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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로 이용웅 칼럼] 한민족의 ‘본국검(本國劍)’과 ‘황창무(黃倡舞)’
[청로 이용웅 칼럼] 한민족의 ‘본국검(本國劍)’과 ‘황창무(黃倡舞)’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에는 ‘검도’가 없고 ‘칼쓰기’가 있습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사전들을 보면, ‘검도’를 “일제 때, 앞이 보이게 만든 탈 같은 것을 얼굴에 쓰고 갑옷 비슷한 것을 가슴에 대고 참대로 만든 칼로 몸의 일정한 부분을 치거나 찔러서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조선말사전>,66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도(劍道)=격검’이라고 하고, 그 ‘격검’을 “긴 칼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 안에 상대방의 몸의 일정한 곳을 빨리 찌르거나 베는 정도에 따라 이기고 짐을 겨루는 경기.”(<조선말대사전(1)>,14쪽)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조선대백과사전(1)>은 ‘격검경기’를 “18세기 중엽부터 격검이 완전히 경기화 되였으며 경기에서 보호면이 리용되고 검 끝에 단추를 붙여 안전성이 보장되게 되였다. 격검경기는 1896년 제1차 올림픽경기대회 때부터 정식 올림픽종목으로 되였다.”(619쪽)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격검’은 ‘펜싱’을 말합니다. 현재 북한에는 ‘펜싱’만 있고, ‘검도’는 없습니다. 검도’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다만 사전에서 ‘검도장’(“검도훈련을 하도록 마련되여 있는 장소”), ‘검도복’ (“일본에서, 검도를 할 때 입는 옷”)을 발견할 수 있을 뿐입니다. 북한엔 ‘칼쓰기’라는 용어는 존재합니다. 북한의 <조선의 민속전통 5>의 ‘민속놀이’편을 보면, “칼쓰기는 삼국시기의 고구려무덤들의 벽화를 통하여 생동한 장면을 엿볼수 있다...리조 시기 무기로 사용된 칼을 크게 나누어보면, 긴 칼(장검)과 짧은 칼(단검)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이 시기 구체적인 칼 종류는 6가지가 있었는데 그것은 예도, 제국검, 본국검, 쌍도, 월도, 협도 등 이였습니다. 예도는 칼날의 길이 3자 3치, 자루의 길이 1자로서 우리 나라 봉건시기 칼 가운데서 칼날의 길이가 제일 긴 것이였다. 제독검과 본국검은 예도와 비슷하였다...칼쓰기의 구체저인 방법은 <교전총도>, <예도총도>, <제독검총도>, <본국검총도> 등으로 구분하여 그린 몇 십 가지의 전법에 대한 그림에 전하여온다.”(75~76쪽)고 기술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체육출판사가 펴낸 <동방격투술 이야기>에 기술된 “우리 나라 중세무술체육”에는 ‘칼쓰기’가 빠져 있습니다. 이 장(章)에선 ‘활쏘기ㆍ창쓰기ㆍ격구ㆍ힘쓰기와 달리기ㆍ돌팔매ㆍ합전 (合戰)과 사냥경기’만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104쪽과 105쪽에 [그림 24. 칼쓰기동작(<무예도보통지>중에서)]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검도복’을 “일본에서, 검도를 할 때 입는 옷”이라고 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에 ‘검도’가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조선의 민속전통 6>의 ‘민속 무용’편을 보면, “신라사람들이 창조하고 발전시킨 민속무용가운데는 또한 탈을 쓰고 칼을 휘두르면서 추는 ‘가면검무’가 있었다. ‘가면검무’의 유래는 황창의 얼굴을 본 딴 탈을 쓰고 긴 칼을 비껴들고 추는 ‘황창무’와 결부되여 있다. 기록에 의하면 황창랑이 나이 열일곱살 때 백제에 들어가서 저자에서 칼춤을 추었더니 구경군들이 담을 쌓을듯이 많았다. 백제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다가 왕앞에서 칼춤을 추게 하였는데 황창이 왕을 찔렀으므로 그 나라 사람들이 그를 죽이였다. 신라사람들은 그를 슬퍼하면서 황창의 얼굴을 형상한 가면을 만들어 쓰고 칼춤을 추는 장면을 형상하였는데 지금까지 전한다.(<동경잡기>권1 풍속)고 하였다. 실화적 인물과 결부되여 있는 신라의 가면검무는 무사의 숙련되고 대담한 검술을 보여주는 군사무용의 하나로서 그후, 고려, 리조 시기까지 전승되면서 주로 남해안지방에서 많이 추어졌다.”고 기술했습니다. 평양의 문예출판사가 펴낸 <조선민속무용>은 다산 정약용(1762~1836) 의 <칼춤>을 소개하면서, 이 시에 나오는 ‘진주성안’은 “지난 시기 전라도의 큰 성”, ‘보라빛쾌자’는 “지난 봉건사회 때 군대들이 입던 겉옷, 소매는 없고 두루마기처럼 길다. 보랏빛 쾌자는 보랏빛갈의 쾌자”, ‘푸른색전립’은 “지난 시기 군대들이 쓰던 모자, 벙거지, 푸른빛갈의 전립”라고 주석(104쪽)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칼춤’은 고구려의 전투적인 칼춤의 전통을 이었으며 전기 신라 때 류행되였던 ‘황창무’ 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수 있다. 특히 시 <칼춤>에도 있는바와 같이 ‘황창무’의 수법을 전하고 있다고 한 것으로 보아 ‘황창무’의 호탕하고 힘있는 률동과 실전과도 같은 칼싸움수법이 보존된 것으로 보여진다. 칼자루 목을 마음대로 돌릴수 있는 이 ‘칼춤’은 리조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짐작한다.”(105쪽)고 기록했습니다. 남한의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보면, 제10권에 ‘본국검(本國劒)’을 그림 ‘본국검<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본국검 32가지 기본동작’과 함께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1권의 ‘검도(劍道)’에서 “우리나라 본국검은 신라 때부터 화랑에 의하여 전수되었다 하여 신라검(新羅劍) 또는 신검(新劍)이라 일컫는다. 고려 말기의 화약발명과 조선시대의 천무사상(賤武思想)으로 쇠퇴하였다가 임진왜란 뒤 훈련도감을 설치하고 군사훈련을 시작함으로써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정조 때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의 24반무예 중 본국검 수련이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그 뒤 고종 때에 이르러 구미식 군사훈련을 개시한 뒤 자취를 감추었으나, 1896년 경무청에서 경찰훈련과 육군연무학교의 군사훈련과목에 검술과목이 채택되면서 일본식 검도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777쪽)고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위 백과사전 제1권의 ‘검도’에 대한 설명(777쪽)에는 “광복 후 검도는 일제의 잔재라고 인식되어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나 1948년 6월 3일 재경유단자(在京有段者)들이 모여 대한검사회(大韓劍士會)을 조직 명맥을 유지...1953년 11월 20일 대한검도회(大韓劍道會)의 창립과 동시에 대한체육회에 가입...”이라는 문장도 함께 쓰여 있습니다. 남한은 해방 후 우리의 민족무예인 ‘본국검’을 외면, 아니면 무지(無知)해서 일본식 검도를 대한체육회 종목으로 채택했던 것입니다. 김일성 부자(父子)등 북한의 권력자들이 ‘본국검’을 알 턱이 없습니다. ‘검도’하면 ‘일본 검도’만 생각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북한은 ‘일본 것’하면 대부분 ‘거부’ 합니다. 그래서 사전에서도 ‘검도’를 삭제한 것입니다. 오늘이라도 북한의 수장(首長) 김정은(국무위원회 위원장)이 핵(核)을 포기하고, 앞의 북한 자료를 면밀히 검토한다면, ‘본국검’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합니다. ‘본국검’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며 큰 문화유산입니다. 그런데 남한 사회에선 이 귀중한 무형문화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북한 땅에선 매몰되어 있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한에서 ‘본국검’을 발굴하고 발전시켜온 본국검사(本國劍士)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꾸준히 더 더욱 정진한다면, 머지않아 남한과 북한의 민족무예 검객들이 한 자리에서 본국검술을 겨루고, 한민족의 고유한 춤인 ‘황창무’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진정한 민족무예로 승화시키게 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9월 9일은 북한의 ‘공화국창건기념일’
[청로 이용웅 칼럼] 9월 9일은 북한의 ‘공화국창건기념일’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이 ‘태양’이라는 김일성(金日成)! 1931년부터 1940년까지 만주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다가 일본군 토벌작전에 밀려 소련으로 들어가 1942년 7월 적군(赤軍), 즉 소련극동군에 가담한 김일성은 그 때부터 1945년 시월까지 소련만을 위해 싸운 덕분에, 소련의 훈장을 가슴에 주렁주렁 달게 된 ‘친자첸’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조국을 위해 한 일이 별로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조선말대사전>은 “9.9절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일”(433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일 =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주체 37(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신 불멸의 업적을 영원히 빛내이고 후세 길이 전하기 위하여 해마다 국가적 명절로 기념하는 9월 9일.”(1406쪽)이라고 했습니다. ‘불멸의 업적’을 남긴 김일성...어처구니(於處軀尼) 없습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9월 9일 전쟁설(戰爭說)'이 퍼지고 있는데, 9월 9일에 미국이 북한을 공습하려 한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骨子)입니다. 이 황당한 이야기는 일본의 극우(極右) 출판사 고단샤(講談社)가 발행하는 주간지 <슈칸겐다이(週刊現代)> 기사입니다. 이 주간지는 지난달 7일 '아베 총리가 7월 31일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52분간 전화 회담을 했는데, 이때 트럼프 대통령이 북폭(北暴) 계획을 알려줬다'고 보도했습니다. 일본의 저질(低質) 극우 언론은 부지기수(不知其數)입니다. 김정은이 북핵(北核) 야심 때문에 ‘폭주기관차’를 타고 질주(疾走)하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김정일이 2011년 12월 17일 아버지가 이승을 하직하자, 2012년 2월 12일 제3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2016년 두 차례 1월 6일 제4차, 정권 수립 68주년 기념일인 9월 9일 제5차 핵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9월 3일 제6차! 그러니까 역(逆)으로 전쟁설도 나오고, 혹시 ‘애숭이’가 겁 없이 9월 9일 저주받을 실험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6차 핵실험의 여진(餘震)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함경북도 풍계리에선 추가 도발 움직임이 포착되었고, 병기고에 은밀히 숨겨진 핵탄두를 김정은이 만지작거리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광경이 북한 TV로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미국이 김정은의 자산압류 및 해외여행 금지 등이 포함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안 초안을 안보리에 제출했다고 하는데...천방지축(天方地軸) 최고지도자께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습니다. 김정은은 2017년 ‘신년사’에서 “지난해 우리 공화국에 대한 제국주의 반동세력의 정치·군사적 압력과 제재책동이 극도에 달하였지만, 우리 군대와 인민의 필승의 신념을 꺾지 못하였으며 주체 조선의 도도한 혁명적 전진은 가로막을 수 없었습니다.”라고 점잖게 말했습니다. 그러고도 올해 두 번의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설마 9월 9일에 제7차 핵실험은 하지 않겠죠? 그의 조부(祖父)가 세운 불법국가! <로동신문>은 김일성이 “해방직후 그처럼 복잡한 환경 속에서 숭고한 민족자주리념과 비범한 정치적수완, 크나큰 포옹력으로 온 민족을 묶어세우시고 자주독립국가건설의 튼튼한 정치군사적담보를 마련하신 토대우에서 주체37(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했다고! 그런데 2년 연속 경축일에 핵실험을 한다면 “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은 식민지동방의 첫 인민의 나라, 사회주의조선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의 김일성 업적은 핵실험의 희생양이 될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은 풀뿌리를 먹는 한이 있어도 체제가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핵 프로그램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중국 관영 매체는 한국의 사드 배치에 대해 “북핵처럼 지역의 전략 균형을 깨는 악성 종양이 될 것”이며, 한국은 북핵 위기와 강대국 간 다툼 속에 (이리저리 떠밀리는) 개구리밥(浮萍)이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김정은이 럭비공을 끼고 달릴지, 축구공을 몰고 달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제 그가 조부가 세운 나라가 자신의 잘못으로 핵(核)과 함께 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랄 뿐입니다. 물론 ‘9.9절’ 이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기념일’ 이니 하는 것도 잊혀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도! “백두산 천지에서 제주도 끝까지/ 새 기발 높이여 삼천만은 나섰다/ 산천도 노래하라 이날의 감격을/ 조선은 빛나는 인민의 나라다”로 시작되는 <인민공화국선포의 노래>도!!!
‘송해가요제‘송해 “70년 연예생활 보답”
‘송해가요제‘송해 “70년 연예생활 보답”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기자]국내 최장수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최고령 MC 송해의 이름을 내건 가요제가 마련됐다. ‘송해가요제 추진위원회’는 9월 6일 오후 1시 30분 서울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서울 호텔에서 ‘제1회 종로 송해 가요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는 방송인 송해 씨, 조정식 대회장(FX RENT그룹 회장), 가수 박상철·유지나·이애란 씨 그리고 후원회장, 주관사와 협찬기관 대표 등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식순에 따라, 조정식 대회장은 “국민 MC이신 송해 선생님의 후배 사랑을 담은 송해가요제가 젊은이들의 가수의 꿈을 이루는 신인 등용문이 될 수 있도록 성심성의를 다해 후원하겠다”고 약속을 하고, “FX RENT그룹은 제4차 산업의 선두주자로써 문화예술 인재양성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서 등장한 주인공 송해 씨는 “지금까지 불러왔던 가요들을 되새기고 새롭게 발전시키는 계기를 만들어보려고 가요제를 출범”시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오늘처럼 흥분되고 초조한 기분은 처음”이라면서 “지금까지 70년 연예생활에 받은 사랑과 관심에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다 떠올린 것이 노래”라고 술회했다. 계속 마이크를 잡은 송해 씨는 “우리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감동을 받을 때 부르는 것이 노래”라며 “대중가요는 역사와 함께 흘러왔다. 그런데 그 노래가 요즘 흘러가는 유행에 따라 소외를 받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더 많은 이들에게 잊히기 전에 열심히 불러온 가요를 제 자리에 돌려놓기 위해서 가요제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송해 가요제'는 많은 국민들이 좋아하는 송해 씨와 함께 신인가수를 발굴해내는 가요제로, 오는 9월 1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특설무대에서 펼쳐진다. 9월 3일 1차 예선을 마쳤고, 오는 9월 10일 추가 예선이 있을 예정이며, 총 18개 팀이 본선에서 실력을 겨루게 된다. 그리고 상금은 대상 500만원, 금상 200만원, 은상 100만원, 동상 50만원이며, 수상자는 음반 취입 및 대한가수협회 인증서가 수여된다. 그 외 종로구 소외계층 학생에게 장학금 60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주최 측은 “국내에 수많은 가요제가 존재하지만 송해가요제는 선생님의 명성에 걸맞게 국내를 대표하는 가요제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가수의 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등용문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천명하고,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부탁했다. [약력] 성명 : 송해 (송복희) MC, 코미디언 출생 : 1927년 4월 27일 (만 90세), 북한 재령 신체 : 162cm, 58kg 학력 :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 데뷔 : 1955년 악극단 '창공' 입단 수상 : 2015년 KBS 연예대상 베스트 커플상 2015년 제10회 대한민국 사회공헌대상 특별상 등 경력 : 2012년 100년 달성 기념사업 홍보대사 등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핵(核)실험과 북한 아나운서 ‘리춘히’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핵(核)실험과 북한 아나운서 ‘리춘히’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9월 3일 북한 <조선중앙TV> 아나운서는 오후 2시30분 방송을 통해 "시청자 여러분에게 알린다. 15시 (북한기준)부터 중대 보도가 있겠다"라는 멘트를 시작으로 핵실험 소식을 전했습니다. 외신(外信)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북한의 중대한 발표는 모두 리춘히가 전담하고 있다며 '인민방송원'으로 불리는 그의 이력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그녀는 어떤 사람일까요? 2008년 남한의 주요 언론들을 북한의 여자 아나운서 얘기를 비중 있게 보도했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 앵커 이춘히”라는 제하(題下)의 기사에는 북한이 65살이나 된 ‘간판 여성앵커에 승용차 등 특급대우’를 하고 있다는 얘기 등등(等等)...북한이 정부나 외무성 성명 등을 통해 비중 있는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때마다 조선중앙TV에 단골로 등장하는 리춘히 얼굴은 가끔 남한 TV 뉴스에서 접하게 되는 인물이었습니다. 북한이 정부나 외무성 성명 등을 통해 비중 있는 사안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발표할 때마다 조선중앙TV에 단골로 등장하는 리씨는 '인민방송원'과 '노력영웅'의 칭호를 갖고 북한TV의 메인뉴스인 저녁 8시 뉴스 앵커도 맡고 있었습니다. 2017년 9월 AFP통신은 70대의 나이에도 북한의 최고 인기 앵커 자리를 놓지 않은 리춘히가 이날 북한의 수소탄 시험 성공을 전하며 다시 방송으로 복귀했다고 보도하고, 리춘히가 백두산 천지가 그려진 배경 앞에서 핵실험 소식을 발표하며 흥분에 몸을 떨었고, "수소탄 실험이 완벽한 성공을 거뒀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설명하면서, 그녀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중대방송을 도맡아 온 간판 아나운서라고 소개했습니다. 북한 고위층이 사망하는 길조(吉兆)? 아니면 계속되는 핵실험의 흉조(凶兆)? 아무튼 북한의 대표 홍보 월간잡지 <조선>2008년 4월호 기사 “TV방송원 리춘히”의 전문(全文)을 소개하면서 본 칼럼을 마무리합니다. “우리 인민은 TV화면을 통하여 친숙해진 조선중앙방송위원회 방송원 리춘히를 무척 사랑한다. 박력있고 호소성이 강한 쇠소리나는 목청으로 시청자들을 강성대국건설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65살의 방송원 리춘히, 인민방송원, 로력영웅으로 되기까지의 그의 성장의 갈피갈피에는 어떤 사연들이 깃들어 있는 것인지?! 일제의 군사적강점하에 있던 조선이 해방을 2년 앞둔 1943년 7월 8일 그는 강원도 통천의 한 바다가 마을에서 전공의 딸로 태여났다. 옥동녀가 태여난것은 그의 가정의 기쁨이였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하여 춘히는 부모의 설음만 더해주였다. 주체34(1945)년 8월 15일 김일성주석께서 나라를 해방시켜주시여 이들의 운명을 달라졌다.나라에서는 무료교육으로 그를 중학교와 조군실고급학교(당시)에서 공부시켜 주었고 그의 남다른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평양연극영화대학 배우과에 입학시켰다. 대학을 졸업하고 국립연극단에서 배우생활을 하던 그는 1971년 2월 방송원이 되였다. 방송에 대한 초보적인 개념도 모르고 마이크를 잡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안되던 그해 5월 18일이였다. 춘히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그를 만나시여 따뜻한 사랑과 믿음을 주시며 일을 잘하라고 고무해주시였던것이다. 그 사랑과 믿음은 그를 훌륭한 방송원으로 될수있게 한 원동력으로 되었다. 37년간 그는 언제나 그날의 영광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화술형상을 익히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바쳤다. 매일 출퇴근길에서는 물론 어쩌다 병원이나 료양소에서 치료를 받는 기간에도 거의 화술형상훈련은 계속되였다. 방송원고의 매글자, 글줄 마다에는 그의 고심어린 사색과 탐구가 깃들지 않은것이 없었다. 이러한 나날들을 거쳐 그는 보도를 할때면 호소성이 강하게 하여 시청자들의 심금을 틀어잡고 인터뷰, 좌담회, 기념무대에 나서면 대중과의 호흡을 다감하게 하여 시간가는줄 모르게 하며 성명, 담화를 발표할때면 적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게 맵짜게 답새겨되는 만능의 화술적재능을 소유한 뛰여난 방송원으로 성장하였다.수도 평양의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있는 그의 가정에는 남편과 두아들 그리고 며느리, 손녀가 살고있다. 현대적인 살림집도 고급승용차도 다 나라에서 선물로 준것이다. 춘히는 참으로 행복하였다. 나무는 땅이 좋아야 무성하고 인생은 령도자를 잘 만나야 복된다고들 하였다. 그는 존경해마지않는 김정일령도자께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고 감사의 편지를 올리였다. 걸음걸음 키워주고 이끌어주신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와 함께 조국과 끝까지 운명을 같이하는 열렬한 동행자가 되겠다는것을 맹약하는 내용의 편지였다.“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국화(國花)는 ‘목란(木蘭)’? ‘김일성화(花)’?
[청로 이용웅 칼럼] 북한 국화(國花)는 ‘목란(木蘭)’? ‘김일성화(花)’?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이 세상에서 ‘꽃’하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에 나오는 “하늘과 사람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훌륭한 꽃, 나무에 핀 꽃이 아니요, 마음에 핀 꽃”이 가장 귀한 꽃입니다. 그건 ‘마음의 꽃’이 ‘도(道)나 말씀’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여깁니다. 보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꽃들엔 인간이 붙어놓은 의미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꽃’에서 보는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삶의 철학을 탐구하기도 합니다. 어느 시인(詩人)은 자연 속에서의 삶을 “아침엔 목란(木蘭)의 떨어지는 이슬을 마시고 저녁엔 추국(秋菊)의 떨어지는 꽃부리를 먹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이 시(詩)를 보면 목란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라가 반쪽으로 동강난 뒤 꽃 이름과 의미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남한의 사전에는 “목란=목련.木蘭”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의 <백과전서(2)>를 보면, '목란‘은 “목란과에 속하는 잎이 지는 키나무. 함박꽃나무라고 불리워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에 있는 목란이라는 꽃은 함박꽃과 같이 아름다울 뿐아니라 향기도 그윽하고 나무잎도 보기 좋아서 세계적으로 자랑할만한 것입니다.(<김일성저작집>16권,339페지).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꽃을 란이라고 하는데 나무에 피는 란이라는 뜻에서 함박꽃나무라고 하지 말고 목란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이 나무는 꽃이 아름답고 나무가 건장한 맛이 있어 마치 조선 인민의 슬기로운 기상과 같다고 말씀하시였다.”(726-727쪽)라고 되어 있습니다. 또 ‘목련(木蓮)’을 “목란과에 속하는 잎지는 넓은잎키나무. 원산지는 우리 나라와 일본이다. 우리 나라 남부와 제주도에서 절로 자라며 남부 및 중부의 각지에서 심어가꾼다.”(727쪽)라고 했습니다. 하나의 민족이 자랑하는 꽃이 이렇게 사전에서 달리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요? 남북(南北) 문화 교류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목란’과 ‘목련’ 속에 들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목란’은 북한의 ‘국화(國花)’입니다. 영국은 장미, 멕시코는 선인장, 이탈리아는 들국화, 카나다는 사탕단풍, 페루는 해바라기, 일본은 벚꽃, 한국은 무궁화 등등 대부분의 나라에 국화가 존재합니다. 이 국화는 그 나라의 상징이기 때문에 사랑도 받고 널리 알려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김일성화’와 ‘김정일화’라는 국화보다 더 귀한(?) 꽃이 있습니다. ‘김일성화’는 평양 등 각지에 있는 ‘김일성화김정일화전시관’에서 지금도 ‘귀하신 몸’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 <로동신문>은 “김일성화! 인류의 영원한 태양이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는 4월의 이 계절 여기 평양에서부터 저 멀리 유럽의 발칸반도 한끝까지, 히말라야산맥의 이름없는 한 기슭에서부터 대양건너 아메리카대륙에까지 더욱더 아름답게 피여나 설레이는 불멸의 꽃!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지구상에는 수천수만가지의 꽃들이 피고 있지만 김일성화처럼 깊은 뜻을 안고있는 꽃은 없습니다.>. 한방울의 물에 우주가 비끼듯 김일성화, 바로 이 꽃에 인류의 마음이 깃들어있고 세계가 비껴있다. 김일성화에 비쳐진 인류와 세계, 그것은 행성의 어제이고 오늘이며 래일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로동신문>은 “온 세계의 관심과 기대 속에 해마다 평양에서 태양의 꽃축전이 성대히 열리고 세계적인 원예박람회들에서 김일성화가 만사람의 심금을 틀어잡으며 절세의 위인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과 다함없는 칭송을 불러일으키는 속에 2007년 4월 인도네시아의 보고르시 뿐짝에서는 새로 건설한 <김일성화김정일화온실> 개관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력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유서 깊은 김일성화의 <고향>에서...세월은 끝없이 흐른다. 류수같은 세월 속에 꽃들은 피고지고만, 천년만년 흘러가도 지지 않을 꽃은 김일성화이며 아무리 세대가 바뀐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절세의 위인에 대한 만민의 흠모심이다. 영원한 칭송의 그 세계 속에 오신 날은 있어도 가신 날이 없는 어버이수령님은 오늘도 래일도 우리와 함께 계신다. 인류와 함께 계신다.”고 했습니다. 아마 그 때는 인도네시아 위정자(爲政者)들이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에선 최대(最大) 최고(最高) 명절이라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에 <김일성화축전>이 매년 어김없이 ‘김일성화김정일화축전조직위원회’ 주최로 열립니다. ‘김일성화’는 그렇다 치더라도 ‘김정일화’는? 북 치고 장고 치는 것도 아니고...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한 외국의 수장(首長)이 선물한 꽃을 국화(國花)보다 더 아름다운 ‘불멸의 꽃’이라고 하는 북한!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화를 국화로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한의 미래는 ‘불멸(不滅) 아니 ’자멸(自滅)‘?...미국처럼 국화가 없는 나라도 있지만, 기왕 지정했으면 사랑해야만 마땅할 것입니다. 필자는 집 앞에 서 있는 ‘무궁화(無窮花)’를 늘 보면서 나라꽃 사랑을 실천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해부(解剖)에 대한 변(辯)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문학예술 해부(解剖)에 대한 변(辯)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선데이뉴스신문>과 인연을 맺은 뒤, ‘칼럼’ <선데이뉴스>와 청로(靑魯)의 동행]을 비롯 [말복(末伏), 북한의 삼복철 강행군], [북한 ‘평양랭면’과 남한 ‘평양냉면’], [‘희망(希望)’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북한의 선군절(先軍節)과 선군팔경(八景)], [북한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는가?]를 집필했습니다. 그런데 혹자(或者)는 불문학자가 ‘북한 문화예술에 대해 왜 썼을까?’ 하고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누구에게나 이유는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술이 현실도피가 되고, 어떤 이에게는 정복의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은피(隱避)하거나, 광증(狂症)에 빠지거나, 죽음에 매달릴 수도 있고, 무기로 정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인간은 글짓기로 도피하기도 하고, 정복하려는 것일까요? 1963년 대학에서 문예(文藝)공부를 시작한 이래, 관련된 사람들을 수없이 접했습니다. 비록 책 속에서지만 진실을 찾아 헤매는 많은 문호들을 만났고, 인간성 회복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작가들도 직접 보았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인물은 프랑스의 장-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와 북한의 김정일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이고 국제적인 스타”였으며 “고갈된 프랑스가 아직도 세계에 제시할 수 있었던 유일한 수출 상품”인 실존주의의 주역이었던 사르트르의 삶과 죽음, 특히 인간해방과 인간혁명을 외치며 공산당원 ․ 노동자 등과 인간의 자유 실현을 생각했던 그가 전후(戰後) 공산당 비판에 몰두했던 사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삼팔선’의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빨갱이’라는 극단적인 흑백논리와 민주 ․ 공산주의라는 양극 논리 속에서 성장한 필자에겐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와 그의 공산주의적 사고(思考)가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가 쓴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해일(海溢)도 글짓기의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북한 김정일(金正日)로 인한 충격은 1991년 2월 시베리아의 강풍과 함께 받았습니다. 그 때 구(舊) 소련연방의 하바로프스크 교육대학교 ·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학교와 경남대학교간의 국제교류에 대한 세부규약을 확정하기 위해 출장을 갔었습니다. 그 곳에서 하바로프스크의 로마노프 총장이 선물한 한 권의 책은 필자의 문학세계를 강한 회오리바람이 되어 강타했습니다. 그 논문집은 평양의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가 1988년에 발행한 <문예론문집 4> 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총 8편의 연구논문은 “고전소설 <옥루몽> 연구”, “봉건 말기 우리 나라 평민국문시가문학의 특성”, “현대동화창작에서 나오는 몇 가지 문제점”, “현실에 대한 시적 파악과 표현 방식”, “숨은 영웅들의 형상창조에서 나서는 미학실천적 문제”, “총서 <불멸의 력사> 중 장편소설들에서 형상의 집약화, 집중화”, “불후의 고전적 명작 <피바다》의 구성상 특징”>과 “친애하는 지도자 김정일 동지께서 청소년 시절에 창작하신 혁명적 시가문학의 사상예술적 특성에 대해서” 입니다. 그런데 8편의 논문 모두가 비평의 잣대를 김정일이 집필한 「영화예술론」으로 삼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작품까지 김정일의 이론을 적용해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평가한 허룡갑이라는 문학비평가의 논문은 악몽 속에서나 받을 수 있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충격은 김정일의 정체를 파헤쳐 보고 싶은 욕망과 집필 의욕으로 직결되었습니다. 사실 러시아 출장 전에는, 김정일에 대한 지식이 언론에 보도된 단편적인 말과 글에서 얻은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김정일은 김일성(金日成)의 큰아들이며 후계자라는 사실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글을 써도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에 곁들인 양념거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두 부자(父子)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김일성은 1970년 11월 2일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에서 “우리 당의 혁명사상, 당의 유일사상의 진수를 이루는것은 맑스-레닌주의적인 주체사상이며 우리 당의 유일사상체계는 주체의 사상체계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로동당규약’ 전문(前文)에 “조선로동당은 맑스-레닌주의를 창조적으로 적용한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을 자기활동의 지도적지침으로 삼는다”고 규정함으로써, 주체사상은 ‘로동당’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김일성이 ‘창시’했다는 ‘주체사상’이라는 용어가 1967년 12월 김일성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발설되었고, 1970년 11월에 ‘조선로동당규약’에 명문화된 것입니다. 북한의 문학예술은 김일성을 허수아비로 내세운 김정일의 전유물이었으며, 그의 말과 글 안에서만 존재했습니다. 당(黨) 규약은 김정일의 독재을 위한 ‘덫틀’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문학예술을 선전선동용으로 쓸 정도로 아니까, 막 나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의 김정은은? 문외한(門外漢)이라고 확신합니다. 북한 김정은은 8월 29일 오전 5시57분 평양 순안공항 활주로에서 화성-12형 미사일을 쐈고, 우리의 문(文) 대통령은 30일 아베 총리에게 “일본 상공을 통과한 중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는 도발을 넘어 이웃 국가에 대한 폭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진짜 ‘폭거(暴擧)의 주인공은 김정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문학예술에 대한 연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난 20년 동안 계속해온 필자의 <북한 문학예술 해부(解剖)에 대한 변(辯)>입니다. 이 수술은 통일의 그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 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는가?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는가?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의 죽은 김정일 시대,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희극 공연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덴마크 공영방송 DR-TV 소속 언론인 매츠 브루거가 북한에서의 공연을 마치고 귀국한 뒤 “50년 이상 사상을 통제당하고 검열당해선지 북한 사람들의 유머와 희극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덴마크 코미디언(한국계) 2명과 함께 북한 공연에 나섰던 그는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독재 체제와 사상 통제가 풍자 수준까지 간, (북한은) 한마디로 끔찍한 곳”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는 것입니다. 또 그는 북한 주민의 웃음이 사라진 이유에 대해 “서양 사람한테 우스운 게 북한 주민에게는 우습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굉장히 우스운 내용이었고, 대사를 거의 안 쓰는 연극이어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라고 의아해했습니다. 그는 “방북을 통해 북한에서 웃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면서 “희극 공연 내용이 전혀 정치적인 것이 아니고 이념적인 것도 아니라고 누차 강조했더니 의외로 쉽게 허가해줘서 놀랐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더 재미있는 것은 두 명의 코미디언 중 1명은 장애인이었는데도 방북을 허가해 줬다”면서 “하지만 장애인이 (북한) 관객 앞에 서지 못하게 하는 게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았다. 장애인인 우리 희극 배우가 정상인인 것처럼 위장하고 장애인인 것처럼 연기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브루거의 말을 종합해 보면 북한에는 진정한 희극이 존재할 수 없고, 북한 사람들은 웃음을 잃은 지 오래라는 것입니다. 그가 정말 “방북을 통해 북한에서 웃음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면, 공연을 허가해 준 관리는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독재국가에도 희극이 존재하고, 그 나라의 다수 국민들은 희극을 관람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주체사상’이라는 틀 속에서라도 북한의 희극은 존재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북한의 ‘희극’은?북한의 연극예술 속에도 비극과 희극은 엄연히 존재합니다. 북한의 문예 이론서 <문학예술의 종류와 형태>를 보면, “연극이 장막극, 중막극, 단막극으로 구분되고 단막극이 토막극, 사이극, 촌극 등으로 더 세분되며 생활내용의 정서적 색갈에 따라 구분된 정극, 희극, 비극이 장막정극, 중막정극, 단막정극, 장막희극, 중막희극, 단막희극, 장막비극, 중막비극, 단막비극 등으로 세분”합니다. 또 <문학예술의 종류와 형태>에는 “작품에 반영되는 생활내용의 특성에 따라 구분된 희곡의 기본종류인 정극과 희극, 비극은 또한 거기에 반영되는 생활의 정서적색갈에 따라 더 구체화된 형태와 양상으로 구분된다. 정극은 선동극과 심리극으로 구분하고 희극을 경희극과 풍자극으로 구분하고 비극을 전통적비극과 혁명적비극으로 구분하며 거기에서 구분된 풍자극과 경희극, 전통적비극과 혁명적비극을 더 세분화된 극형태로 구분하게 되는것은 극적묘사방식에 다양한 활용과 함께 반영되는 생활내용의 성격적 특성, 미학적성질과 중요하게 관련된다.”고 했습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북한에도 희극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서두(序頭)에서 말한 “50년 이상 사상을 통제당하고 검열당해선지 북한 사람들의 유머와 희극 감각이 사라진 것 같았다”는 말이 현실감이 나는 것이 김정일 시대의 북한 실상이었습니다. 2002년 북한의 2.16예술교육출판사가 펴낸 <대화첩 주체예술의 위대한 년륜>은 김정일 우상화을 위한 ‘선전선동’ 책자입니다. 그 책 158쪽에 “영화예술인들의 경희극”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김정일이 영화인들과 한 담화, 즉 “영화예술인들의 무대공연을 조직할데 대하여” 등(等)과 <경희극 편지>의 사진들 입니다. 이 경희극은 영화인들의 ‘거짓 희극’ 무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과연 ‘진정한 희극’이 존재했을까요? 백성들에게는 ‘희극’이 아니라 ‘비극(悲劇)’이었을 것입니다. 그럼 지금의 김정은 시대에는? 북한 TV에서 보는 어린이들의 미소(微笑)와 북한 희극은 무관합니다. 문화예술의 문외한(門外漢)인 김정은이 ’희극‘이 무엇인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북한 사회에는 칠흑(漆黑)같은 ‘암흑 속 희극’이 존재할 뿐입니다. 미래의 북녘 땅에 ‘진정한 희극(喜劇)이 존재’하기를 빌어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의 선군절(先軍節)과 선군팔경(八景)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의 선군절(先軍節)과 선군팔경(八景)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북한의 ‘선군절(先軍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즉 북한에서 매년 8월 25일에 ‘선군정치’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국가적 ‘명절’이자 휴식일 입니다. 북한은 1995년 원단 김정일이 ‘다박솔 초소’를 방문한 날을 선군정치 시작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김정일이 김일성과 같이 1960년 8월 25일 류경수 105근위 땅크사단을 현지 지도한 날을 기려 2000년대 초에 선군혁명 영도 기념일로 지정했다가, 2005년 6월에 선군절로 정했으며, 2013년 8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령도’ 개시 50주년을 맞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 선군절을 휴식일로 제정했습니다. 서울 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서울에 최초 진입한 부대이름입니다. 2009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1차 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을 개정하여 전문에 있던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삭제하고 대신 ‘선군사상’과 ‘주체사상’이라는 단어를 병기해 넣으면서 주체사상과 함께 선군사상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통치 이념에 추가해서 명문화했습니다. “1995년 1월 1일, 죽은 김정일(당시 국방위원장)은 주민들에게 ‘신년사’ 대신 "피눈물 속에 1994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라는 메모 형식의 글을 보냈습니다. 이날 새벽. 김정일은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고 가장 먼저 '다박솔 초소’를 방문했습니다. 눈길을 헤치고 병사들을 만난 그는 “나는 오로지 군을 믿고 나아가겠다.”라는 취지의 담화를 나누었습니다. 이후 북한은 ‘다박솔 초소방문’을 본격적인 선군정치의 출발점으로 선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 없는 초소에 불과했던 ‘다박솔 초소’가 ‘조선민주주의인민 공화국’을 대표하는 ‘팔경’ 중 하나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지구촌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절경(絶景)입니다. 북한의 월간지《천리마》2005년 2월호는 ‘아름다운 조국강산’ 에서 <선군팔경-다박솔초소의 설경>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습니다. 이 기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초소를 찾으셨던 그날의 설경은 참으로 장관이였다. 촘촘히 늘어선 다박솔에 밤새 내려 앉은 서리꽃이 아침해빛을 받아 눈부신 빛을 뿌리고 있어 참으로 희한한 설경을 이루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초소의 절경을 한동안 바라보시다가 이런 곳을 다박솔 초소라고 부른다고 말씀하시였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주체84(1995)년 양력 1월 1일과 함께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음속에 뜨겁게 자리잡은 선군팔경의 하나로 영원히 빛나리라.”(87쪽)라고 했습니다. 북한의 ‘선군팔경(先軍八景)’은 ①백두산의 해돋이 ②다박솔 초소의 설경 ③철령의 진달래 ④장자강의 불야성 ⑤울림폭포의 메아리 ⑥한드레벌의 지평선 ⑦대홍단의 감자꽃 바다 ⑧범안리의 선경! ‘백두산’을 제외하고는 북한을 대표하는 절경(絶景)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이상한 ‘8경’입니다. ①의 선정 이유는 “백두산은 김일성주석을 모시고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조선의 우수한 아들딸들이 나라의 광복을 위하여 피어린 항일대전을 벌린곳이며 김정일령도자께서 탄생하시여 총포소리를 자장가소리처럼 들으시며 자라나신 유서깊은 곳이다. 하기에 조선인민은 백두산을 가리켜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조선혁명의 뿌리가 내린 조종의 산, 혁명의 성산이라고 부른다. 오늘 백두산의 해돋이가 그처럼 아름답고 장엄한 것은 이곳 자연이 펼치는 매혹과 함께 그가 담고있는 심오한 의미로 하여 선군조선의 첫째가는 절경으로 되고있다.”(<조선>2004년 10월호)입니다. ③김정일이 여러 차례 방문한 강원도(북한) 고산군 고개에 핀 꽃 ④자강도 강계시 에 중소형발전소가 많아, 장자강 일대가 불야성(不夜城) 풍경 ⑤‘룡포혁명사적지’가 있다는 강원도(북한) 법동군의 폭포 소리 ⑥경지를 정리해서 조성한 평안북도 태천군의 농지 ⑦북한 최대의 감자생산지인 량강도 대홍단군의 감자밭 ⑧ 황해북도 서흥군의 ‘범안협동농장’이 있는 농촌마을...아무리 아버지가 한 일이더라도 김정은 조차 이해하지 못할 북한의 대표적 팔경입니다. 북한의 대표적인 사전인 <조선말대사전>은 ‘팔경’을 “8가지의 이름난 경치. 조선~, 관동~, 관서~”(781쪽) 라고 풀이했습니다. 여기서 ‘선군8경’의 진실, 선군정치의 실체는 아주 쉽게 간파할 수 있게 됩니다. 북한이 지정한 ‘선군8경’은 김정일의 선군정치와 우상화 등과 연결된 것이 특징입니다. 북한의 <선군태양 김정일 장군>(평양출판사 刊>은 “김정일장군은 독창적인 선군혁명령도, 선군정치로 총대혁명위업을 빛나게 계승발전시키시여 새로운 선군시대를 열어놓으신 위대한 선군태양” 이라고 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선군태양’이 지고 있습니다. 선군과는 아예 무관한 김일성이 “선군사상을 창시” 했다고 헛소리를 지껄였던 김정일 추종자들은 지금 숙청에 떨고 있습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는 변방에 사는 한 노인이 기르는 말이 도망가고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는데, 그 아들이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징병(徵兵)을 면하여, 다른 사람처럼 전사(戰死) 하지 않고 살아났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서,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은 예측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확실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미구(未久)에 [북한의 선군절(先軍節)과 선군팔경(八景)]이 지구상에서 없어질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김정은’도!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희망(希望)’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청로 이용웅 칼럼]‘희망(希望)’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희망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희망을 품고 희망을 그리고 그 희망을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집니다. 매일 매일 희망을 쓰고 또 말하면 무의식에 기록되고, 그 무의식이 생각과 행동과 환경을 조정하여 결과적으로 꿈의 실현을 이뤄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자주 희망을 말하십시오. 하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입니다. 영국 속담에 “큰 희망은 위인을 만든다.(Great hopes make great men.”라고 했습니다. ‘희망(希望)’은 참으로 아름다운 말입니다.// 보봐리 부인이 꿈꾸던 행복은 비소(砒素)의 독약이 되어 돌아 왔고, 맥베드 부인이 꿈꾸었던 그 행복은 피 묻은 손의 악몽(惡夢)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희망이 크면 절망(絶望)도 큽니다. 통일(統一)이라는 희망을 꿈꾸며 살던 우리 한민족이 점점 절망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은 처서(處暑) 전날이 어제, 담화를 통해 “미제 호전광들이 현 상황에서 심중하게 행동하며 올바른 선택을 하라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하고 위험천만한 군사적 도발을 걸어온 이상 무자비한 보복과 가차 없는 징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밝히고, “우리 혁명무력이 임의의 시각에 징벌의 불소나기를 퍼부을 수 있게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발사 대기 상태에서 놈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김정일은 한반도를 ‘불바다’로, 아들 김정은은 ‘불소나기’를 퍼붓겠다고 하니 우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오늘이 처서(處暑)입니다. 여름이 지나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고 하여 처서라 불렀다고 하는데, 오늘 전국 곳곳서 비…"천둥·번개 동반“한다고 합니다. "미국, 북한 미사일기지 공격용 '극초음속 대포' 실전 배치키로" 한 가을의 문턱에서 우리가 과연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을까요? 다만 우리는 ‘희망(希望)’이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을 잘 아는 민족입니다. 슬기로운 민족입니다. 자랑스런 민족입니다. ‘불바다’와 ‘불소나기’는 한반도와 무관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희망의 길로...김정은이 중국으로 도피할 탈출계획(an escape plan for fleeing over the border to China)과 비밀 탈출 경로(secret escape route)를 마련해놓고 있다는 영국 일간지의 보도가 진실이기를 기대해 봅니다. 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대표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평양랭면’과 남한 평양냉면
[청로 이용웅 칼럼]북한 ‘평양랭면’과 남한 평양냉면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 내조국의 랭면/ 육수물이 시원하니/ 마음도 시원해 좋고/ 수면이 참말 질겨// 우리 민족향기 넘쳐 나는/ 평양랭면 우리 자랑이야/ 한그릇을 먹고 나면/ 또 먹고 싶은 마음/ 그 누구나 하나같이/ 곱빼기를 요청하네// 우리 모두 함께 먹고 나면/ 온몸에는 새힘 부쩍 솟네/ 내 조국과 내 민족을/ 더더욱 잘 알게 하니/ 돌아가는 마음속에/ 기쁨 가득 넘쳐나네// <후렴> 아-이 참말 제일이야/ 정신없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알 수 없게/ 그렇지 그래 그렇지 그래/ 정말 그래"- 북한의 가요 “평양랭면이 제일이야”의 가사입니다. 북한의 '조선료리협회'가 펴낸 홍보 책자 <이름난 평양음식>을 보면,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자랑하는 평양의 특산음식은 산뜻하고 맛있고 영양가 높으며 약리적가치가 큰 독특한 조선료리의 우수성을 그대로 보여줍니다."라고 했고, 대표적인 평양음식으로 '평양랭면'을 비롯 쟁반국수, 평양온반, 송편, 단고기국, 소고기전골, 소발통묵, 대동강숭어국, 잉어회, 녹두묵채, 감자지지개를 꼽았습니다. <이름난 평양음식>에는 "평양랭면은 촉감이 부드럽고 향기가 독특하며 입맛이 구수한 메밀가루로 만든 국수입니다. 국수오리가 지나치게 질기지 않아서 먹기에 알맞춤하며 국수국물과 꾸미, 국수그릇과 국수말기가 특별하여 예로부터 소문이 났습니다. 때식("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음식")음식으로도 좋지만 술마신 뒤에 먹는 음식으로 더욱 어울립니다." 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선 '메밀국수' 중에서 '평양랭면'을 첫 번째로 꼽습니다. 다음은 <조선료리전집(1)>의 “만드는 법”입니다. -“1.소고기와 돼지고기, 닭고기는 저가락이 쑥 들어갈 정도로 삶아서 건져내고 국물은 소금, 간장, 파, 후추가루로 맛을 들여 차게 식힙니다./ 2.삶은 소고기, 돼지고기는 얇게 저미고 닭고기는 적당하게 찢어서 식힌 고기국물에 담가두며 배추김치, 무우김치는 고기와 같은 크기로, 오이는 버들잎모양으로 썰어 소금, 식초, 고추가루, 다진 파와 마늘, 사탕가루에 무쳐놓습니다. 배는 껍질을 벗겨 굵게 채쳐놓습니다./ 3.메일가루를 중조물에 버무려 70℃의 물로 잘 반죽한 다음 살랑살랑 끓는 물에 국수를 누릅니다. 끊는 물속에 들어간 국수오리를 저가락으로 조심히 헤쳐주다가 국수가 떠오르면 조리로 건져 찬물에 2~3번 씻은 다음 사리를 지어 물기를 찌웁니다./ 4.식힌 고기국물에 국수사리를 담가내여 그릇에 담고 김치, 오이, 고개, 배, 삶은 닭알쪽을 보기좋게 올려놓은 다음 찬 고기국물을 부어 식초, 간장과 같이 냅니다.”-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대백과사전(23)>에는 "<동국세시기>의 자료에 의하면 메밀국수를 무우김치와 배추김치에 말고 돼지고기를 넣은 것을 랭면이라 하는 데 관서지방의 국수가 제일 좋다는 기록이 있다. <해동죽지>에서도 평양랭면이 제일 좋다는 기록이 있다. (….). 평양랭면은 맛이 좋을 뿐 아니라 겉보기와 차림새에도 특색이 있어 조선 국수의 대명사로, 민족음식을 대표하는 우수한 료리중의 하나로 되고 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크나큰 사랑에 의하여 오늘 평양에서는 옥류관을 비롯한 수 많은 식당들에서 평양랭면을 만들어 인민들의 식생활을 더욱 풍족하게 해주고 있다."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평양랭면’은 우리 민족의 대표적인 음식이며, 한민족이 사랑하는 ‘웰빙 푸드’입니다. 남한엔 필자(筆者) 뿐 만 아니라 애호가들이 참 많습니다. 전국 곳곳에 ‘평양냉면’ 집이 즐비합니다. 남한의 평양냉면은 쫄깃한 면발과 시원하고 깔끔한 국물 맛 때문에 남녀노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지금 같은 여름철에는 최고의 음식입니다. 그런데 국적 불명의 냉면도 많이 있습니다. <조선료리전집(1)>의 “만드는 법” 그대로 조리하는 남한의 음식점이 과연 한 집이라도 있을까요? -“슬금슬금 다가오는 더위/ 스리슬쩍 다가오는 허기/ 살금살금 다가오는 위기/ 두근두근 찾아오는 식사 시간/ 생각난다 느껴진다/ 시원한 육수에 메밀 면발/ 침 고인다 못 참겠다/ 지금 내가 땡기는 건 평양냉면/ 평 평양냉면/ 양 양많이로/ 냉 냉냉하다/ 면 넌 완벽해/ 먹 먹어 보자/ 어 어서 빨리/ 보 보여 줄게/ 세계 최고 평양냉면”- 남한의 가요 “평양냉면”의 가사입니다. 이 노래를 보면 우리 남한에서도 ‘평양냉면’이 아주 많이 사랑받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70대의 미국 수장(首長)이 북한에 대해 "화염과 분노" 이어 "종말과 파멸"..이라고 ‘말폭탄’을 퍼붓고 있는 지금, 30대의 북한 우두머리가 졸개를 통해 ‘서울 불바다’, ‘괌 주변 포위사격’ 등 운운(云云)하는 지금! 필자가 냉면 타령을 하는 것은 북핵(北核) 문제에 대해 우왕좌왕(右往左往)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정신 번쩍 나게 진짜 ‘평양냉면’을 맛보게 하고 싶은 심정에서 입니다. 물론 앞으로 우리 남한 사람들이 진정한 ‘평양냉면’을 공유할 수 있는 때가 하루 빨리 오기를 고대하는 마음이 진심입니다. <북한 ‘평양랭면’과 남한 평양냉면>이 하나 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이 용 웅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