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 =나경택 칼럼] 한국 법치의 일당 5억 회장님

기사입력 2014.04.12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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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 =나경택 칼럼] 한국 법치의 일당 5억 회장님 

검찰이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 논란을 야기한 허재호 전 대우그룹회장의 벌금형 노역장(환형유치)을 중단시켰다. 해외로 도피했던 허 전 회장이 귀국해 노역장에 유치된 지 닷새 만이다. 5일 동안 허 전 회장이 실제 일한 시간은 10시간 남짓이라고 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쉬고, 월요일은 건강검진 받고, 수요일엔 검찰에 불려갔다. 그 사이 벌금 25억원이 탕감됐다.

수사 과정에서 하루 구금돼 깎인 5억원을 합치면 탕감액수는 30억원에 이른다. 황당한 노역형이 중단된 것은 늦었지만 다행이다. 그러나 한국 법치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이번 파동은 남은 벌금을 받아낸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성난 민심을 달래려는 땜질식 처방이 아닌, 형사사법의 공정을 확보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이 절실하다. 국민적 분노를 불러일으킨 황제 노역 파동은 법원과 검찰의 합작품으로 드러나고 있다.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징역 5년에 벌금 1016억원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벌금형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1 · 2심에서 잇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됐는데도 항소 · 상고하지 않았다. 법원은 1심에서 하루치 노역을 2억 5000만원으로 정하더니 2심에선 두 배로 올렸다. 허 전 회장 귀국으로 여론이 악화한 뒤에야 법원은 유감을 표명하고 환형유치 제도를 개선키로 했다. 검찰 역시 뒤늦게 노역을 취소하고 재산 환수에 나섰다. 하지만 벌금을 강제집행할 단서가 있었다면 왜 곧바로 노역장에 유치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노역 중단 과정에서 관할 검찰청의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소집하지 않는 등 절차적 문제까지 불거졌다. 검찰과 법원은 아직도 중심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구치소 작업장에서 일하는 노역은 원래 벌금을 낼 형편이 못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제도다. 노역자들 대다수는 수백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으나 경제적 능력이 없어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허 전 회장처럼 벌금을 수백억원씩 선고받은 기업인들이 벌금을 내지 않고 노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허 전 회장은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다음 날 뉴질랜드로 나간 뒤 현지 카지노 귀빈실에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허 전 회장이 새로 구입한 요트를 다룰 선장을 뽑는 구인 광고를 현지 신문에 냈다거나 그가 지분을 가진 건설업체가 뉴질랜드에서 아파트 분양 사업을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벌금을 낼 만한 개인 재산이 어딘가에 넉넉하게 있을 것이라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이런 허 전 회장이 벌금 납부를 피하려고 일부러 노역을 택했다면 그는 노역 제도를 숨겨놓은 재산을 지키는 수단으로 악용한 꼴이다.

설사 허 전 회장 재판에 지역 인사들의 입김이 들어가지 않았다 하더라도 대증 요법에 치우친 미봉책만으로 법원 · 검찰에 대한 불신을 걷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판사나 검사가 “고향 경제가 흔들려선 안 된다.”는 지역 정서에 매몰되다보면 사회 전체의 정의와 상치되는 판단이 나올 위험성이 상존한다. 항소심 재판장은 광주전남 지역에서 29년간 재직한 향판이다.
 
허 전 회장의 부친도 향판을 지내 구형과 선고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향판은 대다수 판사가 서울 근무를 희망할 때 지방에서 일하려는 사람을 비려하는 차원에서 오래전부터 시작돼 2004년 노무현 정부 때 공식화했다. 그러나 향판은 토착 세력과 유착될 가능성이 높다. 2011년 선재성 부장판사 파문, 올해 2월 서남대 설립자 보석 허가 파문은 향판이 빚은 폐해다.
 
형법은 벌금대신 노역을 시킬 수 있는 기간을 최장 3년으로 정했을 뿐 노역기간이나 일당을 얼마로 할지는 법관 재량에 맡겨놓고 있다. 대법원은 벌금이 얼마 안 되는 액수이거나 당사자가 가난한 경우 노역 일당을 지금보다 높여 노역 일수를 줄이고, 벌금이 고액이거나 경제 능력이 있는 사람에겐 일당을 상당 수준 낮춰 노역 일수를 늘리는 식으로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


칭찬합시다운동중앙회
칭찬합시다운동본부
회장 나 경 택

[나경택 기자 cc_kyungte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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