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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칼럼] 中國 코로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의 중국문화
[靑魯 李龍雄 칼럼] 中國 코로나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오늘의 중국문화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2019년 12월 8일, 중국 우한시(武漢市)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가 처음 보고되었습니다. 2020년 1월 1일, 국지적 유행의 중심지가 되는 우한화난수산물도매시장을 폐쇄! 2020년 1월 5일, 우한시 위생 건강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오전 8시 시점에서 원인 불명의 폐렴 환자는 총 59명으로 그중 7명이 重症이며, 다른 환자는 안정적이였습니다. 모든 환자는 우한 시내의 의료기관에서 격리 치료를 받고 있으며,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역학 조사에 따르면, 일부 환자는 사람으로부터의 감염의 흔적은 없으며 의료진의 감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2020년 1월 7일, 원인 불명의 폐렴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 유발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20년 1월 23일, 인구 1100만명 우한시가 봉쇄되었습니다. 중국 당국은 비행기, 열차, 고속도로를 막았습니다. 우한시 봉쇄에 이어, 우한시를 포함한 16개 도시가 자체 봉쇄령으로 외부와의 교통을 차단했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 8월 16일 이후 중국 신규 확진자 가운데 본토 발병은 한명도 없습니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코로나19가 종식기에 접어들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진 통계로 잡지 않는 무증상 감염자는 8월 23일 하루 27명 확인됐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은 수도 베이징에서 국제영화제를 개최하며 자신감을 과시했습니다. 8월 24일 중국국제방송 등에 따르면 제10회 베이징 국제영화제가 ‘꿈과 분투’를 주제로 8월 22일 베이징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그럼 중국의 코로나 現住所는? 중국 <인민일보>는 “중국의 힘, 만회-코로나19 방역 중국 행동력편”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다음은 [인민망 한국어판 8월 31일]의 拔萃입니다./ -“역사의 물결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잔잔할 때도 거셀 때도 있다”-2020년 갑작스런 코로나19 사태에 세계 각국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솔선수범하여 국내 감염사태 통제, 경제 선행 회복, 국제 방역협력 적극 추진 등 중국의 행동은 세계에 신뢰와 힘을 전했습니다. 거센 파도 앞에 역풍을 이기며 나가는 중국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중국 공산당이 이끄는 14억 중국인이 뭉쳐서 내는 당당한 기세, 중국 경제 발전의 밝은 내일과 강인함, 국제 공평과 정의 수호 및 다자주의를 추구하는 중국의 실질적 행동에서 나옵니다. [일심동체, 방역 성공을 위한 응집력] 2020년 1월 23일은 역사적인 날입니다. 이날 천 만 인구의 우한(武漢)은 ‘중단 버튼’을 누르며 인류와 바이러스 간의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몇 개월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직접 진두지휘하며 14억 중국인을 한마음으로 묶어 방역의 견고한 성벽을 함께 세웠습니다. 중국의 속도는 놀라울 따름입나다. 감염사태 이후 전국적으로 신속하게 상하 집결해 각종 업종별로 전력투구하며 방역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중국의 규모는 감탄을 자아냅니다. 약 1개월 만에 346개 의료팀과 4만 2600명 의료진, 900여 명 공중보건인력이 후베이(湖北)에 파견되었습니다. 이는 신중국 성립 이후 최대 규모의 의료 지원팀으로 ‘한 곳이 어려움을 당하면 팔방에서 돕는다’는 단결 정신이 위급한 때에 빛을 발해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중국은 왜 가능한가? 시진핑 총서기는 “이번 감염사태 승리로 우리에게 힘과 자신감을 중국 인민들이 주었다”, “인민이야말로 진정한 영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인민은 중국 방역전에서 최고의 저력이자 힘의 원천입니다. 힘을 결집해 일을 처리하는 제도적 우위 속에서 중국은 일심동체로 신속하게 행동하며 강대한 종합국력에 힘입어 최단 시간 동안 감염 전파를 차단해 세계에 중국의 힘을 입증했습니다. [역경 속의 성장, 경제회복의 강인한 힘 표출] 현재 코로나19 사태가 여전히 전 세계를 휩쓸고 세계 경제는 심각한 침체기에 빠졌습니다. 세계은행은 올해 글로벌 경제가 5.2%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비관적인 분위기 속에서 중국 경제의 안정적 회복은 국제사회에 긍정에너지를 불어넣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 “2020년에 주요 경제국 중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을 이룩하는 나라는 중국뿐이다”라고 밝혔습니다. [공동운명, 방역전 승리에 공헌한 중국의 힘] “현 세계는 백 년 만에 찾아온 대변혁을 겪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블랙스완’ 여파로 국제사회는 이러한 과학적 판단을 한층 더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만화, 축구 유니폼, 노래, 감사의 말 등 무수한 선의의 마음이 중국과 국제사회 간 동고동락, 상부상조의 두터운 우정을 만들었습니다. 감염사태는 국경이 없고, 바이러스는 인류 공동의 적입니다. 세계가 직면한 불확실성, 불안전성이 높아지고 보호주의가 성행하는 상황에서 단결과 상부상조의 중국 이념과 행동은 글로벌 거버넌스 적자의 그늘을 깨뜨렸습니다. “땀방울로 성취하고 착실하고 침착하게 나아간다.” 샤오캉(小康, 중산층) 사회 전면 건설과 빈곤퇴치 성공을 위한 이 시기에 중국 발전은 국제사회와 더불어 나아갈 것입니다. 풍랑 앞에 중국은 “풍랑이 닥치면 고깃배에 침착하게 앉아 있는” 패기와 용기를 가지고 있다. 다소 虛風을 떨기도 하고, 앞날도 不透明하지만, 대단한 자신감입니다. 그 자신감은 ‘제10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도 확인되었고, 다음의 문화행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⓵8월 26일 저녁 8시 26분 826대의 드론이 선전만(深圳灣) 위로 날아올라 도시와 어우러진 조명쇼를 펼치며 선전경제특구 수립 40주년을 축하./ ⓶허베이(河北) 탕산(唐山)에서 유럽으로 가는 ‘탕시유[탕산-시안(西安)-유럽]’ 중국-유럽 열차가 8월 26일 차오페이뎬(曹妃甸)항구통용부두철도장역에서 출발./ ⓷8월 29일, 후베이 언스 토가족의 ‘동방의 밸런타인데이’(七夕)가 열렸음./ ⓸8월 25일, 전국 영화 단일 흥행 수익 최고치를 기록.// ‘하늘에는 오작교가 있고 언스(恩施)에는 뉘얼후이(女兒會)가 있습니다. 하늘에서는 견우가 직녀와 만나고 땅에서는 아거(阿哥)가 아메이(阿妹)를 만납니다.’-은은한 노랫소리는 언스 토가족 뉘얼후이에 얽힌 언스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반도에서는 잊혀져 가는 ‘칠석’이 중국에서는 인기! 8월 25일, ‘중국 밸런타인데이’로 불리는 칠석날을 맞아 중국 영화시장이 흥분! 당일 전국 영화 단일 흥행 수익이 영화관 재개 후 최고치를 기록! 온라인 영화 입장권 예매 앱에 따르면 8월 25일 15시까지 칠석날 단일 흥행 수익이 3억 위안(약 516억 원) 초과, 17시 4억 위안 초과, 18시 26분 4.22억 위안 달성! 이러한 수치는 7월 20일 영화관 재개 첫날 흥행 수익의 100배(422만 위안)! 우리나라는 과연? 果然?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달력 ⑨한반도의 9월 & 김일성 이야기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달력 ⑨한반도의 9월 & 김일성 이야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조선출판물수출입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0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 “주체 JUCHE 109 (2020)”/ “조선출판물수출입사 Korea Publications Export & Import Corporation”라는 글이 있습니다. 2020년 새 달력 ‘9월’에는 사진 “구름 속의 백두 령봉”이 있습니다. / 달력 9월의 1일부터 30일 사이에는 [9일]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백로 9.7], [추분 9.22]가 있습니다. 달력 9월에는 지구촌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다음의 활자들로 장식되어 있습니다.-“주체 37(1948) 9.9.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시였다.(September9, Juche 37(1948):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Il Sung founded the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주체 38(1949) 9.22.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 동지께서 서거하시였다.(September22, Juche 38(1949): Comrade Kim Jung Suk, the anti-Japanese war heroine, passed away.)” 북한의 9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9.9.)!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말대사전>은 “9.9절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일”(433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일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주체 37(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불멸의 업적을 영원히 빛내이고 후세 길이 전하기 위하여 해마다 국가적 명절로 기념하는 9월 9일.”(1406쪽)이라고 했습니다. ‘불멸의 업적’을 남긴 김일성...어처구니(於處軀尼) 없습니다./ “백두산 천지에서 제주도 끝까지/ 새 기발 높이여 삼천만은 나섰다/ 산천도 노래하라 이날의 감격을/ 조선은 빛나는 인민의 나라다”로 시작되는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입니다. 필자는 과거 “북한인은 두 태양을 싫어한다”(동남시론)를 집필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 글을 정리해 봅니다.- “김주석(金主席) 님, 천청풍난(天淸風暖)하고 일길신량(日吉辰良)한 계절에 80회 생일을 맞이하게 된 주석님이 오랜 세월 동안에 이룩한 업적에 대해 불경스런 고언(苦言)을 보내게 돼 죄송합니다. 대한민국은 옛부터 동방의 예의지국이어서 어른을 무척 공경하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님」자를 붙였습니다만, 그렇게 부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습니다. 왜냐구요(?) 그건 김주석 님의 출생 신분 때문도 아니고, 거짓투성이인 이력서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주석 님이 진정한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김주석 님의 망상(妄想)이 말끔하게 사라질 때까지 ‘님’이라고 부르는 것을 유보합니다. 김주석, 최근 발견된 문서를 보면 주석은 ”1931년부터 1940년까지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 토벌작전에 밀려 소련으로 들어가 42년 7월 적군(赤軍), 즉 소련극동군에 가담한 것“이 확실하더군요. 김주석은 그때부터 1945년 시월까지 소련만을 위해 싸운 덕분에, 소련의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게 된 ”친자첸“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주석이 조국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결국 김주석은 소련만을 위해 산 ”로스케“들의 앞잡이며 꼭두각시였던게 아닐까요(?) 김주석, 주석은 이제 늙은 영감입니다. 이제 당산은 권력에 눈이 멀어 소련에 아부를 밥먹듯 했던 과거의 진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해방 직후 소군정(蘇軍政)은 북녘땅을 소련화하기 위해 당신을 교묘하게 이용했습니다. 그건 얼마 전, 당시의 군사령관 레베데프가 소군정의 정책이 ”조선을 해방시킨 위대한 붉은 군대에 대한 선전”과 “전 인류의 태양, 위대한 스탈린 대원수가 이끄는 영광된 사회주의에 대한 선전”이었다고 증언하면서,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김일성(金日成)만 지도자로 부각시켰다”고 덧붙인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때 레베데프의 고민이 “엉터리 장군의 영웅화”였다고 하니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어쨌거나 레베데프는 소련만을 위해 일을 했답니다. 그는 조국을 위해 “김일성을 항일 민족 영웅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고 회상을 했습니다. 김주석이 한 일이라고는 소련의 하수인 역할 뿐이었으니 그 사람이 얼마나 신났겠습니까. 그래서 방송국에서 방송 시작과 종료 때 반드시 <김일성의 노래>를 틀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원불명의 괴청년”이라는 말이 나오자, ‘로스케’들은 “일성 신화”를 써서 몹쓸 전염병처럼 퍼지게 했답니다. 마침내 영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괴수가 되었습니다. 영감은 곧바로 소련의 사주로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남침(南侵)을 자행했습니다. 그걸 보면 당신은 분명 ‘로스케’의 분신이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토록 잔악무도한 남침을 했겠습니까. 독재자(獨裁者)! ‘독재자’란 견제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가진 집권자를 말하며,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는 경향인 사람을 빗대어 일컫기도 합니다. 원뜻은 "홀로(獨) 재단(裁)하는 자(者)"입니다. 북한은 2019년 4월 개정된 헌법 전문을 공개했는데, 개정 헌법 100조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를 대표하는 최고령도자”라고 명시했습니다. 김정은은 2019년 1월부터 8월까지 미사일과 씨름을 하고, 발사를 통해 겁박하고, 발사 현장에 나타나고, 2020년에는 툭하면 사라지고(?)...2020년 9월의 ‘공화국 창건일’에는 무슨 ‘짓’을 할까요(?) 그가 대(代)를 이은 ‘독재자’지만 이제 “쇼” 그만하고, 올 추석(秋夕)에는 백성들의 끼니 걱정이나 하기 바랍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九月의 江·바다와 하늘, 丹楓과 落葉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九月의 江·바다와 하늘, 丹楓과 落葉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코로나 없었던 그 구월(九月)의 江·바다와 하늘, 丹楓과 落葉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9월에는 아무리 가난한 사람들도 배가 부르고, 아무리 모진 사람도 시(詩)를 읽고, 아무리 외로운 사람도 사귈 친구가 많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구월 초하루, 이제는 가을이다. 조용히 벌레 소리를 들어가며 독서(讀書) 삼매(三昧)에 밤 깊은 줄을 잊어도 좋은 계절이 되었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1877~1962)의 “9월”! “여름이 그 마지막을 향해/ 잠잠히 몸부림 친다/ 잎새들이 하나씩 금빛 물방울이 되어/ 높은 아카시아나무에서 굴러 떨어진다/ 죽어가는 정원의 꿈속에서/ 여름이 깜짝 놀라 피로한 웃음을 띄운다/ 여름은 지금 잠시동안/ 장미꽃과 더불어 잠들고 싶어 한다/ 이윽고 여름은 서서히/ 피로한 그 큰 눈을 감는다..” 9월(九月/September)은 그레고리력에서 한 해의 아홉 번째 달이며, 30일까지 있습니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과 같은 북반구에는 가을이 되며,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과 같은 남반구에는 봄이 됩니다. 이 달과 그 해의 12월은 항상 같은 요일로 시작합니다. 또한, 다음 해가 윤년인 경우에는 다음 해 2월, 3월, 11월과 같은 요일로 시작하며, 다음 해가 평년이면 다음해 6월과 같은 요일이 됩니다. 2020년 추석(秋夕)은 10월 1일이며, 연휴(連休)는 9월 30~10월 4일입니다. 필자는 대학교수로 임용된 것이 9월이라서 그런지 구월이 좋습니다. 9월에 처음 연구실에서 만난 마산(馬山)의 바다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하늘과 남해안은 절경이었고, 며칠 뒤 가까이에서 본 낙동강(洛東江)은 ‘그리움’이었습니다. 하늘은 ‘天高馬肥의 ’하늘‘이었고, 바다는 꿈의 고향이었습니다. 남해안의 가포 바다! 그 가장자리 언덕 위에 자리한 정원엔 대나무 숲. 한 송이 동백꽃, 그리고 불타는 자연이,,.그 곳엔 일곱 빛깔 그리움이!! 낙동강(洛東江)! 구월(九月)의 강(江)! “코스모스 가지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밀려오는/ 9월의 강변/ 떠나지 못한 늦여름이/ 시들어가던/ 갈대숲 사이로 스며들고/ 힘겹던 텃새 한 마리/ 코스모스 꽃잎에 물든/ 가을을 숨 쉰다// 나른했던 강물은/ 높이 뜬 조개구름 위로/ 시린 하늘/ 그리고/ 영근 우리사랑 품으며/ 가벼이 흘러가네” 구월(九月)의 바다! 추억(追憶)의 남지나해(南支那海)! - “저 멀리/ 피어나는 하얀 뭉게구름/ 아득히 수평선에 맞닿으며/ 끝없이 펼쳐지는 사랑의 푸른 바다/ 붉게 물든 노을빛은/ 갈매기와 고운 사랑을 반겨주며/ 끼룩끼룩 갈매기의 날갯짓은 푸른 파도를 마신다./ 하얗게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며/ 예쁜 미소 짓던/ 지난날의 사랑의 고운 추억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소리 없이 흐르는 그리움만이/ 추억에 남아 있는 푸른 바닷가는/ 그리움 속에 또 그렇게 저물어간다.” 추억의 남지나해! 오래 전 만난 그 바다는 해시계에 따라 일곱 무지게 색깔로 변했습니다. 베트남으로 향하는 해군 함정에서 매일 접한 바다는 ’하루 하루‘ 그 자체였습니다. 그 바다는 필자의 기억 속에서 영원합니다. 참 아름다웠습니다. 그리고 마산의 경남대학교에 출근한 뒤에 만난 바다도 ’하루 하루‘ 였습니다. 그때부터는 구월(九月)의 바다가 합포만(合浦灣)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곳이 영원한 추억의 바다입니다. 가을의 단풍(丹楓)! 가을에 나뭇잎의 색상이 변하는 현상! 가을철 잎이 떨어지기 전에 엽록소가 파괴되어 엽록소에 의해 가려졌던 색소들이 나타나거나, 잎이 시들면서 잎 속의 물질들이 다른 색소로 바뀌면서 생긴답니다. 남아메리카 남부의 일부 지역과 동아시아·유럽 남서부·북아메리카 동북부지방에서 나타납니다. 우리나라는 9월 하순 설악산·오대산에서 시작하여 11월 상순 남해안 지방의 두륜산·한라산까지 단풍이 듭니다. 우리나라의 단풍은 아름답기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는데, 전라북도 내장산과 강원도 설악산이 등이 유명합니다. 필자가 좋아하는 단풍은? 단풍은 모두 곱습니다. 특히 금강산·설악산·내장산·智異山 단풍! 산도 붉게 타고, 물도 붉게 물들고, 그 가운데 선 사람도 붉게 물든다는 삼홍(三紅)의 명소, 피아골의 단풍은 가을 지리산의 백미! 조선시대 유학자 조식(曺植/1501~1572)은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은 사람은 단풍을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고 “온 산이 붉고 물이 붉어서 사람 마음도 붉다”는 삼홍시를 읊었다고 합니다! 나의 보금자리 관악산 산자락의 소박한 단풍도 곱습니다. 아름다운 錦繡江山의 丹楓! 필자가 좋아하는 낙엽의 노래는? 프랑스 이브 몽땅(Yves Montand)의 “고엽枯葉/Les Feuilles Mortes/Autumn leaves)” 입니다.- ”오! 나는 그대가 기억하기를 간절히 원해요/ 우리가 정다웠었던 행복한 날들을/ 그때 그 시절 인생은 그렇게도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더 작열했었지요//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제가 잊지 못했다는 것, 당신도 알고 있지 않나요!/ 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추억과 후회도 마찬가지로/ 그리고 북풍은 낙엽들을 실어 나르는군요/ 망각의 싸늘한 밤에...낙엽이 무수히 나뒹굴어요/ 추억과 후회도 마찬가지로// 하지만 은밀하고 변함없는 내 사랑은/ 항상 미소 짓고 삶에 감사드린답니다/ 너무나 그대를 사랑했었고 그대는 너무도 예뻤었지요/ 어떻게 그대를 잊을 수 있어요?/ 그때 그 시절 인생은 그렇게도 아름다웠고/ 태양은 오늘보다 더 작열했었지요/ 그대는 나의 가장 감미로운 친구였어요/ 하지만 나는 후회 없이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그대가 불렀던 노래를/ 언제나 언제나 듣고 있을 거예요“ 가을 단상(斷想)! 이 칼럼 [九月의 江·바다와 하늘, 丹楓과 落葉에 대한 斷想]을 마무리하려는 刹那, 고등학교 동기 방준영 절친이 필자의 사진을 넣은 글을 보내왔습니다. 글은 ”어느새 8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폭염과 장마에 시달려렸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9월이 코 앞입니다/ 마지막 주말 행복하게 잘 보내시고/ 새로운 9월에도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라고! 그리고 거기에는 서울사대부고 15회 졸업앨범 속 필자의 얼굴이 들어있었습니다. 코로나의 9월에 이보다 더 좋은 단상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2021년의 멋진 단상을 기원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2020년 여름과 가을 사이의 팔월(八月)을 보내며
[청로 이용웅 칼럼] 2020년 여름과 가을 사이의 팔월(八月)을 보내며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누군가는 여름은 개방적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닫혀진 창(窓)이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밖으로 열려진 여름 풍경은 그만큼 외향적이고 양성적 입니다. 그 여름의 숲은 푸른 생명의 색깔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그 숲속에는 벌레들의 음향(音響)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은폐(隱蔽)가 없고 침묵(沈默)이 없는 여름의 자연(自然)은 나신(裸身)처럼 싱그러웠습니다. 또 누군가는 여름은 비밀(秘密)을 간직하기 어려운 계절(季節)이라고 했습니다. 전에는 수줍은 소녀들이 여름의 더위 앞에서는 흉한 우두 자국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고독을 취미로 삼고 있는 우울한 철학도는 복중(伏中)의 무더위 속에서 밀실(密室)의 어둠을 버렸습니다. 육체도 사색도 모두 개방시켜야만 했던 지난날의 여름입니다. 지금은? 그 여름을 시인(詩人)들이 노래했습니다. 서양(西洋)의 소설가·시인 R.L.B.스티븐슨은 “겨울이면 어두워서 일어나/ 누우런 등불에 옷을 입는데./ 여름은 아주 달라/ 밝아서부터 자지 않으면 안된다.”(여름 잠자리)라고! C.벤은 “여름이 끝나는 날”에서 “여름이 끝나는 날/ 마음 그곳에도 기치는 떨어진다/ 화염(火焰)은 어디로 실려가고/ 분류(奔流)도 유희(遊戲)처럼 사라져갔다.”고 노래했습니다. 중국(中國)의 시인 소동파(蘇東坡)는 “사람들은 모두 더위에 괴로워 하는데/ 나는 여름 해가 긴 것을 좋아하노라”라고 했고, 이백(李白)은 “백우선(白羽扇)을 부치기도 귀찮다. 숲속에 들어가 벌거숭이가 되자/ 건(巾)을 벗어 석벽에 걸고/ 머리에 숲바람이나 쐬자.”(하일산중/夏日山中)고 노래했습니다. 한국(韓國)의 소설가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1901~1981)는 “삼복 한 더위! 담묵(淡墨)을 풀어 놓은 듯한 회색 구름이 한 점 두 점 시뻘건 해를 가리고 지니간다. 해는 성난 듯이 회색 구름을 흘겨보았다. 또다시 회색 구름이 뭉게뭉게 빈정거리며, 성난 해를 놀리고 달아났다. 한때, 또 한때 양털 같은 회색 구름은 끊일새 없이 태양을 지근거리고 달아났다. 해는 화가 하늘 끝까지 뻗쳤다. 안간힘은 ‘쿵’하고 최고의 열을 내어 구름을 물리치려 한다. 그러나 구름은 어느결에 바다같이 하늘에 가득찼다.”라고 썼습니다. 서양이든 중국이든 한국이든, 문인(文人)들은 아주 다양하게 ‘여름’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2020년 여름을 글로 쓴 문인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코로나의 여파(餘波)가 문인들의 ‘熱情’을 식혔을 수 있습니다. 시인들의 여름 노래는 지쳐있는 우리들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가수들의 여름 노래는 그나마 울려 퍼지기도 했습니다. [2020년 여름과 가을 사이의 팔월(八月)을 보내며] 여름을 노래한 시(詩)가 지금이라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2020년 팔월이 벌써 종착역 앞에 와 있습니다. 어느 시인은 ‘목숨과 8월을 사랑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른 시인은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에 지닌...팔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민족은 쉼 없이 가을을 향해 항해(航海)를 계속해 왔습니다. 이제 곧 ‘가을’이 곧 찾아옵니다. 벌써 가을 노래가 그리워집니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대중가요! 먼저 ‘아이유’의 “가을 아침”-“이른 아침 작은 새들 노랫소리 들려오면/ 언제나 그랬듯 아쉽게 잠을 깬다/ 창문 하나 햇살 가득 눈부시게 비쳐오고/ 서늘한 냉기에 재채기할까 말까 음/ 눈 비비며 빼꼼히 창밖을 내다보니/ 삼삼오오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 가고/ 산책 갔다 오시는 아버지의 양손에는..”// 그리고 패티킴의 다음 “가을을 남기고 떠난 사람” “겨울은 아직 멀리 있는데/ 사랑할수록 깊어가는 슬픔에/ 눈물은 향기로운 꿈이었나/ 당신의 눈물이 생각날 때/ 기억에 남아있는 꿈들이/ 눈을 감으면 수많은 별이 되어/ 어두운 밤 하늘에 흘러가리/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 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아 그대 곁에 잠들고 싶어라/ 날개를 접은 철새처럼/ 눈물로 쓰여진 그 편지는/ 눈물로 다시 지우렵니다/ 내 가슴에 봄은 멀리있지만/ 내 사랑 꽃이 되고 싶어라// 시인(詩人)들의 가을 노래! 먼저 프랑스 국민들이 애송(愛誦)하는 뽈 베를렌느(Paul Verlaine)의 ”가을의 노래“를 불러봅니다.-”가을날 바이올린 가락 긴 흐느낌 하염없이 내 마음 쓰려라./ 종소리 가슴 메여 나 창백히, 지난날 그리며 눈물 흘리네./ 쇠잔한 내 신세 모진 바람 몰아치는 대로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낙엽 같아라.“- 일제강점기 ”메밀꽃 필 무렵“ 등을 저술한 소설가 이효석(李孝石/1907~1942)은 ”落葉을 태우면서“에서 ”가을이다! 가을은 생활의 계절이다. 나는 화단의 뒷자리를 깊이 파고, 다 타버린 낙엽의 재를- 죽어버린 꿈의 시체를- 땅속 깊이 파묻고, 엄연한 생활의 자세로 돌아서지 않으면 안된다. 이야기 속의 소년같이 용감해지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가을은 천고마비(天高馬肥/가을 하늘이 맑고 말이 살찜), 등화가친(燈火可親/등불과 친하듯 가을밤에 늦도록까지 책을 읽음), 구추풍국(九秋楓菊/가을의 단풍과 국화), 추풍낙엽(秋風落葉/가을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 한상백로(寒霜白露/차거운 서리와 흰 이슬), 황국단풍(黃菊丹楓/가을을 상징하는 노란 국화와 붉은 단풍), 각로청수(刻露淸秀/가을의 맑고 아름다운 경치) 등 수식어가 많습니다. 그 가을을 시작하는 ‘9월’이 곧 우리 곁에 옵니다. 2020년 9월! 코로나 세상이지만 9월은 옵니다. 그러나 9월을 맞는 우리는 마냥 즐거울 수가 없습니다. 올 가을엔 ‘즐거운 여행’도 하기 힘들고, ‘신명 나는 놀이’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문학작품의 세계는 우리에게 희망과 기쁨을 줄 것입니다.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는 ”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2020년 9월! 2020년 가을! 구추풍국(九秋楓菊)가 아름다운 금수강산(錦繡江山)에서 코로나가 추풍낙엽(秋風落葉)과 함께 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한반도의 장마·큰물과 가뭄·가물에 대한 斷想
[청로 이용웅 칼럼] 한반도의 장마·큰물과 가뭄·가물에 대한 斷想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나무위키]“(장마)는 여름철에 여러 날 동안 계속해서 내리는 비, 혹은 이를 가리키는 현상을 말한다. 한자어로는 구우(久雨), 임우(霖雨), 혹은 적림(積霖)이라고도 한다. 보통 6월 말부터 주로 7월 말까지 내리는 경우가 많으며, 이때 내리는 비를 가리켜 매우(梅雨)[2]라고도 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름 날씨이자, 한반도 강수량의 약 30%를 책임지는 요소다. 이 때문에 붙여진 다른 이름은 제5의 계절”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장마-우리나라의 여름철 우기는 (장마)와 늦장마로 구분되며, 장마철의 강수는 주로 동부아시아를 동서로 가로질러 정체하는 장마전선에 의하여 나타난다. 즉 장마전선에 의하여 발생하는 우기가 장마이며, 일본에서는 바이우(梅雨), 중국에서는 메이유(梅雨)라고 한다. 이들 우계는 동부아시아 특유의 현상으로서 아열대 기단인 북태평양기단과 고위도의 한 대 기단 사이에 형성되는 한대전선(寒帶前線)에 의하여 나타난다. 동부아시아 규모의 한대전선의 일부가 한반도에 장마를 초래할 때 그것을 장마전선이라 한다.” “어릴 적 장마는 긴 기다림이다/ 물 새는 지붕과 벽면 곰팡이가/ 전장의 기념비 같은 커다란 지도를/ 상처처럼 남겨/ 도단하게 살아가던 궤적으로 쌓였다// 우묵 배미 안마당/ 정강이 넘게 흙탕물이/ 문지방에 찰랑거릴 때쯤/ 붉은 기와 용마루에도 틈이 자라서/ 하늘이 보이고/ 천장을 적시며/ 영토를 넓혀가// 물받이 그릇이/ 방 안 가득하던 시절에도/ 우리는 강가로 물 구경 갔다.” 2020년 한반도의 여름은 ‘장마’와 함께 했습니다. 대한민국! 54일간 이어진 역대급 장마가 8월 16일로 끝났습니다. 기존 최장기 장마 기록인 2013년 49일을 가볍게 제쳤습니다. 장마와 집중호우로 35명이 사망하고 7명이 실종됐습니다. 5명이 사망한 전남 곡성군 산사태, 4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된 춘천 의암호 선박 전복 참사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기 힘든 사고였습니다. “국민의 안전은 국가 책임”이라고 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 생각납니다. [북한 조선말대사전]“장마 : 여러날 계속하여오는 비 또는 그런 현상이나 날씨. ◆가물그루 터기는 있어도 장마그루 터기는 없다.→가물./ 삼년 가물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산다.”// “큰물 : 큰비가 내려서 강이나 개울에 넘쳐흐르는 많은 물. ◆큰물(이) 가다-큰물이 나서 논밭을 휩쓸고 지나가 피해를 입다.” 북한은 이번 장마철 기간에 전국적으로 3만 9296정보의 농경지 피해가 발생하고, 살림집 1만 6680여 세대와 공공건물 630여 동이 파괴·침수되는가 하면 도로와 다리, 철길이 끊어지고 발전소 언제(둑)이 붕괴됐다는 등 구체적인 피해 상황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은이 “집과 가산을 잃고 임시 거처지에 의탁하여 생활하고 있는 수재민들의 형편과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국가적인 비상방역 사업이 장기화돼 여러모로 애로와 난관이 많다 해도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신속하게 조직 전개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머릿 속에서 1995년의 장마가 떠돌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가뭄-일반적으로 지표에 내리는 빗물 중에서 기체가 되어 없어져 버리는 증발산(蒸發散)에 의하여 대기 중으로 손실되고 남은 물이 실제 수요량에 부족을 일으키게 될 때를 가뭄이라고 한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강수량이 적고, 햇볕이 계속 내리쬐어 물의 순환을 중심으로 하는 수문학(水文學)적으로 물의 균형이 깨뜨러져서 물 부족현상을 일으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이전에는 가뭄의 강도를 비가 계속 오지 않는 날의 길고 짧음으로 판정했으나, 최근에는 물 부족량의 정도와 지속기간 및 가뭄의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의 넓이 등에 따라 판정한다. 따라서 강수량과 증발산량, 토양 삼투량과 유출량 등을 토대로 물균형 계산을 해야만 정확한 가뭄의 강도를 판정할 수 있다.” [북한 조선말대사전]“가물 : 오래동안 비나 눈이 오지 않아 땅의 물기가 바싹 바르게 되는 현상 또는 그런 날씨. ◆가물그루 터기는 있어도 장마그루 터기는 없다.= 가물끝은 있어도 장마끝은 없다.”// ~이 심하다. ~에 마른 땅. ~과 큰물. ◆가물(이) 들다-날씨가 가물게 되다. ◆가물에 돌친다.-가물에 도랑(을) 친다.“ 2020년 4월부터 6월까지 12주치 자료를 살펴보면, 북한의 가뭄(가물)은 4월 첫 주부터 시작돼 5월 둘째 주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3개월 동안 가뭄 상황이 나쁘지 않았던 시점은 단 2주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6년간 상황이 나빴던 해는 2017년과 2019년, 2020년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상황이 많이 나쁜 해는 202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제사회 등은 북한이 지난해 사상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고 지적한 바 있습니다. 북한의 ‘大飢饉)’! 한 소식통은 1994년 12월 말 평안북도 구성의 대량 아사 소식을 전했습니다. 군수공장이 밀집한 그곳 로동자구(區)에선 여름부터 소나무 껍질을 벗겨 먹기 시작했고 가을쯤부터 굶어 죽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평양에서 불과 100여km 떨어진 곳! 몇 달 뒤 굶주림은 평양까지 순식간에 삼켰습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를 외부에서는 1995∼1998년으로 보지만, 실은 1994년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5년~1998년, 약 4년여 동안 북한에서 발생한 대기근(大飢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서서히 세가 기울어가던 북한이 현재 세계 최빈국 중 하나, 완전히 재기불능의 수준으로 망가진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표현은 원래 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김일성이 일본군의 추격을 피해 쫓겨 다니며 추위와 배고픔을 참아가며 유격전을 감행했다고 주장하던 시기와 1956년에 있었던 8월 종파사건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북한의 경제난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2020년 봄에 가뭄을 겪은 북한, 여름에 물난리를 당한 북한! 이제 폭염(暴炎) 차례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또 어떤 고생을 할지...북한 首長은 앞으로 매일 밤 ‘暴炎과 가물의 惡夢’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지...오늘 이후 북한 땅에 비 한 방울도 안 내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 일찍이 중국의 林語堂(1895~1976)은 <生活의 發見>에서 “민중이 굶었을 때, 몇 개의 帝國은 붕괴하고, 여하한 강력한 정권도 공포정치로 사라져 갔다.”고 했습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대한민국의 광복절(光復節)과 북한 ‘조국해방의 날’
[청로 이용웅 칼럼] 대한민국의 광복절(光復節)과 북한 ‘조국해방의 날’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1771년(영조 47) 장한철(張漢喆)이 폭풍으로 표류하다 귀국한 경험을 쓴 기록인 <표해록(漂海錄)>에는 “신(神)이 호랑이를 만들었을 때는 비록 살상만하고 표독스러우나 가죽이라도 쓰이라고 했고, 뱀은 간악하나 약제로서 인간에게 이(利)를 주도록 했다. 그런데 대체 저놈의 표독하고 간악하기만 한 왜인(倭人)들은 무엇에 쓰자고 만들어 냈을까?”라고 했습니다. 가까운 ‘일본’이라는 나라 사람들을 악질 ‘왜인’이라고 한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만행(蠻行)을 생각하면 바로 답이 나옵니다. 한국영화 <군함도>는 ‘조선인’들을 강제 징용해 노동자로 착취했던 ‘지옥섬’ 이야기인데, 이것만 가지고도 답은 충분합니다. “쪽발이 왜인‘이라고 卑下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패망(敗亡)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절(光復節)! 우리 한국인들은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라고 노래했습니다. 광복!(光復)! 광복은 문자 그대로 “빛(光)을 되찾음(復)”을 의미하고, 국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광복절(光復節)은 1945년 8월 15일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을 원년으로 계산합니다. 그런데 광복절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습니다.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통해 전개된 한국의 군정기에 따라 한반도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으며, 이후 양측 모두 이날을 기념하지만 구체적인 의미가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고, 1948년 같은 날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과정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으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45년의 ‘민족 해방’만을 기념하며 정권 수립은 다른 날짜에 이루어졌으므로 따로 ‘인민정권 창건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광복절(光復節)! 대한민국에서는 이를 국경일로 법제화함으로써 매년 양력 8월 15일에 기념하고 있습니다. '광복(光復)'에서의 '광(光)'은 '빛'을 의미하는 명사적 표현이 아니라 "영예롭게(光) 되찾음(復)”이라는 부사적 해석으로 쓰입니다. 즉, 영예롭게 주권을 되찾았다는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년도인 1945년을 광복절 원년으로 계산합니다.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을 통해 전개된 한국의 군정기에 따라 구 대한제국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과 공산주의 체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단되었으며, 이후 양측 모두 이날을 기념하지만 구체적인 의미가 크게 다릅니다. 대한민국에서는 1945년 8월 15일에 해방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과정을 아울러 광복으로 명명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한번도의 광복 주역은 모든 한민족입니다. 그런데 북한은 오로지 김일성(金日成) 뿐이라고! 그의 원래 이름은 김성주(金成柱 or 金聖柱)이고, 만주 빨치산 시절인 1938년 무렵부터 이후 소련군 시절 8.15 해방 때까지 한자로 ‘金日成’이란 이름을 쓴 것이 확인되었으며, 해방 직후 평양에 온 초기에는 김영환(金英煥)이란 가명을 쓰다가, 1945년 10월 14일 대중 앞에 김일성(金日成) 장군의 이름으로 처음 나섰던 인물! 그가 갑자기 ‘광복’의 주역이 된 것입니다. 후일 “소련이 세워 둔 꼭두각시 지도자”, “사이비 종교 교주 & 희대의 독재자”로 까지 평가된 김일성! 북한은 광복절을 그의 업적이라고 하며, ‘조국해방의 날’이라고 합니다. ‘소비에트 연방 대리자’에서 ‘일인 독재자’로 변신한 김일성! 2012年 8月 15日字 <로동신문>은 “백두산의 눈바람아 이야기하라!” 라는 기사에서 김일성을 우상화하는데 김철의 서사시 <백두산>과 김일성이 ’친필‘로 썼다는 <반일전가>를 이용했습니다. “백두산”은 창작 과정에서 김일성이 시인을 직접 불러 고주알 메주알하면서 수정하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작품입니다. <반일전가>는 <조선문학사>에서도 김일성 친필 “불후의 고전적명작”이라고 자랑하는 작품입니다. 광복절에 시(詩)를 통한 김일성 우상화! 방법도 가지가지입니다. 다음은 그 기사의 일부 입니다. -“백두산의 눈바람아 이야기하라!영명하신 김일성장군 만세, 조국해방 만세…민족의 대 경사, 조국해방을 맞으며 남녀로소가 모두 떨쳐나 해방의 기쁨에 울고 웃으며 목 놓아 부르고 부른 환호성이 오늘도 이 땅우에 메아리치는 것만 같다...오늘도 천만군민의 가슴을 더욱 불타게 하는 것은 백두의 눈보라를 헤치시며 잃었던 나라를 찾아주신 절세의 애국자, 항일의 전설적 영웅이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고마움의 정이다...간악한 원쑤들을 부셔버리며, 가혹한 설한풍의 울부짖음소리를 짓누르며 울려퍼진 불후의 고전적명작 《반일전가》, 정녕 그것은 백두산총대로 기어이 일제를 쳐부시고 조국해방을 이룩하시고야 말려는 백두산장군의 신념의 선언이였다...”조국해방의 력사적 위업 실현! 그것은 우리 수령님께서 장장 20성상 항일의 피어린 길을 헤치시며 총대로 이룩하신 민족사적인 사변이다.”- 유구무언(有口無言)입니다. <광복절 노래>를 불러봅니다. -1.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 날이 사십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2.꿈 엔들 잊을건가 지난 일을 잊을건가/ 다 같이 복을 심어 잘 가꿔 길러 하늘 닿게/ 세계의 보람될 거룩한 빛 예서 나리니/ 힘써힘써 나가세 힘써힘써 나가세-(정인보 작사, 윤용하 작곡)// 8월은 분명 ‘광복의 달’ 입니다. <8월의 강>!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에 지닌...”(박두진 지음)// 한민족의 비극을 생각나게 하는 8월의 시(詩) 입니다. 그리고 시인(詩人)은 “팔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 민족은 쉼 없이 평화를 위해 항해(航海)를 계속해 왔습니다. 대한민국의 희망찬 ‘광복절’은 미래의 통일을 위해 순항(順航)을 할 것입니다. 김일성도 죽고, 김정일도 떠난 지금, 북한의 ‘조국해방의 날’이라는 배는 미구(未久)에 좌초(坐礁)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장마를 통해 본 황해남도와 신천학살사건 · 九月山
[청로 이용웅 칼럼] 장마를 통해 본 황해남도와 신천학살사건 · 九月山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북한 前 首長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苦難의 行軍)”은 1995년~1999년 사이에 일어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의 ‘최악의 식량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며 경제적으로 고립된 가운데, 여러 자연재해로 식량 생산에도 문제가 발생하면서 기아(饑餓)가 발생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 아사자의 수는 명확하지 않으나, 2010년 11월 22일 대한민국 통계청이 유엔의 인구 센서스를 바탕으로 발표한 북한 인구 추계에 따르면, 1996~2000년 간 아사자 수는 33만여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 대기근은 1995년의 대홍수로 촉발되었습니다. 그뒤 북한 경제는 ‘기아’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북한 경제가 지난 3년 만에 역성장에서 벗어났습니다. 농작물 수확량이 늘어난 데다 관광지구에 건물을 새로 올리는 등의 영향이 작용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수준 만큼의 극심한 경제난을 겪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우리 속담에 “가뭄 끝은 있어도 장마 끝은 없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난 끝은 없다.”, “십년 가뭄에는 살아도 석달 장마에는 못 산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한반도의 장마는 무섭기까지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장맛비 때문에 戰戰兢兢! 集中暴雨! 소 떼가 섬진강 홍수 피해 해발 531m 사성암까지 올라갔습니다. ‘지리산의 관문’ 구례읍내가 섬진강 범람에 물바다 됐습니다. 물 폭탄으로 물에 잠긴 부산(釜山), 철원 등 집중폭우...북한 땅도 장마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오늘의 북한 수장(首長) 김정은은 아마 코로나보다 장마가 더 두려울 것입니다. 그에게 ‘집중폭우’는 ‘惡夢’일 것입니다.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북한의 주요 곡창지대인 황해남도에 폭우를 동반한 많은 비가 내린 가운데, 황해남도 당위원회가 최근 비상회의를 열고 장마 피해 대책사업을 마련하고 나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황해남도 소식통은 8월 3일 “며칠 새 쏟아진 폭우에 피해를 본 황해남도 지역들에 대해 즉각적인 대책을 세우라는 위의 지시로 도 당위원회가 최근 비상회의를 열었다”고 했습니다. 소식통에 따르면 황해남도에서는 최근 내린 많은 비로 상당수 농경지가 침수되었습니다. 북한은 1954년에 황해도를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했습니다. 道黨은 긴급회의에서 우선 조사된 피해 세대들에 가구당 옥수수 17kg씩을 공급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소식통은 “곡창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도 안의 주민 세대 대부분이 식량이 부족한 상태인데, 이런 어려운 조건에서도 도당의 지시에 따라 피해복구 작업에 나섰다”며 “주민들 속에서는 냄새가 심한 도랑 수로 파기, 외부공동변소 퍼내기가 그중에서도 제일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말했습니다. 황해남도의 대표적인 곡창지대는 신천군 등입니다. 필자는 과거 황해남도 신천군 농기계수리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신천군의 농촌은 땅이 비옥하고, 사람들은 비교적 잘 사는 것 같았습니다. 在日本 <조선신보>는 2019년 10월 28일 황해남도 신천군 새길협동농장이 북한의 농업부문에서 처음으로 통합생산체계를 구축하였다고 평양발로 보도했습니다. 그만큼 신천군은 부유한(?) 농촌입니다. 그런데 최근 홍수를 만났으니 김정은이 걱정 泰山(?). 황해도 신천군 信川郡 → 황해남도 신천군! 동쪽으로 재령군 경계까지 30리, 남쪽으로 해주 경계까지 45리, 서쪽으로 송화현(松禾縣) 경계까지 8리, 북쪽으로 안악군(安岳郡) 경계까지 15리, 서울과의 거리는 4백 40리 입니다. 신천군은 원래 고구려의 승산군(升山郡)이었습니다. 고려조에 신주(信州)로 고쳤으며, 성종(成宗)조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었습니다. 현종(顯宗)조 초기에 방어사를 폐지하고 황주(黃州)에 속하였으며, 후에 감무(監務)를 두었습니다. 현재 신천읍에 신천박물관(信川博物館)이 있습니다. 1958년 3월 창립되었고 김일성(金日成)의 현지 교시에 의해 1960년 6월 25일 개관하였습니다. “6·25 당시 미군의 만행을 폭로하는 자료나 증거물들을 통하여 근로자들을 반제·반미사상으로 교양하는 박물관” 입니다. ‘신천대학살’을 ‘선전선동’하기 위해 설립한 곳입니다. 과거 신천군은 ‘悲劇의 現場’이었습니다. 한국 전쟁 중 일어난 사건으로, 1950년 10월, 황해도 신천군에서 신천군 주민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3만 5천 여 명의 민간인들이 학살되었다는 사건을 말합니다. ‘신천 학살’ 혹은 ‘신천 학살 사건’이라고도 불리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에서는 ‘신천대학살’이라고 부릅니다. 신천학살 사건은 1950년 10월~12월 사이 북한 황해도 신천군 일대에서 벌어진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을 말합니다. 북한은 이를 두고 미군이 저지른 학살이라고 주장하며, 1958년 3월 김일성 지시에 의해 이곳에 신천박물관을 지어놓고 반미교육의 중심지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신천에서 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주장하는 민간인 숫자는 3만5383명, 그 밖에도 안악군에서 1만9천여 명 等 황해도 일대에서만 12만여 명의 주민들이 미군에 의해 학살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언젠가는 한반도가, 한민족이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名山(5대 명산=백두산, 묘향산, 구월산, 칠보산, 금강산)이 있습니다. 황해도 신천군 용진면과 은율군 남부면·일도면에 걸쳐 있는 구월산(九月山)입니다. 높이 945m이고, 기반암은 흑운모화강암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월산이라는 말은 이 산이 소재하는 구문화현(舊文化縣)의 고구려 시대의 지명인 궁홀, 또는 궁올(弓兀)에서 유래하였다고 전하는데 이것이 궐구(闕口)로 변하였고, 다시 미화되어 구월산으로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월산에는 고려 시대 이후 불교 사찰이 많이 지어졌는데, 정곡사 等 절과 미려(美麗)한 경관이 아주 뛰어납니다. 정곡사는 고려 시대의 여러 임금들이 절 부근의 산수풍경을 사랑하여 자주 수레를 멈추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관광하기 쉬운 곳이 신천군과 구월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신천학살’이라는 숙제는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아주 가까운 ‘구월산’의 절경(絶境)을 찾는 ‘韓民族觀光’을 시작하면 어떨까요!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소와 사자의 이야기’와 易地思之, 정치인의 配慮
[청로 이용웅 칼럼] ‘소와 사자의 이야기’와 易地思之, 정치인의 配慮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 둘은 죽도록 사랑을 하였고 결혼해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소는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 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살코기를 날마다 소에게 대접했습니다. 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둘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잘못 풀어놓으면 커다란 사건이 되듯이, 소와 사자는 심하게 다투었고 끝내는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헤어지고 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말은“ 나는 최선을 다했어” 였습니다. 소는 소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고, 사자도 사자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 사는 무인도일 뿐입니다.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소와 사자’의 이야기를 하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얘기했습니다. [易 : 바꿀 역 / 地 : 땅 지 / 思 : 생각할 사 / 之 : 갈지// ‘처지(處地)를 바꾸어서 그것을 생각하라’로, 다른 사람의 입장(立場)에서 헤아려보라는 말]- 이 말은 [맹자(孟子) 제8편] 이루 하(離婁 下) 29章에 나오는 아래 문장; "禹稷顔子 易地則皆然 聖賢之心 無所偏倚 隨感而應 各盡其道 故 使禹稷 居顔子之地 則亦能樂顔子之樂 使顔子 居禹稷之任 亦能憂禹稷之憂也" / 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것으로 사료됩니다. 즉 뜻을 옮기면;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는 '처지(處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 입니다. 공자의 제자인 안회(顔回)는, 누추한 골목 안에 살면서 한 그릇의 밥, 한 표주박의 물만으로도 만족하며 자신이 선택한 길을 즐겁게 걸었습니다. 또 상고시대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하우(夏禹)는 세상 사람들 중에 물에 빠진 이가 있으면 자기가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렇다며 스스로를 탓했고, 후직(后稷)은 천하에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자신이 일을 잘못하여 그들을 배고프게 했다면서 자책했습니다. 어원은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상(上)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로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는 대립된 의미로 쓰입니다. 걸핏하면 실수를 저질러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역지사지’는 그런 그들에게 던지는 경고요 가르침이 아닐까요. ‘장삼이사’는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름이나 신분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조선조 숙종(肅宗) 때, 칠원 현감을 지낸 주의식(朱義植)은, 말하기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하면 잡류라 하고 말 안하면 어리다 하네.” 그렇다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요. 역지사지란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이해를 전제로 합니다. 상대의 표면만을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까지도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똑같을 수는 없지만 비슷한 경험이라도 해보아야 제대로 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 누군가는 ’나의 자유가 소중하듯이 남의 자유도 나의 자유와 똑같이 존중해 주는 사람, 남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자기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실수를 감싸 안는 사람, 나의 사랑이 소중하고 아름답듯이 그것이 아무리 보잘것없이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사랑 또한 아름답고 값진 것임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기나긴 인생길 결승점에 일등으로 도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억누르기 보다는 비록 조금 더디 갈지라도 힘들어하는 이의 손을 잡아 당겨주며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은 이렇게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란 “국회의 구성원이며, 유권자를 대표하여 입법을 담당하고 국정을 감시”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이 ‘백성’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보다도 ‘배려’를 잘 해야만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은 ‘배려’를 잘하는 지도자일까요? 좁게 21대 국회를 보면, 국민들을 배려하는 의원은 별로 없다는 것이 衆論입니다. 한 極端論者는 ‘配慮’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보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易地思之’는? ‘역지사지’와 걸맞는 속담으론 "자식 길러봐야 부모 사랑을 안다"가 있습니다. 반대말에 적당한 것이 '아전인수'(我田引水) 입니다. ‘자기 논에 물 댄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자기에게 이롭게 되도록 생각하거나 행동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남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무조건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하는 상황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역지사지’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의미대로 행동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我田引水! 아전인수! 2020년 유월, 여야(與野)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두고 대립했었습니다. 절대 다수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상임위원장 자리를 모두 갖겠다는 입장이었고, 미래통합당은 이에 반발하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었습니다. 결국 모든 자리는 여당 몫! 모두가 아전인수격! 모두가 ‘역지사지’는 모르는 듯 했습니다. 2020년 8월 2일, 북한이 내부 기강 잡기에 나선 가운데 최근 평양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행위를 '자본주의 요소'로 규정하고 강력 단속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날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首長 김정은은 2020년 7월 "나라가 어려운데 평양 시민들 속에서 애완견을 기르는 것은 부르조아 사상에 물든 행위, 자본주의 요소의 한 부분"이라며, '애완견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소식통은 "김정은의 한마디에 최근 평양에서는 인민반별로 애완견 키우는 집들을 모두 파악해 스스로 바치게 하거나 강제로 잡아다 처분하고 있다"며 "애완견 가운데 일부는 중앙동물원에 보내고 일부는 단고기(보신탕)집에 팔아 넘기거나 잡아먹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엉뚱한 결론 같지만, 김정은은 백성들을 폭정 속에서 시달리게 하는, 易地思之나 配慮를 아예 모르는 독재자! 애완견을 단고기집에 팔아도 되는 나라의 首長! 부끄러운(?) 靈魂!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한반도 북쪽을 대표하는 ’농마국수‘와 ’서울농마국수‘
[청로 이용웅 칼럼] 한반도 북쪽을 대표하는 ’농마국수‘와 ’서울농마국수‘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한 인터넷 언론매체는 북한의 실정을 보도하면서 “최근 북한의 대부분 시장들에서 냉면이 불티나게 잘 팔리고 있다는 소식! 시원한 오이 냉국에 감자 전분으로 만들어진 농마국수를 찾는 주민들이 국수집 마다 줄지어 서 있다고 합니다. 냉면을 찾는 주민들이 많다 보니 일부 국수집들에서는 국수분에 눌러서 판매하는 국수도 만들고 한편으로는 대홍단 전분공장에서 생산되는 분탕(말린 농마국수)으로 손님들에게 빠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실 북한에서 농마국수는 여름에는 냉면으로, 겨울에는 온면으로 팔린다고 합니다. 메밀로 만든 평양냉면은 지역이 평양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농마국수는 전국 어디를 가도 맛볼 수 있는 음식”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은 북한 글의 한 문장입니다.-”농마국수를 트레백이로 말아 담고 연자주빛 갓김치 국물을 놓은 국수 우에 꿩고기를 쳤는데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여기서 ‘트레백이’는 ”사리를 지어 뭉쳐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농마”는? 대한민국의 국어사전에는 “농마 : 농삿말+農馬”, “농마 : 넝마 (평남)”라는 풀이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다만 인터넷에서 “녹말(綠末; 문화어:농마) 또는 전분(澱粉)은 분자식(C6H12O6)n 의 탄수화물에 다수의 α-글루코스 분자가 글리코시드 결합에 의해 중합한 천연고분자”라고 했는데, 위의 ‘문화어:농마’에서 ‘문화어’는 “북한에서, 평양말을 중심으로 하여 문법, 어휘, 철자법 등을 엄격하게 규범화한 언어를 이르는 말”을 뜻합니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은 “농마 : ① <화학> 엽록소를 가지는 식물이 성장하는 과정에 체내에서 만들어지고 당류로 바뀌여 식물의 씨앗, 뿌리, 줄기 등에 저축되는 탄수화물의 하나. 흰쌀·강냉이·밀·감자 등에 많이 들어있다. 물엿, 포도당의 원료를 비롯한 발효, 제과, 제약, 식료공업 등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서 주 원료로 리용된다.”(880쪽)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농마국수 : 농마로 누른 국수. 주로 감자농마로 누른 국수를 가리킨다./ ~국수와 밀국수.”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 5>은 “농마 : 아밀로즈와 아밀로펙틴으로 이루어진 다당류. 전분이라고도 한다. 저장당질로서 고등식물 특히 감자와 고구마 등의 감자류와 벼, 강냉이, 밀 등 알곡작물에 많이 들어있다...농마는 흰쌀, 강냉이를 비롯한 낟알과 감자, 고구마 등의 주성분인 만큼 사람의 영양에서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여러 공업분야(식료공업, 발효공업, 섬유제지공업, 화장품공업, 제약공업) 등에서도 널리 리용된다.”(306쪽)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 5>은 “농마국수 : 감자나 녹두에서 얻어낸 농마가루로 만든 국수. 주로 감자농마로 한다. 우리 나라 북부지방에서 해먹어온 지방특식이다. 오늘은 우리 나라에 풍부한 감자농마로 여러 곳에서 농마국수를 만들어 먹고 있다. 농마국수는 매끈매끈하고 매우 질긴 것이 특징이다. 농마국수를 만들려면 먼저 농마를 채에 쳐서 끓는 물로 익반죽을 한다. 이때 명반을 물에 타서 조금 넣으면 국수오리가 매끈매끈하고 질기며 빛갈이 좋아진다. 반죽이 다 되면 분틀에 눌러 끓는 물에 1분 30초 가량 익힌다. 물이 끓지 않을 때는 국수가 풀어진다. 익힌 국수는 빨리 찬물에 넣어 2~3회 물을 갈아가면서 헹군 다음 물기를 찌운다. 한편 소고기나 닭고기, 김치, 오이, 배 등으로 꾸미를 만든다. 국수 국물은 고기국물을 기본으로 하여 만든다. 국수는 그릇에 담고 그 우에 꾸미를 보기 좋게 놓고 국수국물을부은 다음 실닭알, 실고추, 실파 등으로 고명하여 낸다.”(307쪽)고 했습니다. 북한의 <조선료리전집(1)>은 “우리 선조들은 국수를 일상음식으로 뿐 아니라 오리가 길다는데로 부터 장수의 상징으로, 없어서는 안될 별식으로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국수는 리용하는 낟알가루에 따라 메밀국수, 농마국수, 강냉이국수, 밀국수 등으로 나누며 마는 방법에 따라 찬국수, 더운국수, 쟁반국수, 비빔국수, 칼국수, 회국수 등으로 나눈다. 예로부터 메밀국수는 평양랭면이 유명하였고 감자농마국수는 함흥농마국수가 유명하였다.“고 했습니다. 위의 ‘농마’와 ‘농마국수’에 대한 북한 자료의 설명이 가장 정확한 것입니다. 북한 자료 중에도 相異한 것이 있습니다. 남한 자료 중에는 상이한 것이 더 많습니다. 남한의 <음식으로 읽는 한국 생활사>는 “함흥냉면(咸興冷麵). 농마국수 : 함경도에서만 감자녹말로 국수를 뽑은 까닭에 독특한 맛의 함흥냉면이 발달했다. 이유는 함경도에서는 메밀을 대량으로 재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경도는 메밀 재배가 어려워 상대적으로 풍부한 감자를 갈아서 녹말로 만든 후에 국수를 뽑았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감자를 재배한 지역 역시 함경도...본고장인 함경도에서도 냉면 대신, 녹말국수 또는 농마국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농마국수라고 하지 함흥냉면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은 해방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남한에서 평양냉면이 크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북한 ’량강도‘의 대표적인 음식, 농마국수! 북한 웹 사이트 <조선의 오늘>은 량강도 혜산시에 위치한 식당 '압록각'에서 판매하는 농마국수를 소개했습니다. 사이트는 "이 고장에서 오래 산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20년 전에 '압록각' 농마국수 맛에 대한 소문이 자자하였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더 좋아졌다고 한다"며 "타지방사람들도 의례히 '압록각'의 농마국수를 맛보군 한다"고 전했습니다. '압록각'은 북한 首長 김정은의 부친 故 김정일의 지시로 괘궁정 기슭에 '양강제1면옥'으로 개업, 이후 '압록각'이라고 이름을 바꿨습니다. 김정일은 생전에 3차례 '압록각'을 찾아 농마국수를 먹고 "정신이 번쩍 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생전에 꼽은 북한 4대 음식은 평양랭면·대동강숭어국·개성보쌈김치·양강도농마국수’입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이후, 회담 참석자들의 옥류관에서 맛을 본 ‘평양랭면’에 대한 찬사! 평양 옥류관보다 더 좋은 식재료를 쓰는 남한 전통냉면집의 냉면 맛은 과연 평양의 것보다 맛이 못할까요? 필자는 옥류관보다 냉면이 더 맛이 있습니다. ’함흥냉면‘만 존재하는 남한의 ’농마국수‘가 앞으로 어떻게 소개되고 상업화될지...남한의 평양냉면이나 함흥냉면 모두가 북한 땅을 뿌리로 하고 있지만 한민족의 전통음식입니다. 우리 한민족 모두가 제대로 된 전통 식(食)문화를 향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남한에는 유사 농마국수가 좀 있습니다. 한마디 附言하건대, 서울의 함흥냉면을 “서울 농마국수”라고 命名하면 어떨까요.?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달력 ⑧한반도의 8월 & 낙동강(洛東江)
[청로 이용웅 칼럼]2020 북한달력 ⑧한반도의 8월 & 낙동강(洛東江)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 원래 캘린더(calendar)란 말은 라틴어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옛날 로마에서는 금전의 대차 관계를 매달 삭일(朔日)에 청산하는 풍속이 있어서 결국 금전출납부가 달력을 의미하는 말로 전용(轉用)케 되었던 것입니다. H.D.소로우(Henry David Thoreau, 1817~1862)는 <숲속의 생활>에서 “캐나다 태생의 채벌군인 그가 가진 책이라곤 한 권의 달력과 한 권의 수학책 뿐 이었다. 달력은 그에게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그는 달력 속에 인류 지식의 요약이 들어있다고 보았다.”라고 했습니다! 북한도 매년 달력을 발행합니다. 북한 조선출판물수출입사에서 발행한 북한의 2020년 달력 표지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The great Comrades Kim Il Sung and Kim Jong IL Will Always Be with Us.)”/ “주체 JUCHE 109 (2020)”/ “조선출판물수출입사 Korea Publications Export & Import Corporation”라는 글이 있습니다. 2020년 새 달력 ‘8월’에는 사진 “백두산 천지”가 있습니다. / 달력 8월의 1일부터 31일 사이에는 [15일]과 [25일/선군절]이 붉게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립추 8.7], [처서 8.23]가 있습니다. 또 8월 달력에는 다음 글들이 있습니다 : 주체 49(1960).8.25.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선군혁명령도를 시작하시였다./ August 25, Juche49(1960): The great leader Comrade Kim Jung Il was started the Songun-based revolutionary leadership.// 8.15. 조국해방의 날/ August 15: Day of Korea's liberation. 1950년 8월의 ‘낙동강방어선전투(洛東江防禦線戰鬪)’! 국군과 유엔군이 1950년 8월, 9월 낙동강 부근 방어선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방어한 전투! 국군은 북한군 기습공격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유엔군의 참전 지원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인 전력의 열세로 북한군의 남진을 저지하지 못하여 1950년 8월 1일에는 낙동강 선까지 후퇴했습니다. 하지만 북한군의 집요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부산 점령을 목표로 한 그들의 8월 공세와 9월 공세를 낙동강 방어선에서 격퇴하게 되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최후의 저지선이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탱하지 못하면 우리 정부는 제주도로 이전하여 제2의 대만이 되거나 아니면 해외에 망명정부를 수립해야 될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또 당시 맥아더 원수가 구상하고 있는 인천상륙작전도 낙동강 방어선이 유지될 때에야 성립될 수 있는 것! 국토의 약 10%에 불과한 부산교두보를 간신히 확보한 선(線)에서 북한군의 전쟁목표를 분쇄했으니, 戰犯 김일성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2020년 그의 손자가 가슴 아파하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김정은은 북한이 '7·27 전승절'로 기념하는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열린 제6차 ‘전국로병대회’에 참석해 "우리는 총이 부족해 남해를 지척에 둔 낙동강가에 전우들을 묻고 피눈물을 삼키며 돌아서야 했던 동지들의 한을 잊은 적이 없다"며 "최강의 국방력을 다지는 길에서 순간도 멈춰서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6·25 남침 한 달여 만에 낙동강 전선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갔다가 한미의 '필사의 사수전'에 막혀 적화통일의 기회를 놓친 일을 언급하며 '국방력 강화'를 강조한 것입니다. 낙동강(洛東江)!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咸白山/1,573m)에서 발원하여 영남지방의 중앙저지(中央低地)를 통하여 남해로 흘러드는 강! 낙동강은 <동국여지승>에 ‘낙수(洛水)’로 표기되어 있으며 <택리지>에는 ‘낙동강’으로 되어 있습니다. 본래 ‘낙동’이란 가락의 동쪽이라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합니다. 영남지방의 거의 전역을 휘돌아 남해로 들어가는 낙동강은 가야와 신라 천년 간의 민족의 애환과 정서가 서려 있고, 임진왜란과 6·25전쟁의 비극을 간직하고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영남인들의 삶의 젖줄이 되어왔습니다. “8월의 강이 손뼉친다./ 8월의 강이 몸부림친다./ 8월의 강이 고민한다./ 8월의 강이 침잠한다./ 강은 어제의 한숨을, 눈물을, 피흘림을, 죽음들을 기억한다.// 어제의 분노와, 비원과, 배반을 가슴 지닌/ 배암과 이리의/ 갈라진 혓바닥과 피묻은 이빨들을 기억한다.// 강은 저 은하계 찬란한 태양계의/ 아득한 이데아를/ 황금빛 승화를 기억한다.// 그 승리를, 도달을, 모두의 성취를 위하여/ 어제를 오늘에게, 오늘을 내일에게 위탁한다.// 강은 8월의 강은 유유하고 왕성하다./ 늠름하게 의지한다. 손뼉을 치며 깃발을 날리며, 오직/ 망망한 바다를 향해 전진한다”(박두진/ 8월의 강) 박두진의 “8월의 강”에서 필자는 ‘洛東江’을 봅니다. 1976년 마산에 보름자리를 마련한 뒤 자주 만난 낙동강입니다. 다음은 가수 최백호가 작사·작곡한 “낙동강)”입니다. -“낙동강 짙은 물/위에 구슬픈/비 내리는데/ 미움도 정이련가 울고있는 물새야/ 찬바람에 흔들리는 저 갈대처럼/ 떠나는 사람들을 원망을 마라/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이별인 것을/ 너 만은 죽지마라 변하지마라”- 江 노래도 좋지만 살면서 만났던 ‘낙동강 7백리’는 ‘아름다운 추억’! 누군가는 ‘낙동강’을 ‘7백리 생명의 강’이라고 하고 “낙동강 7백리 흘러 흘러/ 하얀 모랫벌 이루고/ 뭇 생명들 뛰놀던/ 아릿따운 옛 풍경들은/ 다 어디 가고 녹조라떼냐/ 물고기도 더는/ 살 수 없이 된 강이여/ 22조원 혈세를/ 쏟아부은 4대강 사업/ 삶터에도 재앙을/ 부르고야 말았구나/ 하굿둑 보가 흘러야 할 낙동강물을/ 멈춰 썩게 하였네/ 인간마저 못 살게 된오늘이 뉘 탓이랴”라고 슬퍼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아파 신음하는 낙동강! “팔월이라 한가을 되니 백로 추분 절기로다/ 북두칠성 자루돌아 서쪽 하늘 가리키니/ 선선한 아침 저녁 가을이 완연하다/ 귀뚜라미 맑은 소리 벽 사이에 들리누나/ 아침에 안개 끼고 밤이면 이슬 내려/ 온갖 곡식 열매 맺고 결실을 재촉하니/ 들에 나가 돌아보니 힘들인 보람 나타난다/ 온갖 곡식 이삭 패고 무르익어 고개 숙여/ 서쪽 바람에 익는 빛은 누런 구름처럼 일어난다/ 흰눈 같은 면화송이 산호 같은 고추송이/ 처마에 널었으니 가을 볕에 맑고 밝다”(농가월령가 8월령) / “農家月令歌 八月令”은 한민도·한민족의 8월 노래입니다. 김정은 위원장! ‘낙동강방어선전투’를 듣도 보도 못한 위원장! ‘낙동강 7백리’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한민족의 “농가월령가”를 배워보길 권합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상임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