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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강 시인 김평 선생, 합천군에 '문학관 유치'
황강 시인 김평 선생, 합천군에 '문학관 유치'
[선데이뉴스=박민호 기자] 지난 14일 황강 시인 김평 선생 문학관유치를 위해 합천군 문준희 군수와 시인 김평 노벨문학산 추천자와 추진 위원 관계자들이 합천 군수실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이날 유치식에 참석한 인사들은 수려한 합천만의 관광자원인 해인사 및 가야 다라국의 금칼 및 옥들이 전시된 합천박물관 그리고 합천박물관힐링센터 등과 연계해 시인 김평의 문학관을 세계 속 관광명소가 되게 만들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시인 김평은 그동안 남다른 열정과 애정으로 시를 써왔을 뿐 아니라 세계평화 운동에도 기여해왔다. 이에 합천군 측은 시임 김평 노벨문학상 추천 관계자들과 함께 문학관 유치 시행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신재천 한국영화협회 대구 회장은 “이번 문학관 유치를 통해 단국아래 아래 최초로 2022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도전하는 시인 김평의 높은 학문적 업적과 그의 인류사랑 정신을 전세계에 전해 힘든 상황에 처한 인류의 회복에 깊이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자리에 함께한 시인 김평은 직접 준비한 필묵과 금분으로 자신만의 필체로 “오유지족”이란 글자를 합체로 표현해 문준희 합천군수에 전달, 의미 있고 역사 있는 날을 기렸다. 한편 이날 자리에는 시인 김평(세계평화문화예술인연합회 총재), 문준희 합천군수, 변종철 합천군수 비서실장, 신재천 대경명화인협회 회장, 이성대 목사 등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노벨문학, 신임 김평 총재‧이권호 회장 취임
노벨문학, 신임 김평 총재‧이권호 회장 취임
[선데이뉴스신문=박민호 기자] 노벨문학재단이 김평 총재와 이권호 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고 김평 시인의 노벨문학상을 추천하는 선포식을 가졌다. 노벨문학재단은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에서 노벨문학 총재와 회장을 취임하는 기념식을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는 작곡가 겸 색소폰 아티스트 김덕 교수의 베사메무초‧무인도‧청춘고백 연주와 함께 장윤숙 시인의 축시로 막을 올렸다. 이어 유재기 노벨문학 발행인의 개회선언 후, 김평 신임 총재와 이권호 회장을 위촉했다. 이날 축사는 김서연 노벨재단 여성총재, 이원욱 국회국방위원이 맡았다. 격려사는 강정화 한국문인협회시분과회장, 양태석 노벨문학 명예총재, 박종유 노벨문학 상임고문이 맡았다. 총재로 추대된 김평 회장은 시인이자 교수로 ▲필 사마르대학교 석좌교수 ▲한국노벨재단 문학분과위원장 ▲동양문학 회장 ▲문학사랑신문 회장 ▲세계독도사랑연맹 문학 부총재 등을 지냈다. 또한 그의 수상경력으로는 ▲월간순수문학 시부문 신인상 ▲계간 지구문학 수필등단 ▲명예기 수상 ▲공로표창 1등급 사장상(한국전력공사) ▲영랑문학상 ▲대한민국건국100주년기념문학상 ▲2020위대한대한민국국민대상(전국기자협회) ▲UNNGO문화예술지도자상(노벨타임즈) ▲공로훈장(전국자연보호중앙회) ▲유관순문학상 ▲바이든 미대통령취임기념 한미문학상(한미친선연합회) 등이 있다. 김편 노벨문학 총재는 초대사에서 “코로나 시대 이후 하강의 자세를 견지해야만 버틸 수 있게 됐다”며 “우리나라는 단 한 번도 노벨문학상에 도전도 못한 부끄러운 현실이 우리 모두를 슬프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벨문학 총재와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역사상 처음 겪어보는 이 무거운 과업을 잘 행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그러나 여기 계신 여러분의 격려와 성원을 받아 성실한 자세로 열정을 다하다 보면 기필코 노벨문학상이라는 큰 산도 넘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이번 계기로 온 자연과 우주의 사랑을 이 땅에 실천할 수 있는 아우라있는 사람이 되겠다”며 “시인이라는 천명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현실의 벽을 시 한편으로 나타내겠다”고 전했다.
[인터뷰] 시가 써 내려간 사랑, 시인 김평 ‘그 발자취를 걷다’
[인터뷰] 시가 써 내려간 사랑, 시인 김평 ‘그 발자취를 걷다’
Q. 안녕하세요. 시인님,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시인 김평이라고 합니다. 본명은 김외식입니다. 저는 한흥당 수연 김경필(도동서원) 선생님의 자손입니다. 저희 조부시지요. 굉장히 엄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친구랑 싸워서 맞고 돌아오면 “왜 맞았냐”고 혼날 정도였으니까요. 자랑은 아니지만 저는 좀 특이한 면이 많아요. 어릴 적에는 마을에서 신동이라고 불렸어요. 그래서 나이가 어림에도 아이들보다는 어른들과 많이 어울렸죠.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수석을 놓치지 않았어요. 머리가 좀 비상했던 것 같아요. 동네가 아주 시골이라 버스가 안 다녔어요. 도시를 가려면 큰 강을 건넜어야 했지요. 처음 도시를 알게 된 것은 친구를 통해서였죠. 그렇게 대구라는 도시를 알게 됐죠. 대구 대륜고등학교가 있는데 거기에 입학을 했어요. 이후에 2학년 때 군대에 가게 됐죠. 정말 웃긴 건 저희 아버님이 저를 군대에 빨리 보내시려고 호적에 본 나이보다 많게 등록했어요. 그래서 군대도 빨리 갔죠. 당시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랑하는 지금의 아내(당시 여자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거였어요.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아내와 헤어지는 것은 정말 힘들더라고요. 대학교 때는 일찍부터 영어강사로 과외를 나갔었어요. Q. 아내분과의 일화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입대하고 훈련소에서 아내가 너무 보고 싶으니까, 군대에서 밤마다 편지를 썼어요. 어느 날은 보초를 서는데 미치겠는 거예요. 그래서 담을 넘어 근처 점포에 가서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제가 정신이 없었는 지 편지에 군에서 쓰는 칼을 같이 넣어서 보낸거예요. 편지를 받고 아내가 얼마나 놀랐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겨요. 그거 때문에 혹시 아내가 도망을 안 갔는지도 모르죠. 아내와 근 10년 동안 연애를 했는데, 너무 아끼다보니 손도 잘 못잡았었어요. 저는 지금까지 아내 외에 다른 여자를 만나본 적이 없어요. 이거 하나는 제 스스로 지키고 있어요. 그리고 아내에게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Q. 어떻게 ‘시인’이 되셨나요? 사실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건 아니었어요. 아내한테 편지를 쓰려고 온갖 책을 다 읽었었죠. 시도 사실 사랑에서 시작된 거예요. 책을 많이 읽다보니 자연스레 지식이 많아졌고 먼저 수필을 쓰기 시작했죠. 수필을 쓰다 보니까 더 마음을 함축해서 표현할 수 있는 시도 쓰게 된 거죠.. 시기로 치면, 고등학교 때부터에요. 1980년대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죠. 당시 4학년 때 학생회장이 됐어요. 학생회장이 되고 동문들의 어깨에 앉아 학교 앞 거리를 활보했던 게 생각나네요. 그렇게 대학 시절을 보내고 졸업 한달 전에 한전 산하 원자력발전소에 취업을 하게 됐어요. 근무지에서 노무자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최초의 잡지 ‘빛터 창간호, 제 2, 3집’을 발간했어요. 또 외국인들과 많이 어울렸고, 그를 통해 외국의 선진의식도 빨리 배우게 됐고, 자연히 견문이 넓어졌어요. Q. 시인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시인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를 참 좋아합니다.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그렇게 섬세하게 표현한 작품이 잘 없어요.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사람은 이름처럼 산다고 하잖아요. 자꾸 불러주는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게 사람이라니까요. Q. 혼돈의 시대, 시가 꼭 필요한 이유가 있다면? 공자는 ‘시를 300편 읽으면 사무아’라고 했습니다. 이는 “시를 300편 정도 읽으면 사악한 마음이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시를 많이 읽음으로 이 마음이 정화가 되고, 사람간의 전쟁과 갈등이 사라진다고 믿어요. 요즘 인터넷에 등재된 시들을 보면, 시가 아닌 것 같아요. 시어에 은유(메타포), 비유가 없어요. 그냥 서술이죠. 시도 공부를 해야하고 또 ‘은유’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우리가 잘 모르는 한 가지. 시인을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는 거예요. 시인은 관형어에요. 직함이나 직업을 뜻하는 말이 아니죠. 그래서 김평 시인이 아니라, 시인 김평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맞아요. Q. 명시는 어떤 시일까요? 옛날은 수명이 짧아서 일찍 죽었기에, 미사어구가 들어간 이미지 시가 많았죠. 요즘은 수명이 길어졌기에 인생의 경륜, 지식이 모두 함께 녹어난 삶을 담은 시가 명시라고 생각합니다. 고로 저는 ‘시’를 쓸 때 사소한 걸로 쓰지 않으려 노력해요. 시에도 삶과 생명이 담겨 있어야 해요. Q. 인생에 가장 큰 고비가 있었다면? 한전에 있을 때 상사의 불의를 참지 못하고 회사를 박차고 나왔던 거요. 그 이후에 고생을 많이했죠. 지금은 생각해보면 조금 참을 걸 하는 생각도 들어요. 참는 것도 경험이고 깨달음이니까요. Q. 시인 김평이 가장 애정하는 자신의 시는? “달성 비슬산 창꽃 속 여왕님”이라는 시입니다. 이 시는 우리나라 신문과 방송에 다 나왔었어요,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JTBC에서 시의 의미를 잘못 해석한 거예요. 제 시를 가지고 “박근혜 前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라고 평했는데, 사실 이 시의 본 뜻은 그게 아니었어요. 이 시는 박 前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기도 6년 전에 쓴 시였죠. 또 당시 정치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도둑질 하지 말고 똑바로 해”라는 충언으로 쓴 시였어요. 기회가 되면 JTBC관계자들은 “사과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시인의 ‘시’를 마음대로 해석하고 난도질 했으니 당연히 사과해야하는 것이 이치잖아요? 달성 비슬산 참꽃 속 여왕님 달성 비슬산 참꽃 속에 여왕님 한 분 계시네 하늘 향한 왕관 쓰고 더없는 태양 향해 오롯이 서 있네 흰 붕대 감기운 손 마디 마디 국민의 아픔 연분홍빛 꽃잎 물결 도탐게 꽃피우네 달성 비슬산 참꽃 지구 만왕 데불고 오월의 여왕 되시어 참꽃 대궐 이루네 -김평 Q. 앞으로 계획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모든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평화를 위해 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잘 살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싶어요. 최근에 단체를 만들었는데, '세계문화예술인 유니온(연합)'입니다. 여기엔 훌륭한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매년 세계평화를 위해 노래하고자 합니다. 최근에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 영어로 변역한 시집도 만들고 있어요. 이 코로나도 무심코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말과, 관계가 모두 더럽다보니 닫아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코로나 이후의 시대는 ‘불’이 아니라 ‘물’의 시대로 바뀝니다. 내가 혼자 화려하게 타올라 잘 살기보다는, 물처럼 살아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코로나 이후에는 나누고 봉사하는 삶이 돼야 합니다. 서로 돕지 않으면 인류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정치도 종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야 전쟁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온 인류가 코로나를 통해 모두가 평화를 진정으로 바라는 시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 김평이 걸어온 길 ◇1953년 합천 쌍책 출생, 본적은 독도리 안용복길 2로, 초계중 및 대구 대륜고등학교를 거쳐 계명대 건축과 수석으로 졸업. ◇1981년 9월 대학교로부터 최고 영예인 '명예기패'를 수상,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관리자과정)을 졸업. ◇계명대학교 직선 학생회장(2부)을 지내며, 80년 민주화의 봄시절 국내 최초로 민주화 선언 (80.4월 전두환,신현확 퇴진 선언)을 위해 국내 최초로, 민주적 절차로 2.28 탑을 행진하여 일약 계명대학교를 국내 민주화 대학 성지로 고양시키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의 계기를 마련하였고,그후 군부독재 종식의 토대가된 노태우 6.29선언의 발판이 되었으나,아직도 역사적 진실이 힘 있는 자의 부정의한 역사왜곡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역사적 진실이 묻혀져 있는 매우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있음. ◇1981년 대학 졸업 전, 한국전력공사 1기로 공채시험에 합격, 울진원자력 및 기타 각부서에서, 토ㆍ건 감독관으로 근무. 한전 100년만에 최초 특진으로 감독과장으로 진급, 20여년 동안 한전에 봉직. *울진원자력 감독관으로 근무시 '한울문학회'를 결성, 한전 최초로 문예지 "빛터 창간호,제2,3집을 발행인 및 주간. *충남지사 근무시에 월간지 《들국화》1,2,3호 발행 및 주간으로 문학활동, *특히, 울산화력발전소 근무시에는 간부 및 직원 시창작강의를 통해 직원들의 정서함양에 크게 기여함. *또한 초계중학 총동창회에서는 총무직을 수행, 최초로 동창회지 《草友誌》발간, 발행인을 맡아 창간함. *1993년 한전일산열병합 준공기념 시비 및 휘호석 전국 공모전에 시 <백석동 유래비>와 휘호"光明無崖" 및 설명석으로 각각 대상으로 선정됨,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공로 1등급 한전사장상을 수상. *1997년 월간『순수문학』시 부문 신인상에 박태진 박재삼 원영동 진동규시인의 천료로 문단에 등단. *1998년 한전 울산화력 문예대전 시부분 금상 수상, *2005년에는계간《지구문학》에 '5.18을 말한다' 외1편으로 신인수필문학상 수상으로 수필가로 문단에 등단. *2009년에는시집《난초의 눈물》영랑문학상 본상 '젊은시 최우수상'을 수상. *2019.8.11.중국중심예술전람전 중국중심문학상(자유시 부문) 수상. *2019.8.19.대한민국유명작가 국회갤러리 초대전에 대한민국 건국100주년기념문학상(서사시 부문)-등을 수상. *2019,11,1일 <독도사랑 나라사랑 독도사수대회 제13회 특집>에 민족시인으로 '특별공로상'(울릉군수) 수상. *2020, 전국기자협회 주관,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대상 문학발전 대상:부문 (문학부문) 수상. *2020년 제24회 황금펜문학상 수상. 힘내라 대한민국 유명작가시화전. (노벨타임즈 주관) *2020.09.05.일 U.N NGO,NOBEL TIMES주관 '문화예술 지도자상'을 국내 최초로 수상, 공로훈장 수상. *한전근무시에는 한전 공로 1등급 사장상 수상외 표장장,공로패,감사패 10여회 수상으로 한전 최다 수상기록 보유. *초계중학 총동창회 공로패 수상(총동창회장). *충남대학교 행정대학원
홍콩 언론 "北, 김정은 대신 김평일 여론 부상"
홍콩 언론 "北, 김정은 대신 김평일 여론 부상"
[선데이뉴스=정성남 기자]홍콩 언론이 북한 안팎에서 김정은을 대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으며 대체자로는 김정은의 숙부인 김평일(사진)이 부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亚洲周刊)은 "김정은 시대 진입 후 북한 내부에서 체제 전복 동향이 점차 뚜렷해짐에 따라 '김정은을 대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또한 북한 내에서 김정은이 하룻밤 사이에 리영호, 현영철 등 충신을 잇따라 숙청함에 따라 북한군 고위층 내부에서 이에 대한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으며 자신도 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여론이 형성됐다고 밝혔다. 또한 과거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부터 북한 주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날마다 조금씩 쌓이고 있는것으로 알려졌으며, 탈북자들 내에서도 김정은 위원장 대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 동생인 김평일을 손에 꼽고 있는데, 이는 지난 4월29일 서울에서 개최한 "제 1회 전세계탈북자대회"에서 나온 말로서 당시 대회에서는 북한망명정부를 최대한 빨리 수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는데, 당시 초대 지도자로 김평일을 내세웠다. 다수의 탈북자에 따르면 김평일의 외교정치 경향은 친중, 친미도 아니다. 이같은 임계점에 서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만약 북한이 붕괴될 경우 북한 내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중미 양국 입장에서 김평일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조커와 같은 인물이다. 여기에 한미 관련 부문은 지난해 북한 김정은 등 수뇌부를 참수하는 내용의 '작전계획 5015'를 이미 발표한 바 있다. 또한 중국 내부에서도 현재 '북한은 중국의 근본이익에 부담이 된다' 또는 '북한 지도자 체제를 다시 바꿀 필요가 있다' 등 불만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 이 신문은 "이같은 주변 국가의 분위기는 북한 주민의 최고지도자 교체 움직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같은 여론이 뚜렷해짐에 따라 차기 최고지도자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아주주간이 자체적으로 취합한 한국 통일부 등 정보기관의 정보에 따르면 김평일은 한때 김일성의 후계자로 꼽혔으나 김정일과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배척당했고 1982년부터 평양의 정계중심에서 멀어졌다. 김평일은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핀란드, 폴란드 등 국가의 대사를 역임했으며 지난해 1월부터 현재까지 주체코북한대사관 대사를 역임하고 있다. 신문은 김평일이 차기 지도자로 부상한 이유에 대해 "지도자 품성과 리더십 능력, 백두산 혈통이라는 정통성, 북한 체제를 개혁하려는 성향 등 최고지도자의 3대 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추세 때문에 김정은은 자신의 숙부인 김평일을 잠재적인 최대 위협으로 보고 있다"며 "북한 정부는 지난 2014년 12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고위급 인사를 체코로 파견해 김평일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온바오닷컴은 "붕괴의 전조? 아니면 개방 전야?"라며 이같이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학계에서는 현재 북한 내 이같은 흐름을 놓고 붕괴 직전의 상황이거나 개방의 전조라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정치리스크 전문 컨설팅기구인 위키스트래트(WikiStrat)는 지난 8월 80명의 전문가를 모집해 열흘 넘게 북한정보를 분석한 '북한의 붕괴' 분석보고서를 발표했다.고 전했다. 당시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 김정은 정권은 경제마비, 정치적 동요, 군사 간섭 등 3대 원인 때문에 10년 내 붕괴할 가능성이 80%에 달했다. 또한 김정은의 암살 또는 심장마비 등으로 인한 사망 등 북한의 붕괴를 일으킬 돌발요소가 40여가지나 된다고 분석했다. 반면 뉴욕대학 국제관계학 연구생인 왕싱위(汪星宇)는 지난 8월 북한 여행을 다녀온 후 "현재의 북한은 지난 80년대의 중국을 매우 많이 닮았다"며 "북한은 붕괴 직전이 아닌 개방 전야"라고 주장했다. 왕싱위는 당시 여행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연구는 북한정권을 안정시키는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고 국제적으로 복잡한 변수가 오히려 북한에게 호재로 작용해 이미 경제개혁 궤도로 접어들게 했다고 분석했다. 학계에서의 논쟁이 활발한 가운데 복수의 한 신문은 북한망명정부가 수립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리 크지 않다고 내다봤다. 이 신문은 "해외 탈북자가 수가 많지 않은 데다가 한국으로 탈북한 사람들은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한 상태"라며 "해외 각국의 탈북자조직 간의 교류도 그리 많지 않고 이들의 주목적은 구직인만큼 망명정부 수립을 제기한다고 해도 이는 비정부기구(NGO) 성격이 더 강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