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성이 착한 DNA를 가진 봉사단장 전북의 큰 일꾼 김광섭

기사입력 2019.03.06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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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사단법인 국. 내외 통합 호남향우회 총 연합회 상임 수석부회장

 

[선데이뉴스신문=이계춘 기자]사람 찾아 인생을 찾아 오늘도 8도 강산 유람하는 필자는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전통과
문화 예술 그리고 따스한 情이 살아 숨쉬는 藝鄕 전라북도 전주의 名士를 찾아 나선다.


‘김광섭회장’ 이분이야말로 전주가 자랑하고 전라북도를 이끌어가는 몇 분 안 되는 귀한 분이라 소문나서 참으로 어렵게 만나 그 멋진 인생노트를 펼쳐본다.


전국 아니 세계 각국의 1200만 대 식구를 자랑하는 사단법인 국. 내외 통합 호남향우회 총 연합회 상임 수석부회장이시고,
(주)삼화엔지니어링부회장 등등 기타 이 분의 직함을 다 열거하자면 이 지면이 다 차야 할 것만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해 오고 있는 김 회장님의 고향은 어디이며, 또 어린 시절 환경은 어떠셨는지요?
그의 초반인생이 궁금해 먼저 물어 보았다.


누구나 고향 이야기하고 어린 시절 환경을 말해 달라 하면 그렇듯이 김 회장도 금방 눈시울이 적셔지는 느낌에 얼굴까지 붉어진다. 아따, 거시기 글씨요, 나는 촌놈중의 촌놈 이였어요. 그라니까 거시기 저 어디냐? 전라북도의  장수군 첩첩산골 외딴마을에서 태어났지요? 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던 역사적인 해인 1948년 10월 전북의 장수에서 당시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계시던 가난한 농부 부모님 슬하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전북에서도 낙후의 대명사가 되다 시피 한 무진장의 고장 장수의 산골인지라 먹고사는 것조차 어려워 학교가기 전에 나무 한 짐 학교 갔다 와서 또 나무 한 짐 해다 놓고 나서야 하루일과가 마치는 그야말로 나무꾼이요, 촌놈으로 자라났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성실하시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착하디착한 부모님 밑에서 정직과 근면, 우애와 행복과 사랑을 배우며 우리 7남매는 자라났습니다.


그렇지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처럼 공부는 사치스럽게만 여겨졌기에 진짜 대학진학도 하고 공부를 더 하고 싶어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과 고통 속에서 동생들 가르치고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시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어야겠다는 착한 마음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 진학이라는 꿈을 포기하고 취업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 하였을 만큼 천성이 착한 장수의 착한 사나이 김광섭은 그렇게 착한 촌놈으로 청년 시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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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섭 사단법인 국. 내외 통합 호남향우회 총 연합회 상임 수석부회장

 

사회활동은 어떻게 시작하셨고, 기억에 남는 활동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1972년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곳이 한진그룹입니다. 1972년 입사하여 2009년 퇴임할 때까지 37년을 근무하면서 회사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한다는 신념으로 누구보다 열심히 생활하였습니다. 전북 지역본부장으로 근무하면서 전국 최초로 고속버스 요금을 30% 할인하여 낙후된 전북 도민들을 위해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요금 할인을 12년 동안 계속해서 적용했으니 지역에서는 당연히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당시 월매출이 7억4천만에 연간 90억 원 정도의 매출을 감안할 때 27억 정도의 할인효과를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12년으로 환산하면 324억 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 전북 도민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노력의 대가로 지역주민들로부터 많은 칭송이 이어졌고, 전주시장 표창 등 많은 상들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고 저의 타고난 성품이 남 먼저 이롭게 하자는 利他精神을 갖고 태어났기에 지역을 위해 남을 위해 늘 즐겁게 봉사할 수 있었던 계기라고 생각하며 지금도 그 보람하나로 살고 있습니다.


정치권과도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계기로 시작하시게 되었는지요?
한진그룹 전북지역본부장으로 재직하던 1997년 당시 선거구가 무진장 임실 지역구인 정 세균 전 국회의장님과 인연이 되어 정치권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낙후된 농촌에서 天刑처럼 여겨지던 농사로 인해 농민들이 빚에 허덕이면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치가 변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미래농촌연구회 조직국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무진장지역은 전북의 동부 산악 권으로 해마다 인구가 감소하면서 고령화가 가속되기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대도시로 떠나는 젊은이들이 해마다 증가하면서 농촌지역에는 일할 수 있는 경제활동인구가 급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수확할 때면 일손이 부족해 발을 동동거리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고령화로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면서 지역경제는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미래농촌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한 가지 확신을 하였습니다. 농촌이 살아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조금씩이나마 고부가가치 농업을 통해 농촌에 대한 이미지가 개선이 되고 부자농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면서 귀농인구가 조금씩 늘어나면서 끊겼던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간간히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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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저는 제가 정치를 하겠다는 생각은 추후도 없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정치가 변해야 나라가 살고 지역이 산다는 것입니다. 지난 우리나라 정치사를 뒤돌아보면 지역적 편차가 너무 심했던 영남정권으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대적으로 호남은 차별을 받아왔고 낙후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지난 박 근혜 정부를 보면서 나라를 위해 미력한 힘이나마 보태야겠다는 생각으로 2017년 넥스트 전북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올바른 대통령을 세워야 나라에도 미래가 있고 지역의 균등발전에도 보탬이 된다는 확신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앞장섰던 것입니다.


지금은 호남향우회에서 활동 계시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계시는지요?
2017년 기회가 되어 사단법인 전국 호남 향우회 상임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전국에는 호남향우회원들이 1,200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수석부회장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회원들을 만나면서 회원들의 단합과 유대를 돈독히 하는데 힘을 보태고자 합니다. 우리나라 정치발전을 위해서라도 호남향우회원들의 단결이 지역발전과 정치발전을 위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나라가 바로서고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호남향우회가 충실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뒤에서 일하고자 제 마음 중심의 심장에는  늘 호남인의 피가 흐르고 있고 호남향우회 활동에 큰 사명감을 갖게 한데는 우리 호남인의  큰 리더 초대 회장 이영호회장님의 지도 편달이 있었기에 늘 감사와 존경심을 갖고 있습니다.


삼화엔지니어링에서 현재 근무하고 계시는데 어떤 회사인가요?
삼화엔지니어링은 지난 3년 전부터 근무하고 있는데 냉동 저온창고 제작 설치 전문업체입니다. 이 회사를 시작하게된 것도 지역농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찾다보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 입장에서는 일 년 내내 힘들여 지어놓은 농작물이 판로가 없어 제값 받기조차 힘든 실정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산된 농작물을 보관하고 유통기간을 늘려 수급조절을 통해 농민이 필요한 시기에 출하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요즘 농가에서 대부분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고장 전북은 농민이 살아야 미래가 있는 지역입니다. 농사짓기 좋은 지역 환경에 일익을 담당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지역을 위한 봉사활동도 많이 하셨다고 하는데 어떤 활동을 하셨는지요?
한진그룹 전북지역본부장으로 재직하면서 검찰청과 경찰청 청소년 선도위원으로 십 수 년 간 활동하였습니다. 국가의 미래인 청소년이 안심하고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전주에 있는 고려병원과 함께 장수군지역 의료봉사활동을 펼쳤습니다. 고령화된 농촌에서 농사짓는 시간조차 부족하고 찾아갈 병원조차 없는 농촌의 척박한 현실을 지켜보면서 건강한 농민이 건강한 농촌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기회가 될 때마다 병원관계자들과 지역을 순회하면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을 빛낸 경제발전 대상 사회공헌대상을 수상하셨는데 소감과 함께 앞으로 활동계획이 있으시다면?
지역을 위해 그동안 조용히 일 해왔던 것들이 인정되어 수상의 영예를 안게 된 것 같습니다. 자격 없는 저에게 과분한 상이며 더 열심히 봉사하라는 채찍으로 생각하고 우선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그동안 그렇게 살아왔던 것처럼 낙후된 지역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뛰고 노력하며, 보다 나은 지역사회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일할 것이며, 전심을 다해 열정을 바쳐  어려운 이웃과 소외된 이웃을 위해 헌신 봉사할 것입니다.

[이계춘 기자 lkc79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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