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일파만파로 치닫는 대선

기사입력 2017.05.04 19:15
댓글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선데이뉴스신문=나경택 칼럼]투우에서 마지막 일전을 앞두고 소가 숨을 고르는 영역을 스페인어로 ‘케렌시아’라고 한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했다가 투우에 매료된 소설가 헤밍웨이는 논픽션 ‘오후의 죽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소는 본능적으로 케렌시아를 찾는다.

그곳은 소의 뇌리에 바로 나타나지 않는다. 인간과 싸우는 동안 서서히 발견된다. 소는 거기 들어서면 뒤에 벽이 서 있는 것처럼 인정된다.” 투우장의 소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역할이 다른 투우사들에게 세 번 공격을 당한다. 먼저 말을 탄 ‘피카도르’가 투우장을 돌며 희롱하다가 창으로 소의 목덜미를 몇 차례 깊이 찌른다. 소의 용맹은 이때 꺾인다. 다음 ‘반데리예로’가 나타나 부근에 작살을 내리꽂는다.

이때 소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고 한다. 검은 털 위로 피가 흘러내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군중의 함성과 욕설이 투우장을 웅웅 울린다. 소의 흥분과 분노가 절정에 이른다. 그 순간 소는 투우장의 한곳에 잠시 멈춘다.

이곳이 ‘케렌시아’다. 1초, 2초, 3초…. 허파 밑바닥에서 숨을 끌어올려 마지막 힘을 모은다.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투우사 ‘마타도르’가 중앙에 선다. 플라멩코를 추듯 몸을 놀리며 붉은 깃발 ‘물레타’를 흔든다. 소가 돌진한다. 투우사를 노리지만 능란한 놀림에 희롱당할 뿐이다. 투우사에겐 철칙이 있다고 한다. 절대 케렌시아로 들어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소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는 게 아니다. 케렌시아에 들어가 안정을 찾는 순간 소는 ‘죽을 힘’을 폭발시킨다. 헤밍웨이는 “그곳에서 소는 인간이 겪을 수 없는 막강한 힘을 갖는다”고 했다.

마타도르가 ‘투우사의 꽃’으로 불리는 건 상대를 케렌시아 밖으로 끌어내 현란한 속임수로 그 힘을 바닥내기 때문이다. 물론 서툰 기술로 소를 희롱하다가 목숨을 잃는 투우사도 한둘이 아니다. 검찰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캠프 기획 본부장인 염동열 의원과 한 여론조사기관 사무실을 압수수색 했다. 검찰은 양측이 사전에 짜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여론조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정당이 여론조사 조작 혐의로 고발된 첫 사례다. 문 후보 측과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측은 각각 자신들에게 불리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조사가 왜곡됐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정확한 정보와 건강한 토론을 통해 후보를 평가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이번 대선판에서 이런 과정은 사실상 실종되고 있다. 후보들의 공약과 리더십 대신 여론조사 지지율이 후보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정당은 지지율이 낮게 나오는 자기당 후보에게 사퇴를 압박하고 있다.

정당정치와 정당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다. 여론조사는 아무리 기법이 발달해도 정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해 여론조사 기관들이 총선결과 예측에 실패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정확한 여론조사라고 해도 부작용이 있다. 대세 후보에게 지지표가 몰리는 ‘밴드왜건 현상’이나 약체 후보에게 동정표가 쏠리는 ‘인더독 현상’을 유발한다. 이는 국민들이 자신의 가치와 정책을 대변하는 후보를 자연스럽게 선호·지지하는 과정을 왜곡한다. 그 결과 국민이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지율이 후보를 고르는 역설이 나타날 수 있다.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다보니 자극적 언행으로 여론조사 지지율 높이기에 매달리는 현상도 보인다. 특히 언론이 여론조사를 앞세운 경마식 보도로 선거판을 왜곡하는 것은 개탄스럽다. 언론이 건강한 토론의 장을 제공하고 후보들의 자질을 검증해도 모자랄 판이다.

그런데도 신문과 방송들은 연일 여론조사 결과를 주요 뉴스로 전하면서 대선을 여론조사 위주로 몰아가고 있다. 지지율 숫자만 보고 후보를 고르라고 강요하는 듯한 보도 대토는 공론의 장을 펼쳐야 할 것이다.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저작권자ⓒ선데이뉴스신문 & newssund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