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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장군
군대 계급에는 5성장군 즉 원수가 있다. 우리나라에선 한 명도 배출된 적이 없지만 군인사법에는 엄연히 최고 계급인 5성장군이 존재한다. 이 법에는 “원수는 국가에 대한 공적이 현저한 대장 중에서 임명한다”고 규정돼 있다. 국방부 장관의 추천에 의해 국무회의의 의결 및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결코 간단치 않은 자리다. 원수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다. 2차대전 말 원수로 승진해 일본을 항복시키고 6.25 전쟁이 터지자 유엔군 최고 사령관으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공을 세웠다. 미국 역사상 원수는 여덟명으로 맥아더 외에 조지 마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오마 브래들리, 체스터 니미츠(해군), 헨리 아널드(공군)등이다. 모두 대전 중이나 직후에 나왔다. 아이젠하워는 대전에서 일군 전공을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다. 1942년 영국의 버나드 몽고메리 원수는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독일의 ‘사막의 여우’ 에르빈 룸벨 원수의 기갑군단을 격파함으로써 2차대전의 승리를 연합군 쪽으로 돌렸다. 국방부가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씨를 ‘명예원수’로 추대하겠다고 해 때아닌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내년 한국전쟁 60주년을 기념해 참전자들의 자긍심을 높이고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951년 4월 25일 밤 경기도 파주군 적성면 설마리 235고지 영국군 29여단 글로스터셔부대가 사흘 전 시작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일곱 차례나 격퇴하고 나서 대대장 카네 중령은 말했다. “각자 알아서 후퇴하라. 나는 부상자들과 남겠다.” 중공군 4만여명과 맞서 싸운 이 전투에서 영국군 50명이 전사하고 526명이 포로로 붙잡혔으며 56명만이 탈출했다. 설마리 격전을 비롯한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은 1개 여단 4000명 병력으로 중공군 4만명에 맞서 나흘을 용맹하게 버티면서 서울로 진격하던 중공군의 발목을 잡았다. 영국군 전사자 1100명 대부분이 임진강 전투에서 숨졌다. 생존한 참전용사 50여명은 지금도 런던에 있는 선술집 ‘임진 퍼브(pub)'에서 모이고, 일부는 해마다 4월이면 파주에 있는 설마리 전적기념비를 찾는다. 6.25 참전국들은 피흘려 싸운 전쟁을 잊지 않는다. 캐나다는 작년에 가평 전투를 3부작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었고, 필리핀도 재작년에 다큐를 방영했다. 미국은 중공군 인해전술에 근접전투와 백병전으로 맞섰던 양평 지평리 전투를 지금도 육군 전투교재로 쓴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의 외곽순환도로 이름은 ‘한국전 기념 고속도로'이고, 호주 사관학교 건물 이름은 '가평'이다. 캐나다 위니팩의 부대는 '캠프 가평'이다. 한국전쟁에서 16개국 유엔군 4만여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이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은 부산 유엔묘지와 경기도 지역 전적비 쯤이다. 유엔묘지 1만1000명의 유해 대부분은 본국으로 옮겨갔고, 영국군 885명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 전사자들이 남아 있다. 숨진 곳에 묻는 영국 풍속에 따른 것이다. 영국, 뉴질랜드, 호주의 참전 부대들은 지금도 가평, 포천 등 전적비가 있는 지역 학교들에 장학금을 대준다. 더 타임스 기자 등으로 한국에서 활동한 영국 저널리스트 앤드루 새먼이 ‘마지막 총알(To the lastround)??이라는 책을 영국에서 펴냈다. 임진강 전투에 참전한 영국군 50여명을 2년동안 만나 쓴 한국전쟁 논픽션이다. 그는 한국전쟁이 2차대전과 베트남전 틈바구니에서 잊혀져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나보다 한국인이나 한국 정부가 먼저 참전 군인들 이야기를 발굴해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말에 낯이 뜨겁다. 우리가 한국전쟁을 세계 속에 잊혀진 전쟁으로 방치하고 있었다는
쌀밥 먹는 죄의식 ‘사회주의’
쌀밥 먹는 죄의식 ‘사회주의’
우리 수령님께서 그토록 소원하시던 이밥(쌀밥)에 고깃국 먹는 세상이 장군님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 지난 1월 2일 북한 양강 혜산서 노동당 간부 강연회에서 당 선전비서가 한 말이다. 이밥에 고깃국은 1950년대 천리마운동이 한창일 때 김일성이 ‘살기 좋은 사회주의 세상’의 상징으로 내걸었던 말이다. 그 낡은 구호를 50년 지난 지금도 당 간부가 버젓이 들먹이는 게 북한 실정이다. 국가인권위 조사에서 “굶어 죽는 것을 직접 봤다”는 탈북자가 58%나 된다. 2007년 한반도평화연구원 조사를 보면 7년 이상 한국에 사는 탈북자의 월평균 소득은 2001년 50만원에서 2004년 95만원, 2007년 140만원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그래도 2007년 한국인 월평균 근로소득 211만원의 66% 수준이다. 중간층 소득의 절반도 못 버는 비율, 빈곤율도 27.4%로 한국인 평균치 18.4%보다 높다. 그럼에도 탈북자들이 느끼는 삶의 질은 나쁘지 않다. 2007년 조사에서 신체, 정신, 사회, 환경 영역으로 나눠 스스로 삶의 점수를 매기게 했더니 5점 만점에 3.43점이 나왔다. 2000년 한국사람들 만족도 3.27점을 웃돈다. 2003년 서울에 온 한 탈북자는 수기에 “먹는 문제로 고민하는 일은 없는 나라 중국이 낙원인 줄 알았더니 한국은 천당이었다”고 썼다. 그는 중국에 접한 혜산에 살아 웬만큼 바깥 물정을 알텐데도 한국의 의식주 수준을 경이로워 했다. 탈북자들이 북한의 가족 생각이 가장 진하게 나는 때가 음식 먹을 때라고 한다. 1994년 국군 포로 조창호 소위가 북한을 탈출해 서울에 온 지 얼마 안 돼 식당에 갔다. 그는 옥수수 버터구이가 나오자 당장 “치우라”고 했다. 두고 온 아들에 대한 죄의식 때문이다. 형제는 아버지가 1977년 진폐증으로 광산일을 더 못하자 뒷산에 몰래 옥수수 화전을 일궈 부양했다. 그는 하루 세끼 십몇년을 꼬박 옥수수로 연맹했다. 워싱턴포스트가 탈북자들의 뒤숭숭한 심정을 1면 기사로 다루면서 “탈북자들 소원은 헤어진 가족과 뜨거운 쌀밥을 먹는 것”이라고 했다. 탈북 청소년들에게 생일잔치를 해주면 예외 없이 북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얘기도 전했다. 탈북자들은 특히 맛있는 것을 먹을 때 죄의식에 시달린다고 한다. 북의 식량난을 1995년대 ‘고난의 행군’ 당시 가장 심각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약 300만명에 이르렀다니 그 참상을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핵개발로 인한 국제적 고립과 자연재해도 원인이었지만 근본 원인은 정치, 경제, 사회 체제의 실패에 있다. 주민들이 남쪽보다 게으르거나 머리가 나쁜 탓이 아니다. 북의 식량난은 유엔과 미국, 한국의 원조로 다소 개선되는 듯하다 2007년 이후 다시 악화됐다. 널리 알려졌듯이 북한에선 하루 세끼 밥 먹는 주민이 많지 않다. 작년 만 해도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먹일 식량 100만톤이 부족하다며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었다. 군대에서 간부들이 식량을 빼돌리는 바람에 ‘강영실 동무’(강한 영양실조에 걸린 동무)라는 신조어가 퍼질 만큼 영양실조가 만연 해 있다. 남측의 북한주민 걱정에 대해 조평통은 “동족의 존엄과 체제를 악랄하게 모독하고 전면 부정하는 마당에 무슨 북.남 화합이 있느냐”고 했지만 공허한 삿대질이다. 어떤 체제는 제 백성 굶기는 정치야 말로 참을 수 없는 국민 모독이고 범죄 행위다. 체제보다 중요한 건 세끼 밥 먹이고 사람 목숨이다. 인민 먹여 살릴 궁리는 않고 핵과 미사일 놀음에 매달리면서 주민들은 주린 배를 않고 지도자 만세를 부른다.
공갈과 도발 총력전 펼쳐야
공갈과 도발 총력전 펼쳐야
냉전시대 미국은 네바다 사막지대에서 소련은 카자흐스탄에서 각각 100번이 넘는 지하 핵실험을 했다. 당시 이들이 실험한 핵탄두의 위력은 비밀이었지만 소련이 붕괴하면서 핵실험 관련 극비자료가 공개됐다. 이를 과거 핵실험 때 나타났던 지진과 관측 자료와 대조했더니 리히터 규모 4일 때 TNT폭 약 1000t 5일 때 3만2000t에 해당하는 폭발이 있었다는 사실이 처음 밝혀졌다. 다만 지질구조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단서가 붙었다. 북한이 감행한 2차 핵실험의 폭발력을 놓고 4.5KT(TNT폭약 4500t)에서 20KT(2만t)까지 다양한 추정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최대 20Kt에 이를 수 있는 실험”이라고 했고, 러시아에선 10~20Kt이라고 추정치가 나왔다.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는 ‘낮은 한 자릿수 Kt'이라고 했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때보다 얼마나 위력이 커졌는지를 놓고도 5~6배에서 20배까지 해석이 갈린다. 이런 차이는 지진과 관측 결과와 함께 이를 해석하는 방식이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이다. 기상청이 관측한 이번 인공지진 강도는 리히터 규모 4.4였다. 미국 지질조사국 발표는 4.7이었다. 1차 핵실험 때도 기상청은 3.6 미국은 4.2로 달랐다. 국내 관측 수치가 낮은 것은 핵실험 장소에서 발생한 지진파가 육지와 구조가 다른 동해의 지각을 가로질러 오는 과정에서 약해지기 때문이다. 핵폭탄 제조에 쓰이는 우라늄(u235)원자가 분열하면 스트론튬(sr94)과 크세논(xe140)이라는 원자 두 개와 중성자 한 개가 생긴다. 이 과정에서 우라늄 원자핵 질량의 0.1%가 줄어든다. 1g의 우라늄 원자가 분열할 때 0.001g가량 질량이 줄어들 뿐이지만 그로인해 생기는 에너지는 20조칼로리(cal)나 된다. 물 20만t을 끓일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다. 핵폭탄의 가공할 파괴력이 여기서 나온다. 국제사회의 북한 제재 움직임이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해 국제사회 전체가 깊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핵실험 직후 열린 회의에서 북한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른 시일 안에 효과적인 제재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성명을 발표한데 이어 이른 아침부터 특별 기자회견을 열고 북한을 비난했다. 서방국들만 북한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중국도 ‘결사반대’ 라는 용어로 크게 불쾌감을 표시했고, 러시아는 물론 북한과 오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베트남도 비난에 동참했다. 국제사회가 이처럼 신속하게 한목소리로 북한을 비난하고 나선 것은 북핵 문제가 국제사회 현안으로 대두한 1990년대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국제질서와 평화를 위협하는 북한의 행동이 심각하게 도를 넘고 있다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국제적 이론을 효과적으로 응집시켜 북한 핵을 기필코 저지하고 북한식 막무가내 행동에도 제동을 걸어야 한다. 바로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1차 핵실험 때 북한이 오히려 국제사회와의 대화가 재개되는 등 보상을 받았던 패턴이 반복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긴밀히 공조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유엔 안보리 차원의 강력한(제재)결의를 만들어 내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우리는 두 정상의 합의를 전적으로 지지한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북한의 어떤 종류의 도발에 대해서도 철저하고 단호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군당국은 초비상의 대비태세로 맞서야 한다!
사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
사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
‘정해진 날까지 150만원을 못 갚으면 내 몸을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21세 처녀가 지하철역에서 받은 ‘금전대출’ 명함을 보고 찾아오자 사채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내밀었다. 직장도 신용도 없으니 서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월 100% 이자를 물기로 하고 두 달간 150만원을 빌렸다. 돈을 못 갚자 사채업자는 각서를 들이대며 그녀를 충청도 티켓다방에 넘겼다. 몇 년 전 붙잡힌 사채업자의 악랄한 행각이다. 악덕 사채업자들은 공무원, 공기업 직원, 군인을 좋은 먹잇감으로 꼽는다. 신분이 확실해 고리를 뜯기 좋고 폭력을 휘둘러도 직장 잃을까봐 신고도 못한다. 특히 여성들은 ‘걸어다니는 담보’라 부른다. 유흥업소로 보내면 바로 ‘환전’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여대생들은 친구 부탁에 보증을 서줬다가 함께 빚을 떠안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채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 되는 것은 이자가 비싼 탓도 있지만 ‘적기재대출’ 탓이 크다. 지난해 서울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주인은 사채업자에게 100일간 매일 12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는 조건으로 선이자 50만원을 떼이고 950만원을 빌렸다. 이자를 못 갚자 사채업자는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다시 빌려주는 꺽기를 6차례 거듭해 1년 만에 빛을 7000만원으로 불려놓았다. 업자는 담보로 잡은 집까지 경매에 넘겼다. 작년 11월 50대 아버지가 유흥업소에서 몸을 팔던 대학생 딸을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딸이 인터넷 쇼핑몰을 한다며 제작년 서울의 한 사채업자에게 30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빚은 ‘꺽기’를 거쳐 1년새 7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업자는 이 여대생을 룸살롱으로 보내 마담과 짜고 하루 세 차례까지 성매매를 강요했다. 경찰이 이들을 붙잡고 보니 212명에게 한 해 680%까지 붙여 빨아낸 이자만 33억 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엔 등록 불법 대부업체 2만 3000여 곳이 모두 10조원을 대출해놓은 것으로 집계돼 있다. 성인 20명에 한 명꼴인 189만 명으로 평균 529만원씩 빚을 떠안고 있다. 대부업체 이자의 법적 상한은 49% 이지만 악덕 사채업자들은 살점을 도려내겠다고 덤비는 ‘베니스의 상인’ 뺨친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과 친구의 연락처를 모두 확보하거나, 피해자들의 주민등록증과 사진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협박에 이용했다. 사채 금리는 대부업체의 지방자치단체 등록 여부에 따라 각기 다른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동록 대부업체의 최고 이자율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및 시행령에 따라 연리 49%다. 미등록 대부업체는 이자제한법 및 시행령에 따라 33%가 이자율 상한선이다. 빚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행위도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법적상한을 훨씬 넘는 고금리 사채가 횡행하고 빚을 돌려받는 과정에서는 불법, 탈법행위가 채무자의 숨통을 조인다. 사채 피해자들은 돈을 빌려 쓴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해 협박을 당하면서도 당국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혼자 고민할수록 악덕 사채업자가 만들어놓은 ‘늪’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 더 큰 비극을 부른다. 불법계약은 그 자체가 무효다. 법정 상한을 넘은 사채 이자도 갚을 필요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이용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강요할 경우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행정당국은 법의 그늘에 숨어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질 사채업자들의 실태 파악부터 서둘러야 한다. 서민을 울리는 불법 고리 사채업자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우리의 애환이 뒷골목 역사다.
우리의 애환이 뒷골목 역사다.
서울 종로 '피맛골' 이름은 조선시대 고관들이 타고 다니는 말을 피해 아랫사람들이 다닌다는 뜻의 피마에서 유래했다. 행차가 지날 때까지 엎드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숨는 골목이었다. 그 곳에 선술집과 국밥집이 번창했다. 조선 후기엔 몰락한 양반들이 국밥집을 차려놓고 체면 때문에 휘장 아래로 팔뚝만 보이며 밥상을 내밀었다 해서 '팔뚝거리'라고도 불렸다. 피맛골엔 값싼 안주와 요깃거리가 있어 대학생들도 부담 없이 찾았다. 1979년 종로의 입시학원들이 도심 과밀화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4대문 밖으로 밀려나기 전엔 재수생들도 많았다. 종로에서 최류탄이 터지면 피하는 곳이라고 해서 '피연골'로도 불렸다. 1980년대 이후 문인·음악가·학자 등이 모이던 선술집 '시인통신'도 이곳에 있었다. 시낭송회,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밤새 술판이 이어지던 문화의 아지트였다. 그들이 새벽이 되면 몰려가 쓰린 속을 달랬던 곳이 청진동 골목이다. 그곳엔 한때 해장국집이 30여 곳이나 됐다. 3대째 장사하는 청진옥 해장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배달시켜 먹을 정도로 즐겼다고 한다. 기생집이 많았던 청계천 남쪽 다동·무교동에도 먹자골목이 생겼다. 주변에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면서 부민옥·오륙도 같은 음식점들이 사랑을 받았다. 70여년 된 추어탕집 용금옥은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참석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가 "아직 그대로 있느냐"고 물어 화제가 됐다. 시민과 함께 부대껴온 서울 4대문 안 도심 뒷골목들이 사라지고 있다.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에서 3가 사이 일부만 남았던 피맛골도 곧 없어지고 청진동과 다동·무교동 골목도 헐리고 재개발된다. 당주동·도렴동·신문동 골목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종로와 중구의 26곳에서 재개발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 140곳을 더 개발할 예정이다. 일본 도쿄의 뒷골목 시타마치 동쪽엔 에도시대의 흔적이, 서쪽엔 메이지시대 풍광이 남아있다. 독일 뤼벡시도 중세 때부터 내려온 거리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 우린 낡았다는 이유로 뒷골목을 허물고 고층 건물을 올리고 있다. 옛 정취를 문화적 재산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신경림은 '못난 놈은 서로 얼굴만 봐도 반갑다'고 했다. 뒷골목엔 큰 길에선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이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낯설지 않다. 그들의 애환이 뒷골목 역사다. 뒷골목 이야기를 살리는 재개발이 아쉽다. 불도저는 수시로 삶의 터전을 깎아 들어오고, 가난이란 무거운 짐은 족쇄처럼 그들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1980년대의 그늘진 풍경화다. 하지만 지금도 낯설지가 않다. 슈퍼, 복덕방, 정육점, 찻집 등이 옹기종기 삶을 이어가는 동네 모습 그 속에서 펼쳐지는 보통사람들의 애환은 시대가 변해도 변한 게 없다. 9·19 부동산 대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택공급을 확대하되 신도시가 아니라 도심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물량을 늘리기로 한 점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뉴타운 25곳 추가지정이 그것이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투기바람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아 용도폐기론이 우세한 뉴타운을 이렇다 할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국가 균형발전 논리에도 어긋날 뿐더러 투기 진작책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의 낡은 삽질정책은 진단도 처방도 잘못됐다. 우리 경제 위기의 본질은 성장의 과실이 고루 돌아가지 못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삽질로 경기부양에 나선다는 것이 경제의 환부를 더 덧나게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까 우려된다. '설사 내가 옳다 해도 국민이 잘못된 처사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방실·서울의 탱고' 노래나 독자 팬 여러분과 들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