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332건 ]
사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
사채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덫
‘정해진 날까지 150만원을 못 갚으면 내 몸을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21세 처녀가 지하철역에서 받은 ‘금전대출’ 명함을 보고 찾아오자 사채업자는 ‘신체포기각서’를 내밀었다. 직장도 신용도 없으니 서명하라고 했다. 그녀는 급한 마음에 월 100% 이자를 물기로 하고 두 달간 150만원을 빌렸다. 돈을 못 갚자 사채업자는 각서를 들이대며 그녀를 충청도 티켓다방에 넘겼다. 몇 년 전 붙잡힌 사채업자의 악랄한 행각이다. 악덕 사채업자들은 공무원, 공기업 직원, 군인을 좋은 먹잇감으로 꼽는다. 신분이 확실해 고리를 뜯기 좋고 폭력을 휘둘러도 직장 잃을까봐 신고도 못한다. 특히 여성들은 ‘걸어다니는 담보’라 부른다. 유흥업소로 보내면 바로 ‘환전’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여대생들은 친구 부탁에 보증을 서줬다가 함께 빚을 떠안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채가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이 되는 것은 이자가 비싼 탓도 있지만 ‘적기재대출’ 탓이 크다. 지난해 서울의 한 휴대전화 대리점 주인은 사채업자에게 100일간 매일 12만원씩 원금과 이자를 갚는 조건으로 선이자 50만원을 떼이고 950만원을 빌렸다. 이자를 못 갚자 사채업자는 이자를 원금에 포함시켜 다시 빌려주는 꺽기를 6차례 거듭해 1년 만에 빛을 7000만원으로 불려놓았다. 업자는 담보로 잡은 집까지 경매에 넘겼다. 작년 11월 50대 아버지가 유흥업소에서 몸을 팔던 대학생 딸을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딸이 인터넷 쇼핑몰을 한다며 제작년 서울의 한 사채업자에게 300만원을 빌린 게 화근이었다. 빚은 ‘꺽기’를 거쳐 1년새 7000만원으로 불어났다. 업자는 이 여대생을 룸살롱으로 보내 마담과 짜고 하루 세 차례까지 성매매를 강요했다. 경찰이 이들을 붙잡고 보니 212명에게 한 해 680%까지 붙여 빨아낸 이자만 33억 원이었다. 지금 우리나라엔 등록 불법 대부업체 2만 3000여 곳이 모두 10조원을 대출해놓은 것으로 집계돼 있다. 성인 20명에 한 명꼴인 189만 명으로 평균 529만원씩 빚을 떠안고 있다. 대부업체 이자의 법적 상한은 49% 이지만 악덕 사채업자들은 살점을 도려내겠다고 덤비는 ‘베니스의 상인’ 뺨친다. 돈을 빌리러 온 사람들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가족과 친구의 연락처를 모두 확보하거나, 피해자들의 주민등록증과 사진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협박에 이용했다. 사채 금리는 대부업체의 지방자치단체 등록 여부에 따라 각기 다른 법률의 적용을 받는다. 동록 대부업체의 최고 이자율은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대부업법) 및 시행령에 따라 연리 49%다. 미등록 대부업체는 이자제한법 및 시행령에 따라 33%가 이자율 상한선이다. 빚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행위도 금지돼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도 드러났듯 법적상한을 훨씬 넘는 고금리 사채가 횡행하고 빚을 돌려받는 과정에서는 불법, 탈법행위가 채무자의 숨통을 조인다. 사채 피해자들은 돈을 빌려 쓴 사실이 가족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해 협박을 당하면서도 당국에 신고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혼자 고민할수록 악덕 사채업자가 만들어놓은 ‘늪’에 점점 깊이 빠져들어 더 큰 비극을 부른다. 불법계약은 그 자체가 무효다. 법정 상한을 넘은 사채 이자도 갚을 필요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사채를 이용하더라도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강요할 경우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그나마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행정당국은 법의 그늘에 숨어 피해자를 양산하는 악질 사채업자들의 실태 파악부터 서둘러야 한다. 서민을 울리는 불법 고리 사채업자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
우리의 애환이 뒷골목 역사다.
우리의 애환이 뒷골목 역사다.
서울 종로 '피맛골' 이름은 조선시대 고관들이 타고 다니는 말을 피해 아랫사람들이 다닌다는 뜻의 피마에서 유래했다. 행차가 지날 때까지 엎드려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해 숨는 골목이었다. 그 곳에 선술집과 국밥집이 번창했다. 조선 후기엔 몰락한 양반들이 국밥집을 차려놓고 체면 때문에 휘장 아래로 팔뚝만 보이며 밥상을 내밀었다 해서 '팔뚝거리'라고도 불렸다. 피맛골엔 값싼 안주와 요깃거리가 있어 대학생들도 부담 없이 찾았다. 1979년 종로의 입시학원들이 도심 과밀화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4대문 밖으로 밀려나기 전엔 재수생들도 많았다. 종로에서 최류탄이 터지면 피하는 곳이라고 해서 '피연골'로도 불렸다. 1980년대 이후 문인·음악가·학자 등이 모이던 선술집 '시인통신'도 이곳에 있었다. 시낭송회, 출판기념회가 열리고 밤새 술판이 이어지던 문화의 아지트였다. 그들이 새벽이 되면 몰려가 쓰린 속을 달랬던 곳이 청진동 골목이다. 그곳엔 한때 해장국집이 30여 곳이나 됐다. 3대째 장사하는 청진옥 해장국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배달시켜 먹을 정도로 즐겼다고 한다. 기생집이 많았던 청계천 남쪽 다동·무교동에도 먹자골목이 생겼다. 주변에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면서 부민옥·오륙도 같은 음식점들이 사랑을 받았다. 70여년 된 추어탕집 용금옥은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참석차 서울에 온 북한 대표가 "아직 그대로 있느냐"고 물어 화제가 됐다. 시민과 함께 부대껴온 서울 4대문 안 도심 뒷골목들이 사라지고 있다. 종로 1가 교보문고 뒤에서 3가 사이 일부만 남았던 피맛골도 곧 없어지고 청진동과 다동·무교동 골목도 헐리고 재개발된다. 당주동·도렴동·신문동 골목도 철거가 진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종로와 중구의 26곳에서 재개발을 진행 중이고 앞으로 140곳을 더 개발할 예정이다. 일본 도쿄의 뒷골목 시타마치 동쪽엔 에도시대의 흔적이, 서쪽엔 메이지시대 풍광이 남아있다. 독일 뤼벡시도 중세 때부터 내려온 거리 모습을 지켜가고 있다. 우린 낡았다는 이유로 뒷골목을 허물고 고층 건물을 올리고 있다. 옛 정취를 문화적 재산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 신경림은 '못난 놈은 서로 얼굴만 봐도 반갑다'고 했다. 뒷골목엔 큰 길에선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이 있다.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낯설지 않다. 그들의 애환이 뒷골목 역사다. 뒷골목 이야기를 살리는 재개발이 아쉽다. 불도저는 수시로 삶의 터전을 깎아 들어오고, 가난이란 무거운 짐은 족쇄처럼 그들을 수렁으로 끌고 들어간다. 1980년대의 그늘진 풍경화다. 하지만 지금도 낯설지가 않다. 슈퍼, 복덕방, 정육점, 찻집 등이 옹기종기 삶을 이어가는 동네 모습 그 속에서 펼쳐지는 보통사람들의 애환은 시대가 변해도 변한 게 없다. 9·19 부동산 대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주택공급을 확대하되 신도시가 아니라 도심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물량을 늘리기로 한 점이다. 서울과 수도권에 뉴타운 25곳 추가지정이 그것이다. 원주민을 몰아내고 투기바람만 부추기는 결과를 낳아 용도폐기론이 우세한 뉴타운을 이렇다 할 대안도 내놓지 않은 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국가 균형발전 논리에도 어긋날 뿐더러 투기 진작책이 될 공산이 크다. 정부의 낡은 삽질정책은 진단도 처방도 잘못됐다. 우리 경제 위기의 본질은 성장의 과실이 고루 돌아가지 못하는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삽질로 경기부양에 나선다는 것이 경제의 환부를 더 덧나게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까 우려된다. '설사 내가 옳다 해도 국민이 잘못된 처사라고 한다면 잘못된 것이다!' '방실·서울의 탱고' 노래나 독자 팬 여러분과 들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