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제패한 우리 소녀들

기사입력 2010.10.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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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를 넘긴 세대의 어린 시절은 축구와 고무줄로 성별이 구분됐다.

남자애들은 ‘둥근 것은 무엇이든 발로 차는 인간의 본능’ 이 충실해 축구로 하루를 보냈다.

맨땅의 학교 운동장에서 혹은 동네 골목길에서 책가방이나 벽돌로 골대를 만들어 놓고 고무로 된 축구공을 차댔다. 교실 복도에서도 틈만 나면 헌 수건이나 옷가지를 돌돌 말은 걸레를 축구공 삼아 발재간을 겨뤘다.

 반면 여자애들에게 축구는 금기였다. 남녀유별을 미덕으로 여기던 풍조가 남아있던 때였다. 그러나 온몸을 땀에 적시고 먼지를 뒤집어쓰며 뛰어다니는 말괄량이를 곱게 보지 않았다.

대신 고무놀이에 만족해야 했다. 그만큼 축구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우리나라에 여자축구의 전통이 없던 건 아니다. 영국식 근대 축구가 한국에 전파된 시기는 1882년(고종 19년), 인천항에 상륙한 영국 군함 플라잉호스의 승무원을 통해서다.

그로부터 67년 뒤인 1949년 무학 · 중앙 · 명성 3개 여중학교 팀이 출전한 가운데 한국 최초의 여자축구 경기가 서울에서 열렸다. 여자농구, 여자배구는 군말이 없었으나 유독 여자축구에는 사회적 반감이 심해 우여곡절 끝에 겨우 성사됐다.

 그런 탓인지 한국전쟁 이후 여자축구는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

 세상이 변하는데 축구라고 여성 무풍지대로 남겠는가. 85년 축구협회의 여자축구단이 발족되면서 36년간의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기지개를 켰다. 여자 학교팀과 실업팀도 속속 창단됐다.

 하지만 변변한 지원이나 관심이 없어 ‘그들만의 리그’ 에 머물렀다. 2002년의 한 · 일 월드컵과 인도계 축구 소녀의 꿈을 그린 영화「슈팅 라이크 베컴」은 축구가 남자만의 놀이가 아님을 보여주는 자극제가 됐다.

 영국의 여자프리미어리그, 독일의 여자분데스리가, 미아 햄이란 세계적 여자 축구스타를 배출한 미국의 여자프로축구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우리의 몸에는 ‘축구 유전자(DNA)’ 가 흐른다고 한다.

 신라시대 가축의 방광이나 태반에 바람을 넣어 차거나 던지는 축국이란 놀이 형태의 공차기가 저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사실 얇은 줄을 넘나드는 고무줄놀이도 섬세한 발놀림이 없었으면 곤란하다.

17세 이하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2010년 U-17 여자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본을 물리치고 남녀 통틀어 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국제 대회에서 세계 정상에 올랐다.

 이번 대표선수들은 다른 종목에서 전향했던 초창기 선수들과 달리 어릴 때부터 축구를 하고 싶어 했고, 공차기 자체를 즐겼다. 최우수선수상과 최다득점상을 휩쓴 여민지는 어린 시절 주말마다 엄마를 졸라 김해의 축구클럽에 나가 공을 차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감독의 눈에 띄어 선수가 됐다.

결승전 마지막 승부차기를 성공시킨 장슬기도 축구선수이던 아버지 · 오빠의 뒤를 이어 초등학교 3학년 때 축구화를 신었다.

 박세리 선수의 영향으로 조기 골프 유행이 일던 시기였지만, 두 선수는 “축구가 더 좋다.” 고 고집했다.

 지난달 U-20(20세 이하) 월드컵 3위의 주역 지소연도 초등학교 시절 남자 아이들과 신나게 축구경기를 하다 감독의 눈에 띈 게 선수 입문의 계기였다.

옛 성현도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고 하지 않았던가! 스포츠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국력의 상징이다. 투자와 지원 없이는 좋은 성과를 내기 힘들다.

 우리와 체격조건이 비슷한 일본과 북한의 선전(있는 힘을 다하여 잘 싸움)에 자극받은 대한축구협회의 투자도 큰 힘이 됐다. 축구는 개인 기량뿐 아니라 조직력과 협동심이 요구되는 경기이기에 이번 성과가 더욱 값지다.

 우리 사회에는 부모의 과보호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나약한 청소년이 많다. 경쟁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미래 세대를 강하게 키워야 나라도 부강해진다.

 이번 소녀 월드컵의 우승을 바라보며 우리는 개인이건 기업이건 국가건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면 못 이룰 게 없음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축구감독과 선수단 전원에게 ‘자랑스러운 칭찬주인공’ 으로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나경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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