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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비발디의 사계(四季) & 2021년의 봄·여름·가을·겨울
[청로 이용웅 칼럼] 비발디의 사계(四季) & 2021년의 봄·여름·가을·겨울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후기 바로크 시대 기악음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이탈리아 작곡가의 한 사람인 안토니오 비발디(Antonio Vivaldi /(1678∼1741)의 “바이올린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독주협주곡 작품 8.”-사계(The Four Seasons/四季)! 1~4곡으로 각기 봄·여름·가을·겨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고, 각 곡이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전체 12곡입니다. 각 곡에는 해당하는 계절과 연관된 여러 가지 소리와 사건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예를 들면 〈봄〉에는 새소리, 〈여름〉에는 산들바람 등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사계〉의 이러한 음악 외적 묘사의 시도는 악장마다 맨 앞에 서두로 적혀 있는 소네트 시의 이미지와 생각들로도 나타나 있고, 비발디는 자신의 의도를 좀더 명확히 하기 위해 악보의 적당한 악구에 시구절을 적어놓거나 심지어 '잠자는 염소치기', '짖는 개'와 같이 묘사어들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곡(曲)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제목이 붙습니다. 사계를 구성하는 네 개의 협주곡은 각 계절을 잘 묘사하고 있다. <사계>를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과거만큼 좋아하는 애호가가 적기 때문입니다. 이 폭염(暴炎)의 여름에 감상하면 더위가 잊혀질 것도 같아서 소개합니다. 계절(季節)! 기후의 추이에 따라 1년을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눈 시기! 북반구 중위도에 위치한 우리나라는 4계절의 변화가 뚜렷합니다. 봄·여름·가을·겨울 등 각 계절은 초봄·한여름·늦가을 등으로 세분되기도 하고, 초(初)·중(中)·만(晩)으로 자세히 구분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3·4·5월을 봄, 6·7·8월을 여름, 9·10·11월을 가을, 12·1·2월을 겨울이라고 합니다. 장자(莊子)는 ”밤과 낮은 생(生)과 사(死)와 같고, 봄·여름·가을·겨울은 사람의 일생과 같아 사람의 힘으로는 어떨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봄은 사과꽃의 입김보다 짧고, 여름은 너무 아름다워 지체할 수 없고, 낙엽의 화톳불처럼 빠른 가을, 죽음의 잠처럼 즐거운 겨울.”(E.윌리/야생의 복숭아)라고도 했습니다. 겨울! 2021년 1월 1일 신축년(辛丑年) 새해! 신축년은 육십간지 중 38번째로 신(辛)이 백색,축(丑)이 소를 의미하는 "하얀 소의 해"를 의미합니다. 새해 첫날 북서쪽 찬 공기 영향으로 강추위가 계속, 강원 홍천군 서석에서는 영하 18.3도,,철원 14.3도 까지 떨어졌습니다. 전년(前年) 시작된 2021년 겨울! 제발 코로나가 얼어죽기를 바랬지만, 유난히 기승(氣勝)을 떨쳤던 추위! 추위! 누군가는 추위는 ‘죽음’이라고 하고, 그렇기 때문에 겨울의 추위는 인간에게 종교적인 명상(冥想)을 불러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S. 베케트는 “오! 행복한 세월”에서 “끝 없는 추위, 영원히 멸망할 수 밖에 없는 추위”라고! 봄! 봄봄봄! 봄을 노래한 사람들은 무척 많습니다. 누군가는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리마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마음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해라 말을 해다오”라고!- 시는 “가리마 같은 논길,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가웁다 웃는 종조리, 고맙게 자란 보리밭, 살진 젖가슴같은 부드러운 흙, 마른 논을 안고 적시며 흐르는 물...조국의 대지 위에 존재하는 그 모든 정답고 소중한 것을 매혹적인 화폭으로 펼쳐 보인다.”고 했습니다. 시인 김남조(金南祚/1927~)의 ”봄날“ 중에서- ”해마다 내게선 가을이 최후의 계절이요, 한 해의 마음이 여기서 문을 닫는다. 겨울은 묵언(默言)의 절기, 봄은 겨울이 낳아 준 희열(喜悅)의 아가다. 하지만, 봄은 풍치가 열다. 첫째 봄은 경망되고 소란하다. 말의 정(情)이 한 가지로 헤퍼서 도무지 믿기 어려운 사람을 대할 때의 기분과도 같다. 어쩌면 자홍(紫紅)의 꽃다발과도 흡사해서, 버리긴 아까와도 들고 있으면 이내 그 색조(色調)에 지치고 만다.“// 지금은 여름의 한 가운데 있는 7월 하순(下旬)!. 여름! 여름은 비밀을 간직하기 어려운 계절! 수줍은 처녀들도 여름의 더위 앞에서는 몸 가리가 힘듭니다. 모든 것이 밖으로 열려진 여름 풍경은 외향적입니다. 여름의 숲은 푸른 생명의 색조를 드러내고, 그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으로 가득찹니다. 은폐도 없고 침묵도 없는 여름의 자연은 나체처럼 싱싱합니다. 중국의 이백(李白)은 ”백우선(白羽扇)을 부치기도 귀찮다/ 숲 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건(巾)을 벗어 석벽(石壁)에 걸고/ 머리에 솔바람이나 쐬자“(하일산중/夏日山中)고! 옛날이니 지금이나 여름은 덥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더 덥습니다. 하지만 이열치열(以熱治熱)! 곧 오는 가을! 가을의 고사성어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의 ‘천고마비(天高馬肥)’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높은 하늘 보고 말(馬)을 연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말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고, ‘살찌는’ 이라는 말도 싫어합니다. 더군다나 ‘맑고 풍요로운 가을’을 얘기할 때는 더 더욱 외면까지 합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 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 책을 읽음)도 ‘별로’인 세상입니다. 그래도 구추풍국(九秋楓菊/ 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 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 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그리고 황국단풍(黃菊丹楓/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등은 거부감이 별로 없는 말입니다. 누군가 가을은 전쟁을 치룬 폐허(廢墟)이고,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침몰(沈沒), 하나의 모반(謀反), 하나의 폭동(暴動), 들판의 꽃들과 잎과 열매와 모든 생명의 푸른 색채(色彩)에 쫓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쫓겨서 어디론가 망명(亡命)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그 자리에서침몰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춘원과 누군가의 가을 생각은 다르게 마련입니다. 다만 ‘슬픈 폐허의 가을’의 언어(言語)도 ’아름다운 시어(詩語)‘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든 가을의 시(詩)와 노래를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사계! 계절! 지구상에 아름다운 사계를 공유한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4계절이 있는 곳은 홍수, 폭설도 대비해야 합니다. 일본의 경우 홋카이도 지방은 북반구 제트 기류의 변화 때문에 폭설에 시달리고, 혼슈, 큐슈 쪽은 여름이 굉장히 빨리 오며 해양성 기후 특성 때문에 습하고 자연재해가 잦습니다. 하지만 한반도는 사계가 비교적 평화롭습니다. 필자가 사랑하는 프랑스 샤모니 알프스 몽블랑도 우리의 금수강산(錦繡江山)보다 못합니다. 지금 우리는 폭염(暴炎) 속! 한반도는 사계가 아름다운 자랑스런 땅입니다. 신(神)에게 감사!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시진핑과 중국문화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시진핑과 중국문화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이번 학기에 필자는 사이버강좌 <동북아 역사와 문화>(경남대), <동북아 정세와 문화의 이해>(부경대·인제대·안양대)를 가르쳤습니다. 이 강좌에서 중국(中國) 몫은 4주 12시간입니다. 동북아시아(한·중·일 3개국을 가리키는 말. 넓은 의미로는 몽골, 러시아의 극동 지역 및 시베리아도 포함)의 ‘역사·정세·문화’을 볼 때 비중이 약합니다. 그런데 황하문명의 대국(大國) 중국이 지금도 대국인지...현대 중국문화는 온통 ‘공산당 문화’처럼 보입니다. 지금의 중국문화가 ”시진핑 문화“는 아닐까요? / ★홈페이지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시진핑(習近平)! 출생지-베이징, 학력-칭화 대학교 화학공학 학사, 법학 박사! 현재 그는 중화인민공화국의 최고지도자로 공산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 등의 직책을 맡고 있습니다. 제18기,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2007년 17기 1중 전회에서 권력 서열 6위로 올랐으며, 2008년 3월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의 부주석이 되었고, 2012년 11월 후진타오 주석으로부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와 함께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승계! 2013년 3월 14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주석에 선출되었습니다. 2018년 3월 11일에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의 통치 체계를 수립,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영원한 국가주석”을 꿈꾸고(?) 있습니다. 중국을 국빈(國賓) 방문했던 박근혜 당시 남한 대통령은 2013년 6월 27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한반도 비핵화'에 공동 대처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다각적 협력 채널을 구축하는 내용의 '미래비전 공동성명'과 이행계획서를 채택했습니다. 시 주석은 이 회담에서 “한반도에 대한 중국 국민의 2대 희망 중 하나가 비핵화이고 두 번째가 평화 통일”이라며 “중국은 유엔 안보리 결의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고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누구든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겠다는 중국의 입장은 확고하고, 태도는 엄숙하고 진지하다”고 말했다고 반관영 중국신문사가 보도했습니다. 시진핑의 말은 진실? 시 주석은 또 “한반도 정세에 긍정적 변화가 발생하고 있다. 각 당사국이 이 기회를 붙잡아 6자회담을 조기에 개최하기를 희망한다”고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남한 수장(首長)은 “우리 두 정상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는 용인할 수 없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고! // 김정일은 2011년 12월 17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사망! 김정은은 곧바로 행정부와 군부를 장악한 최고 지도자로 임명되었고, 2012년 4월 그의 최고 지도자 위치는 로동당 제1비서, 국방위원회 의장 등으로 확고해졌습니다. 그럼 2013년 6월의 북한은? 시 주석이 북한을 외면한 것은 아니겠지만, 남한 수장과 좋은 척? 시진핑 주석은 2021년 7월 6일 베이징에서 화상으로 중국공산당과 세계 정당 지도자 정상회의에 참석해 <정당 협력 강화 인민 행복 추구>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발표했습니다. 시 주석은 연설에서 “중국의 일을 잘 처리하여 14억 명 이상 중국 인민들이 더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고 인류의 평화와 발전이란 숭고한 사업을 촉진하는 것은, 중국공산당의 초지일관 분투 목표”라고 밝혔습니다. 시 주석 왈(曰)-‘중국공산당은 각국 정당 및 정치조직과 함께 올바른 역사의 편과 인류 진보의 편에 서서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과 더 나은 세상 건설을 위해 한층 기여하고자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연설 속에서 ‘문화(文化)’라는 단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중국! ‘중화 세계의 출범’은 ‘황하(黃河) 문명(文明)’ 입니다. “문명”은 “인지(仁智)가 발달해서 인간 생활이 풍부하고 편리해진 상태. 정신 문화에 대해, 주로 생활조건이나 질서에 대한 물질문화를 이루는 것” 입니다. 중국 역사의 특징은 광대한 영토와 다양한 종족에도 불구하고 중심의 이동이 거의 없었다는 점입니다. 중국의 문헌에 중국 최초의 왕조 국가로 기록된 하나라(서기전 2070년~1600년)! 황하문명의 한 갈래입니다. 전통적으로 중국 한족을 화하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로 이곳의 국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 문명을 계승해 황하 유역에 세워졌습니다. 그 뒤를 상나라와 주나라가 잇는 과정에서 영토도 넓어지고 그 안으로 다양한 종족이 들어왔지만, 중심지는 여전히 황하 유역이었습니다. 황하 유역의 평야 지대를 일컫는 ‘중원(中原)’과 중국인을 일컫는 ‘화하(華夏)’라는 말은 이 무렵 생겨났습니다.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에서 높은 문화를 이루고 있다는 ‘중화(中華)’ 사상도 이때 싹이 텄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따르면 문화 지대인 중원의 변방에 문화의 세례를 기다리는 동이(東夷), 서융(西戎), 남만(南蠻), 북적(北狄) 등 이민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인민 행복 추구’를 말하면서 ‘문(文)’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서기전 770년 춘추전국 시대가 시작되자 주나라 왕을 천자(天子)로 떠받들던 제후국들이 사실상 독립해 서로 경쟁하고 싸웠습니다. 500년 훨씬 넘게 계속된 춘추전국 시대! 그 뒤, 진나라를 거쳐, 서기전 202년 통일 제국으로 등장한 것이 한나라였습니다. 한나라는 유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중화사상을 확립했습니다. 이후 2000년 넘게 동북아시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게 되는 중화제국은 이렇게 탄생했으며, 그 중심지는 여전히 중원 한복판의 장안이었다. 중국 문화도 동행을 했습니다. 중국문화(中國文化))! 그 과거를 다음 <인민일보> 기사에서 확인해 봅니다. ‘신문’은 “제44차 세계문화유산위원회가 7월 16일 중국 푸젠(福建) 푸저우(福州)에서 열렸습니다. 푸저우는 2200년이 넘는 도시 역사를 가진 국가 역사문화도시! 푸저우 중축선(中軸線)을 따라 걸으면,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통해 푸저우만의 특징과 다양한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라고! 구태여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황하 문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중국 문화는 분명 거대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 옛 문화는 지하에서 영원할 것입니다. 현재도 중국문화는 중국인들의 자랑입니다. 그런데 현재의 중국이 자랑하는 문화는 그 역사를 바탕으로 한 현대 문화예술입니다. 여기서 두 가지를 예로 들어봅니다. 중국 고대 신화 속 두 남녀의 낭만적인 사랑이야기 “금면왕조(金面王朝)”와 중국 소수민족의 역사를 그린 ”인상 여강(印象 麗江/장예모 감독 연출)“ 입니다. 나쁘게 얘기하면 상업 문화의 결정체? 유교의 시조인 공자(孔子)의 말씀도 ‘별로’인 오늘의 중국문화입니다. 시진핑은 아는지?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 오늘의 북한(北韓)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 오늘의 북한(北韓)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21년 학기, 필자는 사이버강좌 <클릭, 즐겨찾기·북한문화예술>을 가르쳤습니다. 이 강좌에서 북한 몫은 3주 9시간입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한·중·일 3개국을 가리키는 말. 넓은 의미로는 몽골, 러시아의 극동 지역 및 시베리아도 포함)의 ‘역사·정세·문화’를 볼 때 비중이 약합니다. 그런데도 갈수록 수강 신청하는 학생들이 줄고 있습니다. 필자의 북한 문화예술강의는 20여 년 전에 <북한문예산책>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 <북한문화예술 현장탐방>, <북한의 문화예술>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분석 결과, 학생들의 북한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현재 학생들은 북한문화예술에 식상(食傷)해 있습니다.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서는 북한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쓰레기통에 버려야 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모두가 ‘주체사상· 북한 헌법 · 조선로동당 규약’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폐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사실 이것은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지구촌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 뿐 아니라 국민들도 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무대 전면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이라는 현수막을 붙이고 하는 연극 공연도 하는 우리의 북쪽입니다. 여기서 간략하게 ‘북한문화예술’을 들여다 봅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자주시대 문학예술의 본보기로 되는 빛나는 문학예술작품 창작”이라며 하고, 그가 “일찌기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문학예술이 노는 역할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했고 ‘불후의 고전적 명작’들을 많이 창작! 그리고 “불후의 명작들은 그 수에서 방대할뿐 아니라 문학, 연극, 가극, 음악, 무용, 미술 등 거의 모든 종류와 형태의 문학예술 령역을 포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주체적 문예사상의 창시자’가 김일성이라고 했고, 김일성은 이 주체적 문예사상이 “새로운 민족문학예술을 건설하기 위하여서는 주체성과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의 원칙을 철저히 구현하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런 내용은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합니다. 북한은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문학예술의 모든 분야에 철저히 구현’, ‘새로운 창작방법인 우리 식의 사회주의적사실주의 창작방법을 개척’했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이 창작방법을 ‘주체사실주의 창작방법’이라고 ‘정식화’했습니다. 이 방법은 “그 형성의 사회력사적 경위에 있어서나 철학적 기초와 미학적 원칙에 있어서 새로운 높은 단계로 되는 창작방법”이라고! 북한은 김일성이 “자력갱생의 혁명정신으로 문학예술창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자체로 해결하는 혁명적인 창조기풍을 새롭게 확립”하였으며, “혁명가요 <반일전가>” 등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창작하여 “항일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힘있게 고무하는 투쟁의 기치”로 되게 하는 등 “전투적이며 혁명적인 창조 기풍의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고!. 이런 내용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거의 동일합니다. 여기서 북한문학예술의 한 예를 봅니다. “불후의 고전적명작” 입니다. 북한 <조선대백과사전(12)>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을 ’김일성·김정일‘이 ”위대한 주체사상과 주체적문예사상을 빛나게 구현한 불후의 고전적명작들을 수많이 창작하시여 참다운 혁명적이며 인민적인 문학예술의 본보기를 마련”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은 “수령님께서 창작하신 문학예술작품을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라고 하는것은 거기에 인류사상사에서 가장 높고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공산주의 문학예술건설의 옳바른 길을 밝혀주는 주체적문예사상이 빛나게 구현되여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북한에서 ‘불후의 고전적명작’은 ’김일성·김정일‘의 작품 뿐! 다른 작품은 지구상에 아무 작품도 없습니다. 어불성설(語不成說)! 2021년에도 북한문학예술은 예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2021년에도 북한 정세(情勢)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합니다. 그 예(例)는 ’북한·중국‘ 관계입니다. ’오늘의 북한‘ 가까이에는 중국이 있습니다. 중국 <人民日報>는 “시진핑(習近平) 중공중앙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과 김정은 조선 노동당 총서기, 국무위원회 위원장, 무장역량 최고사령관이 7월 11일 ‘중·조 우호협혁 상호원조 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축전을 주고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인민일보>는 시진핑이 축전에서 “1961년 중·조 선대 지도자들은 ‘중·조 우호협혁 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림으로써 두 나라 인민들이 피로써 맺은 전투적 친선을 공고히 하고 두 나라의 장기적인 친선 협력을 추진하기 위한 중요한 정치∙법률적 기초를 마련했다”고 지적했고 “60년 동안 중·조 쌍방은 조약의 정신에 따라 서로 굳건히 지지하고 손잡고 어깨를 맞대고 분투하면서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형제적인 전통적 친선을 강화해 왔으며 각자 사회주의 사업의 발전을 촉진하고 지역과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했다”고 했습니다. 신문은 또 시진핑이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총서기 동지와 여러 차례의 회동을 통해 두 당, 두 나라 관계의 발전 청사진을 설계하고 중·조 친선의 시대적 내용을 풍부화하는 일련의 중요한 공감대를 이뤘다...지금 세계적으로 백 년간 전례가 없었던 큰 변화가 급속히 전개되고 있다. 나는 총서기 동지와 함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 중·조 관계의 전진 방향을 잘 파악하고, 양국의 친선 협력 관계를 끊임없이 새로운 단계로 이끌어나감으로써 양국과 양국 인민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의 북한’입니다. 오늘의 북한! 최근 남한의 북한전문매체는 ‘<펜트하우스> 등 남한 드라마를 보다 북한의 20대 청년들이 1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매체는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7월 초 평안남도 평성시 경기장에서 남한 드라마를 시청하다 적발된 최 모 씨 등 20대 4명에 대한 공개재판이 열렸다고 전했습니다. 최 씨 등은 6월 25일 최 씨 생일을 기념해 같이 모여 저녁 늦은 시간까지 한국 드라마를 본 혐의를 받았습니다. 이들이 가지고 있다 적발된 USB와 SD 카드에는 남한 영화와 드라마 30여 편, 뮤직비디오 등이 들어 있었는데,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도 포함돼 있었다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이러니 우리는 더더욱 ‘북한문화예술’을 파헤쳐야 합니다. 최근 김정은은 30대 여배우에게 북한 ‘최고의 예술인(차관급)에게 주는 ‘인민배우’ 칭호를! 부전자전(父傳子傳)!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박두진의 [7월의 편지(便紙)] & 이육사의 [청포도(靑葡萄)]
[청로 이용웅 칼럼] 박두진의 [7월의 편지(便紙)] & 이육사의 [청포도(靑葡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영어로 7월을 의미하는 July는 고대 로마의 정치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이전에는 5번째(fifth)를 의미하는 퀸틸리스 (Quintilis 또는 Qinctilis)로 불렸습니다./ 7월(七月)은 그레고리력에서 한 해의 일곱 번째 달이며, 31일까지 있습니다. 이 달과 그 해의 4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시작하며, 윤년인 경우 그 해의 1월과도 같은 요일로 시작하고 같은 요일로 끝납니다. 400년 동안 이 달은 수요일, 금요일, 일요일에 58번, 월요일과 화요일에 57번, 목요일과 토요일에는 56번 시작합니다. 7월의 기온은 북반구에서는 가장 높고, 남반구에서는 가장 낮아, 북반구의 1월 기온과 같습니다. 7월은 11월과 함께 韓·중·日·越 4국의 공휴일이 적은 달이기도 합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건국 이래 7월에 공휴일이 없고, 대한민국에서는 7월에 공휴일이 2008년 이후로 아예 없습니다.] 7월! 혹자(或者)는 말하기를, 7월은 맑고 뜨겁고 건강한 계절(季節), 폭우(暴雨)가 쏟아지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젊음과 열정과 모험을 저버리지 않는 ‘태양(太陽)의 계절(季節)’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일렁이는 파도 위에서 혹은 푸르고 푸른 수해(樹海) 위에서 혹은 가난한 사람이라 외로운 사람이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 위에서, ’7월의 태양‘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물론 7월을 다르게 표현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태양‘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반도의 7월은 ’태양‘이 아니라 ’장마‘ 로 시작되었습니다. ’장마‘는 여름철 우리나라에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많은 비를 내리는 주요 강수 현상으로, 이 시스템은 동아시아 여름 몬순(East Asian summer monsoon: EASM) 시스템의 일부입니다. 6월 말경부터 7월 말경까지 약 한 달의 장마 기간 동안 내리는 강수량은 350~400 mm로 연강수량의 약 30%를 차지합니다. 여름철에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동아시아 지역은 정체전선의 영향을 받습니다. 이 정체전선이 걸쳐 있는 지역에는 강한 남서풍에 따른 습윤한 공기의 유입량이 증가하여 장기간 동안 많은 양의 비가 내립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나라에서는 장마, 중국에서는 메이유(Meiyu), 일본에서는 바이우(Baiu)라고 부릅니다. 39년 만의 ‘7월 장마’가 시작부터 많은 비를 뿌리며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했습니다. 장맛비는 당분간 중부와 남부를 오르내리며 쉬지 않고 이어질 것으로 보여 저지대 침수와 산사태 등 피해가 우려됩니다. 우리나라 기상청에 따르면 장맛비를 내리는 정체전선(장마전선)이 한반도에 남아있던 차고 건조한 저기압들과 충돌하며 7월 3일부터 일부 지역에 폭우가 쏟아졌고, 4일 오후 2시까지 지역별 강수량은 제주 삼각봉 218.5㎜, 강원 고성 미시령 175.5㎜, 경남 거제 169.4㎜ 등이다. 주로 산간 지역과 해안가, 섬 지역에 집중호우가 내렸습니다. 바람도 거셌는데, 최대 순간풍속이 제주 한라산 백록담 초속 36.6m, 전북 무주 덕유봉은 30.4m까지 측정됐습니다. 10분간 평균 최대풍속이 초속 33~44m면 ‘강한 태풍’으로 분류하는 걸 감안하면 순간적으로 태풍급 강풍이 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장마는 지나게 되어 있고, ‘7월의 태양’이 우리 위에 뜰 것입니다. 청록파 박두진(朴斗鎭/1916~1998) 시인의 “7월의 편지”는 “7월의 태양‘으로 시작됩니다.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 7월의 태양에서는 장미꽃 냄새가 난다./ 그 태양을 쟁반만큼씩/ 목에다 따다가 걸고 싶다./ 그 수레에 초원을 달리며/ 심장을 싱싱히 그슬리고 싶다.// 그리고 바람, 바다가 밀려오는/ 소금 냄새의 깃발, 콩밭 냄새의 깃발/ 아스팔트 냄새의 그 잉크빛 냄새의/ 바람에 펄럭이는 절규...// 7월 바다의 저 출렁거리는 파면/ 새파랗고 싱그러운/ 아침의 해안선의 조국의 포옹// 7월의 바다에서는/ 내일의 소년들의 축제 소리가 온다./ 내일의 소녀들의 꽃비둘기/ 날리는 소리가 온다.“ 7월이 되자, 인터넷에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등이 올려지고 있습니다. 물론 청년들에게는 거리가 있는 주제이고, 과일이 다양하고 많은 오늘날에는 청포도가 보통의 과일이지만 일제강점기에는 귀한 과일이었습니다. 그 “청포도(靑葡萄)”를 시인·독립운동가 이육사(李陸史/190!~1944)가 노래했습니다./ “내 고장 7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및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枹)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젹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靑葡萄) 망국(亡國)의 설움! 암울한 민족의 현실을 극복하고 해방을 갈망하는 노래 “청포도”! 이 시에서 청신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청포도’와 같은 푸른 빛깔과 ‘흰 돛단배’와 같은 흰 빛깔의 투명한 서정성과 간결하고 응축된 시상의 짜임새에서 온 것입니다. ‘청포도’와 ‘하늘’의 이미지를 ‘알알이’로 연계시킨 이음새가 좋습니다. 자연스럽거니와 이들의 결합으로 형성된 상징성은 매우 다양합니다. 이 시에서 ‘손님’을 시인 자신으로 보고 분열된 한 영혼의 양면성을 지적하기도 하고, ‘손님’을 그대로 객체화하여 민족적 현실의 극복을 염원하는 상징성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이 시는 ‘청포도’라는 한 사물을 통해서 느끼는 시인의 조국으로 향하는 끝없는 애정과 망향의 아픔·독립의 희망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Tolstoy/1828~1910)가 71세에 쓴 장편소설 “부활(復活)”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몹시 무더운 7월 날씨였다. 무더웠던 전날 밤의 더위가 가시지 않은 거리의 포석(鋪石)과 집집의 돌과 지붕의 양철판은, 까딱도 않은 무더운 공기 속에서 열기를 뿜어 올리고 있었다. 바람은 한 점도 없었다. 바람이 불어올 때는, 먼지나 펭끼 냄새가 풍기는 역하고 뜨거운 공기를 몰아 왔다. 거리에는 사람이 드물었다. 있더라도 그들은 집 그늘을 골라 걸었다.”/ 톨스토이의 글이 아니더라도, 여름은 폭염(暴炎)의 계절입니다. 태양(太陽)의 여름은 참 덥습니다. 장마로 시작된 올 여름은 과연 얼마나 더울지...박두진은 ”7월의 태양에서는 사자새끼 냄새가 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을 압니다. 이 말에는 이열치열(以熱治熱)은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는 뜻도 있지만, ”힘은 힘으로 물리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견되는 ‘코로나 4차 대유행’도 이열치열로 박살 내야 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국제친선전람관과 전람관 지하갱도의 비화(祕話)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국제친선전람관과 전람관 지하갱도의 비화(祕話)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해방 후 북한에서 만들어진 건축물을 소개한 자료나 문헌 중에서 남한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화첩’들입니다. 대부분 홍보용으로 제작된 ‘화첩’으로, <주체건축의 대화원3>, <건축의 화원1>, <조선에서의 건설>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건축물을 글로 소개한 단행본으로는 <조선건축사(2)>, 월간(月刊)으로는 <조선>, <조선예술>, <천리마> 등이 있습니다. 북한의 대표적 건축물 중에서 먼저 [국제친선전람관]를 봅니다. 다음은 북한 <조선중앙년감(1981년)>(조선중앙통신사 刊)의 “국제친선전람관”(全文) 입니다. [국제친선전람관은 우리 나라의 높은 국제적 권위와 우리 인민과 세계 인민들사이의 굳은 친선단결을 보여주는 대전당으로 꾸려진 우리 시대의 대기념비적 창조물이다. 공화국창건 30돐을 앞두고 1978년 8월 26일에 개관한 국제친선전람관은 아름다운 환경과 잘 어울리게 민족적형식에 사회주의적내용을 갖춘 현대적건축물로 웅장하게 건설되였다. 전람관은 2만 8천평방메터의 넓은 연건평을 가진 6층의 웅대한 건물이다.⇒ ⇒국제친선전람관은 우리 나라 고유의 아름다운 단청을 한 지붕곡선부분들과 건물안의 천정과 벽돌에 《김일성화》, 목란꽃, 진달래꽃들을 돋히고 지붕에 청기와를 올려 조선식으로 갖추어야 할 내용을 다 갖추고 일떠선 완성된 민족적건축물이며 건물전모에 어울리게 적당한 크기를 가지고 날아 오를듯 여러개의 학각지붕들이 하나의 미적선에 따라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있는 조선식 건축물이다. 전람관은 나무를 하나도 쓰지 않았으나 나무를 쓴것과 같이 보이고 창문이 없으나 창문이 있는듯이 보이게 지은 건물로서 빛과 온습도의 조절을 다 자동적으로 할수 있게 되여있다.⇒ ⇒전람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 개관당시 세계의 120여개 나라 국가수반들과 정부들, 혁명조직들, 사회정치활동가들과 각계 인민들이 정성 담아 드린 2만 5천여점의 귀중한 선물들이 나라별로 전시되여있었다. 전람관의 학각지붕과 단청, 청기와색이 모두 잘 조화되고 갖가지 꽃무늬를 조각한 동으로 만든 육중한 출입문과 아름다운 대리석을 깐 현관홀도 훌륭하며 실내장식무리등과 대리석원형중앙계단도 잘 되여있다. 실로 20세기에 현대적인 자재들을 가지고 고대 양식의 건축물을 건설한것은 매우 의의 깊다.”] 전람관의 비화(祕話)가 남한의 북한언론매체에 보도되었습니다. 제목은 “김정은이 물려 받은 보물 가득한 ‘지하갱도’의 정체는?”. 다음은 그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북한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1994년! 김정일은 그해 8월 돌연 “묘향산에 지하갱도를 건설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김정일의 이 같은 지시에 북한은 백두산건축연구원을 중심으로한 기술 실무진과 공병국 2개 기술연대를 동원해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 근처 지하갱도 건설에 착수했습니다...1978년 8월에 개관한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김정숙(김정일 생모)이 세계 여러 나라의 국가수반이나 각계각층 유명 인사들에게서 받은 선물들을 보관·전시한 곳으로, 평안북도 향산군에 위치해 있습니다.] 남한 언론매체에 따르면 “김정일이 특별 지시한 지하갱도는 묘향산 국제친선전람관이 유사시 파괴될 것에 대비해 선물들을 대피시킬 장소였고, 실제로 국제친선전람관 인근의 지하 200m 은밀한 곳에 건설됐다”고 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북한은 내부는 물론 외부 은폐물까지 모두 최고의 자재들을 사용했고, 방수 마감에도 각별히 신경을 써서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지하갱도 안에는 특수강과 고강도 유리로 된 보관실이 꾸려졌으며, 내부로 들어가는 통로와 문은 일반 사람들이 출입할 수 없는 특수장치들로 설계·완공됐습니다. 남한 언론매체 소식통은 “지금 주민들이 흔히 돌아볼 수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은 140여 개의 전시관으로 돼 있는데, 여기에 감히 전시 못 할 정도로 값지고 비싼 선물들이나 귀중한 보석들은 100여 개 보관실이 갖춰진 지하갱도에 보관되고 일상 전시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은 1994년 식량 사정이 급격히 악화하자 당시 인민군대 역시 배급이 끊길 정도의 위기를 맞았습니다. 지하갱도 건설에 동원된 공병국 2개 연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실제 이들은 썩은 옥수수와 보리를 섞은 밥, 염장무 한 조각, 멀건 소금국을 먹으면서 지하에서 12시간씩 2교대로 건설에 나섰다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북한의 홍보지 <월간 조선>은 기사 “위닌칭송의 보물고”에서 “조선의 명산인 묘향산에 자리잡고 있는 국제친선전람관에는 조선이 해방(1945.8.15.)된 때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나라와 지역의 당 및 국가, 정부수반들과 정당, 사회단체의 인사들이 김일성 주석께 삼가 올린 16만 여 점의 선물들 중 그 일부가 전시되여 있다.”고 했습니다. 이 칼럼에서 전람관 사진과 함께 합니다. “위닌칭송의 보물고”보다 비화(祕話)를 다시 읽어봅니다. 공사장의 군인들이 “썩은 옥수수와 보리를 섞은 밥, 염장무 한 조각, 멀건 소금국을 먹으면서 지하에서 12시간씩 2교대로 건설”에 힘겨워 했다는 사실! “간고한 상황에서도 피와 땀으로 3년 만에 지하갱도 건설을 완료”했다는 사실! “1997년 완공 당시에 모두 피골이 맞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는 사실! 북한은 ‘대단한 비화’라고 할게 아니라, ‘아주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해야 할 것입니다. 7월 8일은 국제친선전람관의 주인공인 김일성이 죽은 날입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994년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김일성이 7월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손자 김정일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7월 8일 아침까지 남한에서는 증권가 등을 중심으로 ‘CNN 긴급 타전, 김정은 원산 현지에서 평양 전문 병원으로 이송 확인’ ‘뇌출혈 의식불명 열흘째 사실상 회복 불가능’ ‘프랑스 의료진 수술 후 사망’ ‘평양 봉쇄’ 등의 내용이 담긴 사설 정보지(지라시)가 확산됐습니다. 하지만 김정은은 7월 8일 0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인사 등과 함께 북한 김일성 사망 27주기 맞아 금수산태양궁전 참배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살아있습니다. 훗날 국제친선전람관은 독재자의 만행으로 장식된 부끄러운 역사의 장소가 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7월 북한달력-김일성 사망 &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7월 북한달력-김일성 사망 &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2021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북한 달력 7월! [승리의 노래](악기 연주하는 여성 음악가 그림)가 전면을 장식했습니다. 숫자가 赤色인 날은 없습니다. 그리고 [망종 6.5. / 하지 6.21.]도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달력 7월에는 3일 ‘전략군절과 12일 ‘해양의 날’이 있습니다. 달력 7월의 1일부터 31일 사이에는 [27일]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초복 7.11/ 중복 7.21], [소서 7.7/ 대서 7.22]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지구촌 어디에도 없는 달력 속 문장들만 없으면 대한민국의 달력이라고 해도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문장은 [주체83(1994) 7. 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서거하시였다. / 주체 101(2012) 7.17.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수칭호를 받으시였다. / 1894. 7. 10.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 성생님께서 탄생하시였다. / 주체21(1932) 7. 31. 우리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강반섯녀사께서 서거하시였다. / 7.27.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북한의 7월에서 가장 중요한 날은 아마도 ‘김일성 사망일(死亡日)’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최후의 만찬’도 없이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북한의 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1994년 7월 9일 정오 특별방송을 통해 “위대한 수령 김일성주석이 8일 오전 2시 사망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이신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질병과 사망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에는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심장혈판의 동맥경화증으로 치료를 받아오시였다. 겹쌓이는 정신적인 과로로 하여 1994년 7월 7일 심한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장쇼크가 합병되였다. 즉석에 모든 치료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장쇼크가 증악되여 1994년 7월 8일 2시에 사망하시였다. 1994년 7월 9일에 진행한 병리해부검사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되였다”고 적혀있습니다 “죽음은 위대하다/ 우리는 웃고 있는/ 그의 입이다/ 우리가 생명의 복판에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은 우리의 한복판에서 감히 울기를 시작한다”는 시인의 생각에는 죽음이 곱습니다. 그러나 죽음은 슬픈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우는 것입니다. 더욱이 위대한 사람들의 죽음은 모두를 슬프게 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고기 값보다도 못한 시신 앞에서도 울고, “단불에 나비 죽듯‘해도 슬픔에 잠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민을 노예로 만든 독재자들의 죽음 앞에서는 결코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권력으로 죽음을 거부해보지만 시왕(屍王)은 그들에게 십왕차사(十王差使)를 어김없이 보냅니다. 그래도 죽음을 예감한 히틀러는 조금은 인간적이었습니다. 자기의 죄를 알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한 독재자였습니다. 그런데 같은 전범(戰犯)이면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전긍긍한 김일성은 죽을 때도 비인간적이었습니다. 조상들이 물려준 땅을 초토화시킨 독재자의 말로는 분명한 悲劇!! 그가 죽자, 많은 북한주민들은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강요된 슬픔이었습니다. 강요된 통곡이었습니다. 반세기 가까이 백성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한 독재자의 죽음은 결코 슬픈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래 전에 ‘포악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맞았어야 할 인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용케도 목숨을 부지해왔습니다. 그의 죽음이 자연사(自然死)든 아니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의 죽음은 당연한 죄값이었습니다. “음악 명상을 즐겼고, ‘산삼꽃’에서 나는 산삼향기를 들이마시면서 보양하고, 각종 한약재가 들어있는 베개를 베고 자면서 장수를 꽤했다.”는 김일성의 죽음에 대한 글과 말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슬픈 만가(挽歌)를 부른 사람도 있었겠지만, 죽음의 찬가(讚歌)를 부른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시(詩)로 표현되고 논문으로 발표되었으며, 공식적인 말과 뒷공론, 유언비어까지 다양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영결식’은 이틀 연기되었습니다. 이유는 끝없는 조문행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장의위원회는 7월 15일 “조의참가자들은 날을 따라 늘어나고 있다”고 하고 “인민들의 절실한 심정과 요구를 반영하여” 영결식은 19일, 추도대회는 20일 거행된다고 발표했습니다. 김일성의 ‘영결하는 의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고, 그의 시신은 “자애로운 어버이를 잃은 크나큰 슬픔에 가슴치며 목메어 흐느끼는 수백만 평양시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의 눈물의 바래움을 받으며” 금수산의사당(현 금수산태양궁전)에 안치되었습니다. 다음날 열린 추모대회도 아들 김정일 연출 속에서 행해졌습니다. 그런데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가 발표한 추모시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령전에”를 보면 기이한 점이 발견됩니다. 사자(死者)의 이름은 단 한번 불리우고, 김정일의 이름은 무려 6번이나 나옵니다. 다음 독재자 김정일에 대한 阿父(?)치고는 너무 빠른... 북한 7월 달력의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 북한의 홍보 월간지 <조선>은 지난 7월호에서 “위대한 령도, 승리의 7.27”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조국해방전쟁승리의 날인 7월 27일을 맞을 때마다....미제가 조선전쟁에 저들과 남조선괴뢰군만이 아닌 일본과 15개 추종국가의 무력까지 동원하였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는 ‘허위사실 유포’로 시작됩니다. 有口無言! 天人共怒할 일! “천인공노”는 “누구라도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만큼 증오스럽거나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天人共怒할 人面獸心! 북한의 7월! 북한 최고사령부가 6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특별경비 근무기간으로 정할 데 대한 지시를 각 군에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소식통은 “군량미 때문에 특별경비가 사달이 됐다는 이야기가 많이 퍼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그들의 首長은 국제사회에서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지만, 군량미 부족은 알텐데...백성도 배고프고 군인도 배고프면 亡國 뿐?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7월 1일-중국 共産黨 100주년 기념일 & 6.25 遺憾
[청로 이용웅 칼럼] 21년 7월 1일-중국 共産黨 100주년 기념일 & 6.25 遺憾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중국공산당-5·4운동의 지도자로서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1917)의 승리 이후 공산주의자가 된 리다자오, 천두슈 등의 혁명가들이 창당. 1920년대의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마오쩌둥, 류사오치, 리리싼 등의 공산당원들은 도시 노동조합의 결성을 시작. 1924년 공산당은 국민당과 최초로 합작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으나, 장제스 휘하의 국민당이 대대적인 숙청. 공산당원들은 농촌지역에서 농민들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하여 1931년 중국 남부에서 인구 1,000만 명의 중화 소비에트 정부를 수립. 그러나 국민정부의 공산당 토벌작전으로 붕괴된 후 마오쩌둥과 공산당 잔류부대는 중국 서북부로 향하는 장정(1934~35)의 길에 올라 산시의 옌안에 정착. 2021년 6월 5일까지 중국 공산당 당원 총수는 9514만 8000명이며 당의 기층조직 총수는 486만 4000개. 오늘날 9500여만 명으로 늘어 14억 인구 대국의 장기 집권당이 됨.] 중국의 <人民日報>는 2021년 6월 24일 “6월 21일부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주화가 연이어 발행되었다. 총 9매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일반 기념주화 외에 금화 및 은화도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주화’는 최고 규격에 종류도 가장 많다고 했고, “이번에 발행한 금화와 은화 기념주화의 정면 도안은 모두 중화인민공화국 국장과 모란꽃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장엄하고 진중한 느낌을 준다.”고 했습니다. <人民日報>는 2021년 6월 28일 저녁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축하 문예공연 ‘위대한 여정’(偉大征程)이 베이징 국가체육장에서 성대한 막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 중국의 초대 국가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을 비롯한 13명이 상하이서 중국 공산당 창당을 결의하는 1차 전국대표대회를 연 날은 1921년 7월 23일입니다. 그러나 1938년 창당 기념일을 7월 1일로 정했습니다. 비밀결사 탓에 역사적인 날은 뒷날 정밀 조사 결과 확인됐고, 관행에 따라 창당일과 창당 기념일이 나뉜 것입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6월 18일 리커창(李克強) 총리 등과 함께 창당 100주년을 맞아 베이징에 새로 문을 연 공산당 역사전시관을 둘러봤습니다. 시 주석은 “공산당 역사는 가장 생생하고 설득력 있는 교과서”라고 강조했다. 이 전시관 개관을 기념하는 우표도 6월 20일 발행됐습니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3월 일찌감치 창당 100주년 기념식 관련 가이드 라인을 내놨습니다. 신형 무기를 대거 공개하는 열병식은 하지 않지만, 지난 100년에 대한 해석과 새로운 100년을 위한 좌표를 제시하며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중국은 공산당이 유일한 집권당입니다. 그러니까 당의 역사가 곧 국가의 역사입니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년과 신중국 건국 100년! 중국이 내건 ‘2개의 100년’이란 비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창당 100년에 이어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까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이루겠다는 구상입니다. 그 핵심은 시 주석입니다. 시 주석의 연설은 한편으로 강한 중국의 미래이자 다른 한편으론 공고한 시 주석 권력의 미래일 수 있습니다. 2021년 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경축 대회가 7월 1일 오전 8시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앙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이 중요 연설을 했습니다. 習 주석은 중요 연설을 통해 “당과 각 민족의 분투를 통해 우리는 첫 번째 100년 목표를 달성했고 중화 대지에 전면적인 샤오캉(小康·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를 실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절대빈곤 문제를 해결했으며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전면 건설이라는 제2의 100년 목표를 향해 힘차게 매진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는 중화민족, 중국 인민, 중국 공산당의 위대한 영광”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중국과 북한! 최근 중공 중앙당사문헌연구원가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에 “중국공산당 100년 대(大) 사건 기록”을 발표했습니다. 10만자 분량으로 1927년 중공 창당 때부터 2021년 6월까지 100년 역사의 주요 사건을 연도별로 기술하고 경우에 따라 평가를 덧붙인 내용입니다. 중앙당사문헌연구원은 중공의 역사 연구 기구입니다. 연구원은 6·25 참전에 대해 “항미원조 전쟁(6·25의 중국식 표현·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지원한다는 뜻)은 위대한 승리로 중국 인민이 세계 동방에 우뚝 섰다는 것을 알린 선언서이자 중화민족이 위대한 부흥으로 나아가는 중대 이정표”라고 기술했습니다. 대단한 시진핑! 그가 한국전쟁을? 시 주석은 2020년 10월, 6·25 참전 70주년 기념대회 연설에서 6·25전쟁에 대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중대 이정표”라고 했습니다. 당시 시 주석의 연설은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을 옹호하고 전쟁 최대 피해국인 한국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중국은 2019년 6월 시 주석이 방북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 것도 100년 주요 사건에 포함시켰습니다. “새로운 역사의 시작점에서 북·중 양측은 초심을 잊지 말고 손을 잡고 함께 전진하며 양당, 양국 관계를 더 아름다운 미래로 열어가자고 동의했다”고 했었습니다. 시진핑은 6월 29일, 6·25 전쟁 당시 연합군 100여명을 죽여 중국과 북한에서 영웅 대우를 받은 차이윈전(柴雲振·2018년 사망) 등에게 최고의 중국공산당 당원에게 주는 ‘7·1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이는 올해 창당 100주년을 기념해 신설한 훈장입니다. 중국 관영 CCTV는 “1951년 박달봉 유격전에서 적군 100여 명을 죽였고, 피를 뒤집어쓴 채 혼자 남을 때까지 싸웠다”고 했습니다. 박달봉 전투는 1951년 5월 경기도 포천 박달봉 일대에서 한국군·미군·캐나다군과 중국군이 싸운 전투로 시 주석이 국군과 유엔군 장병을 100여 명 이상 사망케 한 인물에게 직접 훈장을 준 것입니다. 중국은 1992년 한국과 수교했지만, 30년이 다 되도록 여전히 6·25를 ‘抗美援朝 전쟁’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진정성이 모호한 한중 관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애당초 우리가 중국의 생각을 모른 채, 혼자 열을 내며 친구 타령을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중국과 내년이면 수교 30년을 맞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잔치가 걱정스러운 이유가 태산입니다. 북한과 중국은 兄弟? 맞습니다! 대한민국 통일부는 “북한과 중국은 과거에도 주요 기념일 계기에는 상호 고위 대표단을 교류하는 등의 동향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安易한 대한민국 통일부? 중국은 과연 우리의 友邦? 아닐지 모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 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 漂海錄과 日本人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 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 · 漂海錄과 日本人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이번 학기에 필자는 사이버강좌 <동북아 역사와 문화>(경남대),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의 이해>(부경대·인제대·안양대)를 가르쳤습니다. 이 강좌에서 일본 몫은 3주 9시간입니다. 그런데 동북아시아(한·중·일 3개국을 가리키는 말. 넓은 의미로는 몽골, 러시아의 극동 지역 및 시베리아도 포함)의 ‘역사·정세·문화’을 볼 때 비중이 지극히 약합니다. 그런데 2017년 GDP4조 8700억 달러로 세계 3위의 경제국이 되면서 일본은 천방지축(天方地軸)? 일본(日本)! 동아시아 대륙 동쪽에 있는 국가.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의 4개 섬과 수많은 작은 섬으로 구성! 수도는 도쿄(東京)! 단일 아시아계 민족이 압도적이고 주요 종교는 신도·불교·그리스도교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하와이 및 필리핀의 미군기지를 공격했고, 유럽 식민지를 점령했으나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되었고 연합군에게 항복! 전후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여 폐허로 변한 산업기반을 재건하여 놀랄 만한 경제 회복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활발한 지진 활동대에 놓여 화산 폭발 및 지진을 겪습니다. 日本! 일본은 섬나라입니다. 혹자(或者)는 일본인의 섬나라 근성은 일본인을 무기력하게 하고, 독선적이게 하며, 무지하게 하며, 외국을 미워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또 혹자는 일본의 여러 환경 탓으로 일본인의 사상이나 행동은 왜소하고 경박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혹자는 무기력하고, 독선적이고, 무지하고, 외국을 미워하면서도 자기도취에 쉽게 빠져들어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고도 아직 반성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일본인’하면 생각나는 책(冊) 한 권이 있습니다.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에는 비록 살생만하고 표독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도록 했고, 뱀은 간악하나 약제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저놈의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라는 글이 담긴 <표해록(漂海錄)> 입니다. 1771년(영조 47)에 장한철(張漢喆)이 지은 표해기행록(漂海紀行錄)! 이 작품의 이름은 ‘금남표해록(錦南漂海錄)’이라고도 하는데, 일본에서 번역된 것은 ‘당토행정기(唐土行程記)’·‘통속표해록(通俗漂海錄)’ 등으로도 일컬어집니다. 국내본은 목판 인본(印本) 3권 2책의 한문본과 3권 3책의 국역 필사본 <표록>이 있습니다. 현재 학계에 보고된 표해기(漂海記) 가운데에서는 가장 문학성이 높은 값진 해양 문학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국립제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필자의 일본인들에겐 차마 “표해록”의 ‘왜인’ 얘기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변함없이 늘 다정하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친절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원래 일본인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려왔습니다. 칼 같이 질서를 지키는 성향이 있습니다. 일본의 무사들은 자신의 과오를 책임질 때 할복(割腹)으로 대신했습니다. 사무라이 정신! 부정적인 사람도 많습니다. 필자가 알고 있는 일본인들! 그 중에서 전통누비연구회 <침향(針香)>(회장 정의정)에 참여하고 있는 일본인들은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일본인들입니다. ‘코로나’ 以前까지 정 회장은 <침향> 공방에서 일본인 제자들과 함께 작업하며 한·일 문화 교류도 활발히 했었습니다. 그들은 일본 니카타, 교토 등지의 문화단체와 예술인들과의 상호 방문을 통해 작품의 예술성을 높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시즈오카의 나오미 씨는 수시로 한국을 방문해 누비 공부를 계속해 왔는데 코로나 때문에 잠시 중단! 코로나 직전 2019년 12월의 전시회에 참가했던 일본 작가들, 吉田 正(Yoshida Tadashi), 中谷 省三(Nakaya Shoso), 福島 美智子 (Fukushima Michiko), 川村 明子(Kawamura Akiko), 藤本 容子(Fujimoto Yoko), 上田 京子(UEDA KYOKO), 福島 佳津美(FUKUSHIMA KAZUMI), 伊達 菜採(DATE NAtSUMI), 그리고 望月 直美 (Mochizuki Naomi) 等은 한결같은 善人들입니다. 상상(想像)! <표해록>을 영화로 만든다면 주인공은? ‘아베와 스가’?..아베 신조(安倍晋三)! 제90·96·97·98대 일본의 내각총리대신! 제21·25대·26대 자유민주당 총재! 대학 졸업 후에는 고베 제강소의 직원으로 일했던 보통사람이었고, 정계에 입문한 이후 비교적 승승장구(乘勝長驅)한 정치가였으며, 2018년 9월 20일에 있었던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3선 연임에 성공, 총리 직을 맡으며 일본 역사상 최장수 총리가 되었는데...“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이 아베? 그의 하수인인 현(現) 총리 스가 요시히데(菅 義偉)도 그런 왜인?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요! 지금 스가는 일본인 다수의 바람도 외면하고 도쿄올림픽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나루히토(德仁) 일왕이 궁내청 장관의 입을 통해 “도쿄올림픽 개최로 코로나19가 확산할까 우려된다”는 입장을 밝혔는데도 스가는 먼 산만 보고 있습니다. 문제는 올림픽 ‘취소·연기’라는 백성들의 목소리도 외면한 그들의 목표! ‘아베→스가’의 ‘일본 장악’입니다. 물론 그들이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이 아닌지는 몰라도 ‘현대판 독재자’가 아닐까요? 일본! 필자가 일본 교토의 한 재래시장에서 본 한국 상품! 거기에선 한국 아이돌과 관련된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일본 아이돌들과 관련된 상품들을 찾기가 힘들 것입니다. 일본은 그런 나라입니다. 그저 우리의 선린(善隣)이며, 우방(友邦)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우쭐대는 정치 모리배들 때문에 일본인들까지 욕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일본을 좀 더 연구해서 일본에 대한 강의를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 “우리는 일본 군인이 항복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한다면 그들을 미친 놈들이라고 하지만 꼭 같은 일을 미국 군인들이 하면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R.M.허친스 시카고대학교 전 총장 · 1899~1977. / 시카고대학교 평의회에서 한 연설) //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과 중국의 ‘비물질문화유산’과 중국 ‘김치’ 遺憾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과 중국의 ‘비물질문화유산’과 중국 ‘김치’ 遺憾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대한민국의 한 사전은 “비물질 문화유산(非物質文化遺産])”을 “연극, 무용, 음악, 공예 기술 따위의 물질이 아닌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例文은 [조선족 ‘상모춤’과 ‘민간 이야기’가 최근 중국 국가급 비물질 문화유산에 등재됐다./연합뉴스 2005년 9월], [국내에서는 비물질 문화유산으로 강진 청자와 전주 한지가 초청됐다. 동아일보 2008년 12월]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비물질 문화유산’이라는 말을 잘 안씁니다. 그런데 북한은 다릅니다. <로동신문>은 북한 민족유산보호국에서 24절기 풍습과 회령 백살구 등 6가지를 국가 및 지방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새로 등록했다고 2020년 1월 5일 보도했습니다. 민족유산보호국은 '사회적 관습과 예식 및 노동생활 풍습' 항목에 해당하는 24절기 풍습과 밧줄당기기, 줄넘기, '숨박곡질'(숨바꼭질) 등 4가지를 국가 비물질문화유산에, '전통음식과 식생활풍습'에 속하는 대동강 숭어국과 '사회적 관습과 예식 및 노동생활 풍습'에 해당하는 회령행미(杏美) 등 2가지 지방 비물질문화유산을 더해 총 6가지를 국가 및 지방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새로 등록하였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2021년 2월 2일 <로동신문>은 모란봉전설과 묘향산전설, 결혼식 풍습을 국가 비물질문화유산으로, 황해남도 특산음식인 해주교반을 지방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모란봉전설과 묘향선전설은 “명승에 깃든 인민들의 고상한 애국정신과 아름다운 생활감정을 종합”한 것으로 “을밀장수”, “청류정의 달밤”, “순오동의 유래”, “선유봉과 해모수” 등 이야기들로 엮어져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결혼식 풍습'은 결혼식 절차와 옷차림, 상차림 등 민족교유의 정서와 도덕, 미풍양속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또한 황해남도 지방의 갖가지 재료들을 식생활에 효과적으로 이용한 특산음식인 '해주교반'은 지방 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해주교반에는 수양산에서 자란 고사리와 도라지, 참나물을 비롯한 산나물과 해삼, 황각과 함께 닭고기 국물에 뿌린 옹진 김 가루 등 19가지 식재료가 들어가는데, 특히 입동 전후에 띄운 메주에 찹쌀과 길금가루, 고추가루를 같이 넣어 담근 메주장으로 담근 깨고추장이 별미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편, 북한은 우리의 무형문화재에 속하는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해 “한 민족이 역사발전 과정에 이룩하여 후세에 남긴 정신문화적 재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비물질문화유산에는 언어를 포함한 구전전통 및 표현, 전통예술, 사회적 관습과 예식 및 명절행사, 자연과 우주와 관련한 지식과 관습, 전통수공예 등이 속하며, 보급 정도에 따라 국가비물질문화유산과 지방비물질문화유산으로 나눕니다. 그러니까 그냥 우리의 ‘무형문화재’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무형문화재에 속하는 '비물질문화유산'에 대해 “한 민족이 역사발전 과정에 이룩하여 후세에 남긴 정신문화적 재부”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도 ‘비물질문화유산’이라고 합니다. 중국 <人民日報>(2021.6.16.)에 따르면 최근 발표된 중국 제5차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후이차이[徽菜, 안후이(安徽) 요리], 촨차이[川菜, 쓰촨(四川) 요리], 류저우(柳州) 뤄쓰펀(螺螄粉: 우렁이 쌀국수) 등 다양한 음식의 요리법이 등장했습니다. 갈수록 많은 지역 먹거리들이 발굴되어 알려지고 보호되고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신문에 실린 기사(발췌) 입니다. [헝산(橫山) 둔양(燉羊: 양찜): 헝산 둔양, 쫄깃한 육질을 자랑하는 손님 대접 요리. 산시(陜西)성 위린(榆林)시 헝산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찜은 현지 대표적인 손님 대접 요리입니다. 이 요리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산초잎, 부추, 백화초[百花草, 학명: Polycarpaea corymbosa (Linnaeus) Lamarck]와 전혀 오염되지 않는 천연 샘물 등이 양고기의 맛을 돋우는 최고의 기본 양념입니다. 따라서 헝산 양고기의 육질은 쫄깃하기로 유명합니다. 천여 년 간, 현지인들은 그들만의 요리법을 종합하고자 노력했는데, 양 고르기, 양 잡기, 고기 삶기 등 과정을 포함하며, 양고기의 품질을 우선으로 하고 양념 배합을 세심하게 조절할 뿐 아니라 고기의 크기, 삶을 때 고기와 물의 비율까지도 세심하게 계산했습니다. 따라서 해당 요리법은 산시성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화양츠바(華陽糍粑: 화양 지역의 감자떡): 화양 츠바, 감자로 만든 짜고 매운 맛의 츠바. 산시성 화인(華陰)시 친링(秦嶺)산맥 중간지대는 산속 온도차가 커서 농작물의 생장 기간이 깁니다. 따라서 현지인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감자가 전분량이 높고 식감도 좋아 츠바 원료에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양 츠바하면 장수이차이(漿水菜)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수이차이는 면을 삶은 국물을 발효시켜 시큼해지면 미나리 등 산나물을 넣은 후 밀봉합니다. 다른 곳의 단 츠바와 달리, 특유의 장수이차이를 뿌리고, 고추기름을 넣는 화양 츠바는 새큼하고 매운맛으로 유명합니다.] [조선족(朝鮮族) 김치: ‘맵고, 짜고, 달고, 새콤’을 합친 요리 / 중국 조선족 전통 음식 중에 김치는 가장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입니다. 조리법이 중국 국가급 비물질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족 김치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김치, 짠지, 장아찌도 포함하며 가장 흔한 것이 배추를 절인 요리입니다. 김치 절이기는 단순하게 ‘김치+소금’이 아니라 재료 선택, 소금 처리, 양념 조리 면에서 매우 까다롭습니다. 고대 때 김치는 소금이나 식초로 절였다면 지금은 고추, 마늘, 생강 등 갖은 양념을 넣기 때문에, 짠 맛 혹은 새콤한 맛이었던 김치가 맵고, 짜고, 달고, 새콤한 여러 맛을 내게 되었습니다.] 中國!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명색이 대국(大國)인데...56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이 먹는 대한민국의 김치를 ‘중국 조선족 김치’라고 하면서, 중국의 ‘비물질문화유산’이라고 자랑하다니! 참으로...누군가 “국가는 최고의 도덕적 존재‘라고 했습니다. 뜬금없이 신해혁명을 이끈 혁명가,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의 창립자인 손문(孫文/1866~1925)의 <삼민주의(三民主義)>가 생각나는 것은...習近平은 아는지.../ ”개인이 너무 지나치게 자유를 얻어도 안되지만, 국가는완전한 자유를 얻지 않으면 안된다. 국가가 자유로 행동하게끔 되면 중국은 강국이 되는 것이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臺灣(타이완)
[청로 이용웅 칼럼] 이용웅교수의 [동북아 역사와 문화]와 臺灣(타이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매운 대만 언니’. 첫 여성 지도자인 차이잉원(蔡英文) 臺灣 總統의 별명이다. 그간 중국의 압박에 맞선 강한 이미지로 승승장구했던 차이잉원 총통이 최근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5월 들어 대만 내 코로나가 급증한 데다 백신 확보도 늦어 중도층이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참패했던 야당은 이를 계기로 차이 총통에 대한 총공세에 나섰고, 중국은 백신을 앞세워 차이 총통을 압박하는 모양새다. 대만민의기금회가 지난 17~2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이 총통의 지지율은 45%로 지난해 1월 재선 성공 이후 처음으로 50% 아래로 떨어졌다. 특히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작년 5월(71%)과 비교하면 1년 사이 25%포인트 넘게 하락했다.] 이상은 최근의 한국 일간지 기사 중 일부입니다. 지금 ‘야생 표범’으로 불리며 인기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차이 총통이 집권 6년 만에 ‘백신 낙제생’으로 전락하며 최대 정치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타이완, 臺灣 總統! 대만의 첫 총통 장개석(蔣介石)은 대한민국임시(臨時)정부가 일본제국을 피해 중국 대륙을 전전하고 있을 때, 자금을 마련하여 주었을 뿐 아니라,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미국 루즈벨트 대통령, 영국 쳐칠수상, 장개석총통 참석)에서 한반도, ‘Korea’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며, 이로 말미암아 3대국은 일제 치하하의 한국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한국을 자주 독립시킬 것을 결의,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이 국제적으로 보장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아들 장경국! 1975년 4월 5일 밤 11시 50분에 장개석이 사망된 후 그의 맏아들 장경국이 1975년 4월 28일에 대만 수장이 되었습니다. 필자가 그를 만난 것은 1966년 8월이었습니다. 필자는 대한민국 정부 덕분에 베트남을 방문했고, 이어서 대만을 방문했습니다. 그때 장경국이 학생 대표들을 초대해 인사를 나눴는데, 그가 우리에게 준 선물은 ‘바나나’였습니다. 지금도 바나나를 보면 그가 생각납니다. 필자와 대만과의 인연은 1966년 이후 필자가 경남대학교에 재직하면서 이어졌습니다. 필자는 과거 경남대학교 문과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홍보부장·국제학술교류위원회 총간사를 겸했었는데, 그때 경남대학교의 자매대학인 대만의 담강(淡江)대학교와 公務로 교류를 했습니다. 교환교수들과 함께 했고, 유학생 파견 등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필자의 대학강의 [동북아의 역사와 문화]와 [동북아 정세(情勢)와 문화의 이해]에서 만났습니다. 이 강좌는 15주 총 45시간인데, ‘대만’의 강의 시간은 ‘1시간’ 뿐입니다. 개편 예정입니다. 이후 필자는 대만과의 인연을 이어갔지만, 늘 생각나는 곳은 대만 국립 고궁 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입니다. 이 박물원에는 중국 국민당이 국공 내전에서 패배하여 타이완으로 이동할 때에 대륙에서 가져온 문화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박물원이 소장품의 수는 69만 7490개나 되어 세계 4대 박물관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위낙 유물이 많기 때문에 박물원에서는 3개월에 1번씩 전시하는 소장품을 전부 교환하고 있어서, 모든 소장품을 관람하려면 8년정도 걸린다고 합니다. 중국의 역사는 중국 황실(皇室) 10대 보물(寶物)과 국새(國璽)가 있는 북경 고궁박물관 자금성(北京 古宮博物館 紫禁城)보다 대만 박물관에 더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 강의 개편할 때, 대만 국립 고궁 박물원을 재조명할 예정입니다. 타이완(Taiwan/ 臺灣) / 인구-23,773,876명 (2020년 추계). / 수도-타이베이. / 면적-36,193㎢. / 기후-아열대성기후, 열대성기후. / 민족 구성-한족(98%), 오스트로네시아어족(2%). / 언어-중국어. / 정부/의회형태-공화제 · 다당제&단원제. / 종교-불교(35%), 도교(33%), 기타. / 화폐-신 타이완 달러 (NT$). / 국화-매화. // 타이완은 중국 본토의 남동 해안에서 161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으로, 수도는 타이베이 입니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며, 국민의 98%는 한족으로 문맹률이 낮고 전체적으로 중국 문화가 우세합니다. 토지의 약 2/3이 산지와 구릉지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모두 타이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중화민국(Republic fo China) 또는 타이완 국민정부가 통치하고 있는데, 그들은 중국 본토 전체에 대한 관할권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이 섬은 타이완 지역 혹은 타이완 지구가 됩니다. 반면에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역시 타이완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두 정부 모두 타이완이 중국의 1개 성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타이완 섬은 태평양상의 북회귀선에 걸쳐 있습니다. 1949년 이래 타이베이(臺北)는 국민정부에 의해 임시수도로 지정되었습니다. 성도는 중싱신춘(中興新村)입니다. 남북길이 약 395km, 동서길이 약 145km에 이르며, 북쪽은 동중국해, 동쪽은 태평양, 남쪽은 바시 해협, 서쪽은 타이완(포르모사) 해협과 맞닿아 있습니다. 타이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종료된 1945년에 연합국을 통해서 중화민국에 반환되었습니다. 이 때는 동중국해의 작은 섬에 불과했으나, 국공 내전에서 중국 공산당에게 밀린 중국 국민당이 1949년 난징시의 국민정부를 타이베이시로 전격 이전하면서 타이완은 중화민국의 중심지로 변모하여 새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1945년의 반환 결정은 곧 자국에게 소급된다며 23번째 성(省)으로 규정하고 타이완에 대한 일체의 영유권을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최근 <롄허보(聯合報)> 등 대만 매체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는 전날 중국 군용기 28대가 대만 ADIZ으로 들어와 비행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대만 국방부가 중국 군용기의 ADIZ 접근 상황을 공개하기 시작한 지난해 9월 이후로 가장 많은 숫자입니다. 중국은 최신 전투기 20대와 폭격기 4대, 조기경보기 2대에다 항공기의 전자장비를 교란하고 통신 체계를 마비시킬 수 있는 전자전기 1대, 잠수함을 경계하거나 공격하는 대잠기 1대 등을 동원했습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은 과거의 대한민국과 대만 관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명 두 나라는 友邦이었고, 善隣이었습니다. 1992년 8월 한국이 중국과 정식으로 수교함으로써 대만과 한국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지만, 분명한 것은 가깝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의 중국’을 내세우는 중국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창당일:1921년 7월 21일)을 앞두고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정부에 대한 본격적인 압박에 나선 것 같습니다. 대만에 대한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