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대란 ’ 구멍난 국가 위기관리

기사입력 2011.09.28 16:15
댓글 0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FM대로 하라할 때의 FM은 군대용어 Field Manual(야전 교범)의 약자다.

 이 말의 원조 격은 로마군이다.

 공화정 후기까지 시민군 체제를 유지한 로마는 매년 바뀌는 군인들을 통솔하기 위해 정교한 교범을 마련했다.

전쟁에 졌다고 처벌하진 않았지만 매뉴얼에 따르지 않는 행동은 철저하게 처벌했다.

 건국 초기 양치기들의 무리에 불과했던 로마인들이 강력한 주변 민족들을 정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현존하는 대표적 매뉴얼 사회는 일본이다.

 대규모 지진 등 자연재해에 대비한 대처 방안을 충실하게 구축했다.

기업에 접목된 매뉴얼 풍토는 고도경제성장을 이끈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반면 맹신에 따른 관료주의의 폐해도 적지 않다.

올해 동일본 대지진 때 세계 각국으로부터 구호물자들이 들어왔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매뉴얼이 없는 탓에 신속히 전달되지 못했다.

 바닷물을 끌어다 원자로를 냉각시키는 것도 매뉴얼에 없어 미루다가 화를 키웠다.

 매뉴얼 집착은 인간을 기계로 오판하게 한다.

지식경제부가 9·15 대규모 단전 사태의 주된 책임을 전력거래소의 허위보고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전력거래소가 실제 예비전력은 24kw밖에 안되는데 가동하지도 않은 발전기의 발전량까지 포함시켜 343kw로 보고하는 바람에 대응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력거래소가 이런 식으로 전력량을 계산해온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엉터리 데이터를 바탕으로 짜놓은 전력 대책부터 바로잡지 않으면 또다시 전력대란을 겪지 말린 보장이 없다.

평소에는 멀쩡해 보이는데 들여다보면 국가적인 재앙으로 이어질 만한 분야는 전력뿐만 아니다.

지난 14일에는 항공교통센터 서버가 57분간 비정상적으로 가동되는 바람에 인천·김포·제주공항의 항공기들이 무더기로 지연 출발했으나 아직까지 그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 후 국내 원전산업의 운영기관과 안전성 평가기관을 분리해 원전의 안전 여부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말만 해놓고 여태 출범도 하지 못했다.

농협 대단위 전산망이 해킹 공격을 받아 마비되고 정부와 공공기관, 기업, 개인의 정보가 무차별 유출되는 사고가 빈발하지만 전자정부를 표방하는 현 정부의 정보 인프라 안전 관리는 취약하기 짝이 없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 포격 등 북 도발이 있을 때마다 교전 태세 정비와 첨단 장비로 북 공격대비에 만전을 기하겠노라 다짐했던 군에서는 아직도 방공포와 미사일 탐지레이더 등이 고장 투성이로 방치되고 있다는 보도가 끊이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핵심적인 원인은허술한 공직 의식'이다.

한전은 가장 크고 중요한 국가기업을 운영하면서 주인의식이 느슨했다.

한전의 기강 해이에는 정권의 낙하산 인사도 책임이 크다. 결국 대통령의 책임도 있다는 것이다.

 김진표 민주당원내 대표는한진과 11개 자회사의 경영진과 감사 22명 중 17명이 현대, 대통령직 인수위, 한나라당, TK, 고려대 등 지연·학연·직연으로 얽힌 낙하산 부대라고 주장했다.

그는한전과 11개 자회사의 감사 12명은 전원 한나라당, 인수위, 청와대, 현대 출신이라고 지적했다. 지연·학연 등이 부당하게 이용됐는지는 지금 단언할 수 없다.

하지만 야당의 지적을 받아들여 과연 이들 인사가 전문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철저히 검증하여 조치를 취해야 한다!

최중경 지식경제부장관은주무장관으로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나 장관 한 명을 교체한다고 전력 공급시스템의 뻥 뚫린 구멍이 메꿔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이번 기회에 모든 분야의 국가위기를 다시 분류하고 재점검해 취약한 곳을 찾아 보완하고, 한전을 대대적으로 개혁함으로써 레임덕에 빠진 정권에 경보를 울려야 한다

[나경택 기자 ]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저작권자ⓒ선데이뉴스신문 & newssunday.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