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얼굴, 군중들의 폭력은 시작된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얼굴>(Mug)을 바라보며-
기사입력 2019.03.13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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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빼앗긴 얼굴, 군중들의 폭력은 시작된다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얼굴>(Mug)을 바라보며-

                                                                       

 

                                                                        이공희 영화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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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Malgorzata Szumowska)

주연: 마테우시 코스치우키에비치(Mateusz Kosciukiewicz)

제작연도, 제작국가: 2018년, 폴란드

러닝타임: 91분 

 

 201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얼굴(Mug)"은 폴란드 영화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 야체크는 거대한 예수상의 설립을 위해 일하는 젊은 노동자로 등장한다. 그는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는 신의 존재를 만들어가는 인간군상의 아주 작은 존재일 뿐이다. 그는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클럽에 가서 춤을 추고, 데이트를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다. 그가 그녀에게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조심스럽고 가슴 떨리게 청혼할 때, 여자친구는 그의 감미로운 얼굴을 보며 기뻐한다. 아니, 그 당시만 해도 그녀는 그가 가진 얼굴의 매력에 빠져든다. 물론 그의 얼굴과 함께 하는 그의 영혼도 사랑했을 것이다.

 

인간의 운명은 찰나로 뒤바뀌는가.

어느 날 그가 둥그런 공사장의 아래로,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는, 얼굴을 잃어버리는 곳으로 추락한다. 그 순간부터 모든 사운드는 꺼지고 침묵의 시간들이 흐른다. 병원을 찾아오는 가족들, 지인들, 병실에 누운 그가 멀리서 보인다. 이윽고 그가 침대에서 걸터앉았을 때도 그는 등을 돌리고 있다. 그의 달라진 얼굴은 결코 처음부터 클로즈업되지 않는다. 옆모습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드러날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예수상의 공사는 중단되고 만다.

무엇을 작가는 그려내려고 하는가. 그의 절망인가. 기가 막힌 운명에 대한 복수인가. 이 영화는 자극적인 감정의 분출이나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드라마를 결코 운반하지 않는다. 상업영화 스타일에서 벗어난 이야기 전개방식이 이 작품의 새로운 시선이다.

그가 그 소중한 얼굴을 잃고 흉측한 모습으로 바뀐 것에 대한 좌절이나 분노, 괴로움에 대한 우울증이나 폭음 등을 결코 보지는 못한다. 아니,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것은 그의 분노가 아니라, 달라진 그의 얼굴을 대하는 인간들의 달라진 모습이다. 

 

"나야". (It's me)

거울을 보며, 야체크는 자신의 일그러진 얼굴들을 그렇게 인정하고 바라본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에게 꽃을 들고 찾아갔으나 그녀는 보이지 않는다. 이미 도피해버린 그녀의 그림자를 찾아 그는 헤맨다. 결국 오랜만에 만난 그녀와 마주서서 서로를 볼 때, 그녀의 표정은 흠칫 두려워하는 모습으로 바뀐다. 이 남자가 내 남자였는가. 아, 이건 아냐.

 

어느 날, 그녀는 나이트 클럽에서 모든 것을 다 잊은 듯 춤을 춘다. 그녀가 새로운 남자친구와 춤을 출 때 그는 나타난다. 그 어느 때와 같이 그가 클럽에, 사람들 앞에, 그녀 앞에 찾아온 것이다. 그녀 앞에서 예전처럼 함께 춤을 추려 하지만, 그것조차 무참하게 좌절된다. 주변의 사람들은 흉측한 모습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그를 배척하기 시작한다.

 

-언제 네가 우리의 이웃이었니? 우린 너를... 잘 모르겠네.

 

달라진 그의 얼굴을 보는 가족들, 특히 어머니는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한다.

“내 아들이 아닌 것 같아요...!”

 

어머니의 음성은 지극히 냉담하다. 마치 악마의 얼굴이라도 보듯이 그녀는 이제 그에게서 등을 돌리는 어머니로 변한 것이다.

 

그의 애인조차 신부에게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한 죄를 묻는다. 신부는 아이러니하게 새로운 그 남자와 무슨 부정한 짓을 했는지 세심하게 캐묻는다. 애인을 놔두고 다른 남자와 성적인 접촉을 하는 것에 대한 도덕심을 이 영화는 순진무구하게 드러낸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악마가 들어와서 얼굴이 망가진 것이라며 신부에게 악마를, 사탄을 몰아내달라고 간청한다. 신부는 지극히 상식적으로 아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내심 수긍했던 것일까. 

 

결국 그 아들에게 씌워진 사탄을 쫓는 의식이 열리고, 야체크는 드디어 그것에 분개한다. 당신들은 미쳤다...!

뛰쳐나가서 휘청대며 거리를 걷는 그에게 어린 아이들은 그에게 괴물! 괴물! 이라고 외친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인정하고 새로운 삶을 살려고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고 등을 돌리고 만다. 이 작품은 그들의 달라진 내면을 투영해가는 시간들을 쫓고 있다. 그에 비례해서 신을 향한 구원의 기도는 끊이지 않는다. 이웃을 추위에 떨게 하지 말지어다. 아멘.

 

모두 교회로 가! 촌놈들아. 빈 자리는 예수님의 자리. 우리의 이웃을 향한 자리이다. 그들이 신을 향해 외쳤던 숭고한 기도나 독백은 누구를 향한 것인가. 유대인이 빌딩에서 일하다가 떨어지면? 이라는 영화 속의 대사의 답변은 차갑다.

-사회에 이득이지.

 

영화의 메시지는 망가진 얼굴에 대한 인간들의 외면에서 출발하여 더 나아가서 군중들의 차별의식을 고발한다. 일종의 집단폭력과도 같은 군중들의 죄악을 해부하는 것이다.

 

독일계 유대인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이라는 뛰어난 저서에서, 군중들의 방향감각을 상실한 폭력은 실로 위험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이는 사회적 악과 폭력의 본질에 대한 엄중한 물음이다.

 

어느 날 갑자기 불행이 찾아와서 그것을 타개해나가려는 평범한 남자, 야체크의 의지가 그의 이웃들에 의해 무참하게 배척을 당하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의 집단폭력이며 전체주의에 기원한 마녀사냥이다. 세상의 편견, 차별은 보이지 않는 집단폭력이 되어 주인공의 불행을 더 깊은 나락으로 빠뜨려버린다. 그들은 스스로 저지른 모순을 결코 깨닫지 못한다. 부조리한 모순에 더욱 동조해가는 대중들은 그들의 내면에 숨어있던 악마적 본질을 드러낸다. 그것도 아주 흉측하게 점점 더 심한 가해자가 된다. 마치 주인공 야체크의 일그러진 얼굴처럼, 망가진 영혼으로 추락하는 것이다.

 

이처럼 폴란드 영화 "얼굴(Mug)"은 주인공이 처한 불행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신에게 그 질문을 던진다. 영화의 라스트 신에서, 어느 날 예수상의 얼굴은 옆으로 돌려져있다고 사람들은 수군댄다. 그들은 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을 향한 예수상의 시선은 차마 똑바로 바라보기조차 두려운 것일까. 바로 거기에, 어리석은 자들을 외면하는 예수의 냉엄한 시선이 숨어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인 마우고시카 슈모프스카는 이 작품으로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했다. 영화의 독특한 화면구성은 두 개의 시선을 한 화면에 보여준다, 가려진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듯이 하나의 화면구성을 포커스 인하거나 아웃시켜서 분리시킨다. 이는 영화 속의 인물의 시점을 뒤바꾸어 보여주기도 하면서, 동시에 관객이 느낄 수 있는 두 가지 심리를 객관적으로 구현한 것이다. 또한 여성감독의 섬세하고 감성적인 연출력은 자못 진지하고도 엄숙한 전개방식으로 이끌어간다. 인간 내면의 부조리한 모순과 군중들의 어리석은 폭력의 단면들을 부각시켰으며, 앞으로 주인공이 헤쳐 나가야 할 불투명한 미래를 제시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야체크가 묵묵히 걸어가는 뒷모습을 롱 쇼트로 부감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제 그가 걸어갈 길에 또 다른 출구는 없는가. 그에게 손을 내미는 자들의 눈빛과 표정은 과연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 그것들은 이 영화가 던져주는 마지막 화두로 남는다.

(이공희 컬럼니스트)

[이공희 기자 film0317@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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