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전면적인 대북제재를 해야 한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핵 우산을 포함한 확장억제를 비롯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입각한 모든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했다.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것이 최선이나 우리가 독자적 핵무장을 할 수 없는 현실에선 한·미 동맹 강화가 필수적이다. 박 대통령은 라오스에서 급거 귀국해 안보상황 점검회의를 소집하고 “김정은의 정신 상태는 통제 불능”이라고 일갈했다. 이제 박 대통령은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는데 국론을 결집하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군은 “북이 핵무기로 위해를 가할 경우 북의 전쟁지도부를 포함한 지휘부를 직접 겨냥해 응징 보복할 것”이라고 했지만 과연 그럴 태세를 갖춘 것인지 불안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정치권과 우리 사회 일각의 안보 불감증도 여전하다. 대통령 언급대로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자세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존망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칼럼]성난 민심 참담하다
[칼럼]성난 민심 참담하다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전은 물론 취임 후 상당 기간 최순실씨에게 연설과 홍보에 관한 의견을 물었던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도 안 돼 최씨가 연설 홍보만이 아닌 국정 거의 모든 분야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각 언론 보도로 무더기로 드러났다. 청와대 민정수석 인사 관련 서류 , 북한 관련 정보가 최씨나 그 측근 사무실에서 나왔다. 정부 차관이 최씨 측근에게 수시로 이력서를 보내며 인사 청탁을 했다. 박 대통령은 최씨 국정 농단에 대해 “근거 없는 의혹 제기로 흔들지 마라”고 하더니 이날 자신의 국기 문란에 대해 국민에 사과하는 자리에서까지 거짓말을 한 것이다. 심지어 최순실 의혹을 덮기 위해 개헌이라는 국가적 사안을 이용하기도 했다. 지금 시중에는 대통령 탄핵까지 요구하는 격양된 민심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박 대통령은 이제 국민을 설득할 있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상실했고 권위는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무너졌다. 이것은 단순한 레임덕(임기 말 현상)이 아니다. 대통령 국정 운영 권능의 붕괴 사태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은 안보와 경제의 복합 위기에 빠져 있다. 이 와중에 1년 이상 남은 박 대통령의 권위·권능이 무너졌다. 여기서 대통령이라는 직위 자체까지 공백이 될 경우 국가적 재난을 감당할 수 없다. 박 대통령과 야당 모두가 나라를 지키고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숙고해야 한다. 이제 헌법이 정한 범위 내에서 모든 수단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구속된 박관천 전 경정은 감찰 수사 과정에서 “우리나라 권력 서열은 최순실씨가 1위, 정윤회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당시엔 근거 없는 소리로 치부됐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 됐다.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고 기업들이 800억원 가까운 돈을 바친 미르·K스포츠재단 관련 의혹도 결국 박 대통령의 비호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이라며 깔아뭉개려 들었다. ‘신뢰와 원칙’의 정치를 자부했던 대통령이 국민을 속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는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의 표현대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사실임을 인정한 것이지만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너무나 부족하다. 대통령이 공사를 구분 못 하고, 법치가 아니라 봉건시대에나 가능한 인치를 해 왔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러니 박 대통령에게는 장관들의 ‘대면 보고’가 필요 없었던 모양이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과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수사 내용 유출 의혹를 “국기문란 행위”라고 질타한 바 있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말씀자료 및 국가 기밀자료를 외부로 유출해 비선실세가 주물럭거렸다는 것은 국기 문란보다 더한 헌정 문란 사태다. 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선택도 땅에 떨어졌다. 앞으로 박 대통령의 ‘권위’가 유지될 수 있을지, 과연 경제·안보 위기보다 더한 초유의 위기를 어떻게 수습할지 국민이 대통령을, 나라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최씨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국가의 백년대개를 설계할 개헌론도 하루아침에 동력을 잃게 될까 봐 개탄스럽다. 역설적으로 제왕적 대통령의 실정으로 국가가 한순간에 마비 상태에 빠질 수 있는 5년 단임제를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안보·경제 위기에 국가마저 무너져 내린 사실상의 국가 비상사태다. 박 대통령은 특검이든 국정조사든 전적으로 수용해 철저히 진상 규명을 통해 진실을 국민 앞에 밝히고 필요하다면 조사도 받아야 한다. 새누리당도 정신 차려야 한다. 이제는 국민이 마음을 크게 먹고 나라를 지켜야 할 때다.
[나경택 세상만사]태풍 쓰레기 치운 외국인 보면서
[나경택 세상만사]태풍 쓰레기 치운 외국인 보면서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제 18호 태풍 ‘차바’가 제주, 부산, 울산 등 남부지역에 많은 피해를 안겼다. 국민안전처 집계에 따르면 사망·실종 10명에 주택 600여채, 농경지 7747㏊ 등이 파손 및 침수됐고 1000대가 넘는 자동차가 물어 잠기거나 휩쓸렸다. 이번 태풍은 10월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준 체중 가운데 가장 강했다. 제주도의 경우 시간당 최고 170mm가 넘는 폭우를 기록했고, 최대 순간풍속도 역대 세 번째인 초속 56.5m에 달했다. 만조기까지 겹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워낙 짧은 시간에 닥친 강풍과 폭우인 탓에 인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는 말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기상청이 태풍의 경로를 너무 늦게 수정한 데다 예보도 실황중계에 그쳤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태풍 차바의 상황과 피해규모가 2003년 발생한 매미와 판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당시 매미의 파도가 만조기에 접어든 경남 마산만에 들어닥치는 바람에 매립지역에 들어선 건물지하층 등에서 18명이 참변을 당했다. 이 일대는 이번 태풍에도 침수피해를 입었다. 역시 바다와 맞닿은 매립지역에 조성한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방파제를 넘어선 바닷물이 휩쓸고 들어와 침수피해를 본 마린시티는 13년 전에도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 마린시티의 경우 태풍 매미 이후 1.2m 높이의 해안 방수벽을 세웠지만 효과가 없었다. 당초 6m 이상의 방수벽이 고려됐지만 일부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는 것이다. 해변에 초고층 빌딩을 짓고도 바다 조망권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장 중요한 안전을 부착적인 문제로 밀어버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가을 태풍의 원인으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뽑는다. 해수면 온도가 상승함에 따라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받은 강력한 태풍이 가을철까지 불어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매미 및 차바와 같은 초대형 태풍이 자주, 더욱 강력하게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신문 A10면에 실린 사진을 보고 따뜻한 감동을 느꼈다는 독자가 많다. 부산 광안리 해변에 쌓인 태풍 쓰레기를 치우는 외국인 세 모녀의 모습이다. 소매 없는 셔츠 차림 엄마는 알록달록 장화를 신고 긴 갈퀴로 쓰레기를 긁어모으고 있었다. 유치원생이나 됐을까 싶은 작은딸도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엄마를 거들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로 보이는 큰딸도 갈퀴를 들고 태풍이 해변에 뿌린 쓰레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 사진을 찍은 주민 김은경(53)씨에 따르면 자기가 아이들에게 ‘도와줄까’ 하는 뜻을 전해봤는데 아이들은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채 쓰레기 치우기에만 몰두했다고 한다. 김씨가 볼일을 보고 한 시간 뒤 다시 같은 장소를 지나갔을 때도 세 모녀는 여전히 비지땀 흘리며 쓰레기 작업을 했다고 한다. 이에 김씨가 동참했고 다른 한국인 엄마와 두 딸도 거들었다는 것이다. 김씨가 찍은 사진은 SNS를 통해 커지면서 잔잔하면서도 진한 울림을 주고 있다. 잠시라도 자기들이 몸을 의탁하고 있는 공동체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아마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왔을 터인데 부모가 그렇게 솔선하면 아이들도 이웃과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점을 절로 배우게 된다. 우리 시민 중에도 태풍 쓰레기 청소에 나선 사람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광안리 세 모녀는 외국인이라서 더 눈에 띄었을 수 있다. 하지만 저 넓은 백사장에서 쓰레기 치우기에 먼저 나선 이는 세 모녀였다. 그들을 보면서 자기가 나서서 동네를 치우고 정리하기보다 관청에 전화해 왜 안 치우느냐고 야단친 일은 없는지 반성도 해보게 된다. 이웃이나 공무원이 내게 뭘 해주기 전에 스스로 내 할 일을 먼저 하고 나서는 사회라야 품격 갖춘 사회가 된다. 우리 사회에서 고함지르고 떼쓰면서 욕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일은 거의 전부가 ‘내 것 더 내놓으라’는 것이다. 의무는 없고 권리만 주장하는 악다구니에 파묻힌 세대 속에서 외국인 세 모녀의 사진들을 보니 부끄럽다.
[칼럼]군명예를 훼손한 개그
[칼럼]군명예를 훼손한 개그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농담과 유머는 둘 다 상대를 웃기려는 말이다. 그런데 방식은 좀 다르다. 유머는 우스운 화젯거리로 듣는 이를 유쾌하게 한다. 농담에는 가벼운 거짓과 조롱 같은 게 동원된다. 그래서 농담에는 늘 위험성이 따른다. 상대방이 농담을 받아들이고 웃어줘야 하건만 그렇지 않은 경우다. 상대가 모욕감을 느끼고 정색을 하면 농담이 자신에게 화살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방송인 김제동씨 처지가 그런 듯하다. 문제가 된 작년 7월 방송을 찾아봤다. 프로그램 주제는 ‘남자’였다. 출연자들은 우리나라 남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가를 말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한국 남자는 군대 경험담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별 네 개짜리 사령관 사모님을 ‘아주머니’라고 했다가 영창을 13일 다녀왔어요.” 김씨 말에 관객들이 웃었다. ‘불쌍한 한국 남자’라는 주제에 맞춰 들으니 웃자고 한 소리는 분명했다. 이 말이 1년 3개월 후 여당 의원을 통해 국회 국방위원회 도마에 올랐다. 김씨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다. 사드 반대에 앞장선 김씨에 대한 반감도 작용했을 것이다. 인터넷 여론은 방송된 지 1년 이상 지난 후에 문제 삼는 건 이상하다는 쪽이 많은 모양이다. 그런데 돌아가는 사정을 보니 김씨의 영창 얘기는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개그맨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TV 프로그램을 본 시청자 거의 대부분은 ‘아줌마라고 불렀다가 영창 갔다 왔다’는 말을 진짜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김씨는 한국의 대표적 ‘폴리테이너’로 뽑힌다. 국정교과서 반대 1인 시위, 사드 반대 집회 참여 등 여러 곳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김씨를 보는 사람들의 입가에서 웃음기도 줄어드는 것 같다. 농담이 농담이 되지 않고 상쾌한 웃음보다 지지않으면 야유가 더 자주 들린다. 개그가 웃기는 것은 우리 자신도 모르게 빠져드는 일상 속의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면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판인 이상 허위냐 사실이냐가 문제가 될 수 있다. 개그맨이 자신이나 친한 동료를 웃음의 소재로 삼는다면 허위든 사실이든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그 개그맨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편을 웃음의 소재로 삼을 땐 얘기가 달라진다. 사실에 기초했다면 풍자라고 해서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지만 허위에 기초할 때는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 영미법에서 이것을 ‘명예훼손성 유머’라고 한다. 군이 상명하복의 조직이다 보니 일반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웃기는 일이 많다. 여기서 웃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비합리적인 것을 말한다. 김씨는 자신의 국회 국방위국정감사 증인 채택 논란이 일자 “웃자고 한 얘기를 죽자고 달려들면 답이 없다”고 받아쳤다. 방위가 퇴근 후 남아 회식 사회 본 것 자체가 군법위배다. 국감장에서 얘기하면 골치 아파질 것이라고 협박하듯 말했다. 웃자고 한 거짓 얘기보다 웃자고 한 얘기가 거짓으로 드러났을 때 보인 태도가 더 개그맨답지 못하다. 진짜 일류 개그맨이라면 짜낸 얘기임이 드러났을 때 깨끗이 ‘미안하다’고 하지 딴지 같은 건 걸지 않았을 것이다. 군장성 등이 규정을 어기고 사적인 일에 현역병들을 동원하는 일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군 안팎에서 시장보기 병사, 테니스 병사, 과외 병사 등 규정에도 나오지 않는 용어들이 떠도는 것을 실체 없는 유언비어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이 최근 공개한 군장성 부인들의 파티 동영상에서도 현역병 서비스 동원이라는 일탈적 행태를 확인할 수 있다. 2013년 촬영된 이 동영상에서 해군참모총장 등 장성 부인들이 군 휴양소에서 파티를 하면서 참모총장 부인의 이름이 적힌 속옷을 보여주는 낯뜨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김의원은 “이 행사는 전액 국방예산에서 경비가 지출됐고, 현역 군인들이 뒤치다꺼리를 다했다”고 말했다.
[칼럼]판자촌 출신 기업인의 선행
[칼럼]판자촌 출신 기업인의 선행
[선데이뉴스=나경택 칼럼]미국 한 부자가 르누아르, 고흐, 마티스 등의 걸작 30점을 미술관에 기증하고 자기 집에는 똑같은 그림 복제품을 걸었다. 최근 미국 방송에 보도된 얘기다. 미국 세무법인 H&R 블록 공동 창업자인 헨리 블로흐. 그는 아내와 함께 수십년 그림을 사모아 거실, 침실, 식당에 걸어놓고 즐겼다. 그리곤 2013년 아내가 죽자 캔자스의 넬슨-앳킨스 미술관에 기증했다. 정작 기증하고 보니 허전함을 견딜 수 없었다. 블로호는 싼값으로 복제품을 만들고 이를 똑같은 액자에 넣어 걸었다. 그는 “기막히게 좋다”고 했다. 그는 전에도 미술관 확장비용 1200만 달러를 기부한 일이 있다. 기부는 아름답다. 그러나 남이 할 땐 박수 칠 수 있어도 내가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부산 공간화랑 대표 신옥진 씨는 지난 17년 동안 미술품 800여점을 미술관들에 기증했다. 그도 처음 기증할 땐 마음이 흔들리더라고 했다. 밤새 고심해 결정했지만 날이 밝자 슬그머니 생각이 달라졌다. 노후도 걱정됐다. 그림을 보내놓고 나중에 보니 아끼던 작품들은 빼놓고 있었다. 서울대 미술관은 신씨가 마지막 기증한 작품 64점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있다. 그의 창고에는 아직 몇 점이 남아 있지만 이젠 별게 없다고 한다. 신씨는 “내가 갖고 싶은 걸 줘야 진짜 기증”이라고 했다. 시장에서 김밥 장사, 반찬 장사 하던 할머니들이 평생 모은 돈을 아낌없이 내놓을 때 뭉클함은 더하다. ‘조건 있는 기부’가 아름다울 때도 있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 도서관은 특이하게도 지하에 있다. 아주 오래전 이 일대 땅을 옥수수 재배 시험장으로 기부한 사람이 한 가지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근처에 옥수수 재배 시험에 영향을 주는 어떤 건물도 세우지 말 것.” 건물로 인해 바람이 막히거나 그림자가 생기면 옥수수 생장 환경이 달라진다. 대학은 1950년대 도서관을 지으며 기증자의 뜻을 따랐다. 그가 내놓은 조건 덕에 일리노이 대학은 자랑스러운 도서관과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옥수수 시험장을 함께 갖고 있다. 주식 219억원어치를 기부했다가 세금 225억원을 얻어맞은 황필상 전 수원교차로 대표의 사례는 들을 때마다 황당하고도 안타깝다. 기부 영웅을 학대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는 모은 재산을 모교에 기부해 장학 재단을 설립했으나 증여세를 추징받아 무려 8년째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만약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으면 황씨는 사는 집마저 빼앗기고 거리로 나앉을 신세가 된다. 기부자에게 훈장은 못 줄망정 이렇게 못살게 굴며 죄인 취급하는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황씨가 세금 폭탄을 맞은 것은 5% 이상 주식 기부 때 증여세를 매기는 낡은 상송증여세법 때문이다. 20년 전 이 조항을 만든 것은 재벌과 대기업 오너가 공익 재단을 활용해 변칙 경영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기업에 대한 감사와 견제 장치가 겹겹이 만들어진 지금은 사실상 존재 이유를 상실했고, 황씨처럼 선의의 피해자만 내는 악법이 됐다. 그런데도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 모두 나 몰라라 수수방관하고 있다. 국세청은 세법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 탓을, 기재부는 법 개정에 반대하는 야당 탓을 대고 있다. 황씨 사례가 세상에 알려진 지 8년이 넘었는데도 기재부는 단 한 번도 법 개정안을 내거나 야당 설득 노력을 해본 적이 없다. 입만 열면 규제 혁파를 외치는 박근혜 정부도 이런 황당한 규제엔 침묵만 지키고 있다. 그러는 사이 황씨는 알거지가 될 운명에 처했다. 대법원이 5년 가까이 판결을 미루는 동안 애초 140억원이던 세금은 가산세까지 붙어 225억원으로 불어났다. 패소 확정판결이 나면 황씨는 아파트와 얼마 안 되는 주식, 예금마저 빼앗기고 평생을 세금 체납자로 살아가야 한다. 판자촌 출신 기업인의 따뜻한 선행이 패가망신의 결말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