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로 이용웅 칼럼]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그리운 2019년 가을

기사입력 2019.09.1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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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가을-풍악산-아름다운 금강산의 가을 풍경
  

 

[선데이뉴스신문=이용웅 칼럼]가을! 슬퍼도 아름다운 가을!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1892~1950)! 비록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낙인(烙印)이 찍힌 이 문인은 “추풍이라든지 낙엽이라든지 하는 것이 우리에게 비애(悲哀)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벌레쇠, 그 중에 밤새도록 머리 맡에 씰씰거리고 우는 실솔(蟋蟀;귀뚜라미)의 소리도 어째 세월이 덧없음과 생명과 영화도 믿을 수 없음을 알리는 것같이 여름이 자라고 퍼져 싱싱하게 푸르던 초목이 하룻밤 찬 서리에 서리를 맞아 축축 늘어지는 꼴은 아무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것”(病窓語)라고! 

 

누군가 가을은 전쟁을 치룬 폐허(廢墟)이고,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침몰(沈沒), 하나의 모반(謀反), 하나의 폭동(暴動), 들판의 꽃들과 잎과 열매와 모든 생명의 푸른 색채(色彩)에 쫓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쫓겨서 어디론가 망명(亡命)하는 것이 아니라 가을은 그 자리에서침몰한다고도 했습니다. 이처럼 춘원과 누군가의 가을 생각은 다르게 마련입니다. 다만 ‘슬픈 폐허의 가을’의 언어(言語)도 ’아름다운 시어(詩語)‘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모든 가을의 시(詩)와 노래를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가을’을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수놓은 시인들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통해 헤아릴 수 없이 많습니다.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한 유치환, 조지훈, 박목월, 정한모, 조병화, 김남조, 김춘수 등(等)...많은 시인 단체의 회원들...지구상에는 수많은 무명(無名)의 시인들도...가령 주옥같은 시를 쓴 ‘대폿집 아줌마’도 회장들 못지않고, “2018 시 울림 문학동인 제24집”-”몸 푼 자리에 꽃잎 가득하고“의 시인들도 주옥같은 글을 발표...길손 안삼현은 ”시월-사그락 사그락 가을 한가운데 園林이여 ‘소쇄(瀟灑)’/ 빨강 노랑 울긋불긋 발아래 연못에 떨어지자 머지않아 처연(悽然)한 만추 晩秋之節“이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무작위(無作爲)로 가을 시를 읊어봅니다. “우물가에 오동잎/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 없이 흘러든다.”(백낙천/가을밤) // “가을 바람이 해조같이 불어와서/ 울 안에 코스모스가 구름처럼 쌓였어도/ 호접(胡蝶) 한 마리 날아들지 않는다./ 적막함이 가을해 엷은 별 아래 졸고/ 달이 유난하게 밝은 밤./ 지붕 위에 박이 또 하나의 달처럼/ 화안히 떠오르는 밤.”(박화목/호접/胡蝶)

 

“이 강산 가을 길에/ 물 마시고 가 보시라/ 수정에 서린 이슬을 마시는 상쾌이라./ 이 강산/ 도라지꽃 빛 가을 하늘 아래 전원(田園)은 풍양(豊穰)과 결실로 익고/ 빨래는 기어이 백설처럼 바래지고/ 고추는 태양은 날마다 닮아간다.”(한하운/국토편력/國土遍歷) // “흙마당에 널어놓은 빨간 고추는/ 물기를 여의며 투명한 속을 비추고/ 높푸른 하늘에 내걸린 흰 빨래가/ 바람에 몸 흔들며 눈부시다/ 가을볕이 너무 좋아 가만히 나를 말린다/ 내 슬픔을 상처난 욕망을/ 투명하게 드러나는 살아온 날들을..”(박노해/가을볕) // “높은 구름 멀어진 하늘/ 고추잠자리 밭을 갈고 들녘엔 곡식들이/ 탐스럽게 무르익는 가을/ 내 두 손 펼쳐/ 가슴에 안아주련다/ 고마운 가을/ 어머니가 삶아주신/ 밤 고구마 바구니 담아/ 조잘대며 먹다보면 노을이 가을 하늘에 / 한 폭 수채화 되고/ 우리 마을도 붉게 타오르는/ 설렘으로 한 편의 동시를 쓴다 (변종윤/가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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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가을-아름다운 제주도 한라산의 가을 풍경

    

‘가을’하면 “국화 옆에서”가 떠오르는 것은? 필자의 집 백 미터 앞에 “미당 서정주의 집”이 있어 오가며 그를 만납니다. 그리고 얼마 전 필자를 ‘제4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초대해준 정일근의 시(詩)가! 여기서 미당(未堂)의 “국화 옆에서”와 정일근의 “홍시”를!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먼 젊음에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내 누님 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않았나 보다”

 

“양산 신평장 지나다 홍시장수를 만났네/ 온전한 몸으로 늦가을에 당도한 감의 생애는/ 붉은 광채의 시처럼 눈부셨네/ 신평은 아버지 감꽃 같은 나이에 중학을 다니셨던 곳/ 그러나 아버지의 생 너무 짧아/ 붉게 익기도 전에 떨어져버린 풋감이었네/ 헤아려보니 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올해 갑년/ 홍시를 좋아하실 연세, 드릴 곳 없는 홍시 몇 개 사며/ 감빛에 물들어 눈시울 자꾸 붉어졌네.”

 

그리고 수많은 가요의 시어(詩語)들! 그 중 이동원의 “가을 편지”를 노래해 봅니다.-“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보내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메인 마음/ 보내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헤메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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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의 집-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256나길 (남현동)

 

2019년 가을에 유난히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그리운 것은...욕설(辱說)이 난무(亂舞)하는 대한민국의 정치판 때문이기도 합니다. 올 정월부터 이 가을까지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그들의 욕설 때문입니다. 욕설(辱說)은 사회 속에서 모욕스럽거나 점잖지 않다고 여겨지는 말이며, 상대방을 모욕하는 비도덕적인 행동입니다. 공공장소에서 욕설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폭력적 행동보다 더 나쁜 언어 폭력의 주인공들은 이 나라를 위한다는 일부 국회의원들이나 장관 등 입니다.

  

한 시인은 “칼에 베인 것 보다 더 아픈건 마음까지 도려내는 혀끝에서 나오는 독설이다. 풀숲에 뱀처럼 웅크렸다가 긴 혀로 더듬어 냄새를 맡고 저보다 약한 자에게 독을 쏘아대서 마비 시킨다”고 했습니다. 다음 총선(總選)을 생각하는 정치가들, 출마를 저울질하는 장관들! 이들의 어떤 욕설을 퍼붓는지를 우리는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름다운 시어(詩語)가 그리운 2019년 가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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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魯 李龍雄/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선데이뉴스신문/논설고문/
한반도문화예술연구소 소장/

 

[이용웅 기자 dprkcultur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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