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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산 낭가파르밧”, 독일인들에게 낭가파르밧은 왜 운명의 산이 되었나
”운명의 산 낭가파르밧”, 독일인들에게 낭가파르밧은 왜 운명의 산이 되었나
오랜 시간 동안 독일정부와 독일인들에게 희망이자 염원, 그리고 자존심이 되어 주었던 히말라야의 산 낭가파르밧을 배경으로 한 영화 <운명의 산 낭가 파르밧>이 오는 12월 12일, 개봉을 앞두고 독일과 낭가파르밧 사이의 각별한 인연을 공개했다. 1860년대, 140개에 달하는 알프스의 고봉들이 수많은 등반가들의 목숨을 건 도전을 통해 전세계에 그 신비한 모습이 모두 공개된 이후 알프스는 더 이상 매력적인 등반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1895년, 앨버트 머메리가 히말라야의 8,000미터급 고봉인 낭가파르밧에 처음 도전한 후 인류는 히말라야에 위치한 눈 덮인 미지의 14개 봉우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는 마치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한 강대국들의 치열한 도전의 무대와도 같은 것이었는데, 그 중심에는 낭가파르밧이 있었다. 최초 도전자였던 영국의 앨버트 머메리가 낭가파르밧에서 사망한지로부터 37년이 흐른 1932년, 독일인 빌리 메르크는 독일 정부의 든든한 지원을 배경을 등에 엎고 낭가파르밧 정상 정복을 목표로 산에 올랐으나 해발 6,960미터 지점에서 한 달간 이어진 상상할 수도 없었던 눈보라에 결국 등반을 포기하고 만다. 이렇게 시작된 독일 원정대의 낭가파르밧 도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인 1939년까지 5차에 걸쳐 이루어졌으나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게다가 기상악화로 인한 눈사태로 대원 20명이 목숨을 잃게 되는 참극까지 발생하게 된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과 전쟁에 따른 피해복구 등으로 잊혀졌던 독일의 낭가파르밧 정복의 꿈은 1953년 의사 헤를리히코퍼 박사가 이끄는 6차 원정대에 의해 이루어진다. 모두 게르만혈통으로 구성된 원정대원들 중 오스트리아인 헤르만 불은 16시간 30분만에 정상에 오르며 독일 정부의 국가적 염원을 성취하기에 이른다. 이후 낭가파르밧은 전후 독일 재건의 상징적인 모델이 되었고, 독일 국민들의 단합된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 헤를리히코퍼 박사와 그의 원정대에 의한 도전이 이어졌지만 헤르만 불 이후 단 한 차례도 정상 등반에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독일인들 사이에 점점 잊혀져 가던 낭가파르밧은 1970년 헤를리히코퍼 박사가 다시 원정대를 모집해 당시 무명에 가깝던 라인홀트와 건터 메스너 형제를 원정대에 포함시키면서 독일의 낭가파르밧 도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운명의 산 낭가파르밧>은 헤를리히코퍼 박사와 라인홀트 메스너의 만남과 대립 등의 관계를 통해 독일인들에게 낭가파르밧이라는 곳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에 대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어 관심을 더한다.
호남 총각과 영남 처녀가 만났다 왜?
호남 총각과 영남 처녀가 만났다 왜?
호남 총각과 영남 처녀가 만났다 왜? 하동군청,미혼여성 20명-포스코 미혼남성 20명 ‘만남 프로그램’ 운영 섬진강을 사이에 둔 하동군과 광양시의 청춘 남녀 40명이 로맨틱한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장소는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동군과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자리를 만들었다. 청춘 남녀가 만나는 데 별 뜻이야 있을까. 만나서 서로 호감 가면 교제하고, 교제하다 마음 들면 결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요즘 젊은이 사이에 결혼에 대한 관념이 낮아지면서 출산율이 떨어지자 결혼과 출산 친화적인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의미에서 군과 포스코가 의기투합(?)했다. 다른 뜻도 있다. 기왕이면 도계를 넘어 영·호남 사람을 이어보자는 것이었다. 동서화합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사람 간의 연결고리를 만들어보자는 명분이 작용했다. 만남은 휴일인 지난 15일. 하동군청에 근무하는 미혼여성 공무원 20명이 오전 10시 군청 버스를 타고 포스코로 향했다. 10시 40분 광양제철소에 도착하자 제철남 20명이 매력녀들을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첫 만남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노베이션센터에 다 함께 모여 회사 홍보 영상물을 시청했다. 포스코 직원들이 평소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물을 감상한 청춘들은 열연공장과 포레카 등 공장을 두루 견학하면서 서로의 얼굴을 익혔다. 그리고 금호동 주택단지 내 휴식공간이자 명소인 ‘숲 사이로’ 길을 가볍게 산책하며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다음 그룹별로 조를 편성해 차도 마시고 식사도 함께 했다. 식사는 포스코 미혼 직원들이 거주하는 생활관 인근 백운플라자 1층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피자, 샐러드 같은 양식으로 했다. 어느 정도 얼굴을 익힌 청춘 남녀들은 지난 8년간 프로축구구단 전남드래곤즈의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한 백경모 여수MBC 리포터의 입담 좋은 진행으로 본격적인 매칭 프로그램에 빠져들었다. 남녀가 상대를 띄워주는 칭찬 릴레이, 장기자랑, 커플게임, 조별 파트너 바꾸기 같은 다양한 매칭 프로그램을 통해 남녀 간의 사이가 한결 가벼워졌다. 그리고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프러포즈 시간. 조별·개인별 대화와 오락, 장기자랑 등을 통해 마음에 둔 사람이 상대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네 커플이 이뤄짐으로써 행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군 관계자는 “요즘 젊은이 사이에 결혼을 기피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저출산 같은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영·호남 젊은 남녀 간에 건전한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됐다”며 “커플로 정해진 남녀는 만남을 계속 이어가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웃는 남자”, 팀 버튼 감독 연출 포기 왜?
영화 ”웃는 남자”, 팀 버튼 감독 연출 포기 왜?
3월 개봉 예정인 빅토르 위고 원작 <웃는 남자> 연출자가 팀 버튼이 될 뻔 했다는 사실이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평생 입이 찢어진 채 기괴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일생을 다룬 영화 <웃는 남자>. 이 시대 기괴한 스토리텔러이자 상상력의 대가 팀 버튼이 원작 소설 <웃는 남자>에 매료돼 영화를 직접 연출하려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화제를 낳고 있다. 빅토르 위고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웃는 남자>는 1928년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리메이크 된 바 있다. 특히 소설 <웃는 남자>는 입이 찢어진 남자 광대를 뜻하는 '조커'의 시작이 됐던 것과 동시에 <배트맨> 시리즈 조커 캐릭터의 원전이기도 하다. 팀 버튼은 <가위손>,<스위니토드:어느 잔혹한 이발사의 이야기> 등 어두운 내면 속 슬픈 사연을 가진 매력적 남성 캐릭터에 관심이 많은 거장이다. 그가 <웃는 남자>의 원작에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특히 팀 버튼은 <배트맨>(1989), <배트맨2>(1992) 연출 및 <배트맨3> 제작에 참여하는 등 <배트맨> 시리즈에 있어서도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다. 또한 그가 연출한 <배트맨>에서 잭 니콜슨이 분한 조커 캐릭터는, 그의 연출을 통해 세기의 악당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배트맨>은 현재까지도 <다크 나이트> 시리즈를 제외한 배트맨 시리즈 중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웃는 남자>를 제작한 프랑스 제작사 측에서 한발 앞서 <웃는 남자> 소설 저작권을 구매하면서 팀 버튼은 연출을 포기하게 됐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 영화의 감독 장 피에르 아메리 역시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 팀 버튼이다. <웃는 남자>를 팀 버튼이 연출하려 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책임감을 갖고 더 열심히 작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 밝히며, 팀 버튼 감독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한편 <웃는 남자>는 <택시>,<테이큰> 등 규모 있는 영화부터 <향수>,<아티스트> 등 흥행성 있는 작품까지 전천후 승부수를 띄우는 제작진들이 뭉쳐서 만든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그들이 자신있게 선택한 신인 감독 장 피에르 아메리가 프랑스의 촉망 받는 감독을 넘어 <웃는 남자>를 통해 팀 버튼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기괴하고 흉측한 외모 속 슬픈 내면을 가진 한 남자의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특별한 스토리를 전달할 영화 <웃는 남자>는 3월 개봉 예정이다.
각국 대사가 호평한 왜곡,변형작품 화가 한재철
각국 대사가 호평한 왜곡,변형작품 화가 한재철
<왜곡, 변형 시리즈>인간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자연의 소멸을 동반하고 있다. 치명적 현상이 없다면 멈추기를 마다할거고 어찌 보면 이미 퇴보는 커녕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는 상황에 놓여져 있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최근 몇백년 동안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는데, 인간이 편해진 만큼 잃어버린 것도 많다. 개발하기 위해 파괴한 것에 또다시 복원하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 가면서 끊임없이 인간 스스로를 방어해가며, 보호하면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 한다. 그러는 중에 인간은 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교육하고, 또 재교육하고 있으며, 고도의 방법으로 통재해야만 한다. 과연 현대사회가 이토록 발전해왔는데도 불구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과연 행복한가?라는 문제에는 의문이 생긴다.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도시의 시스템.... 이 과정 속에서 일그러지고, 왜곡되어지고, 변형되어져 가고 있다고 본다. 세상을 보고 해석하는 것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나는 인간사회가 왠지 조장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거대한 아우라에 인간스스로 빠져 버린듯한 느낌을 받는다. 우리가 아무리 앞으로 진보라고 주장하며 달려 가려해도 그 뒤에는 항상 그 만큼의 공허함이 남겨져 있다. 나는 현대를 살고 있는 한 인간으로서도 그렇고, 한 작가로 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려하고 있고,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단지, 내가 선택한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이러한 컨셉은 2005년에 컴퓨터를 활용해서 100여개를 해 놓았었는데, 그 뒤로 현재 약 4,500여개를 마쳤다. 요즘은 그 중 일부를 유화로 옮기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러는 중에 다른 컨셉의 유화작업으로 개인전 및 타 전시에 참가하기도 했다. 디지털 작업은 과거 손으로 시작하고 끝냈다면, 지금 컨셉의 작업은 디지털시대에 맞는 스켓치이고 작품의 완성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든 것이 관념이고 이로인한 편견에 불과하다. 아무리 새로운 것이 나온다 해도 조금만지나면 과거의 것이 되어버리고 우리의 관념속에 자리 잡을 뿐이고, 그 근거로 판단하려는 것이 우리 인간인 것이다. 한재철 화가의 <미술 저변을 위한 소견> 한국은 출신대학중심의 사회이었기 때문에 중등교육현장에서 미술이 차지하는 비율이 지극히 낮다. 선진국은 돈이 많아서 만이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질적 문화 수준이 빠진다면 국민은 옷만 잘 입힌 마네킹에 불과 할 것이다. 과거 독일 유학을 간 선배의 말이 생각난다. 그 선배는 국내에서도 1류 대학을 졸업하고 갔는데도, 하숙집주인아주머니보다 미술을 더 모른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했다고 했다. 국내에서 돈으로, 정치로 서로 싸우고 있을때 외국에서 볼 때는 한국을 한심하게 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한국은 한국의 가치를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가치를 외국에서 알아보고 라이센스를 외국에서 가지고 있는 경우도 무수히 많다. 우린 우리문화를 돈으로 역수입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스스로가 무지하고 어리석은 가를 보여주는 단면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세계에서 부러워 할 만큼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무수한 미술대학과 갤러리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작가가 없다는 사실도 한국의 수준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해외에 나가있는 우리문화유산이 7만5천여점이 된다는 사실 만 봐도 우린 우리의 가치를 알지 못했고 지키지도 못했다. 지난과거는 아쉽게도 돌이킬 수 없지만, 앞으로는 이러한 사실을 자각해서 우리스스로가 짓밟지 말고 서로를 세우는 풍토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위해서 거창한 이벤트도 좋지만, 소소하게 가정으로 학교로 직장으로 물이 스며들듯이 문화의 중요성이 베여 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 역할은 방송, 언론, 정치, 교육이 1차적으로 담당해야 할 것이고,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인 기업들도 문화와 접목해야 할 것이고, 각 문화관련 전문가들도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름으로서 1차 생산자(미술에 있어 작가)들은 질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2013년 계획> 2012년 작년에는 초대개인전이 2회 있었고, 굵직한 기획초대와 다수의 단체전이 있었고, 언론보도, 잡지에 실리기도 했으며, 주한대사관초대가 15국가가 있었다. 지속되는 작가의 인생에 좋은 신호가 아닐 수 없다. 2013년 5월경에 서울 충무아트홀갤러리에서 개인초대전이 계획되어 있으며 1월 현재에도 3곳의 전시가 이루어지고 있다. 욕심을 낸다면 세계무대로 진출하는 교두부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민간조사(탐정) 제도 왜 필요한가?
민간조사(탐정) 제도 왜 필요한가?
현대사회가 정보화 시대로 급변함에 따라 생각지도 못한 충동 범죄와 개인 사생활 침입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기업 간의 개인 간의 또는 기업과 개인관계에서 업무에 따른 수많은 사건, 사고가 발생함에 따라 개인과 기업의 권익은 물론 재산보호에 필요한 민간조사(탐정) 제도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유형이 광범위하고 지능화됨에 따라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2012년 12월 7일 대한민간조사연구학회 학술세미나 새누리당 강은희 국회의원 축사] 특히 최근 유아 및 부녀자 실종 사건 및 미해결 사건들이 늘어나면서 공권력의 수사. 조사 인력의 부족함이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공권력에서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각종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에 대하여 개인과 기업의 권익보호를 위해 현행 법률의 허용범위에서 각종 민간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PIA민간조사(탐정)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신종 인터넷범죄와 국제범죄를 비롯한 실종사건의 빈발, 지적재산권침해 등 사회적으로 심각하고 다양한 범죄가 점증하고 있으나 국가수사력의 한계(사익보다는 공익침해사건에 우선적으로 행사 될 수밖에 없는 현실)와 변호사의 정보력 미흡(변호사는 법률전문 지식에 비해 소재 탐지나 정보수집 현장조사 기법이 미약하다는 지적)으로 검찰ㆍ경찰에 신고 또는 고소하거나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하여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 하다는 불만이 도처에서 분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 하여 개인이 바쁜 생활속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나 자료를 직접 수집하러 나서기에는 시간과 전문성의 부족으로 불가능하다. [18대 이인기 국회의원(행정안전위원장) ‘탐정제도 왜 필요한가?’ 국회 토론회 개최] 이러한 현실적 권리보호의 미흡현상을 비교적 저렴한 비용과 높은 전문성을 가진 민간조사(탐정) 전문 인력을 국가가 일정한 관리하에 적절히 활용한다면 개인의 권리신장 등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민간조사(탐정) 제도 도입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걱정거리로 대두된 것이 ‘민간조사원에 의한 사생활 침해우려’ 와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제도적장치의 미흡’ 이었다. 즉 현재 여려 개별법으로 산만하게 보호되고 있는 개인정보를 좀 더 체계적이고 두텁게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기 전에 민간조사(탐정) 제도를 허용하게 되면 사생활 침해 등 그 부작용이 매우 심각할 것이라는 지적이었으며 이에 대해 정ㆍ관ㆍ학계 등에서도 대체로 공감하고 관련입법을 주시해왔으나, 통합 개인정보보호법안(정부안)이 2010년 9월 30일 국회 행안위를 전격 통과되었고, 이번 19대 국회에서 2012년 11월 2일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이 경비업법 전면개정안(의안번호 제 2389호)을 제출하여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민간조사(탐정) 제도는 많은 국민들이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젠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방패가 없어 민간조사(탐정) 제도를 허용하기 어렵다는 우려나 논리는 그 정당성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동국대학교 PIA 민간조사(탐정) 최고위(CEO) 과정 강의실 장면]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대한민간조사협회에서 주관 및 시행하는 PIA민간조사(탐정) 전문 자격취득자들은 현행 법률에서 허용하는 법위에서 각종 사건, 사고에 대한 자료수집, 정보탐색 사실 확인 조사업무(산업스파이, 국제무역, 분쟁조사업무)를 비롯해 의료사고, 교통사고, 보험관련, 부동산, 사이버범죄, 실종 및 가출 소재파악에 이르기까지 각종 민간조사업무를 진행한다. 또한 민간조사(탐정) PIA는 국가 포상금제도에 따라 필요한 전문조사(식품위생법 위반, 환경오염 사법단속, 성매매단속조사 등)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라 포상. 보상 제도에 대하여 각종 민간조사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로서 활동하며 변호사사무실. NGO단체 대기업. 중소기업에 전문 감사. 조사부서에서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일부회원들은 개인사무실 또는 프리랜스 활동을 통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전문성을 살려 많은 고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http://www.kspia.kr) 하금석 회장은 앞으로 한국에서 법제화가 되면 “PIA 민간조사(탐정)의 업무활동 영역은 더욱 광범위하게 넓어질 것이라 예상된다.” 며 그에 비해 아직도 전문 인력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P민간조사(탐정) 전문인력을 양성하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이 필수적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PIA협회에서는 민간조사(탐정)이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곳의 일을 한다고 해서 법에 저촉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수 있는 일을 맡는 것은 아니며 국가 안보 및 기밀, 기업기밀,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정보 등을 의뢰받았을 때 반드시 이를 거부해야 하며 업무 중 폭행ㆍ협박도 금기 사항이라고 말한다. 또한 PIA 민간조사(탐정)의 자질을 시험하기 위한 자격요건은 매우 철저하다. 매년 일반 공개시험을 실시하여 1차. 2차 시험에서 과락 40점 평균 60점 이상으로 합격하여 기본교육을 수료한 자에 대하여 PIA자격증이 발급되고 군. 경찰. 전. 현직 수사. 조사 실무자 및 관련학과 교수 등 전문분야 종사자를 대상으로 본 교육재단 협력대학교 대학원(광운대학교, 동국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최고위과정으로 총 25개 과목을 약3개월 10주이상 이론 및 심화 실무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평가시험을 거처 합격자에 한하여 PIA민간조사(탐정)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PIA 민간조사(탐정) 최고위(CEO) 과정 수료식 장면] 최고위 전문가과정은 현재 동국대학교와 광운대학교에서 10주 과정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한국특수직능교육재단(02-775-0071 http://www.kspia.kr)을 통해 문의ㆍ접수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