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뉴스 칼럼]고전 문학을 읽는 재미

기사입력 2014.07.04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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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뉴스 = 김의기칼럼]국민을 우울하게 하는 뉴스가 계속 신문 지면과 TV 화면을 많이 차지하다 보니 신바람이 나지 않는 것 같다. 이 일련의 사건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것은 우리사회에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분발하고 한발 한발 실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우리 축구가 월드컵 무대에서 맥을 못 추는 것을 보며 요행으로 승리를 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란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이렇게 각 분야에서 실력을 향상시켜야 하는데 국민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문화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고전 문학을 읽어야 한다. 고전문학은 대부분 대하 소설이다. 우선 분량이 많고 내용이 장황하여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고전문학을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까?

먼저 작품의 문장을 즐겨야 한다. 영화감독은 배우와 배경, 음향효과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자기의 생각을 관객들에게 입체적으로 전달하는데, 작가에게 허용된 매체는 단 하나, 글뿐이다. 무척 단순한 매체가 아닐 수 없다. 작가는 문장이란 단 한나의 매체를 통해 자기의 생각과 느낌을 문장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단순하고 평면적인 매체를 제외하고는 어떤 수단도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작가는 문장을 다듬는 탁월한 기술자다. 작가들의 문장은 생각이나 장면, 상황을 단순히 직설적으로 전개하여 표현하지 않고, 이를 승화시켜 위로 끌어 올린다. 그리고 다시 끌어내려 깊숙하고 묵직하게 뜸을 들인다. 이렇게 뜸이 든 문장이라야 날카로운 칼날처럼 독자의 가슴에 불길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보리스 파스테르타크의 소설 ‘닥터 지바고’를 보면 러시아 혁명 후 혼란과 굶주림이 뒤덮고 있는 모스크바의 참혹한 모습을 이렇게 딱 한 줄로 표현한다.

“창밖에 어둡고 허기진 모스크바가 놓여 있었다.“

 긴말이 필요 없이 이 한 문장으로 그 참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19세기는 모든 에너지가 죽은 시대야. 쥘리앵의 에너지가 그들을 공포로 몰아 넣고 있어.”

이는 스탕달의 소설 ‘적과 흑’에 나오는 독백이다. 이 소설의 남자 주인공인 쥘리앵은 가난한 목재상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라틴어를 배웠고, 파리로 가 권력의 심장부에 뛰어들어 성공의 길을 달리는 야심 찬 젊은이다. 스탕달의 열정에 찬 문장은 쥘리앵의 야심과 폭발적인 에네지를 단 두줄의 문장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문장으로 승부하는 언어의 마술사이다. 문장을 음미하고 즐기면 고전문학이 좋아진다. 고전문학은 역사적이고 우주적인 웅대한 문학을 한다. 문학의 과제가 웅대한 만큼 그 문장도 담대하고 절박하다.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포인트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면서도 전체를 간결하게 보여 주기 위해서는 상당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좋은 문장을 항상 접하기 때문에 문장력이 좋아진다. 저도 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WTO에서 근무할 때 좋은 보고서를 쓸 수 있었다. WTO 사무국 직원이 사무총장에게 보내는 보고서는 모든 직원들이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 때 문장력이 좋은 보고서가 단연 돋보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라고 사정이 다를 수 없다.

문학은 또한 단순히 스토리-텔링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등장인물과 이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을 감각적 영상으로 선명하게 보여 주려고 노력한다.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에 못지않게 작가가 발견해낸 선명한 영상을 영화를 보듯 그려내고 음미 하고 즐기는 것이 좋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보면 톨스토이가 얼마나 영상 만들기에 탁월한 작가였는지 알게 된다. 다음 문장은 주인공 안드레이 공작이 로스토프가에 인사를 갔을 때 그 집에서 하루밤 머물게 되는데 그기서 나타샤를 만나게 되는 밤의 묘사이다.

“그날 밤 그는 잠이 잘 들지 않았다. 그는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달빛이 창문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방안으로 파도처럼 밀려왔다. 고요한 밤은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창문 밖에는 포플라 나무가 일렬로 서 있었는데, 한쪽은 검은 색을 띠었고 다른 쪽은 은빛으로 밝게 보였다. 나무 밑에는 조그만 나무와 풀들이 은빛 물결 속에 젖은 잎사귀와 가지를 여기 저기 뻗고 있었다. 멀리 검은 나무 숲 너머로 이슬에 젖은 지붕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그때 어느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쏘냐! 쏘냐! 어떻게 잠들 수 있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잠깐 보기나 해. 영광스러운 밤이야! 쏘냐, 잠을 깨!’ 그 목소리에는 눈물이 섞여 있었다…이렇게 특별한 밤은 다시는 없을거야. 보았어? 나는 다리를 이렇게 쪼그리고 앉아서 무릎을 이렇게 팔로 단단하게 싸안고 하늘을 나는거야, 이렇게…오, 하느님 이게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달밤의 영광이여! 창문을 열자 달빛이 창문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방안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는 장면을 톨스토이가 썼다는 것은 믿고 싶지 않다. 이건 이태백이 해야 하는 건데 이태백이 놓친 것을 톨스토이가 재빨리 해낸 것이다. 이 서정적인 장면을 연출해낸 영화감독 톨스토이, 나타샤가 다리를 감싸고 하늘을 나는 것은 어떻게 찍을까? 하늘을 날고 싶었던 열정의 소녀 나타샤는 순진하고 영리하고 쾌할한 소녀였다. 톨스토이는 문학이 창조해낸 어떤 여인상 보다도 산뜻하게 나타샤를 창조했다. 꼬제트도 마담 드 레날도 마틸드도 나타샤의 이미지를 따르지 못하는 것 같다.

고전문학의 세계는 이렇게 멋진 문장과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직 사람들이 지금처럼 황폐화되지 않은 시절, 사람들이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시절의 세계이다. 이제 다시 소녀, 소년으로 돌아가 고전의 세계에 깊이 침잠해 보지 않겠는가?

[박희성 기자 phspkc7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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