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토론회, "정쟁 난무한 말싸움 거듭"
[선데이뉴스신문=정성남 기자]어제(23일} 저녁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대선 후보 토론회는 주제인 외교안보를 이탈해 정쟁과 말싸움만 거듭되는 등 기대치에 크게 못미쳤다는 평가가 나왔다. 주제를 벗어난 상호 후보간 공방이 줄을 이으면서 외교안보 분야 자질을 확인할 수 있는 정책토론은 아예 실종되다시피 했다.
시작과 동시에 심상정 정의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나란히 이른바 '돼지흥분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의 사퇴를 요구하면서 이날 토론회의 정쟁을 예고했다. 홍 후보가 사과는 했지만 안 후보는 홍 후보를 쳐다보지도 않고 질의했고, 심 후보는 아예 홍 후보에겐 질문도 하지 않았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토론 말미에 "자격 없는 후보"라고 홍 후보 공세에 가세했다.
이에 홍준표 후보는 유승민 후보와 함께 문재인 후보의 안보관과 말 바꾸기를 문제 삼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문 후보는 이들의 공세에 공격적인 태도로 대응했다.
먼저 유 후보는 "유엔 북한 인권 결의안에 대해 김정일에게 사전에 물어봤느냐고 하니 작년에는 기억에 안난다고 했다가 올해 2월에는 국정원을 통해 확인해봤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토론회에서는 또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며 "이 문제는 비록 10년전의 일이지만 북한 인권이라는 문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후보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는 "지난번 토론회에서는 홍 후보가 제게 거짓말을 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유 후보가 또다시 거짓말이라는 표현을 썼다. 제대로 확인해 보길 바란다"며 "여러번 말했듯이 사실이 아니다. 당시 11월16일 대통령 주재 회의에서 대통령이 기권으로 결론을 내렸다. 유 후보가 합리적인 개혁적인 보수라고 느껴왔는데 이 대선 길목에서는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펴고있어 실망스럽다"고 반격했다.
홍 후보는 "2006년 일심회 간첩단 사건이 있었는데 국정원이 조사해서 검찰에 넘긴 사건"이라며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이 조사를 했는데 2006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김승규 국정원장을 불러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뒀다. 이런 사건이 위키리크스에 폭로가 돼있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는 "그럼 성완종 메모에 (이름이) 나와있으면 홍 후보는 유죄냐"며 "기가 막힌다. 그만하자. 지금 제일 자격 없는 사람이 홍 후보다 다들 사퇴하라고 하지 않느냐. 이런 것은 유치한 토론태도 아니냐"고 맞섰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문 후보에게 1대1 공방을 시도하는데 토론시간을 '올인'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문 후보에게 "제가 갑(甲)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고 물으며 문 후보 측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네거티브 문건을 문제 삼았다. 이어 "저는 아내 임용에 관련해 계속 밝혔다. 문 후보는 아들 채용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며칠만 버티고 가자는 것 같다"며 특혜 논란 검증을 위한 국회 교문위와 환노위 개최를 요구했다. 문 후보는 "나는 이미 해명이 끝났고 안 후보는 열심히 해명하라"고 일축했다.
안 후보는 "지난 대선 때 제가 양보를 했다. 이명박 정권 연장은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그런데도 내가 MB 아바타냐"라고 거듭 캐묻기도 했다. 문 후보는 "아니면 아니라고 본인이 해명하라"고 했다. 그는 이어 "저 문재인을 바라보지 말고,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하라"고 반박했다. 홍 후보가 문 후보와 안 후보의 토론을 보며 "초등학생 감정싸움 같다. 참 안타깝다"고 비꼬기도 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지난 토론회에서 보여줬던 문 후보에 대한 날카로운 공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문 후보와 공방은 선거법 등 정책 분야에 그쳤다.
오히려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을 문제 삼아 문 후보를 공격하는 유 후보를 향해 "그 당시 제가 대통령이 됐으면 기권 결정을 했을 것이다. 남북이 평화로 가는 절호의 기회인데 그걸 살리는 정무적 판단이 가능하다고 본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그는 안 후보에게도 "북한을 주적으로하면 정상회담이 가능하겠나"며 "보수표를 의식해 색깔론에 편승한 것 아니냐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고 공세에 나섰다.
한편 어제 저녁 열린 중앙선관위 주최 첫 대선후보 토론회에서도 각 후보들이 화제성 발언들을 정리해 보았다.
두 번째 스탠딩 방식으로 치러진 이날 토론회에선 선거가 임박해서인지 더 직설적이고 단호한 표현들이 동원됐다.
최근 '돼지흥분제' 논란에 휩싸인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토론 초반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는 굴욕을 경험했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모두 발언에서부터 "성폭력 범죄를 공모한 후보를 인정할 수 없다. 홍 후보는 사퇴해야 한다"면서 "오늘 홍 후보와 토론하지 않겠다. 국민 여러분께 양해 부탁드린다"고 잘라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도 홍 후보 사퇴를 강력 촉구하며 공동전선을 폈다. 안 후보는 홍 후보에 질문을 하거나 답변을 하면서도 "사퇴하라고 말했기 때문에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겠다"고 했다. 심 후보는 아예 질문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는 홍 후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 의혹 제기 등에 대해 "대답할 가치가 없다"면서 간단히 일부 사실관계만 언급한 뒤 "다시 확인해보라"고 했다.
결국 특별한 질문을 받지 못한 홍 후보는 홀로 시간이 남아 혼자 연설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편 홍 후보는 다른 후보들의 논쟁에 중간중간 "초등학생 토론", "한심한 토론"이라고 비판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는 안 후보에는 "보고 말씀해라. 국민들이 조잡스럽게 생각한다"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유 후보는 이날 토론에서도 북한 관련 이슈로 문 후보를 공격했다. 유 후보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주장과 문 후보의 주장이 배치대는 것과 관련해 "만약 문 후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후보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문 후보가 "(사실 관계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다음 토론회에서 질문해달라"면서 "유 후보는 개혁적 보수로 봤는데, 대선 길목에서 또다시 구태의연한 색깔론을 들거나와 실망스럽다"고 반박했다.
유 후보가 "문 후보의 발언이 거짓말이면, 후보를 사퇴할 용의가 있느냐"고 재차 압박하자, 이를 보다 못한 심 후보가 나섰다.
심 후보는 유 후보와 문 후보의 공방을 끊으면서 "저는 좀 답답하다. 중요한 것은 정부 결정이 잘 됐느냐, 잘못됐느냐지 진실공방이 아니"라면서 "정치권이 늘 진실공방으로 끌고가 이전투구하는 것은 고질병"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유 후보에 "대통령이 되면, 북한과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인가? 적대적으로 담을 쌓을 것인가?"라고 역공을 펼쳤다.
안 후보의 질문은 지지율 1위인 문 후보에 쏠렸다. 안 후보는 유 후보와 심 후보가 북한 관련 이슈로 공방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저는 주제를 좀 바꾼다"면서 문 후보에 "제가 갑철수냐, 안철수냐?"고 물었다.
다소 뜻밖의 질문에 문 후보가 못 알아들은 척 다시 물었지만, 안 후보는 여전히 "제가 갑철수냐, 안철수냐"고 거듭 물었다.
그러면서 안 후보는 문 후보 측이 제작한 네거티브 공세 관련 문건을 판넬로 만들어와 흔들면서 "국민 세금으로 네거티브 비방을 한 증거가 다 있다"고 했다.
이어 문 후보 아들의 취업특혜 의혹과 관련해 "국회에서 교육문화체육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열어 투명하게 검증받자"고 수차례 압박했다.
그러자 문 후보는 "손을 드시죠"라며 발언권 기회를 따로 얻지 않고 발언하는 안 후보를 제지한 뒤 "전 해명 끝났다. 안 후보는 열심히 해명하시라. 상임위 개최를 어떻게 요구하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두 번째 자유토론 시간에도 안 후보의 깜짝 질문 공세는 계속됐다. 안 후보는 문 후보에 "제가 MB 아바타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문 후보는 "항간에 그런 말도 있다"고 하자, 안 후보는 "문 후보의 생각을 묻는 것"이라고 압박했다.
안 후보는 "민주당에서 저를 MB 아바타라는 소문을 유포하는데, 막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문 후보는 "아마 SNS에서 공격받는 것을 말하는 모양인데, 저는 그런 악의적인 공격을 다른 후보들이 받은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이 받았다"면서 "저는 (안 후보가 MB 아바타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한편 문 후보를 거세게 밀어부치던 안 후보는 유승민 후보의 공격에는 "그거 참...그만 좀 괴롭히십시오"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유 후보가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유세 연설에서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저는 초대 평양대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문제 삼자, 안 후보는 인상을 찌푸리며 이같이 말했다. 유 후보가 지속적으로 공격하자 안 후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안 후보는 "유 후보, 정말 실망"이라면서 "박 대표는 제가 집권하면,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잘라 말했다.
유 후보가 박 대표와 관련한 질문을 계속해서 퍼붓자 안 후보는 "박 대표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라며 거듭 "아유, 유 후보 실망이다"고 했다.
후보들의 네 번째 토론은 24일과 25일 연이어 열릴 예정이다. 선거날인 5월 9일 이전까지 남은 토론회는 모두 네 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