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집회현장, "촛불과 태극기"...각각의 다른 목소리
[선데이뉴스=김명철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 이튿날인 11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태극기집회가 열렸고, 500m 떨어진 광화문광장에서는 오후 5시부터 마지막 축하 집회가 개최됐다.
<11일 오후 태극기 집회와 촛불집회가 광화문을 사이에두고 집회를 열고 있다>
이날 태극기 집회는 탄핵 불복을 외쳤지만 전날과 같은 과격행동은 자제했다. 촛불집회는 전날 태극기집회 도중 부상을 입고 사망한 3명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대통령 탄핵 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운동본부’(탄기국)이 주도한 태극기집회의 연단에서는 헌재 불복 등 거친 발언이 쏟아졌지만 분위기는 전날보다 다소 차분해졌다. 전날 집회에서 부상을 입었던 3명이 사망하면서 경찰과 충돌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연단에 선 정광용 탄기국 대변인은 ‘우리는 패배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어제 헌재의 탄핵 판결은 헌재발 역모였고 반란이었다”며 “최소한의 구성 요건인 정족수마저 외면하고, 말도 안 되는 판결문으로 국민을 우롱하면서 정의와 진실을 외면했다”고 주장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4시 20분쯤부터 을지로 방향으로 행진을 했지만 역시 큰 충돌은 없었다. 이들은 1시간 40분의 행진을 마치고 오후 6시에 대한문 앞에 돌아와 2부 집회를 이어가면서 오후 5시부터 시작한 촛불집회에 대응하는 집회를 진행했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친박 단체들이 헌법재판소 결정에 불복 입장을 천명했다.
친박단체들로 구성된 '국민저항본부'는 대한문 앞에서 '제1차 탄핵무효 국민저항 총궐기 국민대회'를 열어 이같이 밝혔다.
국민저항본부는 성명에서 어제 박 대통령 파면을 결정한 헌재를 두고 "국가반란적 판결에 승복할 수 없다"며 "헌법상 주권자인 국민의 이름으로 헌재 해산을 요구하고, 재판관 9명을 새로 지명해 다시 심판하라"고 요구했다.
이 단체는 언론, 검찰, 특별검사, 국회를 '새로운 신흥 부패권력'으로 규정하고, '정의와 진실, 헌법과 법치 수호, 민주주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 건설'을 목표로 '국민 혁명'을 벌이고자 신당 창당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선고 직후 헌재 방면으로 진출하려다 경찰과 충돌 과정에서 다수가 다쳐 지금까지 3명이 숨진 일에 대해 "국민저항권에서 정당한 폭력은 용인돼야 한다"면서도 "스스로 자중자애해 무저항 비폭력 투쟁으로 회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제의 희생은 국민의 정당한 헌재 방문을 막은 경찰 측에 1차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앞으로도 국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를 방해하는 누구에게나 처절히 저항해 피의 대가를 강력히 요구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민저항본부는 자유한국당 김진태, 조원진 의원 등과 함께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어제 시위 도중 발생한 사망사건 진상 규명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대한민국 보수를 아우르는 연합체를 구성하겠다"고도 덧붙였다.
반면, 지난 5개월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쳐왔던 시민들이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정치·사회·경제·문화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촛불집회를 주최해 온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과 시민 2천200여명은 오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개혁 요구를 담은 '2017 촛불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촛불권리선언은 "촛불시민은 어떤 울음과 아픔도 함께 끌어안으며 공감의 힘으로 희망을 만들어냈다"면서 "광장을 지켜왔던 뜻으로 삶의 현장과 일터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촛불을 직접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 주권자 행동, 차별과 불평등에 대한 정당한 항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선언, 평화로운 공존의 권리 등으로 규정했다.
권리선언은 10대 분야에서 실현해야 할 100대 과제도 선정해, 국정원·검찰 등 개혁과 더불어 18세 선거권 보장, 재벌총수 등 범죄수익환수 특별법 제정 등을 포함했다.
퇴진행동은 집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전날 탄핵 결과에 대항하다가 부상을 당해 세상을 떠난 3명의 탄핵반대측 집회참가자에 대한 조의를 표했다. 연단에 선 퇴진행동 관계자는 “탄핵 반대 집회참가자 중 세 분이 사망한 데 조의를 표하고 진심으로 유가족에게 위로 말씀 올린다”며 “평범한 시민이 불행해지는 일이 발생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곧이어 “드디어 촛불이 승리했다, 우리 국민 모두의 승리다”라고 말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글귀를 적은 풍선이 떴고 시민들은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 들어선 화환들은 ‘촛불이 어둠을 이겼다’, ‘축 탄핵’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시민들은 드디어 평온한 주말을 맞게 됐다며 기뻐했다. 두 아이와 함께 3번째 촛불집회 나왔다는 허모(48)씨는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 함께 보여주고 싶었고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확인시켜 주고 싶어 나왔다”며 “나라에 법치주의, 민주주의는 살아있었고, 광장에서 평화롭게 집회를 한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박모(40)씨는 “주말을 되찾은 것에 대해 너무나 기쁘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 되지 않도록 국민들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로써 촛불집회는 20회차까지 1600만여명이 참석했다고 퇴진행동 측은 주장했다. 앞으로 정기집회가 아닌 중요 사안이 있을 때 집회를 연다.
경찰은 양 집회를 위해 이날 207개 중대 1만 6500여명의 경력을 대기시켰다. 전날 인명피해를 감안해 서울광장 쪽 차벽에는 경찰 버스에 시위대가 올라타지 못하도록 펜스를 설치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