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정성남 기자]검찰이 1700억 원대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의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신 회장이 소환조사를 받은 후 6일이 지난 시간 끝에 내린 결정으로 경제적 파장보다 법 집행의 위상을 세우는 방향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일 신동빈 회장이 검찰의 소환조사에 응한 이후 6일 동안 검찰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신 회장의 그룹 비리 개입 고리가 불분명하다는 점과 구속 시 롯데그룹 경영 전반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점이 그동안 쟁점으로 떠올랐다.
검찰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적용한 혐의는 1,700억 원대 횡령과 배임 혐의다. 롯데 계열사에 등기이사로 이름만 올려놓은 대주주 일가에게 5백억 원대 급여를 주고, 롯데시네마 운영과 관련해 800억 원에 육박하는 일감을 몰아준 혐의가 적용됐다.
이런 방식으로 롯데 대주주 일가가 빼돌린 회사 이익은 1,300억 원대로 사상 최대 규모라고 검찰은 밝혔다. 지난 오리온이나 CJ, 동국제강 등 다른 재벌 수사때와 비교해 빼돌린 돈의 규모가 크다는 것으로 롯데피에스넷 유상증자 과정에서 계열사를 동원해 400억 원대의 손해를 끼친 혐의도 적용됐다.
한편 신 회장 소환 이후 영장청구 결정이 나오기 까지 엿새가 걸릴 정도로 검찰 내부 논의는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의 이번 소환에 이은 구속에 대한 것은 경제에 미칠 영향과 롯데 경영권 분쟁 등 수사 외적 요인들도 고심했지만, 다른 재벌 수사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영장청구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역할 없이 급여를 받아왔다는 부분도 경영의 중요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그룹 총수에게 구속 사유로는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다. 때문에 경제적 파장 등까지 고려하면 검찰이 불구속 기소로 가닥을 잡는 것 아니냐는 예상까지 나왔었다.
그럼에도 이번 구속영장 청구가 결정된 것은 검찰이 3개월 넘게 대대적으로 벌여온 수사의 종지부를 찍는 만큼, 총수인 신동빈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접적인 혐의보다 그룹의 문제에 대한 최종 책임자라는 점이 유효하다는 시각으로 풀이된다.
1700억 원에 달하는 비리 수사를 벌여 놓고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다면 "재벌 봐주기, 솜방망이 처벌 등의 질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밖에 없다"는 평이다.
롯데그룹은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 대하여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런 안타까운 심정은 실제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경우 롯데그룹의 경영권이 일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그동안 지속적으로 불거졌다.
롯데그룹은 창업주인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해 국내 투자로 세운 역사적특성상 지배구조에 일본 롯데까지 얽혀있다. 한국 롯데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호텔롯데 지분의 90% 이상이 일본 롯데 계열사 소유며 일본 롯데의 정점에는 롯데홀딩스가 있다.
이런 지배구조에서 그룹 총수인 신동빈 회장이 구속될 경우 양국에서 실질적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갈 수 있다. 전원 일본인으로 구성된 일본 롯데 임원진이 일본 뿐 아니라 한국 롯데의 경영에까지 입김을 넣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롯데그룹은 우리나라에만 약 12만 명, 일본 등 전 세계에 총 18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이 있고 국내 재계 서열로는 다섯 번째에 꼽힌다. 한 번에 무너질 경우 미칠 경제적 파장이 우려될 수밖에 없는 규모다.
지난 수년 간 롯데그룹은 약 7조원 규모의 투자를 해왔지만 지난 6월 수사 개시 이후 사실상 대규모 투자가 중단된 상태다. 이 같은 경영 마비는 최근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유통업 위주의 롯데그룹에게 치명적이다.
그동안 신동빈 회장은 신격호 총괄회장이 식품 사업에 주로 치중해온 것과 달리 금융권의 신용을 얻기 위한 투명 경영, 해외시장 진출 등을 통한 성장전략 등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는 부친 신격호 총괄회장의 반대에도 롯데쇼핑을 상장하고 호텔롯데의 기업 공개도 추진했다.
또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 차원에서 호텔롯데의 계열사 주식 매입을 통해 지난해 초 기준 416건에 달했던 순환출자 고리를 올해 7월 말 67건까지 줄이기도 했다.
즉 검찰 조사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낡은 관행과 조직문화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던 롯데가 신동빈 체제에서 변화될 가능성도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적어도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의 경영권 분쟁과 이번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썩은 부위를 도려낼 기회는 마련됐다.
다만 신동빈 회장이 구속될 경우, 드러난 환부를 도려내고 변모하기 전에 롯데그룹이 손발마저 움직일 수 없는 ‘뇌사’ 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는 지울 수 없다
한편 모레 열리는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서 신 회장의 구속 여부가 가려지게 되는데, 검찰과 롯데 측의 치열한 법리 다툼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