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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얼굴, 군중들의 폭력은 시작된다
빼앗긴 얼굴, 군중들의 폭력은 시작된다
<Review> 빼앗긴 얼굴, 군중들의 폭력은 시작된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얼굴>(Mug)을 바라보며- 이공희 영화컬럼니스트 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Malgorzata Szumowska) 주연: 마테우시 코스치우키에비치(Mateusz Kosciukiewicz) 제작연도, 제작국가: 2018년, 폴란드 러닝타임: 91분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얼굴(Mug)"은 폴란드 영화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야체크는 거대한 예수상의 설립을 위해 일하는 젊은 노동자로 등장한다. 그는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는 신의 존재를 만들어가는 인간군상의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데이트를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다. 그가 그녀에게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조심스럽고 가슴 떨리게 청혼할 때, 여자친구는 그의 감미로운 얼굴을 보며 기뻐한다. 아니, 그 당시만 해도 그녀는 그가 가진 얼굴의 매력에 빠져든다. 물론 그의 얼굴과 함께 하는 그의 영혼도 사랑했을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찰나로 뒤바뀌는가. 어느 날 그가 둥그런 공사장의 아래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얼굴을 잃어버리는 곳으로 추락한다. 그 순간부터 모든 사운드는 꺼지고 침묵의 시간들이 흐른다. 병원을 찾아오는 가족들, 지인들, 병실에 누운 그가 멀리서 보인다. 이윽고 그가 침대에서 걸터앉았을 때도 그는 등을 돌리고 있다. 그의 달라진 얼굴은 결코 처음부터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옆모습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드러날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예수상의 공사는 중단되고 만다. 무엇을 작가는 그려내려고 하는가. 그의 절망인가. 기가 막힌 운명에 대한 복수인가. 이 영화는 자극적인 감정의 분출이나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드라마를 결코 운반하지 않는다. 상업영화 스타일에서 벗어난 이야기 전개방식이 이 작품의 새로운 시선이다. 그가 그 소중한 얼굴을 잃고 흉측한 모습으로 바뀐 것에 대한 좌절이나 분노, 괴로움에 대한 우울증이나 폭음 등을 결코 보지는 못한다. 아니,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의 분노가 아니라, 달라진 그의 얼굴을 대하는 인간들의 달라진 모습이다. "나야". (It's me) 거울을 보며, 야체크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들을 그렇게 인정하고 바라본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에게 꽃을 들고 찾아갔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도피해버린 그녀의 그림자를 찾아 그는 헤맨다. 결국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마주서서 서로를 볼 때, 그녀의 표정은 흠칫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이 남자가 내 남자였는가. 아, 이건 아냐. 어느 날, 그녀는 나이트 클럽에서 모든 것을 다 잊은 듯 춤을 춘다. 그녀가 새로운 남자친구와 춤을 출 때 그는 나타난다. 그 어느 때와 같이 그가 클럽에, 사람들 앞에, 그녀 앞에 찾아온 것이다. 그녀 앞에서 예전처럼 함께 춤을 추려 하지만, 그것조차 무참하게 좌절된다. 주변의 사람들은 흉측한 모습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그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언제 네가 우리의 이웃이었니? 우린 너를... 잘 모르겠네. 달라진 그의 얼굴을 보는 가족들, 특히 어머니는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의 음성은 지극히 냉담하다. 마치 악마의 얼굴이라도 보듯이 그녀는 이제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어머니로 변한 것이다. 그의 애인조차 신부에게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죄를 묻는다. 신부는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그 남자와 무슨 부정한 짓을 했는지 세심하게 캐묻는다. 애인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에 대한 도덕심을 이 영화는 순진무구하게 드러낸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악마가 들어와서 얼굴이 망가진 것이라며 신부에게 악마를, 사탄을 몰아내달라고 간청한다. 신부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내심 수긍했던 것일까. 결국 그 아들에게 씌워진 사탄을 쫓는 의식이 열리고, 야체크는 드디어 그것에 분개한다. 당신들은 미쳤다...! 뛰쳐나가서 휘청대며 거리를 걷는 그에게 어린 아이들은 그에게 괴물! 괴물! 이라고 외친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고 등을 돌리고 만다. 이 작품은 그들의 달라진 내면을 투영해가는 시간들을 쫓고 있다. 그에 비례해서 신을 향한 구원의 기도는 끊이지 않는다. 이웃을 추위에 떨게 하지 말지어다. 아멘. 모두 교회로 가! 촌놈들아. 빈 자리는 예수님의 자리. 우리의 이웃을 향한 자리이다. 그들이 신을 향해 외쳤던 숭고한 기도나 독백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유대인이 빌딩에서 일하다가 떨어지면? 이라는 영화 속의 대사의 답변은 차갑다. -사회에 이득이지. 영화의 메시지는 망가진 얼굴에 대한 인간들의 외면에서 출발하여 더 나아가서 군중들의 차별의식을 고발한다. 일종의 집단폭력과도 같은 군중들의 죄악을 해부하는 것이다. 독일계 유대인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이라는 뛰어난 저서에서, 군중들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폭력은 실로 위험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에 대한 엄중한 물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찾아와서 그것을 타개해나가려는 평범한 남자, 야체크의 의지가 그의 이웃들에 의해 무참하게 배척을 당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집단폭력이며 전체주의에 기원한 마녀사냥이다. 세상의 편견, 차별은 보이지 않는 집단폭력이 되어 주인공의 불행을 더 깊은 나락으로 빠뜨려버린다. 그들은 스스로 저지른 모순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부조리한 모순에 더욱 동조해가는 대중들은 그들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마적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도 아주 흉측하게 점점 더 심한 가해자가 된다. 마치 주인공 야체크의 일그러진 얼굴처럼, 망가진 영혼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이처럼 폴란드 영화 "얼굴(Mug)"은 주인공이 처한 불행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신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어느 날 예수상의 얼굴은 옆으로 돌려져있다고 사람들은 수군댄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향한 예수상의 시선은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조차 두려운 것일까. 바로 거기에, 어리석은 자들을 외면하는 예수의 냉엄한 시선이 숨어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인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는 이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독특한 화면구성은 두 개의 시선을 한 화면에 보여준다, 가려진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듯이 하나의 화면구성을 포커스 인하거나 아웃시켜서 분리시킨다. 이는 영화 속의 인물의 시점을 뒤바꾸어 보여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심리를 객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또한 여성감독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력은 자못 진지하고도 엄숙한 전개방식으로 이끌어간다. 인간 내면의 부조리한 모순과 군중들의 어리석은 폭력의 단면들을 부각시켰으며, 앞으로 주인공이 헤쳐 나가야 할 불투명한 미래를 제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야체크가 묵묵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롱 쇼트로 부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가 걸어갈 길에 또 다른 출구는 없는가. 그에게 손을 내미는 자들의 눈빛과 표정은 과연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그것들은 이 영화가 던져주는 마지막 화두로 남는다. (이공희 컬럼니스트)
”말할 수 없는 비밀” 제작진 신작 ”군중낙원”, 26일 개봉
”말할 수 없는 비밀” 제작진 신작 ”군중낙원”, 26일 개봉
[선데이뉴스신문=김종권 기자]'말할 수 없는 비밀’ 제작진 영화 ‘군중낙원’이 12월 26일 개봉을 앞두고 메인 예고편을 공개했다. 영화 ‘군중낙원’은 1969년 중국 본토와 대치 중인 대만의 금문도에 입소한 신병 ‘파오(원경천)’가 군중낙원이라 불리는 군영 내 공창 ‘831 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게 되면서 미스터리한 여인 ‘니니(완첸)’와 나누게 되는 애틋한 우정과 시대의 아픔을 견뎌내야 했던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운명을 그려낸 작품이다. ‘바람의 소리’ ‘말할 수 없는 비밀’ 등 중화권 최강 제작진과 ‘비정성시’ ‘밀레니엄 맘보’ ‘자객 섭은낭’ 등의 세계적인 거장 허우 샤오시엔 참여했으며 베를린국제영화제를 포함해 전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 및 수상한 화제작이다. 또한 ‘맹갑’으로 제47회 금마장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 수상, ‘러브’ ‘자객 섭은낭’ 등의 연기파 배우 원경천이 강제 징집되어 금문도에 입소하게 된 신병 ‘파오’로 출연, 삭발 투혼까지 펼쳤다. 더불어 가수 겸 배우로 활약하고 있는 완첸이 ‘831부대’로 발령받은 ‘파오’와 묘한 인연을 나누게 되는 7번 방의 여인 ‘니니’ 역할로 인상적인 연기를 펼치며 ‘군중낙원’으로 제51회 금마장영화제 여우조연상 수상, 제9회 아시아 영화제 최우수 조연상 후보 등으로 지목되었다. ‘청설’로 대만의 첫사랑 아이콘 대명사였던 진의함이 8번 방의 여인 ‘지아’ 역을 맡아 연기 변신을 선사한다.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군중낙원’의 메인 예고편은 ‘파오’가 군영 내 공창 ‘831부대’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장면으로 시작하며 눈길을 끈다. 강제 징집되어 원치 않는 군 복무를 하는 것에 대한 고뇌를 하면서도 ‘니니’와 신념까지 나누며 우정이 깊어지고 행복함을 즐기는 모습은 애틋함을 전한다. 하지만 8번 방의 여인 ‘지아’가 ‘남편 죽인 살인자와 왜 친하게 지내?’라는 말에 동요하는 ‘파오’, ‘장 상사’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하는 모습 등이 이어지며 파오, 니니, 지아, 장 상사 간의 갈등이 무엇인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장면, 폭격을 피하는 장면 등이 이어지며 ‘거짓은 진실이 되고 진실은 거짓이 되는 곳’이라는 카피 문구는 시대가 만들어낸 비극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사연과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며 기대를 고조시킨다. 애틋하면서도 스펙터클한 메인 예고편을 공개해 눈길을 끌고 있는 ‘군중낙원’은 26일 개봉한다.
[청로 이용웅 칼럼] ‘군중미술’·‘민중미술’과 이강용 화백의 작품세계
[청로 이용웅 칼럼] ‘군중미술’·‘민중미술’과 이강용 화백의 작품세계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조선대백과사전(18)>은 “주체사상의 기치 밑에 개척되고 자주시대 미술의 본보기로 개화발전하고 있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미술의 자랑찬 력사는 주체미술의 혁명전통을 마련하여”주고 “혁명발전의 매 시기 미술이 나아갈 앞길을 뚜렷이 밝혀”주었으며 “미술가들을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 준 김일성과 김정일의 “뜨거운 사랑과 현명한 령도의 빛나는 력사”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한민국의 ‘미술(美術)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는 것이 북한 미술입니다. 이 같은 북한 미술에는 ’군중미술(People’s Art)‘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군중예술, 군중음악, 군중문학 등도 있습니다. 북한에서 매년 발행되는 <조선중앙년감>을 보면 “당의 문학예술활동의 대중화방침이 더욱 철저히 관철됨으로써 각계층 근로자들 속에서 사상예술성이 높은 문학작품들이 수많이 창작되였으며 군중예술활동도 더 활발히 벌어졌다...이해에 군중예술 활동도 활발히 진행되였다. 제1차 군인가족예술소조경연, 전국인민예술축전, 제27차군무자예술축전, 전국 청소년학생들의 독창, 독주, 독무경연, 전국웅변대회 등이 진행되였으며 이 과정에 인민군군인들과 각계층 근로자들의 문화적소양이 더욱 높아졌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북한에서 ‘군중예술“은 전문 예술인이 아닌 보통사람들의 창작 행위를 의미합니다. 가령 전시가 된 일반 탄광 근로자의 그림은 ’군중미술(People’s Art)‘의 하나입니다. 대한민국의 ‘민중미술(民衆美術/People’s Art)‘은 1980년대 중반 부산 지역에 등장한 리얼리즘 미술입니다. 민중미술은 5·18 민주화 운동의 과정에서 국가에 의해 자행된 광주 학살과 폭력에 저항하고, 기존 미술계의 고답적이고 추상적인 화풍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미술계의 새로운 사조(思潮)입니다. 이를 위해 민중미술가들은 역사와 민중을 형상화하는 리얼리즘 미술을 추구했습니다.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五一八民主化運動記錄物)”은 1980년 5월 18일에서 27일까지 전라남도 광주시에서 군사정권의 부당한 독재에 항거하여 일어난 5·18 기록물들로, 2011년 5월 25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5.18’이 대한민국 민중미술의 시금석(試金石)이었습니다. 민중미술가들은 역사와 민중을 화폭에 끌어옴으로써 민중 미술을 형성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1985년 민족미술협의회와 1988년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의 결성을 기점으로 조직적인 민중미술 운동이 전개되면서, 더 많은 미술인들이 참여했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이강용’ 이었습니다. 그 무렵 ‘노동운동의 기지’였던 마창공단 지역에서 걸개그림과 깃발 등을 제작하다 인연을 맺은 서울미술공동체에 합류한 그는 1984년 서울로 상경해 첫 단체전에 참가, 다음 해 <시대정신 판화전>과 신군부의 대표적인 민중예술 탄압 사례로 꼽히는 <한국 미술 20대 힘전>에 참여했습니다. 그 때 작품을 빼앗기고 항의하던 작가들이 구속되는 와중(渦中)에서 그는 남은 작품들을 모아 부산에 이어 마산에서 <해방 40년전>을 열기도 했습니다. - “붓을 노 삼아 ‘역사에서 우주로’ 민중미술 오디세이 40년” - ‘화업 40년’ 개인전 연 이강용 화백 화가는 물론 그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그리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그리기 위해서 살아왔고 그리기 위해서 살고 있으며 그리기 위해 살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천재 화가’란 뜻...“그는 역사라는 이름의 소멸과 승부한다. 그의 작업은 소멸의 역사에서 불멸의 꿈을 되짚은 회화적 복기다.” 최근 어느 일간지 기자가 쓴 화가 ‘이강용’의 이야기입니다. 화가 ‘이강용’, 그는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전업(專業) 작가입니다. 하지만 그를 천재작가라고 한 기자의 말에는 진정성이 없습니다. 그의 삶과 창작세계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함부로 천재작가 운운하는 것은 모독이 아닐까요? 물론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끝없이 정진(精進)하고 있는 뛰어난 화가에게는 결코 찬사(讚辭)가 아닐 것입니다. ‘이강용’! 고등학교 2학년 때 마산의 한 다방에서 첫 개인전 연 뒤, 오로지 창작에만 매진했던 그! ‘민중미술가’라는 굴레를 쓰고도 고향의 토굴에서 작업에만 매달렸던 그! 경남 마산에서 출생해서 지금까지 고향을 떠난 적이 없는 토박이인 그는 ‘민중미술의 사실주의적 시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멸되는 존재의 운명에서 태어나는 영혼의 불길을 놓치지 않은 낭만주의자’라는 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강용’은 환경(環境)과 미술을 접목시키는 작업을 계속해 왔습니다. 또한 경남불교미술협회 창단에 앞장을 설 정도로 불교미술에 조예가 깊은 그는 종교적 작품세계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산 미술계의 자존심인 서양화가 이강용 화백이 마산 정법사에서 10월 20일(금)부터 26일(목)까지 개인 작품전을 엽니다. 그는 전시회에서 '미륵-불화, 환경-풀꽃, 우리 고향-마산' 등을 주제로 오일파스텔로 구현한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울에 버금가는 질(質) 높은 미전(美展)이라는 평가입니다. ‘이강용’의 작품을 보면서 필자의 머릿속에 문득 피카소(Pablo.R.Picasso /1881~1973)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화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그릴 수는 없다. 그는 다만 상실된 것, 망각된 것, 또한 오해된 것을 재발견 할 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