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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平壤)과 옛 평양(平壤)
[청로 이용웅 칼럼]‘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平壤)과 옛 평양(平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8년 4월의 북한은 잔치 준비가 한창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어김없이 잔칫상 차리기에 분주합니다. 이름 석 자 앞에 항상 “위대한 수령”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김성주, 개명하여 김일성! 그의 생일 4월 15일을 북한에서는 ‘태양절’이라고 합니다. 이 북한의 ‘최대 명절’이 되면, 전국 각지가 축하 행사를 하는데, 특히 평양은 도시 전체가 축제의 장(場)이 됩니다. <조선중앙년감 주체87(1998)>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국화국 중앙인민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일데 대하여》라는 ‘결정서’를 채택했다.“ - ‘결정서’에는 김일성이 태어난 “1912년을 원년으로 하여 주체년호를 제정”하고 “민족최대의 명절”인 4월 15일을 “태양절로 제정”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지금 평양은 이 생일의 잔치 마당입니다. 평양 발(發) <조선중앙통신>→“경모의 정 넘치는 평양 : 태양절(4.15)을 뜻 깊게 기념하는 평양의 그 어디를 가나 위대한 김일성주석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의 정이 넘쳐흐르고 있다. 한평생을 인민을 위해 걷고 걸으시며 주체조국의 새 력사를 펼쳐주신 주석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서 깊은 혁명의 요람 만경대를 찾고 있다. 만수대언덕에 높이 모신 김일성주석의 동상을 꽃바구니와 꽃다발, 꽃송이를 든 인민군장병들과 각계층 인민들, 청소년학생들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명절일색으로 단장된 수도의 거리들에는 태양의 꽃 김일성화를 형상한 대형전광사진판과 대형직관판들이 설치되여있고 공화국기들이 휘날리고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서문’에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국가건설사상과 국가건설업적을 법화한 김일성헌법”이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김일성(金日成)! 평양의 주인(?)은 아직도 ‘김일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42년 소련 극동군은 이들을 ‘동북항일연군교도려’로 편성하였으며 얼마 후 ‘88독립보병여단’로 정식 편성되었고, 1945년 9월 19일 김일성은 88독립보병여단 조선공작단의 일원으로 원산을 통해 귀국했고, 평양에 입성한 그는 평양시 경무사령부 부사령관에 임명되었습니다. 평양 출생의 김일성은 그때부터 죽는 날까지 평양에서 살았습니다. 1945년 9월 6일 한반도 북쪽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선포가 있고 난 뒤인 1946년 9윌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평양부를 평안남도에서 분리하여 특별시로 승격시켰습니다. 이런 사실을 <조선대백과사전(23)>에선 “평양시는 주체 35년 9월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확대위원회 결정에 의하여 특별시로 개편되면서 평안남도에서 갈라져 나와 직할시(중구,동구,서구,북구)로 되였다.”(51쪽)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월간 <조선>은 “평양은 영광스러운 우리 조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수도로서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우리 나라 관광의 중심으로 되고 있습니다...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탄생하시고 어린 시절을 보내신 유서 깊은 혁명의 성지 만경대가 있습니다. 대동강의 류역에 펼쳐진 준평원지대에 자리잡은 평양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랜 력사와 빛나는 문화를 가진 도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국화국의 평양’은 여전히 주체사상의 본거지이며, 김일성의 철옹성(鐵瓮城)입니다. 진정한 평양! 여기서 북한자료를 통해 ‘옛 평양’을 알아봅니다. “동방강국인 고구려시기 수도 평양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되였으며 주변나라들에서는 평양을 ≪평천≫, ≪평나≫, ≪한성≫, ≪악랑≫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러왔습니다. 그러나 이 이름들을 잘 따져보면 어느 것이나 옛날 우리 조상들이 부르던 ≪부루나≫에 대한 리두식 표기에 의해 생겨난 것들입니다. 다만 ≪한성≫이라는 말은 큰 성 즉 수도를 가리키는 의미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고려때 에는 평양을 ≪서경≫ 또는 ≪서도≫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평양은 또한 오래전부터 ≪류경≫ 또는 ≪류영≫이라고도 불리워 왔습니다. 여러 개의 크고 작은 강들로 에워싸인 평양에는 예로부터 버드나무가 무성하여 색다른 풍경을 펼쳐놓군 하였습니다. 제 고장의 아름다움을 남달리 사랑해온 우리 선조들은 평양의 절경을 자랑하고 싶어 ≪류경≫이라는 이름을 쓰기를 즐겨하였습니다. ≪류영≫이라는 이름 역시 옛날 평양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병영이 버드나무숲 속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평양에는 상원군의 검은모루유적으로부터 여러 곳의 성터들과 정각, 절간, 왕릉, 무덤떼들, 대동강 다리터 등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수 백 개의 문화 유적이 원상대로 복구되여 보존되고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과 참관자들이 찾아들고 있습니다. 예로부터 평양의 아름다움을 두고 노래한 시와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오고 있습니다. 15세기의 시인 조위는 평양의 명승을 ≪서경을 여덟으로 읊노라≫라고 하면서 평양8경을 노래하였습니다. 그것이 을밀대의 봄맞이, 부벽루의 달구경, 영명사의 노을빛, 보통강나루의 나그네배웅, 대동강의 배놀이, 애련당의 비물소리, 마탄여울의 눈석이, 대성산의 푸른 숲입니다.” 지금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은 ‘옛 평양’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평양의 ‘대기념비적건축물’ 등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합니다. 월간 <조선>은 김일성의 “불멸의 업적 길이 전하는 기념비적건축물들(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만수대대기념비, 영생탑, 천리마동상, 대성산혁명렬사릉, 금수산기념궁전 등)”과 만경대 김일성 생가(生家)를 과장(誇張) 광고하면서, 관광 명소라고 소개했습니다. 천만에 말씀!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평양(平壤)’을 빼고 ‘옛 평양(平壤)’만 평양 관광 코스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외화벌이가 가능할 것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 “접시꽃 당신”, “금골처녀”, ‘4.15문학창작단’과
[청로 이용웅 칼럼] “접시꽃 당신”, “금골처녀”, ‘4.15문학창작단’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8 남북평화 협력 기원 평양공연 '봄이 온다'에 참가했던 예술인들과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북한을 방문한 우리 예술단을 위해 북측이 4월 3일 통일전선부 초대소인 미산각에서 연 환송 만찬에서 북측 인사로 참석한 안동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위원장과 도종환 장관이 만나 환담을 나눴다고 합니다. 이 자리에서 안동춘이 도 장관에게 과거 남북한 문인들이 함께 만들다 중단된 문학잡지 <통일문학>을 다시 같이 만들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2000년 6·15 공동선언 이후, 남북한 문인들은 남북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자 2005년 7월 평양·백두산·묘향산 등지에서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열었고, 2005년 10월에는 해방 후 최초의 남북한 문인(文人) 모임인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했습니다. 그리고 2008년 2월에는 협회의 기관지이자 남북한 문인들이 함께 만든 첫 문학잡지 <통일문학>을 창간했습니다. 이 잡지는 3호(2009년)를 끝으로 폐간되었습니다. 안동춘은 '조선문학축전상'의 2002년도 소설 부문 수상자이며, '4·15문학창작단'의 주역으로 부단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최고인민회의 부의장’라는 직책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 장관은 4월 1일 평양에서 기자들과 만나 "남북 정상회담이 잘돼 한반도에 평화 공존 체제가 구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또 문화, 체육, 예술, 종교, 사회단체 교류를 활성화해 민족 동질성이 회복되기를 바란다"며 했습니다. 참 훌륭한 말씀입니다!!!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은 아름다운 시(詩)입니다. “옥수수 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옥수수 잎을 때리는 빗소리가 굵어집니다/ 이제 또 한 번의 저무는 밤을 어둠 속에서 지우지만/ 이 어둠이 다하고 새로운 새벽이 오는 순간까지 나는 당신의 손을 잡고 당신 곁에 영원히 있습니다.” -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악한 얼굴 한번 짓지 않으며 살려했던 아내'를 왜 데려가려 하느냐며 절규를 하면서 읊조린 시(詩)입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의 애송시였습니다. 그는 과거 순수 시인일 때 아름다웠습니다. 북한에도 서정시(抒情詩)가 있습니다. “다시 오시라/ 처녀는 수집게 웃으며 바래워도/ 나는 인사말조차 잊고 말았네/ 이제는 들에 피는 꽃보다/ 은빛 쇠돌이 더 고와 보인다는/ 향기로운 들바람보다/ 발파연기가 더 그립더라는 처녀/ 그 누가 무어라 해도/ 쇠돌을 사랑하는 총각만을/ 마음에 두리라는/ 속 깊고 정 많은 금골처녀...(금골처녀)”라고 읊조린 시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서정시는 ‘가물에 콩 나듯’ 합니다, ‘보물찾기’ 보다 힘듭니다. 북한문학의 실체는 4·15문학창작단의 작품들입니다. <조선대백과사전(13)>을 보면, ‘수령영생문학’을 주도한 ‘4.15문학창작단’은 김일성의 “영광 찬란한 혁명력사와 혁명적 가정, 당의 위대성을 소설로 형상하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창작하신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소설로 옮기는 력사적 위업을 수행하는 창작집단. 주체56(1967)년 6월 20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독창적인 구상과 발기에 의하여 조직되였다. 4.15문학창작단의 창립은 종래의 수령형상창조에서 나타났던 자연발생성과 산만성, 소극성을 극복하고 이 사업을 목적의식적으로 통이 크게 벌려 나갈 수 있게 하였으며 혁명문학건설의 중심을 수령형상창조에 두고 힘있게 밀고나감으로써 주체문학의 발전을 더 높은 단계에로 올려 세울 수 있게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는 위대성으로 보나 그 방대한 내용의 폭으로 보나 우리 식의 새로운 총서형식으로 집대성함으로써만 전면적으로, 체계성 있게 그릴 수 있다고 하시면서 총서형식의 전일성과 일관성을 기초 짓는 총적인 종자를 담아 총서제목을 《불멸의 력사》로 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4.15문학창작단은 경애하는 김정일동지의 령도 밑에 총서 《불멸의 력사》창작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210쪽)고 했습니다. 4.15문학창작단의 핵심이었던 안동춘이 <통일문학>의 복간을 제안하고, 과거 6·15민족문학인협회 남측 집행위원을 맡아 금강산에서 열린 협회 결성식에 참가한 것을 비롯해 북한을 여섯 차례나 방문하며 북한 문인들과 활발히 교류했던 남측 주무장관이 관심을 표명해서 뉴스(news)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긍정적 남북교류라는 측면에서 보면 바람직할 수도 있으나, 도 장관은 왜 3회 만에 폐간되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남한의 도 장관 등 관리들이나 문인들은 모두 북한에서 ‘문학(文學)’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조선말대사전(1)>은 ‘문학’을 “언어를 통하여 인간과 생활을 형상적으로 반영하는 예술의 한 형태. 문학은 산 인간을 그리는 인간학으로서 사람들에 대한 사상교양의 수단으로, 미학정서교양의 수단으로 복무한다. 우리의 문학은 인민대중을 가장 힘있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존재로 내세우고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다운 공산주의인간학으로 되고 있다.”(1184쪽)고 설명했습니다. <문학예술사전>은 ‘문학’을 “우리 문학은 인민대중을 당의 유일사상,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사상교양의 강력한 수단으로, 생활과 투쟁의 훌륭한 교과서로 복무하고 있으며 당의 유일사상으로 일관되고 로동계급적 선이 똑똑히 선 당적이고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으로, 사상성과 예술성이 결합된 참다운 혁명적문학으로 찬란히 개화 발전하고있다.”(364쪽)고 설명했습니다. 1920년에 조선총독부가 펴낸 <朝鮮語辭典(조선어사전)>은 ‘文學(문학)’을 “文章と學問”(336쪽), 즉 “문장과 학문”이라고 했고, 1946년의 <朝鮮語辭典>(문세영)에는 “문학(文學) ①글에 대한 지식. 學藝 ②이학(理學) 및 이것을 응용하는 기술 밖의 모든 학문. 心的科學. 社會的科學. ③상술한 의미에서 정치․경제․법률에 관한것을 뺀 남어지의 모든 학과. 곧 철학․종교․교육․역사․언어들의 학문. ④시가․소설․미문․극본들을 연구하는 학문. 곧 언어로 나타내는 예술.”(585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반도, 한민족의 ‘문학’입니다. 북한이 이 설명을 수용할 때 <통일문학>의 복간, 그리고 한반도의 문학 통일이 실현될 것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먹을수록 배고픈 꽃” 진달래꽃, ‘영변 약산’ 진달래꽃
[청로 이용웅 칼럼]“먹을수록 배고픈 꽃” 진달래꽃, ‘영변 약산’ 진달래꽃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과거 암울했던 시절, 봄이 되면 대학가에서 많이 인용되었던 시(詩)가 시인 T. S. 엘리어트의 <황무지> 입니다. 그 때 그 시절엔 이 시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라일락꽃을 죽은 땅에서 피우며/ 추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활기 없는 뿌리를 일깨운다.”라는 구절이 많이 회자되었었습니다. 하지만 라일락은 각광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 때 ‘봄꽃’하면 뭐니 뭐니 해도 진달래꽃이었는데, 북녘 땅, 북한 이야기 속에 이 꽃이 많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었습니다. 북한에서 1985년에 발표된 리종렬의 소설 <충성의 한길에서>(1~5부)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제5부가 《진달래》입니다. 이 소설의 한 대목을 보면 《김정숙은 최정덕, 서영순과 함께 진달래를 한 아름 꺾어 김일성을 준다. 그러자 김일성은 기뻐 말한다. “조국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소. 정숙동무, 내가 만약 시인이라면 이 진달래꽃에 관한 시를 쓰겠소. 진달래는 우리 빨찌산 녀대원들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김정일은 “진달래는 우리 어머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던 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김만길이라는 북한의 평론가는 김정일이 “위대한 공산주의혁명투사 김정숙 어머님의 고귀한 생애와 불멸의 업적, 숭고한 념원을 만대에 길이 빛내이실 높은 뜻을 안으시고 깊고 깊은 사색과 뛰여난 예술적천품으로 불후의 고전적 명작《진달래》를 창작하시였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김정일의《진달래》는 “해빛이 따스해 그리도 곱나/ 봄소식을 전하며 피는 진달래/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는 꽃송이/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오가는 비바람 다 맞으며/ 산허리에 피여 난 붉은 진달래/ 긴긴밤 찬 서리에 피고 또 피여서/ 진달래야 진달래야 조선의 진달래// 때늦은 봄에도 사연을 담아/ 해빛밝은 강산에 피는 진달래/ 못잊을 어머님의 그 모습이런가” 입니다. 위처럼 북한이 진달래꽃을 국화보다 더 소중한 꽃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김정일의 생모(生母)인 김정숙을 우상화하는데 아주 좋은 ‘사상적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남한에선 김소월의 시(詩), 대중가요로 널리 알려지고, 꽃 자체의 아름다움에 찬사를 보내지만, 북한의 진달래는 그런 꽃이 아닙니다. 김일성 가(家)의 ‘우상숭배화(偶像崇拜花)입니다. 그것은 다음의 《일화 5호물동 진달래》에서 확인됩니다. “진달래, 봄날의 상징으로만 일러오던 이 꽃은 오늘 조선인민의 마음속에 조국에 대한 사랑의 상징으로 깊이 자리잡혀있다. 주체28(1939)년 5월 18일 이른 아침, 김일성주석의 명령을 받고 조국진군의 길에 오른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 땅, 5호물동에 이르렀다. 자기의 끌끌한 아들딸들을 반기는 듯 강기슭에는 진달래가 붉게 피여있었다. 얼마나 그려보던 조국 땅인가! 조국해방을 위한 길을 헤쳐온 피의 험산준령은 또 얼마였던가! 진달래를 그러안은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두 볼로는 격정의 눈물, 기쁨의 눈물이 흘려내렸다. 김정숙녀사께서 정히 꺾어올리는 진달래꽃가지를 받으신 주석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다가 《조선의 진달래는 볼수록 아름답습니다!》라고 감회 깊은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날에 녀사께서 안으시였던 조국의 진달래는 조선인민의 마음 속에 천만년 붉게 붉게 피여있을 것이다.” // 죽은 김정숙 녀사...생존하는 이설주 녀사는 진달래꽃을 좋아하는지... ‘진달래’를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 한잎 두잎 따먹는 진달래에 취하여/ 쑥 바구니 옆에 낀 채 곧잘 잠들던/ 순이의 소식도 이제는 먼데// 예외처럼 서울 갔다 돌아온 사나이는/ 조울리는 오월의 언덕에 누워/ 안타까운 진달래만 씹는다// 진달래는 먹는 꽃 /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라고 노래한 詩人이 있습니다. 진달래꽃은 북한에서도 봄을 상징하는 꽃입니다. 우리가 진달래꽃을 보고 소월(素月) 김정식의 시(詩)를 떠올린다면,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김정숙 부부(夫婦)을 연상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평양 시민들이 손에 들고 흔들던 것은 진달래꽃(사진)입니다. 평양 한 가운데 세워진 개선문에도 진달래꽃이 새겨져 있습니다. 김일성의 항일독립운동 업적을 찬양하는 개선문의 아치형 테두리에는 김일성의 70회 생일을 상징하는 70개의 진달래꽃이 부조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북한에서 진달래꽃은 ‘김정숙 꽃’으로도 불리웁다. 김정숙이 김일성에게 진달래꽃을 바치며 항일투쟁 의지를 다졌다는 일화는 북한 문학과 예술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북한 주민들이 김정일 모자(母子)가 좋아한 꽃이라서 좋아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비록 진달래가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지만, ‘먹는 꽃’이라서 좋아할 것입니다. 남한에선 과거에나 존재했던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4월에 북한 주민들이 진달래꽃을 먹고라도 삶을 잘 이어가기를 빌어봅니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 속에서 사라졌을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전합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이별의 꽃길이 더욱더 아름다운 사랑의 꽃길이 되는 기적, 이 참다운 사랑의 기적이 시인의 <진달래꽃>의 진수(眞髓)라고들 합니다. 4월 들어 한반도 곳곳에서 진달래가 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봄에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고/ 다람쥐 쫒던 어린 시절에/ 눈사람처럼 커지고 싶던 그 마음 내 마음/ 아름다운 시절은/ 꽃잎처럼 흩어져 다시 올 수 없지만/ 잊을 수는 없어라’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라고 읊조립니다. 하지만 북녘에선 진달래꽃이 김일성 생일(태양절)에 장식용으로 쓰일 것이고, 많은 서민들이 “진달래는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을 찾아 헤매일 것입니다. 최근 웃으며 공연무대에 등장해 괜찮은(?) 지도자처럼 처신하고 있는 김정은 위원장님! 이번 할아버지 생일, 태양절에는 행사비 대폭 줄여, 백성들에게 베푸세요! 복(福) 받을 겁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 20세기의 평양(平壤), 그리고 21세기의 평양(平壤)
[청로 이용웅 칼럼] 20세기의 평양(平壤), 그리고 21세기의 평양(平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조선대백과사전(18)>을 보면, 한국전쟁 때 “미제의 야수적 폭격만행으로 살림집이 혹심하게 파괴되였다. 따라서 전시 살림집건설문제는 인민생활안정을 위하여 절박하게 제기되였다. 평양시에는 주체40(1951)년만도 8만동의 살림집중 6만 4천동이 파괴되였다.”고 하고, 김일성은 “주체40년 1월 21일 도시설계일군들을 부르시여 우리는 미제가 하나를 마스면 열, 백, 천을 일떠 세워야 하며 파괴된 도시를 그전보다 더 아름답고 웅장하게 현대적으로 건설하여 전후복구건설에서도 조선사람의 본때를 보여 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평양시복구재건의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들을 환히 밝혀”주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조선대백과사전(23)>을 보면, “평양시 건설자들은 주체 47(1958)년 한 해 동안에 7,000세대분의 자재와 자금을 가지고 2만 839세대의 살림집을 건설하는 기적적인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리하여 세상에 널리 알려진 ⪡평양속도⨠가 창조되였으며 이때로부터 ⪡평양속도⨠는 ⪡천리마속도⨠와 함께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의 눈부신 발전 속도를 표현하는 대명사로 불리우게 되였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지금 같으면 불가능한 ‘집짓기’이며, ‘건설자’들의 피눈물이 뚜렷이 보이는 듯합니다. 한국전쟁 때, 쑥대밭이 되었던 평양(平壤)! 그때 김일성이 “전시조건에서도 인민들의 사상문화적 수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하여 지하극장 건설을 발기하시고 령도”하여, 이 지하극장은 “간고한 전시조건에서도 문화예술 활동을 힘 있게 벌린 우리 인민의 높은 사상문화적 수준과 불패의 기상을 보여 주는 주체건축의 특출한 기념비”(<조선대백과사전(18)>)가 됐다고 합니다. 북한 공연장, 무대의 효시(嚆矢)? 평양의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펴낸 <명소에 깃든 전설 (평양)>이라는 책자를 보면 “평양은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도시이며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도시입니다.”(김일성), “평양은 우리 인민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 슬기와 재능을 자랑하는 력사의 도시입니다.”(김정일)라는 글이 들어 있습니다. 다음은 이 단행본에 수록된 “유서 깊은 평양”의 일부입니다. “우리는 1950년부터 1953년의 조국해방전쟁에 대하여 꼭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전쟁기간에 미제침략자들은 평양에 1,400 여 회에 달하는 폭격을 하였으며 무려 40여만 개의 폭탄을 떨구었습니다. 이것은 그때 평양시 인구 한사람 당 1개 이상씩 차례지는 막대한 량이였습니다. 평양시내에는 어디에 가나 재더미였고 성한 건물은 단 한 채도 없었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가렬처절하던 전화의 나날 승리한 조국의 래일을 내다보시고 평양시복구건설설계도를 무르익히시였고 전후시기에는 몸소 평양시복구위원회 위원장이 되시여 평양시복구건설사업을 진두에서 이끌어주시였습니다…그래서 우리 인민은 청춘의 혈기와 아름다움에 가득찬 륭성번영하는 평양을 사랑하며 노래합니다.” “평양은 또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명승의 도시입니다. 서북쪽으로는 높지 않은 산발들이 병풍처럼 늘어서고 동쪽일대로는 낮은 언덕들이 여기저기에 기복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동강의 맑은 물이 흐르는 기슭마다에는 갖가지 자연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있습니다. 또한 평양은 사계절이 뚜렷하여 철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평양의 아름다움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북한의 ‘평양(平壤)’은 ‘판문점(板門店)’과 함께 지구촌 뉴스의 중심에 있습니다. 4.1(일) 남측 예술단이 동평양대극장에서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을 했습니다. ‘봄이 온다’를 부제(副題)로 진행된 이번 공연에는 조용필, 이선희, 백지영, 알리 등, 그리고 걸그룹 레드벨벳까지 11팀(명)의 가수들이 출연하여 총 26곡의 노래를 불렀는데, 이 공연에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동생인 김여정 등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 공연에서 평양의 주인(?)인 수장(首長)의 행보(行步)가 화제였습니다. 조부(祖父)는 지하극장을 만들었고, 부친(父親)이 동평양대극장 등을 건설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무대에서 그가 확실하게 얼굴을 드러내면서, 20세기의 평양의 모습을 변화시켰습니다. 21세기에도 김정일 시대의 평양은 ‘적색 도시’이었고, 보이지 않는 장벽이 쳐 있었습니다. 앞으로 평양의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필자가 평양순안국제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도,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진행된 5월1일경기장에서도, 김일성 생가(生家)에서도, 옥류관에서도 공산주의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특히 ‘공연’은 ‘선전선동’이었습니다. 이번 4월 1일의 동평양대극장 공연, 4월 3일의 류경정주영체육관 공연에서 남과 북의 예술가들이 서로 양보하고,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모습을 보여주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앞으로도 진실된 문화 교류가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부언(附言)] 북한의 ‘주체의 문학예술’! 북한의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개정된 <조선로동당규약>에 “조선로동당은 맑스․레닌주의와 우리나라 현실에 그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 지침으로 삼는다.”라는 말이 들어가면서 ‘조선로동당’의 공식적 이데올로기가 된 주체사상, 이 ‘유일사상’을 근저로 한 것이 ‘주체의 문학예술’ 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 ‘2018 책의 해’에 고서점(古書店)에서 본
[청로 이용웅 칼럼] ‘2018 책의 해’에 고서점(古書店)에서 본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지난 3월 22일 서울 종로구 출판문화회관에서 ‘2018 책의 해 출범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출범식에서 공개한 표어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무슨 책 읽어?'는 책과 멀어진 독자들이 함께 읽는 재미로 책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도록 소통을 확산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합니다. ‘무슨 책 읽어?'는 온라인상에서 쉽게 퍼지고 찾을 수 있도록 해시태그(#)를 활용해 디자인했다는데, 먼저 온라인에서 ’책의 해‘ 분위기를 띄운다고 합니다. 시민들이 책과 관련된 영상을 직접 제작해 올리는 ‘나도 북 튜버(book+Youtuber)’, 4월 한 달 동안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변에 “무슨 책 읽어?”라고 묻는 릴레이 태그를 다는 등의 미션을 수행하면 선물을 주는 ‘위드 북’ 캠페인을 실행한다고 합니다. 북 튜버 뿐 아니라, 북 트럭, 북 캠핑…‘책의 해’인 2018년 내내 책읽기 본능을 자극할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점이 없어 책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도 책읽기 바람을 불러올 이벤트들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출판사, 서점, 도서관 등 책 생태계 전반의 오늘과 내일을 진단하는 ‘책 생태계 포럼'도 매달 한차례씩 개최된다고 합니다. ’자랑스런 선진국 대한민국‘입니다. 모두가 책 속에 파묻힐 2018년의 대한민국? ’책의 해‘ 행사들이 아주 훌륭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왠 ’SNS‘ 타령? ’책만 읽는 시대는 갔다.“고 하지만...“빛 좋은 개살구”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그에 맞는 알찬 내용이나 실속이 없음을 이르는 말” 입니다. 책(冊)!! ”그 속에는 인류가 수천년 동안을 두고 쌓아 온 사색과 체험과 연구와 관찰의 기록이 백화점 점두(店頭)와 같이 전시되어 있다. 이 이상의 성관(盛觀), 이 이상의 보고(寶庫), 이 이상의 교사가 어디 있는가. 책만 펴 놓으면 우리는 수천년 전의 대 천재와도 흉금을 터 놓고 마음대로 토론할 수 있으며 육해 수만리를 격한 곳에 있는 대학자의 학설도 여비도 학비도 들일 일 없이 집에 앉은 채로 자유로 듣고 배울 수 있다.”(유진오/독서법) 비록 역사(歷史)가 “직업 ; 문학가, 법학자, 교육자, 정치가,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한 유진오(兪鎭午)님의 말이지만 소개해 봅니다. 원시 문명이 가장 먼저 발달했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찰흙 책을, 이집트와 지중해 지역에서는 파피루스로 두루마리 책을 만들었고...우리 선조들은 1234년(고려 고종 21년)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여<고금상정예문>을 인쇄했습니다. 그러니 그동안 ‘책’에 대한 말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책은 동서고금에 걸친 지식의 보고(寶庫)! 연간 수십만 권에 이르는 새 책들이 출판되고 있습니다. 그 책들은 서점(書店) 등을 거쳐 고서점(古書店), 헌 책방으로 흘러갑니다. 프랑스 파리의 센느(Seine)강 강변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19년 12월 어느 추운 겨울, 선교사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한 실비아 비치에 의해서 였습니다. 그녀는 파리에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문학에 대한 불타는 열정으로 오데옹(Odéon) 가(街)에 서점을 차리게 되는데, 이 서점은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 등 당대 최고의 작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특히 제임스 조이스의 소설 <율리시스> 초판본을 출간한 곳으로 유명해졌습니다. 사람들은 그곳을 애서가(愛書家)라면 한 번쯤 가보고 싶은 문학의 박물관이자 휴머니즘의 성지라고 합니다. 필자가 프랑스 파리7대학교(université PARIS DIDEROT)에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자주 찾던 곳은 이 서점을 비롯한 강변의 헌 책방들과 파리 시내에 있는 도서관이자 미술관인 퐁피두센터(Centre Georges Pompidou)였습니다. 거의 매일 찾은 센터는 프랑스 문화를 깊게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강변의 책방들은 삶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마음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도 서울대 부근 헌 책방을 자주 찾습니다. 최근 그 책방(흙 서점)에서 헌 책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板門店>(韓國民族分斷の現場)입니다. 최근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판문점’이라서 눈에 띄었습니다. 133매의 사진이 수록된 이 사진첩(저자 웨인 커크브라이드/Wayne A. Kirkbride)의 부제(副題)는 “板門店への道/ 판문점으로 가는 길”이고, 발행처는 한림출판사, 1986년 재판 발행, 차례는 ‘A.판문점에 이르는 길. B.역사적 배경. C.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글은 일본어와 한글로 되어 있습니다. 1980년대에 발행된 책이지만 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출판 배경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출판사를 검색했는데, “창립 55주년 기념 특별 브랜드전. 1963년부터 책과 함께 해 온 한림출판사!”라고. 명멸(明滅)해 온 출판사들 속에서 명맥을 유지해온 ‘한림’의 하순영 기획편집차장님은 <板門店>이 영문판과 일본어판 2권이라고 했습니다. 어쨌거나 이 책들은 2018년 새로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18 책의 해' 주요 사업 계획을 보면 아주 대단한데, 이런 책에는 관심이 없겠죠!!! 최근 서점 '반디앤루니스'를 운영하는 서울문고가 영풍문고가 속해 있는 영풍그룹 계열사로 포함되면서 국내 오프라인 서점 시장이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의 양강 체제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그런가하면 서울 지하철 잠실역에는 공식적으로 새 책과 헌 책을 함께 파는 대형 책방 ‘알라딘’이 성업 중입니다. '2018 책의 해 조직위원회는 주무 장관이 공동조직위원장인데, 시인이라서 ‘알라딘’을 〈천일야화 The Thousand and One Nights〉에서 가장 알려진 이야기의 주인공 이름으로만 알고 있는 것은 아닌지...‘관민(官民) 합동’! 참 좋습니다! 어쨌거나 '2018 책의 해‘가 정말 국민들이 좀 더 책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 생색내기에 급급한 ’관민 합동‘이 안 되기를 빌어 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원정 때 <일리아드>를 귀중한 상자에 넣어 가지고 다녔다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기록된 말은 유물 중에서도 가장 귀중한 유물이다. 그것은 다른 예술품보다도 더 우리에게 친밀한 것인 동시에 더 보편적인 것이다. 그것은 인생 자체와 가장 가까운 예술품이다. 그것은 어느 언어로나 번역될 수가 있고 읽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생명의 입김 자체로 조각될 수도 있다.”(H.D.소로우/ 숲 속의 생활)
[청로 이용웅 칼럼]판문점이 있는 개성(開城) 관광과 공단의 재개(再開)
[청로 이용웅 칼럼]판문점이 있는 개성(開城) 관광과 공단의 재개(再開)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최근, 5월 미·북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4월 말)에 이어 미·북 정상회담과 남·북·미 3국 정상회담 등이 판문점에서 연쇄적으로 열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최근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백악관이 회담 장소와 로지스틱(수송 지원)에 관한 숙고에 들어간 가운데 판문점 내 '평화의 집'이 가장 유력한 미·북 정상회담 장소"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집’은 4월 말 남북 정상회담 개최지로 예정된 곳입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판문점은 유력한 대안 중 하나"라고 했습니다. ‘판문점’은 이미 필자가 칼럼 “경기도 파주시와 개성직할시 판문군의 판문점(板門店)”에서 설명했는데...북쪽의 판문점(板門店)은 개성 판문군(板門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판문군은 옛 개풍군의 동남지역에 해당하는 상도면 · 중면 · 봉동면 · 임한면 · 흥교면을 주축으로 신설된 행정구역으로, 현재 1개 읍(판문읍), 1개 로동자구(화곡), 17개 리(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중에 ‘판문리’가 있습니다. 북한의 행정구역상 판문점은 개성(開城) 땅입니다. 지금은 북한에 속해 있는 개성은 고려의 도읍지였던 역사적인 도시입니다. 시가지가 38도선 아래에 자리 잡아 6 · 25 전쟁 전에는 남한에 속하였으나, 1953년에 체결된 휴전 협정에 따라 북한에 들어갔습니다. 면적은 약 179.263㎢로 평양과 남포에 이은 북한의 3대 도시입니다. 개성은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북한의 도시로 판문점에서 12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2008년 10월 31일 새벽, 필자는 버스를 타고 개성으로 향했습니다. 2007년 12월 5일 시작된 개성관광은 경기도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출발하여 군사분계선을 지나 북측에 도착한 후, 고려 오백년 도읍인 개성의 문화유적을 둘러보는 것으로, 현대아산이 북측과 함께 진행했었습니다. 서울에서 개성은 직선거리로 60km로 고속도로가 놓인다면 30분 거리인데...통행수속을 밟을 때 신분증과 개성관광증(사진)확인이 꼭 필요했습니다. 관광증은 “북측을 오갈 때 필요한 일종의 여권”입니다. 개성관광은 2000년 현대아산과 북측이 맺은 공업지구건설에 대한 합의서와, 2007년 백두산, 개성관광에 대한 합의서를 바탕으로, 현대아산이 남측 통일부에 관광사업 승인을 받은 후 사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개성관광은 [송도삼절(松都三絶/송도의 유명한 것.서경덕(徐敬德),황진이(黃眞伊),박연폭포(朴淵瀑布)] 중 하나인 ‘박연폭포’, 충신 정몽주의 혼이 깃든 ‘선죽교’와 ‘숭양서원’, 고려청자 등 고려시대의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고려박물관, 왕건왕릉, 공민왕릉 등...민속식당의 점심메뉴인 ‘13첩 반상기’와 개성공업지구 방문! 관광 시작 1년 만에 11만 명이 방문한 개성관광은 금강산 관광과 함께 11월 중단되었습니다. 남북이 합의해 북한 지역인 황해북도 개성시 봉동리에 조성된 개성공업지구마저 2016년 2월 남북관계 경색에 따라 폐쇄 조치됐습니다. 그 후 개성의 관광 명소와 공단(工團)은 출입 금지 지역이 되고 말았습니다. 홈페이지 “금강산관광(www.mtkumgang.com)에 [개성관광]이 함께 있습니다. 홈피에는 [개성소개]와 [개성관광소개]가 있습니다. // [개성소개] “개성은 고려 500년의 역사가 살아있는 역사문화유적의 도시로 서울과 불과 70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가장 가까운 북측도시로서 서울에서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습니다...” / “개성? 그곳은 어떤 곳일까요? : 개성은 약 1,309 Km2의 면적으로 북측 황해북도에 위치한 고려(918-1392)의 도읍지로 문화유적이 많은 도시입니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측의 파주, 연천 등과 접하고 있으며, 한강을 사이에 두고는 김포와 인천(강화도)를 마주하고 있습니다...2002년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가 만들어지면서 현재는 개성시, 개풍군, 장풍군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현재 개성 시가지에는 약 40만 여명의 주민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 “...개성 관광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최초로 육로를 통한 북측의 역사, 문화 유적지와 명승지를 관광함으로써 남북교류와 통일기반 조성.개성공단사업과 연계하여 민족화해와 협력의 활성화.” // [개성관광 소개 / KAESONG TOUR HISTORY] 1998. 06. ; 故 정주영 명회회장의 소떼 1,001마리와 함께 방북. / 2000. 08 ; 故 정몽헌 회장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4차면담 후 7대 합의서 체결. / 2003. 03 ; 개성관광사업 협력사업자 승인 (통일부->현대아산). 2003. 06. ; 개성공단 착공식. / 2004. 12. ;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 / 2005. 07. ;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 후 백두산 및 개성관광 합의. / 2005. 08 ; 개성시범관광 합의서 체결. 개성시범관광 3차례 실시. / 2007. 12. ; 개성 본 관광 실시. // 개성은 판문점에서 불과 12km 거리에 있습니다. 최근 판문점은 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고, 의당(宜當) 각광을 받아야 마땅한 개성은 지금 한낱 리(里) 단위에 위치한 판문점에 묻혀 있는 듯 합니다. 이참에 문재인 정부가 개성관광에 관심을 가져주길 기대해 봅니다. “첩첩(疊疊)한 산을 넘어 멀리 뵈는 송악산(松嶽山)아 / 구름도 유심(有心)하여 그 뫼 싸고 도노매라 / 보고도 가지 못하니 눈물만이 나온다”- 송도후팔경(松都後八景)-자동심승(紫洞尋僧)·청교송객(靑郊送客)·북산연우(北山煙雨)·백악청운(白岳晴雲)·강서풍설(江西風雪)·황교만조(黃橋晩照)·장단석벽(長湍石壁)·박연폭포(朴淵瀑布)! 보고 싶은 송도팔경(松都八景)! 판문점이 가까운 개성공단! 최근 관심 없던 판문점은 각광을 받고 있고, 개성공단은 여전히 뒷전! 그런데 지금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개성공단기업 관계자는 “이번에 큰 기대를 거는 이유는 올림픽을 계기로 경의선 육로와 바닷길이 열렸고 군 통신선이 복원됐다. 희망을 봤다”면서 “남북 평화 무드가 평화협력의 상징인 개성공단 재개로 이어지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남북의 위정자(爲政者)들이 숙고해야 할 개성공단의 재개 문제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 홈페이지 “금강산관광”과 금강산(金剛山) 금수강산(錦繡江山)
[청로 이용웅 칼럼] 홈페이지 “금강산관광”과 금강산(金剛山) 금수강산(錦繡江山)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홈페이지 “금강산관광(www.mtkumgang.com)”의 메뉴 [금강산 알아보기]에는 [금강산 소개] “1. 아름다운 자연과 금강초롱이 있는 놀라운 절경. 금수강산(錦繡江山) 금강산. / 금강산의 위치와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요? 금강산은 행정구역상 강원도 고성군과 금강군 그리고 통천군에 걸쳐 있으며, 동서 너비는 약 40 km, 남북길이는 약 60 km, 면적은 약 530 km2에 달합니다.” - 그리고 “금강산의 놀라운 절경!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요?”, “금강산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다.(금강산. 봉래산. 풍악산. 개골산)”, “아름다운 자연과 금강초롱이 있는 곳...금강산관광은 총 22개 루트 중 잘 알려진 3개 루트를 시작으로 현대그룹에 의해 1998. 11. 18. 금강호의 첫 취항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관광의 역사] “2. 자연이 한반도에 내려준 최고의 선물, 금강산. 금강산관광은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리 체험하는 통일마을. 살아있는 남북교류/대화의 장. 민족의 얼이 담겨있는 천혜의 보고.” // MT. KUMKANG TOUR HISTORY : 1989.01.24. 정주영 명예회장 첫 방북/금강산관광 및 시베리아 공동개발의정서 체결. 01.31. 금강산관광개발 의정서 체결(평양)./ 1998.11.18. 현대 금강호 첫 출항./ 2000.05.24. 고성항 부두 준공. 09.30. 김정일 국방위원장 금강산 방문./ 2003,09. 금강산 육로관광 실시./ 2005.09.01. 옥류관, 비치호텔, 온정각 동관 개관./ 2007.04.13. 금강산 택시(스타랙스 1대) 투입 개시. 05.28 관광공사 금강산 면세점 그랜드 오픈. 06.01. 내금강 관광 개시. 2008.03.17. 금강산 승용차 관광개시. 05.28. 금강산골프장(아난티) 그랜드 오픈.// 위 홈페이지에 실린 ‘관광의 역사’는 여기까지입니다. 2008년 5월 28일 금강산골프장 오픈! 그리고 7월! 2008년 7월의 금강산을 회상해 봅니다. 필자는 2008년 7월 10일 금강산 패미리비치호텔에 몸을 맡겼습니다. 위쪽에 있는 5동에서 내려다본 금강산과 금강산해수욕장은 황혼의 아름다움과 어둠의 아늑함이 가득했습니다. 그날 저녁 해수욕장에서 물속을 거닐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5시 40분 쯤 방을 나섰습니다. 해변으로 내려와 해금강호텔 쪽으로 가려다가 모래사장으로 향했습니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그만 정자인 영락정에서 본 사위(四圍)의 풍광은 영롱한 이슬처럼 아름다웠다. 그날 저녁 금강산호텔에서 금강산예술소조 가무단 공연을 관람하고 비치호텔에 도착하니 금강산골프장 관리인이 같은 호텔에 투숙한 여자 관광객이 새벽에 피살되었다고 말했습니다. 문득 민통선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연두색 펜스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북측의 룰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는 가이드의 주의사항도 생각났습니다. “가지 말았어야 하는데...” 12일 오후 2시 경 남측 출입사무소를 거쳐 화진포 아산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기자들의 모습이 낯설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7일 제헌절 아침까지 신문 방송과 인터넷에는 ‘거짓과 진실’이 가득했습니다. 물론 필자도 어느 것이 거짓인지 잘 몰랐습니다. 또한 주관적 소견은 있지만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만, 정해진 법은 지켜야만 한다는 말과 법을 지키는 것도 인간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하고 싶었습니다. 결국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길이 막히고 말았습니다. 금강산에서 만난 똑똑한 북측 사람들, 많이 상냥해진 북측 봉사원들, 열(熱)과 성(誠)을 다하는 현대아산조장(가이드)들, 관광을 시작할 때 모두 나와 즐겁게 인사하는 현대아산 직원들, 온정각 앞마당에서 떡메를 쳐 인절미를 만드는 남정네...그 많은 남과 북의 사람들, 멀리서 돈 벌러 온 조선족 동포들..일자리를 잃고 ‘신음소리’를 냈던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水作銀杆春絶壁 雲爲玉尺廣靑山 / 月白雪白天地白 山深水深客愁“(폭포수는 은절구통 같이 봄 절벽을 찧고 / 구름은 옥으로 만든 자로 청산을 재도다 / 달빛은 희고 눈빛도 희며 천지도 모두 희고 / 산도 깊고 물도 깊고 나그네 근심 또한 깊도다.)”- 금강산을 찾았던 김 삿갓의 ‘신음소리’? 아니 이 소리는 ‘금강산(金剛山) 금수강산(錦繡江山)’, 절경(絶景)에 대한 감탄사 였습니다. 최근 코스닥 시장에서 금강산골프장(아난티)이 속한 에머슨퍼시픽그룹의 주식이 급등했다고 합니다. 한 리서치 기관은 “금강산 아난티 가동을 재개할 경우 연 200억 원 이상의 운용 매출이 발생 가능한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최근의 남북관계 급속 해빙무드가 금강산관광 재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내 언론들도 재개에 대해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습니다. 3월 16일 KBS-TV는 “남북, 북미정상회담 개최 합의 소식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습니다..,사업자인 현대아산도 기대가 큽니다. 2008년 중단 이후에도 북측 관광시설을 꾸준히 관리했다며, 재개 준비 계획을 이미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현대아산 관계자가 “금강산 관광을 시작하자고 했을 때, 물리적으로 (관광 재개까지) 두 달에서 석 달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전하고, “금강산 관광 중단에 따른 피해 규모는 2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현대아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고성군 지역은 3천5백억 원에 이릅니다.”라고 전했습니다. 서두(序頭)의 홈페이지 “금강산관광”은 ‘현대아산’의 홈피입니다. 이 홈피에는 위의 메뉴 [금강산 알아보기] 외에 [예약안내], [출발안내], [현지안내], [커뮤니티] 그리고 [고객센터]가 있습니다. ‘고객센터’에는 [자주 묻는 질문], [묻고 답하기], [신문고]가 있습니다. 그런데 ‘커뮤니티’와 ‘고객센터’는 ’식물인간‘과 같습니다. 현대아산은 관광 ’재개‘가 아니라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국민들도 홈페이지를 ’국민 홈피‘로 생각하고, 홈피의 ’신문고‘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표했으면 합니다. ‘금강산(金剛山) 금수강산(錦繡江山)’! “하늘은 청옥(靑玉)이요, 봉두(峰頭)는 백옥이요, 산복(山腹)은 벽옥색(碧玉色) 신선 사는 송백(松柏)인데 복판의 일점 백운(白雲)이 수렴동(水簾洞)이라더라.”(이광수/金剛山遊記). - 금강산은 한반도의 금수강산 입니다. [금강산(金剛山) · 봉래산(蓬萊山). 풍악산(楓嶽山) · 개골산(皆骨山)]은 한민족의 훌륭한 문화유산 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 되돌아 본 2000년의 남북(북남) 정상회담(최고위급회담)
[청로 이용웅 칼럼] 되돌아 본 2000년의 남북(북남) 정상회담(최고위급회담)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공동선언> 조국의 평화적 통일(평화적통일)을 염(념)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대한민국 김대중대통령)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력)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최고위급회담)을 가졌다.(가지였다.) 남북 정상(북남수뇌)들은 분단 역사상(분단력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리)해를 증진시키고 남북(북남)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하는데서) 중대한(사변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남(북)과 북(남)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 2.남(북)과 북(남)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북측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남측의 련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 3.남(북)과 북(남)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흩어 진) 가족, 친척 방문단(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비전향장기수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인도적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 4.남(북)과 북(남)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 5.남(북)과 북(남)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의(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께서) 서울을 방문하도록(하시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김정일국방위원장께서는)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 6월 15일 대 한 민 국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 통 령 국 방 위 원 장 김대중 김정일 위 ‘공동선언’은 <이제 첫걸음입니다>(대한민국 국정홍보처)와 북한<로동신문>(2000년 6월 15일자)에 게재된 선언문을 하나로 합친 것입니다. ( )안의 것은 북한의 선언문으로 띄어쓰기 등을 원문 그대로 수록했습니다. <남북(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되자, 국내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보냈다. 열강의 수장들과 유수(有數)한 세계 언론들이 희망 찬 말글들을 쏟아냈습니다. 그 많은 말글들 중에서 하나를 살펴봅니다. ‘프랑스 제1의 신문’이라고 자처하는 <르 몽드(Le Monde)>(2000년 6월 18․19일 14면)는 “한국의 염원”이라는 기사에서 아시아의 냉전 종식의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두 정상의 만남은 ‘역사적인 사건(un événement historique)'이라고 기술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 있었던 두 정상의 만남은 역사적 사건이며, 최근까지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이었던 한반도 안에서 전쟁 반세기 뒤에 성사된 것이다. 6월 15일 목요일 양국간에 체결된 협약은 몇 개의 중요한 원칙들, 즉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 나가기로 한다》, 종전(終戰) 후 야기된 이산가족문제와 인도적 문제들을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한다》 등에 그쳤다. 하지만 두 수장(首長)이 통일 전망을 얼굴을 맞대고 서로 상의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불만을 표시해서는 안될 중대한 사건(un évenement majeur)이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선언문에는 ‘분단의 아픔’도 내재되어 있습니다. 분단 반세기 동안에 한글이 그 모습을 달리하는 아픔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1948년 1월 기존의 ‘조선어학회 언어규범’을 비판하면서 “조선어 신철자법”을 공포했고, 1966년에는 “종래의 표준어를 문화어라 부르고 언어발달의 중심지를 그들의 수도 평양으로 정하였다”(고영근,<북한의 언어문화>, 서울대학교출판부,116쪽)고 했습니다. 다행히 1987년에 공포한 <조선말규범집>이 “조선어 신철자법”과 비교해 볼 때 이질적 측면이 상당히 해소되었다고 하지만, ‘중대한(사변적인)’이라는 어휘가 주는 의미는 큽니다.<조선말 사전>을 보면 “중대하다(重大~) ①중요하고 크다(…)∥중대한 기사, 중대한 발언, 중대한 방송, 중대한 실책”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말 사전>과 유사합니다. 그러나 ‘사변(事變)’은 뉘앙스가 다릅니다. 남한의 ‘사변’은 “①천재나 그 밖의 큰 변고 ②나라의 중대한 변사. 경찰력으로 막을 수 없는 난리 ③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무력을 쓰는 일”이고, 북한의 ‘사변’은 “①변스러운 사건 ②비상한 사건 D 중대한 일 / 전후 농촌 경제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으로 되는 것은 농업협동화 운동이 단시일 내에 성과적으로 완수된 사실이다. / 임진 조국 전쟁은 우리 나라 봉건 사회 발전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력사적 ~이였다”이다. 다른 점은 ‘D 중대한 일’입니다. 여기서 ‘D’는 ‘의미 뉴안스 주석 앞에’ 붙이는 ‘부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사변적인’은 ‘중대한’입니다. 하지만 ‘중대한’은 공히 쓰이는 낱말인데 구태여 ‘사변적인’을 사용한 것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일러 두기’에서 ‘각종 부호’를 설명하면서 프랑스어인 ‘뉴안스(우리말 사전 ; 뉘앙스)’란 단어를 쓴 것도 더 더욱 모를 일입니다. ‘거동궤 서동문(車同軌 書同文)’ 등은 남․북한 사전에서 의미가 같습니다. 그 낱말은 ‘각 지방의 수레는 넓이를 같이 하고, 글은 글자를 같이 쓴다’는 말로 ‘천하가 통일됨’을 이르는 말입니다. 이 같은 한글의 분화현상은 국가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빚어진 결과이지만, ‘하나됨’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남북공동선언’에 쓰인 언어들만이라도 하나가 되었다면 선언문에 담긴 역사적 의의는 매우 컸을 것입니다. 이번 4월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은 하나이기를 소망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국회의원 북콘서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국회의원 북콘서트
[선데이뉴스신문 이용웅 논설고문] 6·13 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전(前)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전해철(안산 상록갑) 국회의원의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 북콘서트가 10일 오후 4시 경기도 수원시에 위치한 아주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3시 지나서부터 행사장 앞에 장사진을 친 참석자들은 콘서트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인산인해를 이뤘다. 북콘서트는 식전행사, 개회선언에 이어 제1부(국민의례 등), 제2부 토크1 <원칙과 상식>과 토크 2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 순으로 진행되었다.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는 전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보좌하면서 있었던 일과 소회를 기록한 책이다. 이날 전 의원의 북콘서트에는 더불어민주당 원내의원 중 44명이 참석해 전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경기도의회 민주당 도의원 61명도 참석해, 마치 전당대회와 같은 열기를 보였다. 4000여석 규모의 체육관은 자치단체장들과 당직자, 시민 등 인파로 발 디딜 틈 없이 꽉 찼고, 체육관 밖에도 입장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콘서트에서 저자는 "두 분 대통령을 모시면서 기쁜 일도 있었지만 아픔과 아쉬움, 특히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회한도 많이 있었다."며 "그간의 일을 정리할 겸 책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의 가장 큰 관심은 '3철'로 불리는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양정철 전 청와대 비서관과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이 함께 하는 좌담 형식의 토크 2 <함께한 시간, 역사가 되다> 였다. 이 자리에서 양 전 비서관과 이 전 수석은 한 목소리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 의원을 지지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리고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양정철 전 문재인 대통령 비서관 등은 전임 대통령들과 함께 일했던 경험과 당시에는 말하지 못했던 뒷이야기를 털어놨다.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후 이른바 '3철'로 불리는 세 사람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전 민정수석은 "전 의원은 노무현, 문재인의 시대정신을 잘 이어받은 사람"이라며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사람이 우선인 사회를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양 전 비서관은 "오늘 '3철' 해단식을 선언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강조했다. '3철'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꼽히며, 문 대통령과 '3철'은 노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함께 일한 바 있다. 정치권에서는 세 사람의 이름에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철'을 따 '3철'로 부른다. 이 전 수석은 "저희들이 10여년 이상 같이 일했는데, 한 번도 싸운 적 없다. 함께한 시간이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며 "그래서 전 의원이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양 전 비서관은 "앞으로 '3철'은 없고 '전해철'만 있다."며 운을 띄운 뒤 "전 의원에게는 문 대통령과 가깝다는 이유로 당에서 정치적으로 여러 헌신을 많이 해 애잔한 마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아마 (전 의원이) 어떤 정치적 목표를 갖고 도전하는 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면서 "선거법을 잘 피해서 말씀드리면 (전 의원에게)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며 전 의원의 지방선거 선전을 간접적으로 응원했다. 한편, 이날 북콘서트에는 전 의원과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을 치를 것으로 예상되는 이재명 성남시장과 양기대 광명시장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청로 이용웅 칼럼]경기도 파주시와 개성직할시 판문군의 ‘판문점(板門店)’
[청로 이용웅 칼럼]경기도 파주시와 개성직할시 판문군의 ‘판문점(板門店)’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2018년 3월 7일, 문재인 대통령은 여야 5당 대표와의 청와대 오찬회동에서 남북이 4월 말 판문점 정상회담을 합의한 것과 관련해 "우리가 서울이든, 평양이든, 판문점이든 후보지를 제안하고 북한이 (판문점을) 선택했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 평화의 집이 선택된 데 대해선 "우리는 평양·서울·판문점 어디든 좋다고 제안했다...북한이 그중 평화의 집에서 하겠다고 선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평화의 집’은 남쪽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군 군내면 조산리 481번지에 위치한 남쪽의 판문점(板門店)! 대한민국의 ‘국가정보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판문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홈피는 “ 판문점 ; 분단과 대화의 현장. 남북의 대립과 대화가 공존하는 판문점입니다.”라고 전제하고, “판문점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판문점은 1953년 7월 27일 6ㆍ25동란 정전협정 체결 이후 군사분계선 이북은 북한 측이, 이남은 UN측이 각각 관할하고 있는 특수지역으로 정전협정 이행을 위한 군사정전위원회 회의가 개최되는 곳입니다./ 판문점은 군사분계선상의 동서 800m, 남북 400m 장방형의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 을 말하며, 우리 행정구역상 지명은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입니다. 정전협정 조인은 현재의 판문점에서 개성 쪽으로 약 1km 떨어진 지점에서 이루어졌으나, 1953년 10월 군정위 쌍방이 군사분계선상에 공동경비구역을 설정하면서 오늘의 판문점이 생겨났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진 6장 (공동경비구역(JSA)/ 중감위 회담장/ 북한의 판문각 경비병/ 도끼만행사건의 현장/ 돌아오지 않는 다리/ 판문점에서 바라본 북한 전경)을 게재했습니다. “개성시 판문군의 동부에 있는 리. 남부는 동창리, 서부는 평화리, 전재리, 북부는 선적리, 동부는 미제강점하의 경기도 파주군 군내면, 진서면과 잇닿아 있다. 리(里)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63(1974년) 7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친히 찾으시여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영광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다. 이 지역은 남반부에 속해 있다가 지난 조국해방전쟁 시기 공화국 북반부에 속하였다. 주체 56년 10월 개성군 판문면 평화리 일부지역이 갈라 져 나와 생긴 리이다...리로(理路)는 평양-서울(남반부) 사이 자동차길이 지난다. 군 소재지 판문까지는 6Km, 개성까지는 10Km, 서울까지는 40Km이다.”(557쪽) 그리고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22)>은 “판문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지난 조국해방전쟁에서 미제침략자들이 조선인민 앞에 항복하고 군사정전협정에 조인한 력사적인 장소. 판문점에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주체63(1974년) 7월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친히 찾으시여 불멸의 업적을 남기신 영광의 혁명사적이 깃들어 있다. 판문점은 판문읍에서 동쪽으로 약 6Km, 개성에서 약 8Km 떨어진 곳에 있다. 판문점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친필비와 정전담판회의장, 판문각, 통일각 등이 있다. 여기서는 조국통일과 관련한 여러 가지 정치행사들이 진행되고 있다.”(557쪽) 사전(辭典)은 ‘판문점리’와 ‘판문점’을 설명하면서 반복해서 김정일을 우상화하고, 김일성의 ‘친필비’까지 소개했습니다. 또한 ‘판문점공동경비지역’에서 발생한 “판문점 사건”(1976년 8월 8일)과 “판문점 총격사건”(1984년 11월 23일)을 전적으로 미국의 잘못으로 기술했습니다. 여기서 <로동신문>의 ‘판문점’에 대한 글도 소개합니다. 윗글만 보더라도 ‘판문점’은 북한이 ‘선전선동(宣傳煽動)’ 도구로 쓰고 있습니다. 북한의 수장(首長)이 ‘서울 · 평양· 판문점’ 중에서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택한 이유가 짐작됩니다. 아마 다음 달에는 판문점에 세계의 이목(耳目)이 집중될 것입니다. 그런데 3월 9일 미국 워싱턴 발(發) 뉴스를 접하고, 판문점이 더 더욱 각광(脚光)을 받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정은 북한 로동당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북을 요청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5월 김 위원장을 만날 계획이라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9일(미국 현지시간 8일) 보도했습니다. 5월 북미(北美)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백악관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방북 요청을 수락했다."고 확인했습니다. 만일 성사된다면 회담 장소는 ‘서울 · 평양· 판문점’ 중에서? 아니 3곳 중 하나가 아니더라도, 북미정상회담 직전의 ‘판문점’은 크게 각광(脚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정부나 국민들은 판문점에 김일성의 조국통일친필비, 김정일의 ‘혁명사적’이 있다는 것을 깊이 명심(銘心), 또 명심(銘心)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